조지 1세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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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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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미국 황제
조지 1세 | George I
출생 1732년 2월 22일
대영제국 버지니아 식민지 웨스트 모어랜드
대관식 1792년 1월 1일
버지니아 매릴랜드 포토맥 궁
사망 1799년 12월 14일 (향년 67세)
버지니아 매릴랜드 포토맥 궁
재위 미국 황제
1789년 4월 30일 ~ 1799년 12월 14일
(10년 7월 2주, 3,880일)
작위 미국인의 왕 (1789~1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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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George)
가문 워싱턴(Washington)
부모 어거스틴 워싱턴
메리 볼 워싱턴
황후 마사 댄드리지 커스티스
자녀 슬하 2남 1녀
차남 리처드 1세
신체 188cm, 79.4kg
종교 성공회

개요

미국 초대 황제. 비록 생전에 황제라고 불렸던 적은 없으나, 후대에 황제로 추존되었으므로 사실상의 첫 황제로 분류된다.

상세

미국 독립 전쟁을 일으켜 미국을 독립시킨 미국의 국부이자, 초대 국왕으로서 나라의 기틀을 놓은 미국의 대표적인 위인이다. 자신은 공화주의를 더 선호하였다는 주장도 있으나 국민들과 신하들의 압도적인 요구 하에 국왕의 자리에 올랐으며, 불안정한 신생 국가를 안정적으로 통치하면서 창업 군주로서의 모범을 보였다.

미국의 국민들에게서는 1799년 장례식 당시 헨리 리에 의해 읊어진 "전쟁에서도 일인자, 평화에서도 일인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신민들의 가슴에 있어서도 일인자"(First in war, first in peace, and first in the hearts of his subjects)라는 평가로 기억되고 있다.

생애

청년 시절

식민지의 군인으로서

독립 전쟁을 일으키다

초대 국왕으로서

평가

타고난 능력인 명석한 판단력과, 탁월한 리더쉽으로 남들을 이끌어가는데 훌륭한 덕목을 가진 인물이었다. 이런 성격을 이용해 미국 독립 전쟁 당시의 온갖 악조건과 변수를 이겨내고 승리를 거두어 조국의 독립을 성취하는데 큰 역할을 다했다.

조지 1세는 하급 귀족 출신이었기에 신분적인 한계로 인하여 초기에는 강력한 유력 정치인들에게 휩쓸릴 수 있다는 현실적인 우려가 있었으나, 제왕과도 같은 언행과 결단력 있는 행보를 통하여 즉위하자마자 강력한 군주와 같은 강력한 정치력을 발휘하였다. 그의 민첩하고도 제왕적인 판단력은 미국이 프랑스 혁명나폴레옹 전쟁과 같은 일련의 외교적인 혼란 속에서 안정된 국가로 자리잡는데 기여하게 되었다.

현대의 사회주의자들에게는 그의 봉건성과 독재적 리더십이 비판받기도 하나, 소수 의견에 불과하다.

가족 관계

여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