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축


평축 관련 둘러보기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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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평축국
大平祝國 | Great Pyungchuk
국기 국장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將我的民族賜給我
상징
국가 평축의 찬가
국화 무궁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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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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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평양성
최대 도시
면적 134,890㎢
내수면 비율 2.48%
접경국 중국
러시아 (리좀) 러시아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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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02,378,445명 (2022년)
밀도 758.9/km² / 세계 10위 (2022년)
출산율 1.44명 (2022년)
민족 비율 평축인 90.3%, 중국인 7.3%, 기타 2.4%
종교 국교 천주교 (카톨릭)
비율 기독교 92.7% (카톨릭 89.5%, 개신교 3.2%)
불교 0.7%
기타 0.6%
무종교 6%
군대 평축군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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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체제 중앙집권제, 단일국가
하위 행정구역 3시 10성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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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양원제, 다당제(일당우위제), 단일국가, 대륙법계
민주주의 지수 4.00점, 혼합된 체제 (2022년)
(167개국 중 109위)
국왕
(국가원수)
함필규
정부
요인
총령정승
(정부수반)
이양선
귀족원 의장 김경재
신민원 의장 이상민
대법원장 양승태
여당 틀:평축천주당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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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권위주의적 자본주의 체제
GDP
(PPP)
$4조 5272억 / 세계 6위 (2022년)
1인당 $44,221 / 세계 30위 (2022년)
GDP
(명목)
$5조 6615억 / 세계 3위 (2022년)
1인당 $55,300 / 세계 15위 (2022년)
외환보유고 $5,609.9억 (2023년 05월) / 세계 7위
신용등급 무디스 Aa1 (2021년 5월)
S&P AA (2021년 4월)
Fitch AA (2023년 3월)
화폐 공식 화폐 대평축국 냥(NYANG)
ISO 4217 PCN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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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연호 서력기원
시간대 UTC+9(대평축국 표준시)
도량형 SI 단위
운전석
(통행방향)
왼쪽(우측통행)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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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연합 가입 1945년 10월 24일
ccTLD
.Pc, .평축
국가 코드
410, GPC, PC
국가 전화 코드
+82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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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평축은 동아시아에 위치한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1601년 건국되었으며, 건국 직후부터 1970년 명지선언까지 천주교를 제외한 타 종교를 탄압하던 천주교 근본주의, 그 중에서도 카톨릭 근본주의 국가였으나 명지선언 이후 타종교 허용과 더불어 다당제와 일정부분 의원내각제에 기반한 준입헌군주제 국가가 되었다

상징

국기

국가

평축의 찬가
平祝의 讚歌

평축의 찬가
[ 가사 ]
1절
우리의 믿음, 평화의 토대,

천주의 정신, 우리의 길.
신앙으로 뭉친 우리의 가족.
우리는 항상 함께 가리라.

2절
우리의 국가, 기도의 땅,
마리아의 은총, 우리의 호흡.
오직 믿음으로 하나되어,
우리의 믿음이 이끄는 길로.

3절
평화와 축복, 우리의 고향,
신앙으로 뭉친 우리의 가족.
천주의 은총, 우리의 희망,
우리는 항상 함께 가리라.

축청전쟁의 승리 직후인 1892년에 별다른 국가가 없던 평축 왕실에서 새롭게 합병한 요동 출신 음악가인 창치팅[1]에게 작사작곡을 부탁하여 만들어졌다. 관습상의 국가지만, 대부분의 행사에서 필수적으로 제창되는 등 사실상 공식적인 국가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는 수준이다.

역사

건국부터 개항까지

1602년 항일 의병장이였던 함부림에 의하여 건국되었다. 평양 출신이였던 그는 임진왜란의 발발 이후 평양에서 봉기하여 왜군과 맞서 싸웠으나 중앙정부의 처참한 대응 실패로 인하여 조선이 멸망하면서 묘향산맥에서 계속 항쟁하였다. 그리고 1594년 경 묘향산맥을 찾은 한 카톨릭 선교사에 의하여 그는 가톨릭에 감회되어 입교하였고[2], 급속도로 늘어나던 천주교 신자들의 수에 맞춰 그의 의병단 역시 급속도로 성장하였다. 그의 영향력이 어느정도였냐면 실질적으로 묘양산 인근을 통치하는 수준이였고, 그는 묘향산 호랑이로 불리었다.

1600년에 조선에 있던 다이묘들이 일본으로 철수하면서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의병봉기가 일어났다. 특히 이때 함부림을 필두로한 카톨릭계열의 의병들이 크게 공을 세우고, 평양에서 남하한 함부림이 가장 먼저 한성을 점령하면서 민심이 함부림으로 넘어온다. 다른 카톨릭 의병들 역시 속속히 함부림의 세력으로 넘어옴과 동시에 함부림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고자 하였고, 그는 이를 한사코 거부했으나 결국 왕위를 받아들여 평축을 건국하고 자기 자신은 고조로 즉위하였다. 이에 대부분의 의병들이 활동을 포기하거나, 카톨릭으로 개종하고 중앙에 편입되었고, 반발하는 일부 구 양반층이 있었으나 세력이 유약하여 아무일도 없다는듯 넘어가게 된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카톨릭에 회의적인 백성들이 많은 상황에서 선보인 그의 직전 왕조인 조선와는 다른 개혁정책들은 백성들로 하여금 왕조와 카톨릭에 대한 신임을 키우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그가 붕어하는 1630년 즈음에는 경상도 일부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카톨릭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이 될수있었다. 다음 국왕인 명종 역시 성군으로서 고종의 개혁정책을 이어갔고, 이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 위하여 한성에서 그의 아버지인 고조의 고향이자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으로 천도하기도 하였다. 또한 조선에 대한 지원을 거부하였던 명나라를 증오하여 명청교체기에서 청나라에 적극 협조하였고, 결과적으로 청나라가 승리하자 청나라로부터 체제를 인정받고 안정적으로 국가를 운영할수있었다.

1·2차 대전기

군부 집권기

군부의 퇴진 이후

현대

지리

정치

입법부

정당

왕실의 정치개입

사법

행정 구역

군사

경제

사회

신분제

카톨릭 근본주의

타종교 탄압

교육

민족

문화

외교

  1. 평축명 장지평
  2. 처음 선교사를 보았을때는 왜의 앞잡이라며 굉장히 경계하였으나, 그의 왜군과는 다른 포용적인 태도에 감회되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