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성전 안뜰에 들어가시니라 보라 여호와의 성전 문 곧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스물다섯 명이 여호와의 성전을 등지고 낯을 동쪽으로 향하여 동쪽 태양에게 예배하더라. 에스겔 43:1,2절 |
만약 조선이 임진왜란에서 패배하고, 이후 가톨릭 근본국가가 되면 어떨까?라는 질문에서 탄생한 긴배의 세계관.
상세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는 본래의 역사처럼 이북 지역으로 도망간다. 이후 명나라에게 군사 파견을 요청하나 만력제의 철저한 파업 아래 군사는 파견되지 않았고, 이순신마저 이 세계관에서는 녹둔도 전투로 인하여 관직에서 나가리가 된 상태라 조선은 별다른 저항조차 못하고 멸망하고 만다. 도요토미는 이 기세를 몰아 명나라까지 정벌하고자 하였으나 당연하게도 명나라 군과는 상대가 되지 않았고, 명나라와 밀약을 체결하고 그냥 발을 빼버린다.
이후 도요토미는 조선 지역에 고니시 유키나가를 비롯한 기리시탄 다이묘들에게 조선의 영지를 대거 나눠주는 한편, 이를 통하여 중앙에서의 기리시탄 세력의 영향력을 축소함과 동시에 이에 대한 반발을 무마하려고 시도하였다. 또한 가톨릭 선교사들에게 조선에서의 포교를 허용하면서 가톨릭은 대중 대부분이 실망한 유교와 상당부분 조직이 와해된 불교를 제치고 기리시탄 다이묘들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빠른 속도로 신자수를 늘리기 시작한다.
이와는 별개로 의병들의 활약은 이어지고 있었다. 아무리 정복당했다고는 하지만 일본에게 순순히 지배당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고, 종전 이후 오히려 더 많은 이들이 의병에 참가한다. 이중에는 가톨릭을 믿는 의병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의병 중에서도 상당한 비주류이기는 하였으나 확고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고 이에 감회되어 기존 의병중 가톨릭에 입교하는 이들도 있었다. 대중들 뿐만 아니라 의병사이에서도 점차 가톨릭의 비중이 높아직리 시작한것이다.
그러나 조선을 정복한것과는 별개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본 역사와 같이 1598년에 사망하였고, 임진왜란에서의 승리 역시 그의 사후 일어나는 대규모 권력다툼을 막지 못했다. 그의 사후 일어난 권력 다툼으로 다이묘들이 전부 일본 본토로 돌아가버리자 완전히 무정부 상태가 된 조선은 의병들을 중심으로 하여 대규모 반란이 일어나게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상당한 대중의 지지를 받고있던 가톨릭 계열의 의병들이 중심을 잡게되고, 결과적으로 가톨릭 국가인 평축이 건국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