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unist 1968, 2020 - 2022 | CC-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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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외지 | |||||
홍콩청 香港庁 | Hong Kong Prefectur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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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方的明珠 (광둥어) Pearl of the South (영어) 南方の真珠 (일본어) 남방의 진주 | |||||
역사 | |||||
난징 조약 1842년 8월 29일 베이징 조약 1860년 10월 18일 전탁홍콩계지전조 1898년 6월 9일 홍콩 침공 1940년 9월 18일 오다와라 조약 1947년 9월 10일 | |||||
지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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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O 3166-1 | |||||
HK, HKG | |||||
도메인 | |||||
.hk, .hk.jp, .香港 | |||||
국제 전화 코드 | |||||
+852 | |||||
시간대 | |||||
GMT+08:00 (홍콩 표준 시간대) |
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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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일본의 외지.
일본의 모든 식민지 중 가장 인지도가 높다. 지금은 쇼난도에 비해 그 중요성이 떨어진다지만 정치, 역사, 경제적 상징성으로 인해 여전히 높은 인지도를 누리고 있다. 오랫동안 영국, 일본 등 외세의 지배를 받아 영국, 일본, 중국, 광둥 등 여러 문화권의 문화가 섞여있는 "문화적 용광로"이며 정부의 통제와 간섭이 심한 중국 본토와 달리 일본의 방임적인 경제 운영으로 수많은 다국적 기업이 들어와있는 중국의 입구 역할도 하고 있다.
국명
향(香)을 실어 나르는 항구라고 하여 향항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광둥어로 횡공이라고 발음되던 것을 영국인들이 Hong Kong이라고 받아 적었으며 일본 역시 이 발음을 존중하여 홍콩이라는 이름이 정착되었다. 중국어로는 샹강이라고 하나 이를 알아듣는 사람들은 중국 본토인들 뿐이고 홍콩 내에서도 샹강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
일본어로 香과 港의 발음이 コウ로 같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홍콩이라고 불리는 측면도 있다. 훈독으로 읽으면 카미나토(かみなと)가 될 것이다. 일부 친일파들은 이것을 홍콩을 가리키는 말로 쓰기도 한다.
HK라는 약자를 주로 쓴다.
역사
영국령 식민지
1800년대까지는 그저 아무것도 없는 모래톱에 지나지 않았으나, 아편 전쟁으로 맺은 베이징 조약으로 이 지역을 영국이 점령하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후 상하이 조약, 전탁홍콩계지전조를 통해 구룡 반도와 신계까지 할양받으며 영국령 홍콩의 영역은 크게 확장되었다. 청나라 군대가 주둔하고 있던 구룡채성을 제외한 모든 홍콩 반도의 지역이 영국으로 귀속되었다.
영국은 이 지역을 세계적인 무역 항구로 개발시켰다. 홍콩은 중화 대륙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가 되었고 중국 문화와 영국 문화가 혼재된 독특한 문화가 발달하였다.
일본의 점령
정치
총독을 대통령으로, 정무사사장을 총리격으로 하는 이원집정부제가 운영되고 있다. 총독은 임명제이지만 정무사사장은 입법원에서 선출한다.
홍콩 내에서는 정무사사장-총독 제도를 식민 체제라고 하여 아예 홍콩청 행정대신 직위를 신설해 홍콩 시민들이 이를 직선으로 뽑아야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주류 의견이라고 보기 힘들다.
일본제국 중의원에는 3명의 파견 의원을 보내고 있으나 이들은 표결권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홍콩은 홍콩 입법원이라고 하는 단원제 형태의 독자적 의회 구성을 보장받아 예결권 등 다양한 권한에서 고도의 자치권을 누리고 있다.
총독
홍콩청 총독(일본어: 香港庁総督)은 척무성 산하에 있는 차관급의 관료이다. 그러나 다른 총독들과 마찬가지로 천황에게서 직접 임명장을 받으므로 지위는 거의 장관급으로 여겨진다. 홍콩 총독은 천황을 대리하는 홍콩의 정부 수반으로서 입법원에서 선출된 총리격인 정무사사장과 함께 홍콩의 정치를 이끌어나간다. 굳이 비유하자면 이원집정부제 하에서의 대통령과 같다고 할 수 있으며, 홍콩의 대외 정책을 주도하고 정무사사장에게 임명권을 부여할 권한을 가진다.
정무사사장
홍콩 행정원 정무사사장(일본어: 香港 行政院 政務司司長)은 홍콩 행정원의 수장이자 사실상의 정부 수반이다. 입법원 의원들의 투표로 선출되는 국무총리 격의 직위이다. 정무사사장은 중국식 한자 조어이며 일본어로 치환하면 간사장 내지는 사무총장이다.
입법원
정당
홍콩 내에서는 성향에 따라 중국과의 협력을 주장하는 화통파(華通派), 일본과의 협력을 중시하는 입제파(立帝派), 홍콩의 문화·사회적 특성을 고려해 홍콩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보존해나가야한다는 본토파(本土派)로 나뉘어져있다. 선거에서는 대략 5:4:1정도의 표가 나온다. 화통파는 진보, 입제파는 보수 성향이 나타난다.
현재의 집권당은 입제파에 속하는 남방 유신과 홍콩자유당, 신홍콩위원회, 경제자유회의이다.
경제
영국령 홍콩 시절부터 홍콩은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항구 도시로 손꼽혔으며 중일전쟁 및 태평양 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난 이후 일본제국은 홍콩을 남방 진출의 교두보로 보고 아낌 없는 투자를 해왔다. 그 결과 홍콩은 1980년대까지 중국 대륙 전체의 GDP와 맞먹는 수준의 높은 경제 규모를 가지고 있었고[2] 2000년대에 쇼난도가 새로운 항구로 떠오르기 전까지 홍콩은 남방 지역 최대의 도시로서 기능했다.
자유방임주의적인 경제 체제를 추구하고 있다. 이로 인해 빈부격차가 심한 편이며 홍콩섬과 구룡 반도 간의 격차, 그리고 일본인과 중국인 간의 격차가 심해 사회적인 문제가 된다. 본토의 사회당에서 임명하는 총독들은 사회보장제도들을 홍콩에 도입하려고 노력하였으며 어느정도의 효과를 보아 현재 홍콩의 빈익빈 부익부 문제는 1980년대만큼 심하지는 않으나 여전히 세계적인 수준이다.
홍콩 달러
홍콩 달러는 홍콩만의 고유 화폐로, 마카오, 쇼난도와 더불어 독자적인 경제 체제를 갖추고 있는 식민지이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일본 대장성은 홍콩의 화폐 발행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환율이 일본 엔과 페그되어있는 마카오 파타카, 쇼난도 엔 등과는 달리 홍콩은 자유방임주의적 자본주의 체제를 보장받고 있으므로 홀콩만큼은 일본 엔과는 독자적인 환율로서 통화가 발행된다.
2022년 7월 25일 기준으로 홍콩 달러 대 엔의 환율은 1 홍콩 달러당 220.3 엔이다. 달러당으로는 1 홍콩 달러가 1.61 달러의 가치를 한다.
교통
홍콩 카이탁 공항이 위치해있으며 오랜 기간동안 홍콩의 입구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너무나도 어려운 곡예 비행으로 인해 기피되는 공항이었고 결국 홍콩은 카이탁 공항을 폐항한 후 첵랍콕 섬(赤鱲, 세키류지마)에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을 만들었다.
일본 본토와는 다이완 섬 다카오현 다카오시에서 홍콩까지 쾌속 여객선이 편성되어있으며 값싸고 빨라서 많은 관광객과 시민들이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다이완 섬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갈 때는 항공기를 이용한다.
마카오와는 고슈이쿠 대교를 통해 육로로 연결되어있다. 고슈이쿠 대교는 란터우섬에서 마카오 본토까지를 이어준다.
외교
영국-홍콩 관계
중국과의 영토 분쟁
1898년 전탁홍콩계지전조로 99년간 신계 지역을 "빌려준" 국민당 정권은 신계 지역을 되돌려받아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과 영국간의 치뤄진 조약이고, 이를 영국이 다시 일본에게 지배 주체로 바꾼 것에 불과하므로 일본은 신계를 되돌려줄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 측에서는 영국과 일본의 홍콩 양도 조약인 오다와라 조약으로 전탁홍콩계지전조는 무효화되었음을 주장한다. 또한 1898년 당시의 조약은 청나라와 영국 간의 조약이었으므로 국민당 정권 자체가 전탁홍콩계지전조의 계약 주체가 아니라는 것이 일본의 설명이다. 예컨대 중국은 현재 국민당 정권, 공산당 정권, 직예 등으로 나뉘어져있어 영토 소유 주체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또 애당초 청나라를 계승하는 만주국 자체가 일본의 동맹인데다가 만주국이 합법적 방법으로 자국의 영토인 홍콩을 일본으로 양도했기 때문에 국민당 정권의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도 하고 있다.
국민당 정권은 이에 불복하며 홍콩과의 국경에 군대를 주둔한 상태이며 일본 역시 이에 대항해 육군 사단 2개를 홍콩 국경에 주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