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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background: # | | style="background: #bf1400; color: #ffd400" | '''조선 왕세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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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5년 | | 1895년 1월 12일 ~ 1901년 3월 29일 <small>(6년)</small>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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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background: # | | style="background: #4E0000; color: #E2BB00" | '''대조선국 제2대 태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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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901년 3월 29일 ~ 1948년 5월 25일 <small>(47년)</small>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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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width: 100px; background: # | ! style="width: 100px; background: #4E0000; color: #E2BB00" | 본관 | ||
| 전주 이씨 | | 전주 이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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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왕 [[ | | 부왕 [[예조 (빨간풍선)|예조]]<br>모후 문성왕후 김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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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경인왕후 이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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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남 [[ | | 장남 [[신종 (빨간풍선)|신종]]<br>차남 [[강친왕 (빨간풍선)|강친왕]]<br>삼남 [[금친왕 (빨간풍선)|금친왕]]<br>장녀 인선공주<br>차녀 인경공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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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background: # | ! style="background: #4E0000; color: #E2BB00" | 종교 | ||
| 유교 <small>(성리학)</small> | | 유교 <small>(성리학)</small>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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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background: # | ! style="background: #4E0000; color: #E2BB00" | 아명 | ||
| | | 수성(綏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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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광도(廣道)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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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광종'''(光宗)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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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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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background: #4E0000; color: #E2BB00" | 연호 | |||
| '''[[광형 시대 (빨간풍선)|광형]]'''(光亨, 1895~19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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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background: #4E0000; color: #E2BB00" | 계급 | |||
| [[대조선국 국군 (빨간풍선)|대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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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div> | |}</div></div>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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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개요 == | == 개요 == | ||
광종 이훈(光宗 李鑫)는 [[대조선국 (빨간풍선)|대조선국]]의 제2대 [[태왕 (빨간풍선)|태왕]]이다. | |||
== | 예조 사후 나선정벌과 양차 대전이라는 비상한 시대를 통치하며 후조선의 기틀을 잡은 명군으로 내치에서 성공을 이끈 부왕과 아들과는 달리 48년이라는 긴 재위 기간 동안 군주로서 내치와 외치 모두 승리를 거듭하여 훗날의 중흥을 위한 초석을 마련하였고 전제군주제였던 조선에서 서구식 양원제를 도입하여 정당정치의 초석을 마련하였으나 말년에는 지나친 인간 불신과 병환으로 인해 스스로가 이룩한 의회정치의 몰락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 ||
=== 즉위 이전 === | |||
1878년 [[예조 (빨간풍선)|예조]]의 장남으로 태어나, 7세의 나이에 왕세자에 봉해졌다. 아버지 예조는 전형적인 사대부 였던 군주였던 것과는 달리, 문무를 모두 겸비하였으나 서구의 학문과 군사학에 모두 능했으며 음악과 예술에 조예가 높았다고 한다. | |||
어린 광종은 세자시강원에서 서양 교사들과 경연관들에게 기초 학문을 익혔다. 광종은 프랑스어와 영어에 능통했으며, 수학과 과학, 지리학, 역사, 예술도 빠르게 깨우쳤다. | |||
광종은 자라나며 성리학보다는 서구의 사상과 군사학에 관심을 가지며 중신들의 우려를 사기도 하였다. 그러나 부왕이 태자를 전적으로 지지하며 광종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제왕학을 익혀갔고, 1893년 15세가 되던 나이부터는 부왕과 함께 국사에 참여하며 후계자 수업을 이어나가기 시작했고, 부왕의 건강이 악화되던 1898년부터는 대리청정을 수행하며 정무의 대부분을 직접 처리했다. | |||
이렇듯 광종은 태왕에 등극하기 전 3년이라는 시간동안 태왕으로써의 무게와 역할을 배우며 스스로의 치세에 대한 신념을 굳히기 시작하였다. | |||
=== 즉위 === | |||
1901년 3월 29일, 부왕 예조가 붕어하자 태자는 연호를 주역에 나오는 합홍'''광'''대 품물광'''형'''(含弘'''光'''大 品物咸'''亨'''. 품은 것이 크고 넓으니, 만물은 모두 형통하다.)이라는 구절에서 따온 '광형'으로 정하고 즉위했다. | |||
광종이 보위에 올랐을 때 신생 제국인 조선은 혼란스러웠다. 권비의 난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조일 연합군과 러시아군은 만주를 갈라먹으며 대치했고 만주의 의화단은 국경을 넘어 조선을 약탈하려 시도하였고, 헌법 제정 논의가 대두되었다. | |||
광종은 차근차근 엉킨 실타래처럼 꼬인 일들을 해결하기 시작했다. 군을 동원하여 남만주를 점령하는 한편 경찰과 헌병을 동원하여 만주평정작전을 개시, 광종실록에 따르면 권비나 청군 패잔병이 잔존하는 것으로 의심되던 부락을 완전 초토화 시키켰다고 하며<ref>이때 초토화된 부락에는 조선의 이민자들이 대규모로 이주하여 만주의 새로운 지배층으로 부상하였다.</ref> 이러한 광종의 신중하지만 과감한 통치는 예조 사후 비통과 불안으로 얼룩진 조선 땅을 안정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 |||
==== 군신 ==== | |||
권비의 난이 끝나고도 조일 양국간의 유착은 더욱 공고해졌다. 1902년 영일동맹 채결과 동시에 조선은 일본과 조일동맹을 채결하여 반러연대를 천명하였고, 1904년 양국이 기습적으로 제물포 앞 바다에서 러시아 순양함에 선제공격을 가하며 광형노국전쟁이 시작되었다. | |||
광종은 원수부와 조정을 서경 행궁으로 이전시키며 친정에 나섰다. 조일연합군은 육상과 해상에서 분전을 거듭하였고, 마침내 1904년 5월 28일 조일연합함대가 대마도에서 러시아 발트함대를 격파하며 조선은 일약 일본 다음가는 동아시아의 패자로 부상하였다. 동시에 친정을 하며 군을 이끈 광종은 광개토대왕과 부왕 예조를 이어 군신의 지위에 올랐고, 부왕에게 물려받은 막강한 왕권은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다. | |||
==== 군민공치의 길 ==== | |||
1905년 승전 이후 광종은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한성으로 환도했다. 환도 직후 입헌정체를 선포, 그동안 미루어왔던 [[대조선국 국제 (빨간풍선)|대조선국 국제]]를 반포하고 중추원을 개회하였다. | |||
중추원 개회 이후 광종은 예조 시절의 전제군주제에서 프로이센식 입헌군주정으로 전환을 도모하였다. 이 시기의 군민공치를 광형민본운동이라고 부른다. | |||
광형민본운동의 기간은 주로 1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대공황 직후를 의미하는데, 이 시기 조선은 [[시베리아 원정 (빨간풍선)|시베리아 원정]]으로 연해주의 일부 지역을 점령하고 [[노령제민족연합정부 (빨간풍선)|노령제민족연합정부]]를 설립하며 연해주에 소련을 막을 방파재를 건설하였다. 또한 1차 대전의 전쟁 특수와 전후 광란의 20년대에 편승한 조선은 유래없는 대호황의 길을 걸었다. 이 시기를 가리켜 광형성대라고 부른다. | |||
==== 갈대보다는 소나무를 ==== | |||
광형성대는 1920년대 말이 되자 서서히 그 끝을 보이기 시작했다.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은 일본을 거쳐 대한제국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광종은 의정부의 경제 대응 미진을 질타하며 개각을 단행, 교체하는 한편 [[노령제민족연합정부 (빨간풍선)|노령]]에서 성과를 거둔 소련식 중공업화 정책을 도입하고, 이를 주도한 노령관료들을 적극 등용하여 국가주도적 경제개발에 나선다. | |||
1931년 조선은 영국에 이어 금본위제를 정지하고, 원화 약세와 함께 무역을 확대하고 종속지역과의 무역을 급속히 확대함으로써 대공황 이전의 GDP 수준을 회복하는 한편 자력갱생 운동을 전개하여 경제블럭을 공고히 하였지만, 1940년대까지 경제 침체를 피할 수 없었다. | |||
대공황 당시 경제적 혼란은 영토 팽창과 극우, 극좌 정치의 득세를 야기했다. 이 당시 광종은 이러한 극단주의와 팽창주의적 시도를 무지막지하게 진압했다. 혹세무민을 금한다는 명분하에 사회계몽법을 통과시켜 극좌, 극우 언론 세력을 정간시키고, 소요진압법을 제정해 중추원 의관의 면책특권을 박탈하고 의금부가 난동단체로 정한 단체는 모조리 해산하는 [[광형옥사 (빨간풍선)|광형옥사]]로 가까스로 극단주의 세력을 거세하는데 성공했다. | |||
이외 함께 조선령 만주를 제외한 남만주 일대에 영향력을 증가시키는 귀환운동을 통해 남만주에서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며, [[노령제민족연합정부 (설중매)|노령]] 정부를 교체하여 국민투표를 통해 [[솔빈번 (빨간풍선)|솔빈번]]을 세우고, 위성국화 하며 국내의 팽창주의자들의 불만을 달래고 영토 확장론을 일축했다. | |||
=== 사망 === | |||
광종이 어지간하면 내각에서 처리하던 일도 편집증적으로 자신이 전부 처리하였기에 광종의 몸은 엉망이었다. 게다가 1930년대, 대공황으로 인한 경제 위기와 정치 혼란, 사회 문제들을 자신이 일일히 수습하며 광종의 건강은 크게 악화되었으며, 말년엔 [[순현인황후 (설중매)|순현인황후]]와의 다툼으로 육체적으로 한계에 다다랐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더더욱 정무에 열을 올렸다. | |||
결국 1943년 10월 11일 인정전에서 집무를 보던 중 쓰러졌고, 10월 14일 다시 정신을 차린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자 마자 다시 밀린 정무를 보며 이미 쇠약해진 몸이 더욱 위독해져 10월 17일 다시 쓰러져 10월 18일 오후 3시경 창덕궁 대조전에서 향년 64세를 일기로 황후와 [[신종 효황제 이훈|황태자]]를 비롯한 황족들이 보는 앞에서 붕어한다. | |||
== 여담 == | == 여담 == | ||
== 가계 == | == 가계 == | ||
* 증조부 : 완성군 희(完城君 爔, 1771 ~ 1830) | |||
* 증조모 : 남양군부인 홍씨(南陽郡夫人 洪氏, 1772 ~ 1808) | |||
** 조부 : 완창대원왕 시인(完昌大院王 時仁, 1805 ~ 1843) | |||
** 조모 : 경주대원비 김씨(慶州大院妃 金氏, 1816 ~ 1863) | |||
*** 부친 : 예조 교(藝祖 㚁, 1842 ~ 1901) | |||
*** 모친 : 문성왕후 김씨(文成王后 金氏, 1837 ~ 1888) | |||
* 왕후 : 원명왕후 홍씨(元明王后 洪氏, 1883 ~ 1932) | |||
** 장남 : [[신종 (빨간풍선)|신종 숙]](神宗 淑), 1916 ~ 1978) | |||
*** 며느리 : 원명왕후 홍씨(元明王后 洪氏, 1913 ~ 1992) | |||
** 차남 : [[강친왕 (빨간풍선)|강친왕 만]](康親王 滿), 1919 ~ 1988) | |||
*** 며느리 : 강친왕비 안씨(康親王妃 安氏, 1919 ~ 1990) | |||
** 삼남 : [[금친왕 (빨간풍선)|금친왕 주]](錦親王 瀯), 1921 ~ 1998) | |||
*** 며느리 : 금친왕비 민씨(錦親王妃 閔氏, 1923 ~ 199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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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선국 제실의 계보도 (빨간풍선)}} | |||
{{대조선국 제실 (빨간풍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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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각주}} | ||
[[분류: | [[분류:빨간풍선]] [[분류:광종 (빨간풍선)]] | ||
2026년 2월 18일 (수) 17:27 기준 최신판
대조선국 태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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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조선국 제2대 태왕 광종 | 光宗 | |
|---|---|
| 이름 | 훈(鑫) |
| 출생 | 1878년 11월 22일 |
| 한성부 창덕궁 대조전 (現 경성 한성부 창덕궁 대조전) | |
| 붕어 | 1948년 5월 25일 (향년 69세) |
| 경성 한성부 경운궁 | |
| 재위기간 | 조선 왕세자 |
| 1885년 5월 28일 ~ 1895년 1월 12일 (9년) | |
| 대조선국 왕태자 | |
| 1895년 1월 12일 ~ 1901년 3월 29일 (6년) | |
| 대조선국 제2대 태왕 | |
| 1901년 3월 29일 ~ 1948년 5월 25일 (47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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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예조 사후 나선정벌과 양차 대전이라는 비상한 시대를 통치하며 후조선의 기틀을 잡은 명군으로 내치에서 성공을 이끈 부왕과 아들과는 달리 48년이라는 긴 재위 기간 동안 군주로서 내치와 외치 모두 승리를 거듭하여 훗날의 중흥을 위한 초석을 마련하였고 전제군주제였던 조선에서 서구식 양원제를 도입하여 정당정치의 초석을 마련하였으나 말년에는 지나친 인간 불신과 병환으로 인해 스스로가 이룩한 의회정치의 몰락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즉위 이전
1878년 예조의 장남으로 태어나, 7세의 나이에 왕세자에 봉해졌다. 아버지 예조는 전형적인 사대부 였던 군주였던 것과는 달리, 문무를 모두 겸비하였으나 서구의 학문과 군사학에 모두 능했으며 음악과 예술에 조예가 높았다고 한다.
어린 광종은 세자시강원에서 서양 교사들과 경연관들에게 기초 학문을 익혔다. 광종은 프랑스어와 영어에 능통했으며, 수학과 과학, 지리학, 역사, 예술도 빠르게 깨우쳤다.
광종은 자라나며 성리학보다는 서구의 사상과 군사학에 관심을 가지며 중신들의 우려를 사기도 하였다. 그러나 부왕이 태자를 전적으로 지지하며 광종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제왕학을 익혀갔고, 1893년 15세가 되던 나이부터는 부왕과 함께 국사에 참여하며 후계자 수업을 이어나가기 시작했고, 부왕의 건강이 악화되던 1898년부터는 대리청정을 수행하며 정무의 대부분을 직접 처리했다.
이렇듯 광종은 태왕에 등극하기 전 3년이라는 시간동안 태왕으로써의 무게와 역할을 배우며 스스로의 치세에 대한 신념을 굳히기 시작하였다.
즉위
1901년 3월 29일, 부왕 예조가 붕어하자 태자는 연호를 주역에 나오는 합홍광대 품물광형(含弘光大 品物咸亨. 품은 것이 크고 넓으니, 만물은 모두 형통하다.)이라는 구절에서 따온 '광형'으로 정하고 즉위했다.
광종이 보위에 올랐을 때 신생 제국인 조선은 혼란스러웠다. 권비의 난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조일 연합군과 러시아군은 만주를 갈라먹으며 대치했고 만주의 의화단은 국경을 넘어 조선을 약탈하려 시도하였고, 헌법 제정 논의가 대두되었다.
광종은 차근차근 엉킨 실타래처럼 꼬인 일들을 해결하기 시작했다. 군을 동원하여 남만주를 점령하는 한편 경찰과 헌병을 동원하여 만주평정작전을 개시, 광종실록에 따르면 권비나 청군 패잔병이 잔존하는 것으로 의심되던 부락을 완전 초토화 시키켰다고 하며[1] 이러한 광종의 신중하지만 과감한 통치는 예조 사후 비통과 불안으로 얼룩진 조선 땅을 안정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군신
권비의 난이 끝나고도 조일 양국간의 유착은 더욱 공고해졌다. 1902년 영일동맹 채결과 동시에 조선은 일본과 조일동맹을 채결하여 반러연대를 천명하였고, 1904년 양국이 기습적으로 제물포 앞 바다에서 러시아 순양함에 선제공격을 가하며 광형노국전쟁이 시작되었다.
광종은 원수부와 조정을 서경 행궁으로 이전시키며 친정에 나섰다. 조일연합군은 육상과 해상에서 분전을 거듭하였고, 마침내 1904년 5월 28일 조일연합함대가 대마도에서 러시아 발트함대를 격파하며 조선은 일약 일본 다음가는 동아시아의 패자로 부상하였다. 동시에 친정을 하며 군을 이끈 광종은 광개토대왕과 부왕 예조를 이어 군신의 지위에 올랐고, 부왕에게 물려받은 막강한 왕권은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다.
군민공치의 길
1905년 승전 이후 광종은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한성으로 환도했다. 환도 직후 입헌정체를 선포, 그동안 미루어왔던 대조선국 국제를 반포하고 중추원을 개회하였다.
중추원 개회 이후 광종은 예조 시절의 전제군주제에서 프로이센식 입헌군주정으로 전환을 도모하였다. 이 시기의 군민공치를 광형민본운동이라고 부른다.
광형민본운동의 기간은 주로 1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대공황 직후를 의미하는데, 이 시기 조선은 시베리아 원정으로 연해주의 일부 지역을 점령하고 노령제민족연합정부를 설립하며 연해주에 소련을 막을 방파재를 건설하였다. 또한 1차 대전의 전쟁 특수와 전후 광란의 20년대에 편승한 조선은 유래없는 대호황의 길을 걸었다. 이 시기를 가리켜 광형성대라고 부른다.
갈대보다는 소나무를
광형성대는 1920년대 말이 되자 서서히 그 끝을 보이기 시작했다.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은 일본을 거쳐 대한제국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광종은 의정부의 경제 대응 미진을 질타하며 개각을 단행, 교체하는 한편 노령에서 성과를 거둔 소련식 중공업화 정책을 도입하고, 이를 주도한 노령관료들을 적극 등용하여 국가주도적 경제개발에 나선다.
1931년 조선은 영국에 이어 금본위제를 정지하고, 원화 약세와 함께 무역을 확대하고 종속지역과의 무역을 급속히 확대함으로써 대공황 이전의 GDP 수준을 회복하는 한편 자력갱생 운동을 전개하여 경제블럭을 공고히 하였지만, 1940년대까지 경제 침체를 피할 수 없었다.
대공황 당시 경제적 혼란은 영토 팽창과 극우, 극좌 정치의 득세를 야기했다. 이 당시 광종은 이러한 극단주의와 팽창주의적 시도를 무지막지하게 진압했다. 혹세무민을 금한다는 명분하에 사회계몽법을 통과시켜 극좌, 극우 언론 세력을 정간시키고, 소요진압법을 제정해 중추원 의관의 면책특권을 박탈하고 의금부가 난동단체로 정한 단체는 모조리 해산하는 광형옥사로 가까스로 극단주의 세력을 거세하는데 성공했다.
이외 함께 조선령 만주를 제외한 남만주 일대에 영향력을 증가시키는 귀환운동을 통해 남만주에서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며, 노령 정부를 교체하여 국민투표를 통해 솔빈번을 세우고, 위성국화 하며 국내의 팽창주의자들의 불만을 달래고 영토 확장론을 일축했다.
사망
광종이 어지간하면 내각에서 처리하던 일도 편집증적으로 자신이 전부 처리하였기에 광종의 몸은 엉망이었다. 게다가 1930년대, 대공황으로 인한 경제 위기와 정치 혼란, 사회 문제들을 자신이 일일히 수습하며 광종의 건강은 크게 악화되었으며, 말년엔 순현인황후와의 다툼으로 육체적으로 한계에 다다랐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더더욱 정무에 열을 올렸다.
결국 1943년 10월 11일 인정전에서 집무를 보던 중 쓰러졌고, 10월 14일 다시 정신을 차린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자 마자 다시 밀린 정무를 보며 이미 쇠약해진 몸이 더욱 위독해져 10월 17일 다시 쓰러져 10월 18일 오후 3시경 창덕궁 대조전에서 향년 64세를 일기로 황후와 황태자를 비롯한 황족들이 보는 앞에서 붕어한다.
여담
가계
- 증조부 : 완성군 희(完城君 爔, 1771 ~ 1830)
- 증조모 : 남양군부인 홍씨(南陽郡夫人 洪氏, 1772 ~ 1808)
- 조부 : 완창대원왕 시인(完昌大院王 時仁, 1805 ~ 1843)
- 조모 : 경주대원비 김씨(慶州大院妃 金氏, 1816 ~ 1863)
- 부친 : 예조 교(藝祖 㚁, 1842 ~ 1901)
- 모친 : 문성왕후 김씨(文成王后 金氏, 1837 ~ 1888)
- 왕후 : 원명왕후 홍씨(元明王后 洪氏, 1883 ~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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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대조선국 제실의 계보도 (빨간풍선) 틀:대조선국 제실 (빨간풍선)
- ↑ 이때 초토화된 부락에는 조선의 이민자들이 대규모로 이주하여 만주의 새로운 지배층으로 부상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