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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토결전이 감행되고 총독부는 일단 총옥쇄 태세에 돌입함. 근데 아무리 눈이 삐었어도 무적황군은 소련군 발가락도 못건들고 전멸할 운명인건 자명함(이미 관동군이 그럼). 최소한의 상식과 제정신이 박혀있던 아베 총독은 소련군과 교섭하는 한편 소련군 진주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 조선인 민족지도자들과도 교섭에 돌입함 | |||
소련군에 손이 발이되도록 빈 아베 총독은 항복을 대가로 자신과 거주 일본인들의 최소한의 신변보장을 승인받음. 또한 소련군 입성에 대비해서 원역처럼 과도 조선인 행정조직 설립을 목표로 송진우와 접촉했으나 거절당한 후 여운형과 접촉해서 OK 사인을 받음. 여운형은 (우선 연락이 닿는) 송진우로 대표되는 남선 민족주의 세력과 합의를 통해 합작을 결의함 - 송진우는 우익 임정법통론자지만 임정과 미군이 언제 당도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소련군이 온다는 말을 듣고 협력을 결정함 | |||
8월 15일, 아베 총독은 조선주차군에 대한 전투 중지 - 사실상 항복 명령을 내림. 그리고 당일에 경성에서 건준 성립이 선포되고 석방된 정치범들을 주축으로 각지에 지부가 성립되기 시작함. 8월 17일, 소련군이 경성에 입성함. 소련은 "생각보다는" 신사적으로 행동하는 한편<ref>미중소영 4개국 합동관리 예정이라 단독으로 뭘 할 여지가 제한되어 있었음</ref> 총독부를 인수하고 건준 및 각지에 조직되기 시작한 각지 건준 조직과 협력함. 그리고 공개적-정상적인 연락이 가능해짐에 따라 조만식으로 대표되는 북선 민족주의 세력, 허헌 등의 온건 좌파 세력, 박헌영의 조공 등의 건준에 합류함 | |||
8월 19일, 전국유지자대회가 소집되어 건준이 확대 개편됨. 건준은 소련군정의 협조 하에 일정 수준의 내부갈등에도 불구하고 군정의 보조조직이자 자치조직으로 기능함.<ref>오스트리아에서 독단적으로 행정부를 세웠다 다른 연합국 일원의 반발을 받은 전적으로 조선 민간 행정부의 성립은 이루어지지 않음.</ref> 한편 소련군은 미군 주둔 이전까지 유일한 외국 군대였고 쪽수도 많았기에 소련군의 만행이 점점 부각되기 시작함, 이는 소련과 불가피하게 동치될 수 밖에 없던 전후 최대 정당이던 조공에 대한 지지를 점차 약화시킴. | |||
9월 9일, 미군이 몰락작전 목적으로 인천에 상륙하여 서울에 입성함. 그리고 미군과 함께 광복군 일원들도 서울에 입성하여 열렬한 환영을 받음. 미군 일부는 서울과 인천에 주둔하는 한편 다수의 미군은 부산 일대에 주둔하여 상륙을 준비하기 시작함. 실질적인 소련의 단독 군정에서 드디어 소련 이외의 국가, 그것도 소련과 정 반대되는 성격의 국가가 군정에 참여하면서 군정의 성격과 조선의 정세가 요동치기 시작함 | |||
미군은 양 민주당을 위시로 하는 보수적 반공 민족주의 우익 세력을 지원하기 시작함, 이에 따라 뒷배가 생긴 친미 성향의 우익과 친소 성향 좌익의 갈등이 격화됨. 국내 민족주의 세력의 임정봉대론과 좌익에 비해 명확히 열세인 우익의 인망과 세력을 본 미국 당국은 충칭의 임정과 국내에 진입한 광복군을 내세워 자신들에 우호적인 우익의 세를 불리기로 함 | |||
1946년 4월 19일 일본 항복. | |||
= 오사카 유신 = | = 오사카 유신 = | ||
2026년 7월 30일 (목) 00:03 기준 최신판
중국이 제국주의에 의해서 망한다면
중국인은 망국의 인간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공산주의에 의해서 망한다면 중국인은 노예로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민국 38(民國三十八)은 가장 대표적인 대체역사 소재 중 하나인 중화민국의 국공내전 승리를 가정한 세계관입니다. 민국 38년(1949년) 중화민국의 국공내전 승리 이후 중국과 동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변화한 여러 정치, 사회, 문화, 역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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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총리와 악수하는 윤보선 대통령 |
한국 계획
본토결전이 감행되고 총독부는 일단 총옥쇄 태세에 돌입함. 근데 아무리 눈이 삐었어도 무적황군은 소련군 발가락도 못건들고 전멸할 운명인건 자명함(이미 관동군이 그럼). 최소한의 상식과 제정신이 박혀있던 아베 총독은 소련군과 교섭하는 한편 소련군 진주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 조선인 민족지도자들과도 교섭에 돌입함
소련군에 손이 발이되도록 빈 아베 총독은 항복을 대가로 자신과 거주 일본인들의 최소한의 신변보장을 승인받음. 또한 소련군 입성에 대비해서 원역처럼 과도 조선인 행정조직 설립을 목표로 송진우와 접촉했으나 거절당한 후 여운형과 접촉해서 OK 사인을 받음. 여운형은 (우선 연락이 닿는) 송진우로 대표되는 남선 민족주의 세력과 합의를 통해 합작을 결의함 - 송진우는 우익 임정법통론자지만 임정과 미군이 언제 당도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소련군이 온다는 말을 듣고 협력을 결정함
8월 15일, 아베 총독은 조선주차군에 대한 전투 중지 - 사실상 항복 명령을 내림. 그리고 당일에 경성에서 건준 성립이 선포되고 석방된 정치범들을 주축으로 각지에 지부가 성립되기 시작함. 8월 17일, 소련군이 경성에 입성함. 소련은 "생각보다는" 신사적으로 행동하는 한편[1] 총독부를 인수하고 건준 및 각지에 조직되기 시작한 각지 건준 조직과 협력함. 그리고 공개적-정상적인 연락이 가능해짐에 따라 조만식으로 대표되는 북선 민족주의 세력, 허헌 등의 온건 좌파 세력, 박헌영의 조공 등의 건준에 합류함
8월 19일, 전국유지자대회가 소집되어 건준이 확대 개편됨. 건준은 소련군정의 협조 하에 일정 수준의 내부갈등에도 불구하고 군정의 보조조직이자 자치조직으로 기능함.[2] 한편 소련군은 미군 주둔 이전까지 유일한 외국 군대였고 쪽수도 많았기에 소련군의 만행이 점점 부각되기 시작함, 이는 소련과 불가피하게 동치될 수 밖에 없던 전후 최대 정당이던 조공에 대한 지지를 점차 약화시킴.
9월 9일, 미군이 몰락작전 목적으로 인천에 상륙하여 서울에 입성함. 그리고 미군과 함께 광복군 일원들도 서울에 입성하여 열렬한 환영을 받음. 미군 일부는 서울과 인천에 주둔하는 한편 다수의 미군은 부산 일대에 주둔하여 상륙을 준비하기 시작함. 실질적인 소련의 단독 군정에서 드디어 소련 이외의 국가, 그것도 소련과 정 반대되는 성격의 국가가 군정에 참여하면서 군정의 성격과 조선의 정세가 요동치기 시작함
미군은 양 민주당을 위시로 하는 보수적 반공 민족주의 우익 세력을 지원하기 시작함, 이에 따라 뒷배가 생긴 친미 성향의 우익과 친소 성향 좌익의 갈등이 격화됨. 국내 민족주의 세력의 임정봉대론과 좌익에 비해 명확히 열세인 우익의 인망과 세력을 본 미국 당국은 충칭의 임정과 국내에 진입한 광복군을 내세워 자신들에 우호적인 우익의 세를 불리기로 함
1946년 4월 19일 일본 항복.
오사카 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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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dan 제작 | CC BY-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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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총독부 朝鮮總督府 | Government-General of Chōse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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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 |||||
| 수립일 | 메이지 43년 10월 1일 | ||||
| 정부수반 | 조선 총독 | ||||
| 정부청사 | 조선총독부 청사 | ||||
| 행정조직 | n부 n과 n국 | ||||
| 링크 | |||||
개요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는
르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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