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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 == 개요 == | ||
2007년 5월 6일 치러진 [[대한공화국 (리좀)|대한공화국]]의 대통령 선거이다. | |||
== 배경 == | |||
[[제31회 국민원 의원 총선거 (리좀)|31회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어 지지 기반을 확보한 [[노무현 (리좀)|노무현]] 대통령이었지만 노 대통령의 의회 지지 기반이었던 한인사회당의 초, 재선 의원들은 정무감각이 크게 뒤떨어졌고, 지휘부는 우유부단했다. 결국 각 의원들이 통합된 행동 없이 개인 플레이만을 추구하며 당은 분열되었다. 국정이 정상적으로 굴러갈리가 없었고 총리가 1년마다 교체되는 혼란상에서, 사회당의 지지율은 급격하게 추락했고 [[박근혜 (리좀)|박근혜]]와 [[이명박 (리좀)|이명박]]이라는 두 거물급 대선 후보가 공화당을 이끌고 정권교체를 내세우며 지지율을 올린다. | |||
2006년 연말 이명박과 박근혜의 대타협으로 이명박이 총리로서 내치를, 박근혜가 대통령으로서 외치를 맡기로 한 사실상의 동거정부 협상 직후, [[김한길 (리좀)|김한길]]이 이끄는 사회당 내 비노파가 집단탈당해 사회당은 과반 의석을 상실했고 뒤이어 천정배, 정동영, 신기남, 심상정, 노회찬 의원 등도 사회당을 탈당하면서 사회당은 제1당 유지조차 어려워졌다. 과반을 얻은 의회 내 반 노무현파는 [[김근태 (리좀)|김근태]] 총리에 대해 불신임을 상정해 통과시켰으며, 노무현 대통령은 제1야당 당수인 이명박을 울며겨자먹기로 총리로 임명한다. | |||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친노파 전원이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김한길을 위시로 한 비노계가 모두 사회당에 재입당했고 사회당은 1당 지위를 수복하였으며 비교적 안정적인 인사로 여겨진 [[고건 (리좀)|고건]] 전 서울시장을 후보로 선출하나 지지율은 매우 저조했다. 한편 전 대통령 선거에서 출마한 [[이회창 (리좀)|이회창]] 국무총리는 이명박과 박근혜의 야합, 부정부패 등을 비판하며 충청권 지역정당인 [[자유선진당 (리좀)|자유선진당]]을 창당해 중도보수 노선을 내걸었으며, 노동계 인사인 [[권영길 (리좀)|권영길]] 전 노동부장관 역시 무소속 출마를 타진하며 유례 없는 4자 구도가 성립되었다. | |||
== 후보자 경선 == | |||
=== [[공화당 (리좀)|공화당]]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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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4" style="background: #0065B3; color: #fff; line-height: 160%;" | <div style="margin-top: 3px;">'''{{글씨 크기|14|제13회 대통령 선거 공화당<br>대통령 후보 경선 투표}}'''</div>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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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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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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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종률 (리좀)|변종률]](卞宗率)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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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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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당 탈당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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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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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장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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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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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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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선 시행 전에 이명박 총리가 총리직 유지에 대한 친박파의 지지를 전제로 대통령 후보직에서 사퇴하기로 결정했고, 따라서 승자는 사실상 박근혜로 확정되었다. [[변종률 (리좀)|변종률]], [[원희룡 (리좀)|원희룡]] 등 당내 좌파가 이에 맞섰으나 역부족이었고 박근혜가 1차 투표에서 '''85%'''를 단독으로 득표해 후보로 선출되었다. 사실상 선거 전부터 승자가 정해져있었으므로 투표율도 30%대로 매우 저조했다. | |||
== 여론조사 == | == 여론조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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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공화국의 주요 선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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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대통령 선거 第13回大統領選擧 | ||||||||
---|---|---|---|---|---|---|---|---|
지역별 결과 (1차 / 결선)[1]
| ||||||||
| ||||||||
투표율 | 1차 66.83% ▼ nn.nn%p 결선 63.52% ▼ nn.nn%p | |||||||
선거 결과 | ||||||||
후보 | ||||||||
1차 투표 | ||||||||
21.99% 9,400,740 |
35.32% 15,100,170 | |||||||
결선 투표 | ||||||||
40.28% 16,130,932 |
59.72% 23,916,805 | |||||||
당선자 | ||||||||
공화당 박근혜 |
개요
2007년 5월 6일 치러진 대한공화국의 대통령 선거이다.
배경
31회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어 지지 기반을 확보한 노무현 대통령이었지만 노 대통령의 의회 지지 기반이었던 한인사회당의 초, 재선 의원들은 정무감각이 크게 뒤떨어졌고, 지휘부는 우유부단했다. 결국 각 의원들이 통합된 행동 없이 개인 플레이만을 추구하며 당은 분열되었다. 국정이 정상적으로 굴러갈리가 없었고 총리가 1년마다 교체되는 혼란상에서, 사회당의 지지율은 급격하게 추락했고 박근혜와 이명박이라는 두 거물급 대선 후보가 공화당을 이끌고 정권교체를 내세우며 지지율을 올린다.
2006년 연말 이명박과 박근혜의 대타협으로 이명박이 총리로서 내치를, 박근혜가 대통령으로서 외치를 맡기로 한 사실상의 동거정부 협상 직후, 김한길이 이끄는 사회당 내 비노파가 집단탈당해 사회당은 과반 의석을 상실했고 뒤이어 천정배, 정동영, 신기남, 심상정, 노회찬 의원 등도 사회당을 탈당하면서 사회당은 제1당 유지조차 어려워졌다. 과반을 얻은 의회 내 반 노무현파는 김근태 총리에 대해 불신임을 상정해 통과시켰으며, 노무현 대통령은 제1야당 당수인 이명박을 울며겨자먹기로 총리로 임명한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친노파 전원이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김한길을 위시로 한 비노계가 모두 사회당에 재입당했고 사회당은 1당 지위를 수복하였으며 비교적 안정적인 인사로 여겨진 고건 전 서울시장을 후보로 선출하나 지지율은 매우 저조했다. 한편 전 대통령 선거에서 출마한 이회창 국무총리는 이명박과 박근혜의 야합, 부정부패 등을 비판하며 충청권 지역정당인 자유선진당을 창당해 중도보수 노선을 내걸었으며, 노동계 인사인 권영길 전 노동부장관 역시 무소속 출마를 타진하며 유례 없는 4자 구도가 성립되었다.
후보자 경선
공화당
제13회 대통령 선거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 투표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계파 | 득표율 | 비고 | |
1
|
박근혜(朴槿惠) | 113,565 | 1위 |
친박 | 84.18% | 당선 | |
2
|
변종률(卞宗率) | 15,498 | 2위 |
사회당 탈당파 | 11.49% | 낙선 | |
3
|
원희룡(元喜龍) | 5,847 | 3위 |
소장파 | 4.34% | 낙선 | |
4
|
이명박(李明博) | 사퇴 (박근혜 후보 지지) | |
친이 | |||
계 | 유권자 수 | 416,280 | 투표율 32.74% |
투표 수 | 136,301 | ||
무효표 수 | 1,391 |
경선 시행 전에 이명박 총리가 총리직 유지에 대한 친박파의 지지를 전제로 대통령 후보직에서 사퇴하기로 결정했고, 따라서 승자는 사실상 박근혜로 확정되었다. 변종률, 원희룡 등 당내 좌파가 이에 맞섰으나 역부족이었고 박근혜가 1차 투표에서 85%를 단독으로 득표해 후보로 선출되었다. 사실상 선거 전부터 승자가 정해져있었으므로 투표율도 30%대로 매우 저조했다.
여론조사
결선투표
박근혜 vs 이회창
고건 vs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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