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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되어, 약 1년동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치룬 전쟁이다.<br> |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되어, 약 1년동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치룬 전쟁이다.<br> | ||
우크라이나 전쟁은 코로나 | 우크라이나 전쟁은 코로나 19로 시작된 [[대침체]]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며 당시 세계를 충격과 공포로 빠트린 전쟁이었으며, [[대침체]] 시기의 가장 파괴적인 전쟁으로 기억되고 있다. | ||
=전개= | =전개= | ||
==돈바스 전쟁과 크림위기== | ==돈바스 전쟁과 크림위기== | ||
야누코비치의 탄핵과 유로마이단은 푸틴과 러시아에게 커다란 위협으로서 다가왔다. 유로마이단은 단순히 야누코비치의 친러 정권의 붕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그 일대의 세력 균형추의 붕괴를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 야누코비치의 탄핵과 유로마이단은 푸틴과 러시아에게 커다란 위협으로서 다가왔다. 유로마이단은 단순히 야누코비치의 친러 정권의 붕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그 일대의 세력 균형추의 붕괴를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 ||
푸틴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꿈꾸는 '위대한 러시아'의 부활을 위해서,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막기 위해서. | 푸틴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꿈꾸는 '위대한 러시아'의 부활을 위해서,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막기 위해서. | ||
러시아의 첫번째 타겟은 크림 반도였다. 크림반도 자치 의회에서 쿠데타가 일어난 틈을 타 러시아군은 매우 신속하게 크림 반도 곳곳을 점령하기 시작했고, 크림 공화국은 단 하루만에 러시아와의 병합 투표를 통해 러시아에 합병 되었다. | 러시아의 첫번째 타겟은 크림 반도였다. 크림반도 자치 의회에서 쿠데타가 일어난 틈을 타 러시아군은 매우 신속하게 크림 반도 곳곳을 점령하기 시작했고, 크림 공화국은 단 하루만에 러시아와의 병합 투표를 통해 러시아에 합병 되었다. | ||
서방 세계는 러시아의 돌발 행동에 매우 경악했다. 그들은 여러 경제제재를 비롯하여 우크라이나를 지키겠다는 보장을 했지만, 실질적인 도움을 준 것은 없었다. | 서방 세계는 러시아의 돌발 행동에 매우 경악했다. 그들은 여러 경제제재를 비롯하여 우크라이나를 지키겠다는 보장을 했지만, 실질적인 도움을 준 것은 없었다. | ||
하지만 러시아는 크림 반도에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돈바스에서 반군이 내전을 일으키기 시작하자 러시아는 군사무기를 지원해주며 적극적으로 개입을 시작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군에게 반군이 고전하기 시작하자, 러시아군은 직접적인 개입을 시작. 끝내 돈바스 전쟁은 8년을 끌기 시작했다. | 하지만 러시아는 크림 반도에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돈바스에서 반군이 내전을 일으키기 시작하자 러시아는 군사무기를 지원해주며 적극적으로 개입을 시작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군에게 반군이 고전하기 시작하자, 러시아군은 직접적인 개입을 시작. 끝내 돈바스 전쟁은 8년을 끌기 시작했다. | ||
==우크라이나 위기== | ==우크라이나 위기== | ||
하지만 푸틴은 돈바스 전쟁의 결과에 만족하지 못했다. 러시아군이 개입했음에도 반군은 돈바스 전역을 점령하지 못하였고, 우크라이나군은 점점 2014년의 비해서 강해지고 있었다. 더불어서 젤렌스키와의 협상 시도가 모조리 실패하고 우크라이나가 점점 친서방 정책을 강화하기 시작하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결정하였다. | 하지만 푸틴은 돈바스 전쟁의 결과에 만족하지 못했다. 러시아군이 개입했음에도 반군은 돈바스 전역을 점령하지 못하였고, 우크라이나군은 점점 2014년의 비해서 강해지고 있었다. 더불어서 젤렌스키와의 협상 시도가 모조리 실패하고 우크라이나가 점점 친서방 정책을 강화하기 시작하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결정하였다. | ||
그러나 러시아의 침공 준비는 미국에게 미리 들통나고 말았다. 미국은 러시아가 조만간 우크라이나를 침공할지도 모른다고 발표했고, 우크라이나는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오히려 이 모습을 본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결정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이런 국가적인 위기 상황에서 마저 하나로 단결되지 못하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막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 그러나 러시아의 침공 준비는 미국에게 미리 들통나고 말았다. 미국은 러시아가 조만간 우크라이나를 침공할지도 모른다고 발표했고, 우크라이나는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오히려 이 모습을 본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결정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이런 국가적인 위기 상황에서 마저 하나로 단결되지 못하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막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 ||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다== |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다== | ||
2022년 2월 24일 오전 4시 50분.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탈 나치화를 위한 특수군사작전'을 선포하며 우크라이나를 대대적으로 침공했다. | 2022년 2월 24일 오전 4시 50분.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탈 나치화를 위한 특수군사작전'을 선포하며 우크라이나를 대대적으로 침공했다. 당시 전쟁은 아프리카 같은 개발도상국에서나 일어나는 것이며 유럽에서의 침략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예상한 당시의 유럽. 그리고 세계에 있어서 이 침공은 충격 그 자체였다. | ||
러시아는 북부, 동부, 남부 3가지 방향으로 우크라이나를 밀어붙히기 시작했으며, 우크라이나의 패망이 머지 않아보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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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침공 초기부터 러시아군의 작전은 | 하지만 침공 초기부터 러시아군의 작전은 삐그덕 거렸다. 오데사에서의 상륙작전은 처참하게 실패하고 말았으며, 돈바스 전선은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그 유명한 베데베는 제공권 조차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의미한 공수 작전을 전개하다 전멸 당하기 시작했다. | ||
하지만 러시아군은 여전히 강력하게 우크라이나군을 | 하지만 러시아군은 여전히 강력하게 우크라이나군을 밀어붙혔다. 남부전선은 속절 없이 붕괴되고 있었으며, 북부전선은 빠르게 진격하며 키이우가 눈 앞에 있었다. 우크라이나군은 도주하는 장교들이 나올 정도로 무너지고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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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Російське вторгнення в Україну 2022 Russian Invasion of Ukrain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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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22년 2월 24일 ~ 2024년 6월 17일 | |||
장소 | 우크라이나 전역 및 러시아 일부 | |||
원인 |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중요성 블라디미르 푸틴의 야욕 나토의 동진 우크라이나 내부 민족 갈등 | |||
결과 | 러시아의 패배 우크라이나의 영토 수복 | |||
영향 | 러시아의 몰락 가속화(러시아 5월 정국) 미중 갈등 심화 | |||
교전국 | ||||
러시아 | 우크라이나 | |||
지휘관 | [ 펼치기 · 접기 ] | |||
각주 [ 펼치기 · 접기 ] |
개요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되어, 약 1년동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치룬 전쟁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코로나 19로 시작된 대침체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며 당시 세계를 충격과 공포로 빠트린 전쟁이었으며, 대침체 시기의 가장 파괴적인 전쟁으로 기억되고 있다.
전개
돈바스 전쟁과 크림위기
야누코비치의 탄핵과 유로마이단은 푸틴과 러시아에게 커다란 위협으로서 다가왔다. 유로마이단은 단순히 야누코비치의 친러 정권의 붕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그 일대의 세력 균형추의 붕괴를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푸틴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꿈꾸는 '위대한 러시아'의 부활을 위해서,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막기 위해서.
러시아의 첫번째 타겟은 크림 반도였다. 크림반도 자치 의회에서 쿠데타가 일어난 틈을 타 러시아군은 매우 신속하게 크림 반도 곳곳을 점령하기 시작했고, 크림 공화국은 단 하루만에 러시아와의 병합 투표를 통해 러시아에 합병 되었다.
서방 세계는 러시아의 돌발 행동에 매우 경악했다. 그들은 여러 경제제재를 비롯하여 우크라이나를 지키겠다는 보장을 했지만, 실질적인 도움을 준 것은 없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크림 반도에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돈바스에서 반군이 내전을 일으키기 시작하자 러시아는 군사무기를 지원해주며 적극적으로 개입을 시작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군에게 반군이 고전하기 시작하자, 러시아군은 직접적인 개입을 시작. 끝내 돈바스 전쟁은 8년을 끌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위기
하지만 푸틴은 돈바스 전쟁의 결과에 만족하지 못했다. 러시아군이 개입했음에도 반군은 돈바스 전역을 점령하지 못하였고, 우크라이나군은 점점 2014년의 비해서 강해지고 있었다. 더불어서 젤렌스키와의 협상 시도가 모조리 실패하고 우크라이나가 점점 친서방 정책을 강화하기 시작하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러시아의 침공 준비는 미국에게 미리 들통나고 말았다. 미국은 러시아가 조만간 우크라이나를 침공할지도 모른다고 발표했고, 우크라이나는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오히려 이 모습을 본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결정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이런 국가적인 위기 상황에서 마저 하나로 단결되지 못하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막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다
2022년 2월 24일 오전 4시 50분.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탈 나치화를 위한 특수군사작전'을 선포하며 우크라이나를 대대적으로 침공했다. 당시 전쟁은 아프리카 같은 개발도상국에서나 일어나는 것이며 유럽에서의 침략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예상한 당시의 유럽. 그리고 세계에 있어서 이 침공은 충격 그 자체였다.
러시아는 북부, 동부, 남부 3가지 방향으로 우크라이나를 밀어붙히기 시작했으며, 우크라이나의 패망이 머지 않아보였다.
경과
키이우 공방전
하지만 침공 초기부터 러시아군의 작전은 삐그덕 거렸다. 오데사에서의 상륙작전은 처참하게 실패하고 말았으며, 돈바스 전선은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그 유명한 베데베는 제공권 조차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의미한 공수 작전을 전개하다 전멸 당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여전히 강력하게 우크라이나군을 밀어붙혔다. 남부전선은 속절 없이 붕괴되고 있었으며, 북부전선은 빠르게 진격하며 키이우가 눈 앞에 있었다. 우크라이나군은 도주하는 장교들이 나올 정도로 무너지고 있었다.
좋은 저녁입니다, 여러분.
당대표가 여기에 있습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여기에 있습니다. 시미할 총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포돌랴크 고문도 여기에 있습니다. 대통령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군이 여기에 있고 시민들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 국가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럴 것입니다. 우리의 수호자들에게 영광을! 우리의 영웅들에게 영광을! 우크라이나에 영광을!블로디미르 젤렌스키 2월 25일. 키이우에서의 화상연설 |
그러나 그때 젤렌스키의 연설은 전황을 바꾸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미국의 망명 제안에도 끝까지 키이우를 사수할 것임을, 그리고 그가 암살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은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 침략자들에 대해서 필사적으로 저항하기 시작했다. 키이우에 공수강하한 베데베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고, 키이우 외곽에 도착한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의 방어선에 막히고 말았다.
북부전선에서의 승리와 동부전선
우크라이나의 가을공세
헤르손 수복
바흐무트 전투
바그너의 쿠데타
우크라이나 동계 대공세
푸틴의 사망, 붕괴된 러시아군
돈바스 수복전
크림 반도 대공세
종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