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민중의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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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대 대통령 선거 후보 (민중의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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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대통령 선거 후보 (민중의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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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7-19대<br>[[차명진 (민중의꿈)|차명진]]<ref>전임자 김문수 경기도지사 출마를 위한 사임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당선.</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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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1-22대<br>[[용혜인 (민중의꿈)|용혜인]]<ref>전임자 김문수 대통령 취임을 위한 사임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당선.</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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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촛불혁명 완수'''<br>권력을 민중에게|제20대 대통령 선거 슬로건}}
{{인용문|'''촛불혁명 완수'''<br>권력을 민중에게|제20대 대통령 선거 슬로건}}
[[대한민국 (민중의꿈)|대한민국]]의 제20대 대통령.
[[대한민국 (민중의꿈)|대한민국]]의 제20대 대통령.
== 상세 ==
1970년대부터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을 병행하여 [[김근태 (민중의꿈)|김근태]], [[조영래 (민중의꿈)|조영래]], [[손학규 (민중의꿈)|손학규]] 등과 함께 1세대 민주화운동가로 불린 전설적인 인물이다. 특히 한국에 노동운동이 미약했던 시절 구로공단에서 처음으로 노동운동을 지도하여 명성을 얻었으며 '''노동계의 김대중'''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오늘날에도 [[단병호 (민중의꿈)|단병호]], [[권영길 (민중의꿈)|권영길]], [[김창현 (민중의꿈)|김창현]], [[이재오 (민중의꿈)|이재오]] 등과 더불어 진보정당 1세대격인 인물로 대우받는다.
민주화 이후에는 [[민중당(1990년) (민중의꿈)|민중당]] 창당을 주도하며 진보정당 설립운동의 핵심 인사로 분류되었으며, 이후 [[민주노동당 (민중의꿈)|민주노동당]] 소속으로 4번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2006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 (민중의꿈)|경기도지사]]로 당선되어 2018년까지 도합 3선 경기지사를 지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민중의꿈)|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의 대통령 후보로, 진보정당 출신으로는 역사상 처음으로 2위를 기록하며 차기 대권주자로 입지를 쌓았다.
2020년 총선에서 종로구에 당선되어 5선 국회의원이 된 후,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 (민중의꿈)|제20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더불어민주당 (민중의꿈)|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민중의꿈)|이낙연]] 후보를 0.7% 차이로 꺾고 당선되며 '''진보정당 사상 최초의 대통령'''이자 '''남한 최초의 사회주의자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 약력 ==
== 약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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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전 초반에는 이러한 당내 싸움으로 인해 지지율이 10%대에 머물렀고,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와 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경합을 치르고 그 뒤를 김문수와 정동영이 쫓는 구도로 치루어졌다. 그러나 김문수는 더욱 선명한 노동좌파 노선을 내세우고, 정동영의 애매모호한 입장을 공격하며 청년세대의 지지를 받았다. 김문수의 지지율은 계속 상승한 반면, 이회창과 정동영의 지지율은 점차적으로 낮아지며, 선거 후반에 들어서는 선거구도가 1강(MB) 2중(김문수, 이회창) 2약(문국현, 정동영)의 구도가 되었다.
선거전 초반에는 이러한 당내 싸움으로 인해 지지율이 10%대에 머물렀고,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와 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경합을 치르고 그 뒤를 김문수와 정동영이 쫓는 구도로 치루어졌다. 그러나 김문수는 더욱 선명한 노동좌파 노선을 내세우고, 정동영의 애매모호한 입장을 공격하며 청년세대의 지지를 받았다. 김문수의 지지율은 계속 상승한 반면, 이회창과 정동영의 지지율은 점차적으로 낮아지며, 선거 후반에 들어서는 선거구도가 1강(MB) 2중(김문수, 이회창) 2약(문국현, 정동영)의 구도가 되었다.


토론회에서 김문수가 이회창과 이명박을 몰아붙이며 승리를 거두었지만, 오히려 김문수의 좌파적인 경력과 공약을 본 보수 노인들이 막판에 이명박으로 결집했다는 평가도 있다. 때문에 진보신당 측에서는 막판에 이명박과 김문수가 경합이라 선전했지만, 실제 결과는 이명박 41.88%, 김문수 26.31%, 정동영 15.38%, 이회창 11.27%로 그 차이가 작지 않았다. 그럼에도 김문수는 역대 진보정당 대선 후보 중 처음으로 10%를 넘겼을 뿐만 아니라 2위의 자리를 차지함으로서 선명야당의 지위를 확고히하였다.
토론회에서 김문수가 이회창과 이명박을 몰아붙이며 승리를 거두었지만, 오히려 김문수의 좌파적인 경력과 공약을 본 보수 노인들이 막판에 이명박으로 결집했다는 평가도 있다. 때문에 민주노동당 측에서는 막판에 이명박과 김문수가 경합이라 선전했지만, 실제 결과는 이명박 41.88%, 김문수 26.31%, 정동영 15.38%, 이회창 11.27%로 그 차이가 작지 않았다. 그럼에도 김문수는 역대 진보정당 대선 후보 중 처음으로 10%를 넘겼을 뿐만 아니라 2위의 자리를 차지함으로서 선명야당의 지위를 확고히하였다.


=== 대선 낙선 이후 ===
=== 대선 낙선 이후 ===
대선 낙선 이후, 조용히 경기도 도정에 복귀했다. 진보신당은 뒤이은 18대 총선에서 분열되었고, 공천 문제로 일부 자주파 계열이 "[[통일민주진보당 (민중의꿈)|통일민주진보당]]"을 창당하였다. 결국 18대 총선에서 진보신당은 31석, 통일한국당은 4석으로 의석이 줄어들면서, 3당 지위에 그쳐야했다. FTA 정국 때에는 잠시 통일한국당이 극렬 반미 정서로 진보신당의 지지율을 추월하기도 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김문수 지사는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는 "민주진보 대연합론"을 내세우며, 민주당과 진보신당, 통일한국당, 국민참여당의 "야권 4당 단일화"를 제안한다.
대선 낙선 이후, 조용히 경기도 도정에 복귀했다. 민주노동당은 뒤이은 18대 총선에서 분열되었고, 공천 문제로 일부 자주파 계열이 "[[통일민주진보당 (민중의꿈)|통일민주진보당]]"을 창당하였다. 결국 18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31석, 통일민주진보당은 6석으로 의석이 줄어들면서, 3당 지위에 그쳐야했다. FTA 정국 때에는 잠시 통일민주진보당이 극렬 반미 정서로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을 추월하기도 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김문수 지사는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는 "민주진보 대연합론"을 내세우며,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통일민주진보당, 국민참여당의 "야권 4당 단일화"를 제안한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는 민주당에서 김진표 지사가, 참여당에서 유시민 장관이 출사표를 던진 상황이었다. 그러나 김문수 현 지사의 지지율이 높았던만큼, 김문수는 삼자 단일화 경선에서 과반 득표로 무난히 야권 단일후보로 선출된다. 한편 한나라당에서는 심재철 의원이 차출되었다. 심 의원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김문수의 학교 후배 출신으로 화제가 되었다. 심재철 후보는 김문수의 과거 경력을 언급하며 문제삼았으나 결과적으로 크게 판세를 바꾸지 못했고, 양자구도로 치러진 선거에서 김문수는 52.2%를 얻으며 47.8%를 얻은 심재철을 무난하게 누르고 재선에 성공한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는 민주당에서 김진표 지사가, 참여당에서 유시민 장관이 출사표를 던진 상황이었다. 그러나 김문수 현 지사의 지지율이 높았던만큼, 김문수는 삼자 단일화 경선에서 과반 득표로 무난히 야권 단일후보로 선출된다. 한편 한나라당에서는 심재철 의원이 차출되었다. 심 의원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김문수의 학교 후배 출신으로 화제가 되었다. 심재철 후보는 김문수의 과거 경력을 언급하며 문제삼았으나 결과적으로 크게 판세를 바꾸지 못했고, 양자구도로 치러진 선거에서 김문수는 52.2%를 얻으며 47.8%를 얻은 심재철을 무난하게 누르고 재선에 성공한다.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유력한 후보로 꼽혔으나, 자신은 도정에 집중하고 싶다며 출마 의지를 내비치지 않았다. 대신 2011년 상반기 재보궐 선거에서 야권단일후보로 분당구 을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된 [[조국 (민중의꿈)|조국]] 서울대교수(진보신당)가 유력한 후보로 분류되었고, 경선에서도 심상정 의원을 누르고 대선 후보로 확정된다. 2012년 대선을 앞둔 야권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안철수-조국-문재인의 팽팽한 접전이 예상되었는데, 최종적으로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단일후보가 되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유력한 후보로 꼽혔으나, 자신은 도정에 집중하고 싶다며 출마 의지를 내비치지 않았다. 대신 2011년 상반기 재보궐 선거에서 야권단일후보로 분당구 을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된 [[조국 (민중의꿈)|조국]] 서울대교수(민주노동당)가 유력한 후보로 분류되었고, 경선에서도 심상정 의원을 누르고 대선 후보로 확정된다. 2012년 대선을 앞둔 야권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안철수-조국-문재인의 팽팽한 접전이 예상되었는데, 최종적으로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단일후보가 되었다.


2011년, 2012년 총선을 1년 앞두고 통일한국당, 국민참여당 지도부와 연락해 통합진보당이라는 야권 통합정당을 창당하는데 영향을 준 것으로 보도되었다. 통합진보당은 그해의 총선에서 52석을 얻으며 선전했지만, 내부 계파 갈등으로 일부 평등파 인사들이 탈당하는 내홍을 겪기도 한다. 그럼에도 김문수 본인은 2014년 지방선거에서 무려 55%를 득표하며 여권 단일후보 남경필을 10%p 차이로 꺾고 헌정 사상 최초의 3선 경기도지사가 되는 등, 스스로 경쟁력이 있음을 입증한다.
2011년, 2012년 총선을 1년 앞두고 통일민주진보당, 국민참여당 지도부와 연락해 통합진보당이라는 야권 통합정당을 창당하는데 영향을 준 것으로 보도되었다. 통합진보당은 그해의 총선에서 52석을 얻으며 선전했지만, 내부 계파 갈등으로 일부 평등파 인사들이 탈당하는 내홍을 겪기도 한다. 그럼에도 김문수 본인은 2014년 지방선거에서 무려 55%를 득표하며 여권 단일후보 남경필을 10%p 차이로 꺾고 헌정 사상 최초의 3선 경기도지사가 되는 등, 스스로 경쟁력이 있음을 입증한다.


2017년 대선에서도 출마 제의를 받았으나, 문재인 대세론을 꺾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출마를 거절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중당의 후계자 심상정을 지지한 후 일단 정치 일선에서 후퇴했다.
2017년 대선에서도 출마 제의를 받았으나, 문재인 대세론을 꺾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출마를 거절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진보당의 후계자 노회찬을 지지한 후 일단 정치 일선에서 후퇴했다.


=== 민중당 상임대표와 21대 총선 ===
=== 진보당 상임대표와 21대 총선 ===
경기도지사 퇴임 이후 치러진 2018년 민중당 당직자 선거에 출마했다. 사무총장 러닝메이트는 범 자주파 소속의 [[함운경 (민중의꿈)|함운경]] 의원. 김문수급 체급이 되는 인물에 대항할 후보가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당선이 확실시되었고, 본선에서도 이상규-이성수 조를 79.4% 대 20.6%로 격파하고 승리해 민중당의 상임대표로 취임했다.
경기도지사 퇴임 이후 치러진 2018년 진보당 당직자 선거에 출마했다. 사무총장 러닝메이트는 범 자주파 소속의 [[함운경 (민중의꿈)|함운경]] 의원. 김문수급 체급이 되는 인물에 대항할 후보가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당선이 확실시되었고, 본선에서도 이상규-이성수 조를 79.4% 대 20.6%로 격파하고 승리해 민중당의 상임대표로 취임했다.


민중당의 상임대표로 21대 총선을 지휘했다.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를 통해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크게 몰락한 관계로, 민중당 입장에서는 처음으로 제2당으로 올라설 수 있는 기회이기에 그 무게감이 남달랐다. 김문수는 스스로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 연고가 적지만 정치적 상징성은 큰 종로구 선거구에 "셀프공천"을 단행했다. 민주당에서는 박영선 장관이, 자유한국당에서는 황교안 대표가 출마해 전례없는 대권주자 3파전이 되었다.
진보당의 상임대표로 21대 총선을 지휘했다.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를 통해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크게 몰락한 관계로, 진보당 입장에서는 처음으로 제2당으로 올라설 수 있는 기회이기에 그 무게감이 남달랐다. 김문수는 스스로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 연고가 적지만 정치적 상징성은 큰 종로구 선거구에 "셀프공천"을 단행했다. 민주당에서는 박영선 장관이, 미래통합당에서는 황교안 대표가 출마해 전례없는 대권주자 3파전이 되었다.


김문수 대표는 문재인 정권 개혁의 미진함을 비판하고, 비정규직 정규직전환과 코로나 시기 자영업자 지원 공약을 내세우며 큰 지지를 얻었다. 여론조사에서는 민중당의 의석이 80석에서 90석 정도로 예상되었지만, 출구조사에서는 이를 상회하는 102석 ~ 117석이 예견되었고, 실제 결과는 지역구 101석, 비례 15석 등 총 116석으로 예상치를 뛰어넘은 대선전을 했다. 김문수 대표 역시 박영선, 황교안과의 3파전에서 예상보다 큰 격차로 박영선을 2위로 밀어내고 당선되어 14년만의 원내입성에 성공했다.
김문수 대표는 문재인 정권 개혁의 미진함을 비판하고, 비정규직 정규직전환과 코로나 시기 자영업자 지원 공약을 내세우며 큰 지지를 얻었다. 여론조사에서는 진보당의 의석이 80석에서 90석 정도로 예상되었지만, 출구조사에서는 이를 상회하는 102석 ~ 117석이 예견되었고, 실제 결과는 지역구 101석, 비례 15석 등 총 116석으로 예상치를 뛰어넘은 대선전을 했다. 김문수 대표 역시 박영선, 황교안과의 3파전에서 예상보다 큰 격차로 박영선을 2위로 밀어내고 당선되어 14년만의 원내입성에 성공했다.


=== 제20대 대선 출마 ===
=== 제20대 대선 출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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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22일 (토) 17:39 기준 최신판



대한민국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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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대 대통령 선거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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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 정당 이름 비고
1 한나라당 이명박 당선
2 열린우리당 한명숙
3 민주노동당 김문수
4 민주당 손학규
5 국민중심당 심대평 사퇴1
6 창조한국당 문국현
7 참주인연합 정근모
8 경제공화당 허경영
9 새시대참사람연합 전관
10 한국사회당 금민 사퇴2
11 무소속 이회창
1 무소속 이회창 후보와 단일화
2 민주노동당 김문수 후보와 단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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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대통령 선거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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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 정당 이름 비고
1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2 진보당 김문수 당선
3 국민의힘 김진태
4 국민의당 안철수 사퇴1
5 국가혁명당 허경영
6 새로운물결 김동연
7 통일한국당 이경희
8 한류연합당 김민찬
1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후보와 단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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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대통령 후보 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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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의원 (경기 부천 남)
선거구 개편 제13대
김문수
선거구 개편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기 부천 소사 을)
선거구 개편 제14-17대
김문수
제17-19대
차명진[1]
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종로)
제19-20대
정세균
제21대
김문수
제21-22대
용혜인[2]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김문수
金文洙 | Kim Moon-soo
출생 1951년 9월 17일 (73세)
경기도 영천군 임고면 황강동
(現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황강리)
사저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2가
재임기간 제20대 대통령
2022년 5월 10일 ~ 현직
서명 파일:김문수 서명.svg
링크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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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아버지 김승헌
어머니 조순조
형제자매 4남 3녀 중 여섯째
배우자 설난형
자녀 슬하 1녀
장녀 김동주
학력 영천국민학교 (졸업)
경북중학교 (졸업)
경북고등학교 (졸업 / 51회)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영학 / 학사)
종교 무종교 (무신론)
신체 175cm, 62kg, O형
소속 정당 대동사회 로고.png
소속 정파 무정파[3]
의원 선수 5
의원 대수 14, 15, 16, 17, 21
약칭

개요

촛불혁명 완수
권력을 민중에게
제20대 대통령 선거 슬로건

대한민국의 제20대 대통령.

상세

1970년대부터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을 병행하여 김근태, 조영래, 손학규 등과 함께 1세대 민주화운동가로 불린 전설적인 인물이다. 특히 한국에 노동운동이 미약했던 시절 구로공단에서 처음으로 노동운동을 지도하여 명성을 얻었으며 노동계의 김대중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오늘날에도 단병호, 권영길, 김창현, 이재오 등과 더불어 진보정당 1세대격인 인물로 대우받는다.

민주화 이후에는 민중당 창당을 주도하며 진보정당 설립운동의 핵심 인사로 분류되었으며, 이후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4번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2006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로 당선되어 2018년까지 도합 3선 경기지사를 지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의 대통령 후보로, 진보정당 출신으로는 역사상 처음으로 2위를 기록하며 차기 대권주자로 입지를 쌓았다.

2020년 총선에서 종로구에 당선되어 5선 국회의원이 된 후,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후보를 0.7% 차이로 꺾고 당선되며 진보정당 사상 최초의 대통령이자 남한 최초의 사회주의자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약력

  •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
  • 서울노동운동연합 지도위원
  • 전태일 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민중당 노동위원장
  • 민중당 부천 남 지구당위원장
  • 제14-17대 국회의원 (경기 부천 남 → 소사)
  • 민중당 의원단대표(원내대표)
  • 민주노동당 의원단대표 (원내대표)
  • 제32-34대 경기도지사
  • 통합진보당 초대 공동대표
  • 진보당 상임대표
  • 제21대 국회의원 (서울 종로)
  • 제20대 대통령

생애

유년기

1951년 9월,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다. 영천국민학교, 경북중학교(現 경운중학교),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였다. 전공을 결정하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에 당시 영남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사촌형 김장수가 전공으로 경영학을 추천해서 경영학과를 선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노동운동가 김문수

대학교 1학년 때 학교 선배 심재권의 권유로 학생운동에 투신하게 되었다. 2학년 때, 당시 서울대에서 학생운동을 이끌고 있던 김근태와 함께 활동하다 공활(공장 체험)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노동자들의 처지에 공감하고 평생 노동운동에 몸담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김문수는 70년대 초중반까지는 학생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을 병행했는데 스스로 회고하기를 당시 진로 방향을 제대로 못 잡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노동운동에만 전념하기로 하고 공장에 위장취업 후 노동조합을 만들면서 80년대에 전설적인 노동운동가가 되었다.

1971년 대학교 2학년 때 위수령이 내려져 한번 제적되었다가,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또 걸려서 제적되었다. 그러나 대학 제적 이후 더욱 노동운동에 관심을 갖고 한일도루코 노조를 결성해 민주노조 창립 운동을 전개, 후대 노동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전두환 정권이 성립되자, 그는 위장취업과 민주노조 설립, 어용노조 철폐 운동을 더욱 가속화해 대학생들 사이에서 전설이 되었다. 1985년에는 "서울노동운동연합"을 창립해 활동이 정점에 달한다.

그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 정국 때도 활발히 활동했으며 현대 노동자들과 연대했는데, 이때의 운동은 민주노총 설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받는다.

진보정당 창당운동

1987년 대선에서 양김의 분열로 군부독재 정권이 연장되자 독자적 진보정당이 필요함을 느끼고 노동운동에서 진보정당 창당운동으로 투쟁의 무대를 옮기게 되었다. 1990년, 그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시 김문수와 같은 재야 노동운동가였던 이우재, 이재오 등과 연합해 민주화 이후 한국 최초의 진보정당 "민중당"을 창당한다. 민중당은 1990년 지방선거에서 지방의회 30여석을 얻으며 제3정당으로 존재감을 알린다.

이후 민중당의 초대 노동위원장을 지내며 민주노조 설립운동과 진보정당 창당운동의 연계를 잇는 가교역할을 했으며, 단병호, 권영길과도 친분을 쌓는다. 잠깐 구로공단이 위치한 구로구 선거구의 지역위원장을 맡다가, 부천시 남구(現 소사구)의 지역위원장을 맡으며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초기에는 밀리는 형국이었으나 도시빈민과 노동자의 표를 끌어모으면서 4자 구도 속에 근소하게 당선되는 이변을 연출한다.

그가 속한 민중당은 지역구 3석, 전국구 2석 등 총 5석으로 민자당, 민주당, 통일국민당에 이은 원내4당이자 원내 유일의 노동자정당이라는 지위를 굳혔다. 그는 만장일치로 민중당의 초대 의원단 대표, 즉 원내대표의 자리에 오르며 의회 내 노동투쟁에 박차를 가한다.

제14-15대 국회의원

1992년 대선에서 민중당이 지원한 민중단일 무소속 후보 백기완이 2%의 저조한 득표를 보이며 낙선하자, 김문수는 대통령 후보, 지방선거 후보 등 전국 각지에 후보를 낼 수 있는 "대중적 민중 노동자 정당"을 지향하게 되었다. 그는 1995년 첫 지방선거 때 서울시장에 학교 선배 김근태 전 서청련 의장을, 전라북도지사에 삼민투 의장 함운경을 영입 공천하는 파격적인 수를 두었는데, 김근태는 조직력과 자금력이 모두 부족한 상황에서 13%라는 높은 득표를 보이며 선전한다.

그 외에도 14대 국회의원 활동 도중 그는 민주노조 설립을 지원하는 여러 법안을 발의하였으며, 노동쟁의에 관해 정부가 섣불리 개입할 수 없도록 하는 개혁안을 통과시키며 큰 주목을 받았다. 그는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시 민중당 후보로 출마해 45%라는 여유로운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목표했던 의석수 10석은 달성하지 못하자, 막 설립된 민주노총과의 연계투쟁을 강화하는 한편 독자적인 정책을 개발하는 "노동자 정책 정당" 투쟁안을 제시했다.

1996년 크리스마스 노동법 날치기 당시 그는 신한국당을 극렬하게 비난하는 성명으로 화제를 모았으며, 다가오는 1997년 대통령 선거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다. 그러나 당의 공천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 김근태 의원이 김대중을 지지하자, 민중당은 당 차원에서 김대중 후보를 비판적으로 지지하게 된다. 동해 선거에 국민승리21이 창당되어 권영길 초대 민주노총 위원장이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역시나 저조한 득표율로 낙선하였다.

민주노동당 창당

2년 후, 그는 제16대 총선에서 3선에 성공해, 진보정당 최초의 3선 국회의원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또한 당은 지역구 7석, 전국구 4석 등 처음으로 두자릿수 의석을 확보했다. 1998년 지방선거 이후, 그는 "단일한 사회주의 대중정당"이 필요함을 강조하면서, 국민승리21과 민중당의 합당을 추진했다. 그렇게 당은 "민주노동당"이라는 당명으로 출범했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울산시장으로 송철호를 배출하고, 서울시장으로 출마한 이문옥이 2위로 낙선하는 등, 대단한 선전을 거두었다. 이러한 승리를 이끈 김문수 의원은 2002년 대선 출마를 제의받았고 실제로 5%에 달하는 지지를 받기도 했으나, 승리 가능성이 적다는 이유로 스스로 출마를 고사하였다. 대신 경선에서 승리한 권영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민중후보로 추대했다. 권영길은 선명한 좌파적 정책으로 초기 20%에 달하는 높은 지지율을 보였으나, 선거막판 노무현 후보의 돌풍으로 최종적으로는 7.5%를 득표하며 패배했다. 이후 김문수는 "미선이 효순이 사건" 촛불시위에 참석하는 등, 시민사회 참여적 성격을 보이게 되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때 민주노동당이 애매한 태도를 보이면서 지지율에 타격을 입기도 했으나, 김문수가 직접 민주노동당 의원단대표 신분으로 탄핵 저지 촛불집회에 참석하며 여론을 반전시켰다. 민주노동당은 열린우리당과 더불어 청년세대의 지지를 받으며 지지율에 있어 크게 선전하는 모습을 보였고, 막 도입된 1인 2표제의 수혜도 얻어, 선거에서 대승리를 거두었다. 지역구에서 27명이 당선되고, 총 22.6%의 비례득표로 11석의 비례대표를 얻어, 총 38석이나 얻은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136석을 얻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한 열린우리당의 안정적 국회 의석 확보를 위해 민주노동당-열린우리당 연정을 제안했고, 김문수를 노동부장관 후보로 거론했다. 그러나 이는 무위로 돌아갔다.

2004년 민주노동당 당대회에서 그는 평등파와 노동계의 지지를 얻어 자주파의 지지를 받은 김창현을 압도적으로 누르고 민주노동당의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노무현 정권이 지나치게 삼성과 재벌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비판하며 "이건희 저격수" 정당을 자처, 선명한 좌파 정당의 색체를 강화했다. 2005년에 접어들며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하락함에 따라,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은 열린우리당을 누르고 2위를 차지했다.

경기도지사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문수의 경기도지사 출마설이 대두되었다. 김문수는 이미 4선이나 한 의원이었고, 국회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을 모두 이루었기 때문이다. 또한 민주노동당은 그 이전까지 경기도와 같은 거대한 광역단체의 장을 배출한 적이 없었기에, 김문수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다. 김문수는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언, 경선에서 정형주 성남시장을 73% 대 27%로 누른 후 본선에 진출했다.

선거전 초반에는 차기 대권주자로 몸값을 높이고 있던 손학규 지사의 재선이 점쳐졌으나, 타이밍을 놓치는 결정적인 실수를 연발하며 지지율이 하락했다. 또한 열린우리당의 후보 진대제는 삼성 출신 인물로 서민과 진보층의 지지를 거의 받지 못했고, 선거 막판이 될수록 김문수로 지지가 결집하는 양상을 보였다. 출구조사에서는 손학규 43.0% 대 김문수 41.2%로 손학규의 근소한 우세가 예상되었지만 실제 개표 결과는 김문수 42.8% 대 손학규 41.5%로 진땀승부 끝에 1.3%p 차이로 김문수가 경기도지사로 당선된다.

경기도지사로 재직하면서 "노동자의 삶을 지키는 경기 노동기금"을 조성해 큰 지지를 받았다. 또한 "경기형 청년보장제"를 도입, 청년 실업난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를 확충하며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전통시장 환경개선사업, 노동자 원-스톱 상담쉼터 조성 등 친노동 친서민 정책을 펼쳤다. 또다른 업적은 GTX 설치로, 처음에는 무모하다는 말도 많았지만 보수 측에서도 해당 정책을 이어받아 추진했다. 수도권 통합 요금제 도입도 업적으로 불린다. 이러한 좋은 행정으로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되었으며, 17대 대선의 유력 후보 중 한명으로 꼽히게 된다.

제17대 대선 출마

힘내라 노동자
한국을 살리자

제17대 대통령 선거 후보 슬로건

2006년 경기지사 당선 이후 지속적으로 대권주자로 분류되던 김문수는 민주노동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했다. 그러나 2006년 터진 "일심회 간첩 사건"으로 민주노동당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었고, 관련 당직자 제명을 요구한 평등파와 제명 취소를 요구한 자주파+다함께의 싸움으로 당이 엉망이 되었다. 결국 김문수는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하며 "일심회 관계자 제명 및 당명 개정"을 추가적으로 요구했다. 반면, 자주파의 지지를 받은 前 전대협 의장 임종석 의원은 당명 유지와 제명 취소를 요구한다. 1차 투표 결과 김문수 35.4%, 임종석 41.1%, 심상정(평등파) 14.6%, 천영세(자주파) 8.9%로 임종석이 앞섰지만 2차 투표에서는 평등파의 표가 김문수로 쏠리며 김문수 51.5%, 임종석 48.5%로 김문수가 승리한다.

선거전 초반에는 이러한 당내 싸움으로 인해 지지율이 10%대에 머물렀고,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와 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경합을 치르고 그 뒤를 김문수와 정동영이 쫓는 구도로 치루어졌다. 그러나 김문수는 더욱 선명한 노동좌파 노선을 내세우고, 정동영의 애매모호한 입장을 공격하며 청년세대의 지지를 받았다. 김문수의 지지율은 계속 상승한 반면, 이회창과 정동영의 지지율은 점차적으로 낮아지며, 선거 후반에 들어서는 선거구도가 1강(MB) 2중(김문수, 이회창) 2약(문국현, 정동영)의 구도가 되었다.

토론회에서 김문수가 이회창과 이명박을 몰아붙이며 승리를 거두었지만, 오히려 김문수의 좌파적인 경력과 공약을 본 보수 노인들이 막판에 이명박으로 결집했다는 평가도 있다. 때문에 민주노동당 측에서는 막판에 이명박과 김문수가 경합이라 선전했지만, 실제 결과는 이명박 41.88%, 김문수 26.31%, 정동영 15.38%, 이회창 11.27%로 그 차이가 작지 않았다. 그럼에도 김문수는 역대 진보정당 대선 후보 중 처음으로 10%를 넘겼을 뿐만 아니라 2위의 자리를 차지함으로서 선명야당의 지위를 확고히하였다.

대선 낙선 이후

대선 낙선 이후, 조용히 경기도 도정에 복귀했다. 민주노동당은 뒤이은 18대 총선에서 분열되었고, 공천 문제로 일부 자주파 계열이 "통일민주진보당"을 창당하였다. 결국 18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31석, 통일민주진보당은 6석으로 의석이 줄어들면서, 3당 지위에 그쳐야했다. FTA 정국 때에는 잠시 통일민주진보당이 극렬 반미 정서로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을 추월하기도 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김문수 지사는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는 "민주진보 대연합론"을 내세우며,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통일민주진보당, 국민참여당의 "야권 4당 단일화"를 제안한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는 민주당에서 김진표 지사가, 참여당에서 유시민 장관이 출사표를 던진 상황이었다. 그러나 김문수 현 지사의 지지율이 높았던만큼, 김문수는 삼자 단일화 경선에서 과반 득표로 무난히 야권 단일후보로 선출된다. 한편 한나라당에서는 심재철 의원이 차출되었다. 심 의원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김문수의 학교 후배 출신으로 화제가 되었다. 심재철 후보는 김문수의 과거 경력을 언급하며 문제삼았으나 결과적으로 크게 판세를 바꾸지 못했고, 양자구도로 치러진 선거에서 김문수는 52.2%를 얻으며 47.8%를 얻은 심재철을 무난하게 누르고 재선에 성공한다.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유력한 후보로 꼽혔으나, 자신은 도정에 집중하고 싶다며 출마 의지를 내비치지 않았다. 대신 2011년 상반기 재보궐 선거에서 야권단일후보로 분당구 을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된 조국 서울대교수(민주노동당)가 유력한 후보로 분류되었고, 경선에서도 심상정 의원을 누르고 대선 후보로 확정된다. 2012년 대선을 앞둔 야권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안철수-조국-문재인의 팽팽한 접전이 예상되었는데, 최종적으로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단일후보가 되었다.

2011년, 2012년 총선을 1년 앞두고 통일민주진보당, 국민참여당 지도부와 연락해 통합진보당이라는 야권 통합정당을 창당하는데 영향을 준 것으로 보도되었다. 통합진보당은 그해의 총선에서 52석을 얻으며 선전했지만, 내부 계파 갈등으로 일부 평등파 인사들이 탈당하는 내홍을 겪기도 한다. 그럼에도 김문수 본인은 2014년 지방선거에서 무려 55%를 득표하며 여권 단일후보 남경필을 10%p 차이로 꺾고 헌정 사상 최초의 3선 경기도지사가 되는 등, 스스로 경쟁력이 있음을 입증한다.

2017년 대선에서도 출마 제의를 받았으나, 문재인 대세론을 꺾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출마를 거절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진보당의 후계자 노회찬을 지지한 후 일단 정치 일선에서 후퇴했다.

진보당 상임대표와 21대 총선

경기도지사 퇴임 이후 치러진 2018년 진보당 당직자 선거에 출마했다. 사무총장 러닝메이트는 범 자주파 소속의 함운경 의원. 김문수급 체급이 되는 인물에 대항할 후보가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당선이 확실시되었고, 본선에서도 이상규-이성수 조를 79.4% 대 20.6%로 격파하고 승리해 민중당의 상임대표로 취임했다.

진보당의 상임대표로 21대 총선을 지휘했다.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를 통해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크게 몰락한 관계로, 진보당 입장에서는 처음으로 제2당으로 올라설 수 있는 기회이기에 그 무게감이 남달랐다. 김문수는 스스로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 연고가 적지만 정치적 상징성은 큰 종로구 선거구에 "셀프공천"을 단행했다. 민주당에서는 박영선 장관이, 미래통합당에서는 황교안 대표가 출마해 전례없는 대권주자 3파전이 되었다.

김문수 대표는 문재인 정권 개혁의 미진함을 비판하고, 비정규직 정규직전환과 코로나 시기 자영업자 지원 공약을 내세우며 큰 지지를 얻었다. 여론조사에서는 진보당의 의석이 80석에서 90석 정도로 예상되었지만, 출구조사에서는 이를 상회하는 102석 ~ 117석이 예견되었고, 실제 결과는 지역구 101석, 비례 15석 등 총 116석으로 예상치를 뛰어넘은 대선전을 했다. 김문수 대표 역시 박영선, 황교안과의 3파전에서 예상보다 큰 격차로 박영선을 2위로 밀어내고 당선되어 14년만의 원내입성에 성공했다.

제20대 대선 출마

대통령 임기 중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90 - 2000 창당
정계입문
2000 - 2011 합당[4]
2011 - 2015 합당[5]
2015 - 2020 당명 변경
대동사회 로고.png 2020 - 당명 변경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부천 남 43,922 (29.76%) 당선 (1위) 초선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부천 소사 38,760 (44.72%) 재선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48,390 (55.83%) 3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50,418 (52.94%) 4선[6]
2006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경기도 1,582,065 (42.81%) 초선
2007 제17대 대통령 선거 대한민국 6,244,113 (26.31%) 낙선 (2위) [7]
2010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경기도 2,271,492 (52.20%) 당선 (1위) 재선[8]
2014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2,855,259 (55.37%) 3선[9][10]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종로 대동사회 로고.png 43,379 (46.13%) 5선[11]
2022 제20대 대통령 선거 대한민국 13,646,732 (40.42%) 초선

역대 선거 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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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록

노란봉투법을 지지한다면 (동지도) 사회주의자.
(동지는) 공산주의를 잊었는가?
술 담배 끊는것 보다 어려운 공산주의 끊기
그러니까 사회주의 사상은 피억압노동자 민중 계급이 억압하는 자본가, 제국주의 세력과 싸워서 혁명적인 방식으로 뒤집어 엎어서 만인이 평화롭고...

여담

  1. 전임자 김문수 경기도지사 출마를 위한 사임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당선.
  2. 전임자 김문수 대통령 취임을 위한 사임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당선.
  3. 평등파에 속하지만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특정 정파나 의견그룹에 공식적으로 소속된 적이 없다.
  4. 국민승리21과 신설합당
  5. 통일민주진보당, 국민참여당과 신설합당
  6. 2006.04.31. 의원직 사퇴 (경기도지사 출마)
  7. 10번의 선거 중 유일한 낙선
  8. 야권 단일후보(민주당-민주노동당-통일민주진보당-국민참여당-창조한국당)
  9. 야권 단일후보(통합진보당-새정치민주연합-노동당)
  10. 헌정사상 최초의 3선 경기도지사
  11. 2022.04.01. 사퇴 (제20대 대통령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