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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피츠제럴드 케네디 주니어<br>John Fitzgerald Kennedy J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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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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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background:#ECECEC; color:#0D164A; text-align:center;" |'''존 F. 케네디 주니어의 취임 선서 장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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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People often tell me I could be a great man. I'd rather be a good man."'''<br>"사람들은 내가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위대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John F. Kennedy Jr.}} | {{인용문|'''"People often tell me I could be a great man. I'd rather be a good man."'''<br>"사람들은 내가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위대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John F. Kennedy J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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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막바지에 열린 3차 토론에서는 다시 케네디의 일방적 우세로 돌아섰다. 퀘일은 2차 토론에서 선전을 이어가려 했으나, 마무리 발언 등 즉흥성이 요구되는 구간에서 재차 말실수가 나오며 그동안의 이미지가 재소환되었다. | 선거 막바지에 열린 3차 토론에서는 다시 케네디의 일방적 우세로 돌아섰다. 퀘일은 2차 토론에서 선전을 이어가려 했으나, 마무리 발언 등 즉흥성이 요구되는 구간에서 재차 말실수가 나오며 그동안의 이미지가 재소환되었다. | ||
===존 F. 케네디 주니어 행정부=== | ===[[존 F. 케네디 주니어 행정부 (아메리칸 프린스)|존 F. 케네디 주니어 행정부]]=== | ||
{{본문|존 F. 케네디 주니어 행정부}} | {{본문|존 F. 케네디 주니어 행정부 (아메리칸 프린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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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background:#ECECEC; color:#0D164A; text-align:center;" |'''백악관 공식 초상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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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 ==평가== | ||
[[미국]] |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유명세가 있는 인물 중 한 명이며, 지금까지도 대중적 지지도가 매우 높은 대통령이다. 하지만 이와 별도로 대통령으로서의 정치적 평가는 재임 기간이 극히 짧았던 탓에 엇갈리는 지점이 있다. | ||
케네디 주니어는 아버지 [[존 F. 케네디]]와 함께 [[민주당|미국 민주당]]에서 배출해낸 가장 인기 높은 대통령들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취임 직후부터 [[존 F. 케네디 주니어 대통령 암살 사건 (아메리칸 프린스)|사망]] 직전까지 지지율이 70% 중후반에서 크게 떨어진 적이 없었을 정도로, 대통령 재임기 전체를 통틀어 최고 수준의 지지율을 기록한 인물 중 하나로 남아있다. "Tomorrow Begins Today", 미래는 오늘 시작된다라는 슬로건으로 대표되는 젊고 도전적인 이미지, 재임 중 벌어진 [[동아시아 미사일 위기 (아메리칸 프린스)|동아시아 미사일 위기]] 당시 보여준 침착하고 신중한 위기관리 능력으로 전면적 군사 충돌을 막아낸 공로 등이 그를 상징하는 요소로 꼽힌다. [[존 F. 케네디|부친]]과 마찬가지로, 짧았지만 강렬했던 재임기는 이후 벌어질 여러 혼란상의 전조 없이 마무리된 찬란한 순간으로 기억되는 경향이 있다. | |||
부친과 함께 지금도 민주당의 정치인들, 특히 대권 주자 급 인물들에게 케네디 주니어가 상징하는 젊고 도전 정신이 강한 개방적인 지도자상 이미지는 가장 선호받으면서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다만 실제로 이 이미지를 정치적으로 계승한 인물을 꼽기는 쉽지 않은데, 직후 대통령직을 승계한 [[존 브로 (아메리칸 프린스)|존 브로]]는 남부 중도 실용주으자로 이미지 자체가 판이하게 달랐고, [[버니 샌더스 (아메리칸 프린스)|버니 샌더스]] 역시 전혀 다른 결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아메리칸 케네디)|2008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선 [[존 에드워즈 (아메리칸 프린스)|존 에드워즈]]가 남부 출신의 젊고 매력적인 이미지, 대중을 휘어잡는 언변 등에서 케네디와 케네디 주니어의 잔상을 잇는 인물로 종종 거론되었지만, 최종적으로 낙선했기에 완전한 계승자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 |||
짧은 기간 동안 활동하다 [[존 F. 케네디 주니어 대통령 암살 사건 (아메리칸 프린스)|암살]]되었기에, 좋은 이미지를 바탕으로 실제 국성 성과에 비해 과대평가되었다는 비판적 시각 역시 존재한다. 다만 부친보다 더 애초에 평가할 수 있는 국정 데이터 자체가 극히 부족하다는 점에서 이런 비판 역시 완전히 검증되기는 어렵다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 |||
여전히 미국사에서 가장 인기 높고 화제의 대상이 되는 대통령으로 남아 있다. 최근 조사에서도 긍정평가와 부정평가의 격차가 압도적인 수준으로 나타나며, 명실상부 미국 역사상 가장 사랑 받은 대통령 중 하나로 꼽힌다. | |||
==선거 이력== | ==선거 이력== | ||
{| class="wikitable" style="width:100%; border:2px solid #0D164A; text-align:center; font-size:10.5p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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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background:#ececec; color:#0d164a" | 연도 | |||
! style="background:#ececec; color:#0d164a" | 선거 종류 | |||
! style="background:#ececec; color:#0d164a" | 선거구 | |||
! style="background:#ececec; color:#0d164a" | 소속 정당 | |||
! style="background:#ececec; color:#0d164a" | 득표수 (득표율, 선거인단 수) | |||
! style="background:#ececec; color:#0d164a" | 당선 여부 | |||
! style="background:#ececec; color:#0d164a" | 비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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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 | |||
|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 |||
| [[아메리칸 프린스|뉴욕]] | |||
| rowspan="2" | {{민주당 (미국)}} | |||
| '''2,901,602 (60.57%)''' | |||
| rowspan="2" | '''당선 (1위)''' | |||
| '''초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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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 | |||
|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 (아메리칸 프린스)|미국 대통령 선거]] | |||
| [[미합중국]] | |||
| '''61,540,407 (58.38%, 486명)''' | |||
| '''초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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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여담== | ==여담== | ||
* 아버지의 섹스 어필을 물려받아 언론 화제기사란에 종종 등장했으며, 다음은 언론에서 그에게 붙인 별명이다. | |||
{{인용문|세계에서 제일 섹시한 남성(피플,1996)<br>신비한 케네디의 후계자<br>마돈나, 대릴 해나 등 유명 연예인과 데이트를 즐긴 젊은 상원의원<br>자가용 비행기를 직접 조종하며 유람하는 제트족}} | |||
*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잘생기고 섹시한 이미지로 유명하다. 실제로 여성층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그 예로 초대박을 친 미드 〈[[아메리칸 프린스|프렌즈]]〉 시즌 3 에피소드 5에서 주인공 레이첼이 '같이 자고 싶은 스타'로 존 F.케네디 주니어를 언급했다. | |||
2026년 8월 3일 (월) 17:35 기준 최신판
미합중국 대통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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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합중국 제42대 대통령 존 F. 케네디 주니어 John F. Kennedy J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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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존 피츠제럴드 케네디 주니어 John Fitzgerald Kennedy Jr. | ||||||||||||||||||
| 출생 | 1960년 11월 25일 | ||||||||||||||||||
| 미국 워싱턴 D.C. | |||||||||||||||||||
| 사망 | 2001년 9월 11일 (향년 40세) | ||||||||||||||||||
| 미국 플로리다 주 새러소타 카운티 새러소타 | |||||||||||||||||||
| 재임기간 | 제42대 대통령 | ||||||||||||||||||
| 2001년 1월 20일 ~ 2001년 9월 11일 | |||||||||||||||||||
| 서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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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존 F. 케네디 주니어의 취임 선서 장면 |
| "People often tell me I could be a great man. I'd rather be a good man." "사람들은 내가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위대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John F. Kennedy Jr. |
역대 최연소의 나이에 취임한 미국 대통령이며, 미국의 제35대 대통령인 존 F. 케네디의 장남이자, 2남 2녀 중 셋째이다. 당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연예인인 마돈나와 대릴 해나 등 여러 미인이 꼬였으며,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잘생기고 섹시하다는 평을 받는다.
생애
젊은 시절
1960년 11월 25일 태어난 그는, 세 번째 생일을 코앞에 두고 있던 1963년 11월 22일 아버지가 암살 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생일을 불과 사흘 앞둔 시점이었다. 장례식 당일, 관 옆에 선 채 작은 손을 들어 경례를 하는 세 살배기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겨 전국에 송출되었는데, 정작 본인은 그 관 안에 누가 있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한 나이였기에 많은 국민들의 가슴을 찢어지게 만들었다. 그저 주변 어른들의 지시에 따라 순진하게 손을 올렸을 뿐이지만, 이 한 장면은 이후 수십 년간 미국인들의 뇌리에 20세기를 대표하는 이미지 중 하나로 남았다.
아버지를 잃은 뒤 어머니 재클린은 한동안 뉴욕에서 아이들을 키웠으나, 같은 해, 그리스 선박 재벌 아리스토틀 오나시스와 재혼을 택했고, 이후 오나시스가 세상을 떠난 1975년까지 케네디 주니어는 오나시스 소유의 사유섬 스콜피오스와 뉴욕 맨해튼을 오가며 유년기를 보낸다.
학창 시절에는 콜리지에이트 스쿨과 필립스 아카데미 앤도버를 거쳐 1982년 브라운 대학교 미국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부터 연기에 흥미를 느꼈던 그는 졸업 후에도 이 관심을 이어가 연극 무대에 직접 올라 관객들 앞에 서기도 했다. 하지만 어머니 재클린은 아들이 배우의 길을 걷는 것을 탐탁지 않아 했고, 결국 그는 연극에 대한 미련을 접고 이듬해인 1986년 뉴욕 대학교 로스쿨에 진학한다.
로스쿨은 1989년 무난히 졸업했지만, 정작 변호사 자격시험이 발목을 잡았다. 뉴욕주 변호사 시험에서 두 차례나 낙방한 것인데, 명문 로스쿨을 나온 케네디가의 일원이 시험에서 미끄러졌다는 사실은 언론과 대중에게 좋은 가십거리가 되었다. "합격할 때까지 계속 시험을 보겠다"고 공언했던 그는 1990년 7월, 세 번째 도전 끝에 마침내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다. 만약 이때도 실패했다면 그는 애초에 맨해튼 지방검찰청에서 일할 자격조차 얻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 세 번째 시험은 그의 이후 경력 전체를 갈랐던 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변호사가 된 케네디는 로버트 모겐소 지방검사가 이끌던 맨해튼 지방검찰청에 부지방검사로 들어가 1993년까지 근무한다. 이 기간 동안 주로 소비자 사기 사건과 임대인-임차인 분쟁을 다뤘으며, 1991년 8월 29일에는 검사로서 첫 승소 판결을 받아내기도 했다. 참고로 케네디 가문에서는 숙부 에드워드 케네디, 누나 캐롤라인 케네디를 비롯해 하버드 대학교 졸업이 일종의 가풍처럼 이어져 왔는데, 브라운과 뉴욕대를 나온 케네디 주니어는 이 점에서 다소 이례적인 사례로 꼽힌다.
한편 검사가 되기 전인 1988년, 그는 민주당 대선 경선에 출마했던 숙부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을 위해 전당대회 찬조연설자로 나선 적이 있다. 당시 그는 "저의 아버지께서는 20여 년 전 바로 이 자리에서 우리 당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셨습니다"라는 발언으로 장내를 뭉클하게 만들며 큰 화제를 모았다.
정계 입문
1993년 지방검찰청을 나온 케네디는 곧바로 정계 도전을 결심한다. 문제는 그해 뉴욕주에서 의석의 주인이 다름 아닌 3선 중진이자 당내 거물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한이었다는 점이었는데, 그가 정계 은퇴를 선언하며 이름값과 세대교체 프레임, 뉴욕시 젊은 유권자층의 폭발적 지지를 등에 업고 민주당의 뉴욕주 상원의원 후보가 된다. 이어진 본선에서는 공화당의 버나뎃 카스트로를 상대로도 낙승한다.
| 뉴욕주 상원의원 출마 당시 영상 |
34살의 케네디는 단숨에 전국구 스타 정치인으로 발돋움한다. 상원이 된 후 사법위원회와 소비자보호 관련 위원회를 중심으로 온건하고 무난한 의정 활동에 집중하며 착실히 경력을 쌓아간다. 사생활에서는 캘빈 클라인 홍보 디렉터로 일하던 캐롤린 베셋을 만나 교제 끝에 1996년 9월, 조지아주의 한 작은 섬에서 비공개 결혼식을 올린다. 당시 이 결혼은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2000년 대통령 선거 경선
1999년 초부터 케네디 주니어의 출마 여부가 정치권 최대의 떡밥이었다. 본인은 공식적인 언급을 극도로 아꼈지만, 뉴욕 정가 인사들과의 잦은 회동설, 민주당 전국위원회 관계자들과의 비공개 접촉설 등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면서 사실상 출마는 기정사실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그가 상원의원직에 안주할 수도 있다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으나, 그저 관측에 불과했다.
1999년 충반, 뉴욕에서 2000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선언 직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즉시 전국 지지율이 50%를 상회하며 나머지 후보들을 한자릿수~10%대로 밀어냈다. 직전 선거에 출마했던 듀카키스도 미완의 과제를 마무리하겠다며 출마 및 완주 의사를 밝혔으나 초반부터 존재감이 가자 미미했다.
- 아이오와 코커스
당시 케네디 진영의 경우 전국적 인지도에 비해 조직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뉴욕 상원의원으로 재직하면서 구축한 노동조합과 풀뿌리 조직의 지원을 받아 아이오와에서도 무난히 1위를 차지한다. 브래들리가 진보 성향 유권자 결집으로 2위를 기록, 리버만이 3위, 듀카키스는 한 자릿수 득표에 그치며 사실상 조기 이탈 신호가 나타났다.
-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브래들리가 인접 주의 이점을 살려 케네디와 격차를 좁히는 데는 성공했으나, 역시나 이변없이 케네디 주니어가 승리한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유의미한 성적을 거둔 브래들리는 슈퍼 화요일까지 완주를 결정했다. 리버만은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며 입지가 좁아지기 시작했고, 듀카키스는 사실상 선거운동을 접고 2월 말에 공식적으로 사퇴한다.
- 사우스캐롤라이나 및 남부 프라이머리
케네디가 남부 흑인 유권자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얻으며 브래들리와 격차를 더 벌렸다. 리버만은 유대인 최초 주요정당 대통령 후보 도전이라는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남부 조직력의 한계를 드러내며 지지율 정체를 겪었다.
- 슈퍼 화요일
케네디가 슈퍼 화요일에서 대승을 거두며 사실상 지명을 확정지었다. 브래들리는 홈그라운드인 뉴저지를 포함해 일부 지역에서 선전했으나 전체 대의원 수에서 크게 뒤처졌고, 이날 이후 사실상 선거를 포기했다. 리버만은 이전부터 이미 조기 사퇴 압박을 받고 있었다.
결국 세 후보 모두 사퇴 후 케네디 지지로 선회하면서 첫 투표에서 대의원 80% 이상을 확보하며 사실상 만장일치에 가까운 형태로 후보 지명이 확정되었다. 러닝메이트로는 존 브로 상원의원을 지명했다.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
| Tomorrow Begins Today 미래는 오늘 시작된다 |
댄 퀘일에 대한 지지율이 워낙 낮았기에 케네디 캠프는 포지티브 전략으로 선거전을 시작했다. 2000년 대선의 주요 장면은 바로 TV 토론이었다.
1차 토론은 시작부터 끝까지 일방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퀘일은 초반부터 눈에 띄게 경직된 모습을 보였고 고용 지표를 둘러싼 공방에서 준비한 통계를 잘못 인용해 진행자로부터 정정 요청을 받는 등 계속해서 지적 받아온 실언이 토론에서도 이어졌다. 반면 케네디는 퀘일의 실수를 직접 저격하기보다 차분하고 절제된 태도로 실적으로 증명하겠다는 답변을 반복하며 대조 효과를 극대화했다. 토론 직후 실시된 즉석 여론조사에서도 압도적인 판정승으로 집계되었고, 이미 앞서 있던 지지율 격차가 더 벌려졌다.
1차 토론 참패 이후 절치부심한 퀘일 캠프는 2차 토론에서 상당한 준비도를 끌어올린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2차 토론은 세 차례의 토론 중 유일하게 경합으로 분류되는데, 퀘일이 정책 디테일에서 비교적 안정된 답변을 내놓으며 실언 빈도를 크게 줄였고 특히 자신의 정책을 부각시키는데는 어느정도 성공했다는 평이 나왔다. 다만 케네디 주니어 역시 준비된 반박과 여유 있는 태도를 유지하면서 크게 밀리지 않았고 즉석 여론조사에서 근소 우위 내지는 사실상의 무승부로 집계되었다.
선거 막바지에 열린 3차 토론에서는 다시 케네디의 일방적 우세로 돌아섰다. 퀘일은 2차 토론에서 선전을 이어가려 했으나, 마무리 발언 등 즉흥성이 요구되는 구간에서 재차 말실수가 나오며 그동안의 이미지가 재소환되었다.
존 F. 케네디 주니어 행정부
| 백악관 공식 초상화 |
평가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유명세가 있는 인물 중 한 명이며, 지금까지도 대중적 지지도가 매우 높은 대통령이다. 하지만 이와 별도로 대통령으로서의 정치적 평가는 재임 기간이 극히 짧았던 탓에 엇갈리는 지점이 있다.
케네디 주니어는 아버지 존 F. 케네디와 함께 미국 민주당에서 배출해낸 가장 인기 높은 대통령들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취임 직후부터 사망 직전까지 지지율이 70% 중후반에서 크게 떨어진 적이 없었을 정도로, 대통령 재임기 전체를 통틀어 최고 수준의 지지율을 기록한 인물 중 하나로 남아있다. "Tomorrow Begins Today", 미래는 오늘 시작된다라는 슬로건으로 대표되는 젊고 도전적인 이미지, 재임 중 벌어진 동아시아 미사일 위기 당시 보여준 침착하고 신중한 위기관리 능력으로 전면적 군사 충돌을 막아낸 공로 등이 그를 상징하는 요소로 꼽힌다. 부친과 마찬가지로, 짧았지만 강렬했던 재임기는 이후 벌어질 여러 혼란상의 전조 없이 마무리된 찬란한 순간으로 기억되는 경향이 있다.
부친과 함께 지금도 민주당의 정치인들, 특히 대권 주자 급 인물들에게 케네디 주니어가 상징하는 젊고 도전 정신이 강한 개방적인 지도자상 이미지는 가장 선호받으면서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다만 실제로 이 이미지를 정치적으로 계승한 인물을 꼽기는 쉽지 않은데, 직후 대통령직을 승계한 존 브로는 남부 중도 실용주으자로 이미지 자체가 판이하게 달랐고, 버니 샌더스 역시 전혀 다른 결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2008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선 존 에드워즈가 남부 출신의 젊고 매력적인 이미지, 대중을 휘어잡는 언변 등에서 케네디와 케네디 주니어의 잔상을 잇는 인물로 종종 거론되었지만, 최종적으로 낙선했기에 완전한 계승자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짧은 기간 동안 활동하다 암살되었기에, 좋은 이미지를 바탕으로 실제 국성 성과에 비해 과대평가되었다는 비판적 시각 역시 존재한다. 다만 부친보다 더 애초에 평가할 수 있는 국정 데이터 자체가 극히 부족하다는 점에서 이런 비판 역시 완전히 검증되기는 어렵다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여전히 미국사에서 가장 인기 높고 화제의 대상이 되는 대통령으로 남아 있다. 최근 조사에서도 긍정평가와 부정평가의 격차가 압도적인 수준으로 나타나며, 명실상부 미국 역사상 가장 사랑 받은 대통령 중 하나로 꼽힌다.
선거 이력
|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선거인단 수) | 당선 여부 | 비고 |
|---|---|---|---|---|---|---|
| 1994 |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 뉴욕 | 민주당 | 2,901,602 (60.57%) | 당선 (1위) | 초선 |
| 2000 | 미국 대통령 선거 | 미합중국 | 61,540,407 (58.38%, 486명) | 초선 |
여담
- 아버지의 섹스 어필을 물려받아 언론 화제기사란에 종종 등장했으며, 다음은 언론에서 그에게 붙인 별명이다.
| 세계에서 제일 섹시한 남성(피플,1996) 신비한 케네디의 후계자 마돈나, 대릴 해나 등 유명 연예인과 데이트를 즐긴 젊은 상원의원 자가용 비행기를 직접 조종하며 유람하는 제트족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