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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경제 여건 자체도 그다지 좋은 상황도 아니었기에 정부의 국정 운영 능력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굳어지면서 임기 후반 국정 지지율은 30%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부통령인 [[제임스 스톡데일 (아메리칸 프린스)|제임스 스톡데일]] 역시 뚜렷한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며 행정부 전반의 이인자 리스크가 꾸준히 제기되었다. | 여기에 경제 여건 자체도 그다지 좋은 상황도 아니었기에 정부의 국정 운영 능력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굳어지면서 임기 후반 국정 지지율은 30%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부통령인 [[제임스 스톡데일 (아메리칸 프린스)|제임스 스톡데일]] 역시 뚜렷한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며 행정부 전반의 이인자 리스크가 꾸준히 제기되었다. | ||
==경선== | |||
===공화당=== | |||
{{인용문|'''Worth Fighting For<br>싸울 가치가 있는 미국'''|2000 퀘일-스톡데일 티켓 슬로건}} | |||
[[공화당]] 경선은 민주당과 달리 시작 전부터 사실상 승부가 정해져 있었다. 현직 대통령인 [[댄 퀘일 (아메리칸 프린스)|댄 퀘일]]이 낮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당내 뚜렷한 대항마가 없는 상태에서 사실상 단독 후보로 경선에 임했다. | |||
일부 당내 인사들 사이에서 퀘일의 재지명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존재했으나, 현지 대통령에 맞서 당내 경선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으로 큰 부담을 수반하는 선택이었기에, 결국 이렇다 할 도전자 없이 퀘일이 압도적인 대의원 수를 확보하며 재지명되었다. | |||
퀘일은 [[199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아메리칸 프린스)|1996년 대선]]에 이어 [[제임스 스톡데일 (아메리칸 프린스)|제임스 스톡데일]] 부통령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다만 그가 매우 고령이라는 점이 지속해서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한 전쟁 영웅이자 명예훈장 수훈자로서 상당한 존경을 받는 인물이지만, 정치에서의 대중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대해서는 재임 4년 내내 물음표가 따라다녔다. 당 일각에서는 새로운 얼굴로의 교체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퀘일은 그냥 무시하고 지명을 선택했다. | |||
===민주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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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는 1994년 [[아메리칸 프린스|뉴욕주]] 상원의원 당선 직후 부친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으로부터 물려받은 압도적인 이름값과 대중적 인지도, 그리고 젊고 호감형인 이미지로 인해 당선 직후부터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어 왔다.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며 전국 순회 강연, 지역 당 조직과의 교류 등을 통해 민주당 내에서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였다. | |||
케네디에 맞선 주요 경쟁자로는 [[아메리칸 프린스|뉴저지주]] 상원의원 [[빌 브래들리]], [[아메리칸 프린스|코네티컷주]] 상원의원 [[조 리버만 (아메리칸 프린스)|조 리버만]], 그리고 전 [[아메리칸 프린스|매사추세츠]] 주지사이자, [[199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아메리칸 프린스)|1996년 미국 대통령 선거]] 후보인 [[마이클 듀카키스 (아메리칸 프린스)|마이클 듀카키스]]가 있었다. | |||
케네디는 아이오와 코커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를 포함한 초반 경선 일정에서 압도적인 득표율로 승리하며 사실상 경선을 조기에 종결시켰다. 슈퍼 화요일 이후 브래들리와 리버만은 잇따라 경선 중단을 선언했으며, 듀카키스 역시 뒤이어 완주를 포기했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케네디는 사실상 만장일치에 가까운 지지로 대통령 후보 지명을 수락했다. | |||
케니디는 부통령 후보로 [[아메리칸 프린스|루이지애나주]] 연방 상원의원인 [[존 브로 (아메리칸 프린스)|존 브로]]를 지명했다. [[아메리칸 프린스|뉴욕]] 상원의원이자 북동부, 도심 지역 기반의 진보적 이미지가 강한 케네디와 달리, 브로는 딥사우스 출신의 중도실용주의 협상가로서 오랜 상원 경력을 통해 초당적 조정 능력을 인정받아온 인물이다. 이 지명은 케네디의 상대적 약점으로 지적되던 남부 지역 기반과 국정 경험 부족을 동시에 보완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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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 | | 48.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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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2일 (일) 00:31 기준 최신판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
|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 2000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 | ||||||||
|---|---|---|---|---|---|---|---|---|
퀘일 52인 (9.7%) ✔ (90.3%) 486인 케네디
| ||||||||
| ||||||||
| 선거일시 | 2000년 11월 7일 | |||||||
| 투표율 | 54.2% ▲ 2.5%p | |||||||
| 선거 결과 | ||||||||
| 후보 | 공화당 |
민주당 | ||||||
| 홈스테이트 | 퀘일 인디애나 스톡데일 캘리포니아 |
케네디 뉴욕 브로 루이지애나 | ||||||
| 승리 주 | 9 | 41 + D.C. | ||||||
| 선거인단 | ||||||||
| 52인 | 486인 | |||||||
| 전국 득표 | ||||||||
| 42,023,594 39.7% |
61,540,407 58.4% | |||||||
| 당선자 | ||||||||
| 민주당 존 F. 케네디 주니어 | ||||||||
개요
미국의 제41대[1] 혹은 42대 대통령[2]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로 현지 시간으로 2000년 11월 7일 열렸으며 20세기에 치러진 마지막 미국 대통령 선거이다.
존 F. 케네디의 아들이자, 뉴욕주 상원의원이였던 민주당 후보 존 F. 케네디 주니어가 현직 대통령인 댄 퀘일을 상대로 압승을 거둬 민주당이 4년만에 다시 정권을 찾아왔다.
배경
199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댄 퀘일 대통령은 취임 후 뚜렷한 국정 동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잦은 실언과 말실수가 임기 내내 반복되며 언론의 조롱 섞인 보도가 끊이지 않았고, 정책 성과와 무관하게 대통령 개인의 신뢰도를 지속적으로 갉아먹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경제 여건 자체도 그다지 좋은 상황도 아니었기에 정부의 국정 운영 능력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굳어지면서 임기 후반 국정 지지율은 30%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부통령인 제임스 스톡데일 역시 뚜렷한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며 행정부 전반의 이인자 리스크가 꾸준히 제기되었다.
경선
공화당
| Worth Fighting For 싸울 가치가 있는 미국 2000 퀘일-스톡데일 티켓 슬로건 |
공화당 경선은 민주당과 달리 시작 전부터 사실상 승부가 정해져 있었다. 현직 대통령인 댄 퀘일이 낮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당내 뚜렷한 대항마가 없는 상태에서 사실상 단독 후보로 경선에 임했다.
일부 당내 인사들 사이에서 퀘일의 재지명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존재했으나, 현지 대통령에 맞서 당내 경선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으로 큰 부담을 수반하는 선택이었기에, 결국 이렇다 할 도전자 없이 퀘일이 압도적인 대의원 수를 확보하며 재지명되었다.
퀘일은 1996년 대선에 이어 제임스 스톡데일 부통령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다만 그가 매우 고령이라는 점이 지속해서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한 전쟁 영웅이자 명예훈장 수훈자로서 상당한 존경을 받는 인물이지만, 정치에서의 대중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대해서는 재임 4년 내내 물음표가 따라다녔다. 당 일각에서는 새로운 얼굴로의 교체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퀘일은 그냥 무시하고 지명을 선택했다.
민주당
| Tomorrow Begins Today 미래는 오늘 시작된다 2000 케네디-브로 티켓 슬로건 |
퀘일 행정부의 낮은 지지율로 민주당은 이번 대선을 충분히 승리할 수 있는 선거라고 보았다. 민주당 내에서는 일찍부터 후보군에 대한 하마평이 무성했는데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부상한 인물이 존 F. 케네디 주니어였다.
케네디는 1994년 뉴욕주 상원의원 당선 직후 부친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으로부터 물려받은 압도적인 이름값과 대중적 인지도, 그리고 젊고 호감형인 이미지로 인해 당선 직후부터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어 왔다.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며 전국 순회 강연, 지역 당 조직과의 교류 등을 통해 민주당 내에서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였다.
케네디에 맞선 주요 경쟁자로는 뉴저지주 상원의원 빌 브래들리, 코네티컷주 상원의원 조 리버만, 그리고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이자, 1996년 미국 대통령 선거 후보인 마이클 듀카키스가 있었다.
케네디는 아이오와 코커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를 포함한 초반 경선 일정에서 압도적인 득표율로 승리하며 사실상 경선을 조기에 종결시켰다. 슈퍼 화요일 이후 브래들리와 리버만은 잇따라 경선 중단을 선언했으며, 듀카키스 역시 뒤이어 완주를 포기했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케네디는 사실상 만장일치에 가까운 지지로 대통령 후보 지명을 수락했다.
케니디는 부통령 후보로 루이지애나주 연방 상원의원인 존 브로를 지명했다. 뉴욕 상원의원이자 북동부, 도심 지역 기반의 진보적 이미지가 강한 케네디와 달리, 브로는 딥사우스 출신의 중도실용주의 협상가로서 오랜 상원 경력을 통해 초당적 조정 능력을 인정받아온 인물이다. 이 지명은 케네디의 상대적 약점으로 지적되던 남부 지역 기반과 국정 경험 부족을 동시에 보완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되었다.
민주당 대선 후보
| 연도 | 후보자 | 득표수 | 득표율 | 선거인단 | 결과 | |
|---|---|---|---|---|---|---|
| 대통령 | 부통령 | |||||
| 1828년 | 앤드루 잭슨 | 존 C. 칼훈 | 638,348 | 55.5% | 178/261 | 당선 |
| 1832년 | 마틴 밴 뷰런 | 701,780 | 54.2% | 219/286 | 당선 | |
| 1836년 | 마틴 밴 뷰런 | 리처드 멘터 존슨 | 764,176 | 50.8% | 170/294 | 당선 |
| 1840년 | 마틴 밴 뷰런 | - | 1,128,854 | 46.8% | 60/294 | 낙선 |
| 1844년 | 제임스 K. 포크 | 조지 M. 댈러스 | 1,339,494 | 49.5% | 170/275 | 당선 |
| 1848년 | 루이스 카스 | 윌리엄 O. 버틀러 | 1,223,460 | 42.5% | 127/290 | 낙선 |
| 1852년 | 프랭클린 피어스 | 윌리엄 R. 킹 | 1,607,521 | 50.8% | 254/296 | 당선 |
| 1856년 | 제임스 뷰캐넌 | 존 C. 브레킨리지 | 1,836,072 | 45.3% | 174/296 | 당선 |
| 1860년 | 스티븐 A. 더글러스 | 허셜 V. 존슨 | 1,380,202 | 29.5% | 12/303 | 낙선 |
| 1864년 | 조지 B. 매클레런 | 조지 H. 펜들턴 | 1,812,807 | 45.0% | 21/233 | 낙선 |
| 1868년 | 호레이쇼 시모어 | 프렌시스 P. 블레어 | 2,706,829 | 47.3% | 80/294 | 낙선 |
| 1876년 | 새뮤얼 J. 틸던 | 토머스 A. 헨드릭스 | 4,286,808 | 50.9% | 184/369 | 낙선 |
| 1880년 | 윈필드 스콧 핸콕 | 윌리엄 잉글리쉬 | 4,444,260 | 48.2% | 155/369 | 낙선 |
| 1884년 | 그로버 클리블랜드 | 토머스 A. 헨드릭스 | 4,914,482 | 48.8% | 219/401 | 당선 |
| 1888년 | 그로버 클리블랜드 | 앨런 G. 셔먼 | 5,534,488 | 48.6% | 168/401 | 낙선 |
| 1892년 | 그로버 클리블랜드 | 애들레이 E. 스티븐슨 1세 | 5,556,918 | 46.0% | 277/422 | 당선 |
| 1896년 | 윌리엄 J. 브라이언 | 아서 슈월 | 6,510,807 | 46.7% | 176/447 | 낙선 |
| 1900년 | 애들레이 E. 스티븐슨 1세 | 6,370,932 | 45.5% | 155/447 | 낙선 | |
| 1904년 | 앨턴 B. 파커 | 헨리 G. 데이비스 | 5,083,880 | 37.6% | 140/476 | 낙선 |
| 1908년 | 윌리엄 J. 브라이언 | 존 W. 컨 | 6,408,984 | 43.1% | 162/483 | 낙선 |
| 1912년 | 우드로 윌슨 | 토머스 R. 마셜 | 6,296,284 | 41.8% | 435/531 | 당선 |
| 1916년 | 9,126,868 | 49.2% | 277/531 | 당선 | ||
| 1920년 | 제임스 M. 콕스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 9,139,661 | 34.1% | 127/531 | 낙선 |
| 1924년 | 존 W. 데이비스 | 찰스 W. 브라이언 | 8,386,242 | 28.8% | 136/531 | 낙선 |
| 1928년 | 앨 스미스 | 조지프 T. 로빈슨 | 15,015,464 | 40.8% | 87/531 | 낙선 |
| 1932년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 존 낸스 가너 | 22,821,277 | 57.4% | 472/531 | 당선 |
| 1936년 | 27,752,648 | 60.8% | 523/531 | 당선 | ||
| 1940년 | 헨리 A. 월리스 | 27,313,945 | 54.7% | 449/531 | 당선 | |
| 1944년 | 해리 S. 트루먼 | 25,612,916 | 53.4% | 432/531 | 당선 | |
| 1948년 | 해리 S. 트루먼 | 앨번 W. 바클리 | 24,179,347 | 49.6% | 303/531 | 당선 |
| 1952년 | 애들레이 E. 스티븐슨 | 존 스파크먼 | 27,375,090 | 44.3% | 89/531 | 낙선 |
| 1956년 | 에스테스 키포버 | 26,028,028 | 42.0% | 73/531 | 낙선 | |
| 1960년 | 존 F. 케네디 | 린든 B. 존슨 | 34,220,984 | 49.7% | 303/537 | 당선 |
| 1964년 | 린든 B. 존슨 | 휴버트 험프리 | 43,129,040 | 61.1% | 486/537 | 당선 |
| 1968년 | 휴버트 험프리 | 에드먼드 머스키 | 31,271,839 | 42.7% | 191/537 | 낙선 |
| 1972년 | 조지 맥거번 | 에이브러햄 리비코프 | 29,173,222 | 37.5% | 17/537 | 낙선 |
| 1976년 | 헨리 M. 잭슨 | 월터 먼데일 | 40,831,881 | 50.1% | 297/537 | 당선 |
| 1980년 | 43,903,230 | 50.7% | N/538 | 당선 | ||
| 1984년 | 월터 먼데일 | 제럴딘 페라로 | 44,063,078 | 47.6% | 171/538 | 낙선 |
| 1988년 | 로이드 벤슨 | 마이클 두카키스 | 46,389,210 | 50.6% | 279/538 | 당선 |
| 1992년 | 50,131,085 | 48.0% | 517/538 | 당선 | ||
| 1996년 | 마이클 두카키스 | 앨 고어 | 41,124,299 | 42.7% | 184/538 | 낙선 |
| 2000년 | 존 F. 케네디 주니어 | 존 브로 | 61,540,407 | 58.4% | 486/538 | 당선 |
| 2004년 | 존 브로 | 콜린 파월 | 64,722,946 | 52.9% | 364/538 | 당선 |
| 2008년 | 존 에드워즈 | 에반 베이 | 60,817,703 | 49.7% | 264/538 | 낙선 |
| 2012년 | 조 바이든 | 하워드 딘 | 62,224,358 | 48.2% | 246/538 | 낙선 |
| 2016년 | 버니 샌더스 | 셰러드 브라운 | 62,984,825 | 46.1% | 307/538 | 당선 |
| 2020년 | 78,891,737 | 49.8% | 312/538 | 당선 | ||
| 2024년 | 피트 부티지지 | 그레천 휘트머 | 72,728,844 | 46.9% | 226/538 | 낙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