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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st 1968 (토론 |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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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st 1968 (토론 |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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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털 ==
== 포털 ==
* [[연습장:Communist 1968]] - 허브
{{공산1968/연습장}}
* [[연습장:Communist 1968/1]] - 개신
== 역대 총선거 ==
* [[연습장:Communist 1968/2]] - 미엔지모제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center; margin-left:auto; margin-right:auto;"
* [[연습장:Communist 1968/3]] - 기타
|+ 1988년 제13대 총선거
* [[연습장:Communist 1968/4]] - 북조선
|-
! 정당
! width=16% style="background:#0A84E9; color:#fff;" | 민주정의당
! width=16% style="background:#E60026; color:#fff;" | 통일민주당
! width=16% style="background:#59955E; color:#fff;" | 신민주공화당
! width=16% style="background:#FF7F50; color:#fff;" | 한겨레민주당
! width=16% style="background:#808080; color:#fff;" | 무소속
|-
! 당수
| 노태우
| 김영삼, 김대중
| 김종필
| 제정구
| ─
|-
! 지역구 의석수
| 58석
| '''133석'''
| 23석
| 1석
| 9석
|-
! 전국구 의석수
| 26석
| '''38석'''
| 11석
| 0석
| ─
|-
! 의석 총합
| 84석
| '''171석'''
| 34석
| 1석
| 9석
|-
! 비율
| 28.1%
| '''57.3%'''
| 11.3%
| 0.3%
| 3.0%
|-
|}


= 뻘짓 =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center; margin-left:auto; margin-right:auto;"
=== 인식론 ===
|+ 1992년 제14대 총선거
=== 개념으로서의 실재(實在) ===
|-
모든 개념은 개체의 집합으로서 정의된다.
! 정당
! width=12.5% style="background:#D82634; color:#fff;" | 민주당
! width=12.5% style="background:#70BA86; color:#0B338E;" | 신민주연합당
! width=12.5% style="background:#003990; color:#fff;" | 민주자유당
! width=12.5% style="background:#22B14C; color:#fff;" | 통일국민당
! width=12.5% style="background:#FFA500; color:#fff;" | 민중당
! width=12.5% style="background:#317873; color:#fff;" | 신정치개혁당
! width=12.5% style="background:#808080; color:#fff;" | 무소속
|-
! 당수
| 김영삼
| 김대중
| 김윤환
| 정주영
| 이재오
| 박찬종
| ─
|-
! 지역구 의석수
| 91석
| '''96석'''
| 18석
| 14석
| 3석
| 1석
| 14석
|-
! 전국구 의석수
| 25석
| '''27석'''
| 5석
| 4석
| 1석
| 0석
| ─
|-
! 의석 총합
| 116석
| '''123석'''
| 23석
| 18석
| 4석
| 1석
| 14석
|-
! 비율
| 38.7%
| '''41.1%'''
| 7.7%
| 6.0%
| 1.3%
| 0.3%
| 4.7%
|-
|}


=== 존재론: 존재 주체의 허구성 ===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center; margin-left:auto; margin-right:auto;"
{{인용문|이데올로기의 밖에서 (정확히 말하자면 이데올로기 밖의 거리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실제로는 이데올로기 안에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이데올로기 안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것은 그 밖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이데올로기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데올로기 외부의 정의에 따라 자신을 믿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효과중 하나는, 이데올로기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이데올로기에 의해 실재적으로 부정하는 것에 있다. 이데올로기는 '나는 이데올로기적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br>{{align|right|- [[루이 알튀세르]]}}}}
|+ 1996년 제15대 총선거
인간의 주체성 자체는 인정하지만, 인간이 주체적으로 선택할 자유는 한정적이며 그것은 진정으로 인간이 자유로이 선택한다기보다는 여러가지 사회적인 조건에 의해 선결정된 결과라고 바라본다.
|-
! 정당
! width=14% style="background:#009A44; color:#fff;" | 국민회의
! width=14% style="background:#003990; color:#fff;" | 신한국당
! width=14% style="background:#1B5B40; color:#fff;" | 자유민주연합
! width=14% style="background:#FFA500; color:#fff;" | 민중당
! width=14% style="background:#0C8DD4; color:#fff;" | 전국연합
! width=14% style="background:#808080; color:#fff;" | 무소속
|-
! 당수
| 김대중
| 이회창
| 김종필
| 김문수
| 김근태
| ─
|-
! 지역구 의석수
| 96석
| '''112석'''
| 27석
| 2석
| 4석
| 12석
|-
! 전국구 의석수
| 18석
| '''21석'''
| 5석
| 1석
| 1석
| ─
|-
! 의석 총합
| 114석
| '''133석'''
| 32석
| 3석
| 5석
| 12석
|-
! 비율
| 38.1%
| '''44.5%'''
| 10.7%
| 1.0%
| 1.7%
| 4.0%
|-
|}


우리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집단의 논리, 문화의 논리, 사회의 논리, 그리고 그것에 만들어진 개인의 심리에 순응한다. 우리는 우리의 자발적인 생각으로 선택한다고 결정하지만 그러한 자발성은 한정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선택을 하기 전에 사고하며, 그러한 사고는 사고의 틀에 의해 다시 결정된다. 사고의 틀은 개인이 혼자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예컨대 우리는 유교 문화를 통해 장유유서의 질서를 사고의 틀로서 받아들이고, 그것이 사고를 결정하며 그 사고는 선택을 결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선택에 앞서는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배경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안토니오 그람시]]는 헤게모니라 불렀고 [[루이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라 불렀다.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center; margin-left:auto; margin-right:auto;"
|+ 2000년 제16대 총선거
|-
! 정당
! width=14% style="background:#0000A8; color:#fff;" | 한나라당
! width=14% style="background:#00AA7B; color:#fff;" | 새천년민주당
! width=14% style="background:#1B5B40; color:#fff;" | 자유민주연합
! width=14% style="background:#353099; color:#fff;" | 민주국민당
! width=14% style="background:#EE7700; color:#fff;" | 민주노동당
! width=14% style="background:#808080; color:#fff;" | 무소속
|-
! 당수
| 이회창
| 김상현
| 김종필
| 조순
| 권영길
| ─
|-
! 지역구 의석수
| '''123석'''
| 79석
| 13석
| 1석
| 6석
| 5석
|-
! 비례대표 의석수
| '''21석 (42.6%)'''
| 16석 (32.3%)
| 4석 (8.6%)
| 1석 (3.2%)
| 4석 (8.4%)
| ─
|-
! 의석 총합
| '''144석'''
| 95석
| 17석
| 2석
| 10석
| 5석
|-
! 비율
| '''52.7%'''
| 34.8%
| 6.2%
| 0.7%
| 3.7%
| 1.8%
|-
|}


예컨대 존재의 주체성이라는 표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주체적이지 못하다. "나 스스로"는 사회 혹은 집단으로부터 독립된 객체가 아니며 남에게서 끊임 없이 영향을 받고 살아간다. 설령 어떤 사람이 태어나서부터 어떠한 사람과 만나지 않고 평생을 보낸다 할지라도, 그는 유기체라는 집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그는 유기체로서의 본능인 "힘을 향한 의지"(먹고, 사냥하고, 살아남는것)를 실행한다. <남으로부터 자유롭게, 내 멋대로 살겠다>라고 선언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남으로부터 자유롭게 산다는 것은, ""이라는 존재가 없다면 성립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ref>쉽게 말하자면, <반대한다>라는 개념이 <반대의 대상이 되는 입장>이라는 개념이 없이 성립되지 않는 것과 같다. 남으로부터 자유롭게/ 멋대로 살아가겠다는 것 자체가, <남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살아가는 삶>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것의 반대항으로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쨌든 멋대로 살아가는 것도 <남>이라는 존재가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ref> 그러므로 자주적인 육체(主體)라는 것은 사실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는 언제나 다른 요소로부터 영향을 받는, 사회나 집단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이다. (알튀세르적 용어를 빌리자면 <집단의 너머는 존재하지 않는다>)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center; margin-left:auto; margin-right:auto;"
|+ 2004년 제17대 총선거
|-
! 정당
! width=14% style="background:#0095DA; color:#fff;" | 한나라당
! width=14% style="background:#00AA7B; color:#fff;" | 새천년민주당
! width=14% style="background:#1B5B40; color:#fff;" | 자유민주연합
! width=14% style="background:#EE7700; color:#fff;" | 민주노동당
! width=14% style="background:#4CBB17; color:#fff;" | 개혁국민정당
! width=14% style="background:#808080; color:#fff;" | 무소속
|-
! 당수
| 최병렬
| 조순용
| 김종필
| 권영길
| 노무현
| ─
|-
! 지역구 의석수
| '''132석'''
| 96석
| 3석
| 8석
| 2석
| 2석
|-
! 비례대표 의석수
| '''23석 (38.6%)'''
| 14석 (21.4%)
| 0석 (2.9%)
| 7석 (13.3%)
| 12석 (19.8%)
| ─
|-
! 의석 총합
| '''155석'''
| 110석
| 3석
| 15석
| 14석
| 2석
|-
! 비율
| '''51.8%'''
| 36.7%
| 1.0%
| 5.0%
| 4.7%
| 0.7%
|-
|}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그가 속한 집단이나 사회가 만들어낸 사고의 틀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순수한 자기만의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생각은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의 취향, 사유, 결정은 모두 사회적인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저녁에 먹을 밥을 고르는 것도,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도 모두 구조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더 쉽게 말해 '''모든 존재는 자유로울 수 없다'''라는 것이다.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center; margin-left:auto; margin-right:auto;"
 
|+ 2004년 제17대 총선거
결론은 <고정 관념을 깨자> 같은 수사에 속지 말자는 것이다. 애초에 그런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방식으로 우리 사회에 대항하기보다는, 존재로서의 우리가 가지는 특성을 받아들여야한다. 오히려 우리는 그런 존재의 특징을 통해 우리의 상황을 더 개선시킬 수 있는 기회를 찾는다. 가령, 집단이나 사회의 영향 자체를 받는 인간의 특성을 이용해, 개개인을 교화시키는것보다 사회 구조 자체를 바꾸어버림에 따라 현시대의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바꾸어나갈 수 있다.
|-
 
! 정당
==== 예시 ====
! width=11.5% style="background:#0095DA; color:#fff;" | 한나라당
예를 들자면 크레타 섬의 미노스 문명에서는 여성의 상의 탈의가 자연스러운 것이었지만 현대에서 여성들은 자발적으로 상의 탈의를 꺼린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윤리와 도덕적 규범과 그로 인해 형성된 인간의 심리가 여성의 탈의를 부자연스럽고 민망한 것으로 여겨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개개 여성들은 그것을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은 선택이라 할 수 없다. 사회의 규범과 도덕에 의해 선결정된 결론에 자신을 맞춘 것이다.
! width=11% style="background:#419639; color:#fff;" | 통합민주당
 
! width=11% style="background:#FCCA00; color:#001;" | 국민참여당
[[피에르 부르디외]]가 [[아비투스]]라는 용어로서 지적했듯, 우리의 취향 그 자체가 집단에 의해 결정되기도 한다. 식사에서도 그러한 것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서민층이 고급 뷔페나 프랑스 식당에 가지 않는 것은 단순히 돈이 없어서일 뿐만이 아니다. 칼을 잡는 법, 와인잔을 잡는 법이 따로 있고, 어떤 순서로 식사를 하는지도 결정되어있다. 또한, 그런 계급별 문화 양상의 "구별짓기"는, 한 계층이 다른 계층으로 상승하였을 때 그 계층에 적응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노동자가 하루 아침에 로또에 당첨되어 귀족과 남부러울 것 없는 재산을 가지게 되더라도, 그는 자신의 지위에 걸맞는 옷, 집, 식사를 해야한다. 한데 귀족-부유 계층은 클래식 음악, 고전 문학, 분석 철학 등 다양한 요소들을 어릴때부터 교양으로서 배우고 자라기 때문에 뒤늦게 그것을 따라잡으려하는 하위 계층의 시도는 좌절된다. 마지막으로, 하위 계층은 상위 계층의 그런 "기품있는" 문화를 동경하여, 그것을 타도하기보다는 모방하려고 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사회주의 혁명은 하류층이 상류층을 기득권이라기보다는 문화 향유 계층으로서 여기는 이상은 발생이 불가능하다. 그러한 것은 우리 사회의 문화와 취향이 사실은 사회적인 계급에 의해 결정되어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벼락부자"에 대한 전통적이고 귀족적인 부자들의 멸시 같은 클리셰가 이를 뒷받침한다.
! width=11% style="background:#EE7700; color:#fff;" | 민주노동당
 
! width=11% style="background:#E85298; color:#fff;" | 국민중심당
=== 본성의 유물론 ===
! width=11% style="background:#E62020; color:#fff;" | 진보신당
[[카를 마르크스]]는 생산에 따라 인류의 역사가 변화, 발전해온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비판적으로 수용, 계승, 발전시킨다. 인간은 총 3가지의 단계적 요소로서 역사적인 변화를 거듭해왔다. ① 개개의 미시적인 사건들 ② 미시적인 사건들을 결정하는 인간의 생산과 물질적인 조건들 ③ 물질적 조건을 생산토록하는 인간의 본성이 그것이다.
! width=11% style="background:#B30000; color:#fff;" | 창조한국당
 
! width=11% style="background:#808080; color:#fff;" | 무소속
가령 산업 혁명으 예시로 들어보자. 산업혁명은 ① 인클로저 운동, 신대륙 발견 같은 미시적인 사건들 ② 그것을 이루게 만든 목축업의 기계화, 항해술의 발달로 인하여 이루어졌다. 여기까지는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과 동일하나, 그런 생산을 인간이 왜 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시대에 구애받지 않고,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인간의 본성(③)이 궁극적으로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 되게 해준다는 것이 주장의 요이다.
|-
 
! 당수
그러한 본성은 [[프리드리히 니체]]가 말한 [[힘을 향한 의지]]로서 요약된다. 모든 생물은 그것의 증식을 목표로 한다. 몸집을 키우고, 자손을 남기는 것이 모든 생명체의 목표로서 작용하고 있다. 이는 식물, 동물 그리고 인간에 동등하게 적용된다. 인간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증식을 위한 물질적인 이익에 따라 행동하고, 그것을 본성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물질적인 이익"은, 현대 사회나 종교적인 용어로 '''욕망'''으로서 표현되어왔다. 식욕, 수면욕, 물욕, 색욕, 권력욕 등 모든 종류의 욕망은 공통적으로 인간의 힘을 향한 의지를 가리키고 있다. 그러한 욕망은 인간의 역사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베트남 전쟁, 걸프 전쟁, 자본주의, 몽골의 서방 원정, 노예 제도 등은 그것의 실현된 모습이 달랐을 뿐, 인간의 욕망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동일하였다. 한마디로 말해 과거나 현재에나 인간의 본성에는 변함이 없으며 현대 기술과 사회가 인간을 만든게 아니라 인간이 현대 기술, 사회, 체제 등을 이용하는 것일 뿐이라는 점이다. 이는 [[구조주의]] 혹은 [[마르크스주의]]에 대치되지만, 동시에 인간이 기술, 사회, 체제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는다.
| 강재섭
 
| 손학규
욕망은 인간의 윤리와 대치되는 특수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통념과는 달리, 욕망 자체를 가치중립적 용어로서 판단해야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선행을 하면서, 수행을 하면서 욕망과 자신을 구분지으려하지만, 이 역시 자신의 정신적인 수양, 즉 자가증식을 위한 본성적인 목표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욕망과 대치된다고 볼 수 없다. 인간은 하나의 집단으로서, 그 집단의 이데올로기로 욕망을 가지기 때문에, '''욕망의 그 저편'''은 없으며 따라서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욕망이라는 것이 선과 악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를 나타내는, 현상적이고 가치중립적인 '''실존재'''라는 점을 가리킨다.
| 유시민
 
| 강기갑
==== 개체 경계의 모호점 ====
| 심대평
힘을 향한 의지는 단순히 인간에만 반영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존재, 심지어 비생명체까지도 그것은 그것이 발달하면서 그 영역을 증식시키는 경향을 가진다. 가령 국가체의 경우, 그것은 자신의 영역을 부족에서 마을로, 마을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국가로 넓혔고 현재는 그 영역이 단순히 국토 내 뿐만 아니라 외에서도 미쳐진다. 다른 모든 존재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역은 태동기에는 애니메이션 그 자체로서만 머물렀지만 그 산업이 발달함에 따라 실사영화나 버튜버, 일러스트레이팅 등 다른 영역으로도 확장되었다.
| 심상정
 
| 문국현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그러나 동시에 모든 존재는 그것의 영역을 무한히 확장시킴에 따라 "무엇"이 자신이며 "무엇"이 타인인지 구별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예컨대 문화 매체나 정치, 외교 등 그 분야를 가리지 않고, 모든 존재들은 다른 존재들을 자신의 영역 속에 "종속"시키려고 하는 경향을 보이곤 한다. 미국은 NATO라는 이름으로 영국과 한국을 자국에 종속시켰고, 할리우드는 한국 영화를, 일본 애니메이션은 한국 웹툰을, 중국은 위구르를 종속시켰다. 그러한 방식을 통하여 거의 모든 소수는 지배적인 다수에 종속되며, 또 동화된다. 이로 인하여 소수가 완벽하게 다수에 종속되는 시점이 발생하므로, 증식해나가는 현대의 요소들은 어느 순간부터 자와 타를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기가 종국에 찾아올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러한 것을 개인적으로 '''개체 경계의 모호(지)점'''이라고 부르고 있다.
| ─
 
|-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어떠한 존재는 존재라는 틀 안에서 벗어나 인류의 상태 자체를 나타내는 현상이자 보편성을 가진 지배 요소로 변화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으로서, 무엇이 무엇이고 무엇이 무엇인지 전혀 구분할 수 없는 사회를 만들어, 새로운 역사적 장으로서의 이행을 이끈다. 그것은 크고 작은 분야에서 일어나며, 역사의 모든 순간에서 일어났다.
|-
 
|}
===== 예시 =====
예를 들자면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가 대표적이다. 할리우드 영화는 "미국에서 만들어진 영화"를 의미하는 명사로서 사용되었지만, 이제는 그것의 경계를 나누는 것이 무의미하다. 가령 한국계 미국인 감독이 제작한 <미나리>나, [[크리스천 베일|영국 배우]]가 출연한 <다크나이트>, [[크리스토퍼 놀란|영국 감독]]이 제작한 <인터스텔라> 등이 "할리우드"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영화 시장은 할리우드와 동조되는 경향성을 보인다. 이미 스페인이나 영국, 한국 등의 몇몇 넷플릭스 드라마는 그 서사성에서 할리우드 못지 않은 완성도를 보이고, 때때로 우리는 그것을 구분하는데 실패하곤 한다. 또한, 그렇게 됨으로 인하여 역설적으로 미국 드라마는 스페인이나 영국 같은 타국의 드라마에 점차적으로 그 파이를 내어주고 있다. 넷플릭스에서 미드의 위세는 대단하지만 프랑스나 스페인의 드라마도 그만큼 인기를 끈다. 이것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외국의 영화는 미국에서 더 흥행하고 있다.
 
우리는 실제 그러한 것들을 역사속에서 보아왔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는 다른 모든 요소들을 자신들에게 종속시켰다. 노예제도, 봉건제, 인신매매 등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이었던 17세기 이전의 유산들은 자본주의 사회에 진입하면서 없어진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그것을 종속시킨 것에 불과하다. 실제로 노예제도는 여전히 쿠팡 알바나 하청 노동 등의 형식으로 유지되며 인신매매는 장기 판매의 형태로 존속하고 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봉건주의"라고 부르지 않는 것은, 그러한 요소들이 봉건주의에서 벗어나 자본주의로 '''종속'''되며 자본주의의 요소와 '''동화'''되었고 따라서 자본주의와 별개의 것이라고 볼 수 없는, 그리고 구분할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단순히 그런 것들을 "노예제이다"라고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정작 비판하려고 보면 그러한 노동이 임금제 노동과 구별할 수 있는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해 난점을 가지게 된다.<ref>물론 인권적인 대우를 논할 수 있겠지만, 고용주에게 고용되는 형태,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지루한 일을 계속 해야하는 상태 등 정신적이거나 추상적인 형태로서 구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ref>
 
21세기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은 문화 경계의 모호성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우리의 문화적인 요소들은 점차적으로 미국에 종속되는 경향을 보이며, K-Pop과 미국 팝송을 구분하는 것이 극히 어려운 시대에 도달하였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일본 애니메이션 역시 마찬가지로, 한국 웹툰과 중국 게임은 일본 시장과 밀접한 연관을 맺으며([[벽람항로]], [[신의탑]], [[블루 아카이브]]) 일본 문화에 종속되었다. 이로서 일본 애니메이션과 미국 음악, 할리우드는 각자의 분야에서 지배적인 종속 주체가 되어, 곧 인류 문화 전반을 나타낼만한 "보편적인 지배 요소"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 ====
 
=== 인터넷(정보-공유화) 시대의 특수성 ===
==== 아비투스의 붕괴 ====
 
=== 마르크스의 유령들 ===
=== [[이브위키 혁명사상]] ===
 
=== 여타 철학 비판 ===
==== 니체 비판 ====
==== 마르크스 비판 ====
==== 비판이론 비판 ====
==== 포스트모더니즘 비판 ====
==== 분석 철학 비판 ====
{{인용문|그동안의 철학자들은 세상을 해석하는데에만 몰두하였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br>{{align|right|- [[카를 마르크스]]}}|마르크스가 간과한게 있다면, 분석철학은 세상을 해석하는 것 조차 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분석 철학]](종종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등의 [[영미 철학]]으로 표현되는)은 근본적으로 철학의 학문적인 독립성을 주장한다는 점에 있어 그 가치가 있지만, 지나치게 철학사적인 맥락과 사회, 문화적인 영향력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철학은 어쨌거나 <문제를 생각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분석 철학의 주장대로 철학을 다른 학문에서 떼어내는 일은 철학의 본질에서 멀리 벗어나 있는 것과 같다. 문제를 생각한다는 것은, 문제 그 자체를 생각하는게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일정한 대상의 문제를 떠올리고 거기에 비판을 제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말해, 철학은 문제를 생성하는 학문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는 학문이다. 분석 철학은 오직 언어와 과학적 방법론에만 집중하며 철학이 우리 사회에 내놓을 수 있는 해답과, 제기할 수 있는 의문을 등한시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분석 철학이 제기하는 문제점들은 한 없이 공허하며, 그것이 우리 사회에 주는 함의는 매우 적다고 할 수 있다. 즉, 분석철학은 철학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철학을 순수학문으로 격하시켰다.
 
분석 철학은 본질적으로 말놀음이다. 그것은 사회에 참여를 거부한 엘리트주의적 철학이다. 철학이 우리의 사회, 우리의 심리, 우리의 역사에 내놓을 수 있는 중요한 해답은 거부한 채, 순수 학문으로서만 철학에 접근하기 때문에, 대중들로부터 철학이 유리되는 일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철학은 어렵고, 따분하며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우리는 저명한 언어철학자인 [[놈 촘스키]]의 정치적인 발언들은 잘 알지만 그의 본 분야인 분석철학은 잘 알지 못하며 이는 열린 사회로만 유명한 [[칼 포퍼]]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학문적인 성과가 대단하긴 하겠지만 대중들에게는 설득력있거나 인상적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분석 철학]]의 의의 자체는 인정하며, 그것의 학문적인 성과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분석 철학의 방법론이나 의의들을 다른 사회적인 요소들, 심리적인 요소들로 "확장"시키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분석 철학의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인 논의들을 지속적으로 사회 문제와 연관시켜 그것을 대중화시키려는 노력 역시 필요하다.
 
==== 자유주의 비판 ====
애당초 "사회가 자유로워진다면 인간이 자유로워지며 이것은 인간의 행복으로 이어진다"라는 자유주의의 기본 전제중 맞는 부분이 단 하나도 없다.
 
* 자유주의는 "자유"를 절대적 진리로서 봉합한다.
** 자유라는 것은 상대적인 가치이며 마찬가지로 진리도 상대적인 가치이다. 고정 불변하며 보편적인 진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자유주의가 말하고 있는 <자유>라는 진리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제 우리는 몇세기 이전에 비해 몇배는 정치적으로 자유로워졌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자유를 바란다. 자유주의는 그렇다면 자유를 위한 싸움을 계속 해야한다는 것인가? 그 끝은 어디인가? 자유는 충족되지 않는,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인 진리가 아닌가?
 
* 자유주의는 "자유"를 물질적 조건으로서 이해한다.
** 인간의 자유라는 것은 복합적이고 어려운 문제이다. 자유는 크게 보았을 때 관념적인 자유(심리적인 해방)과 물질적인 자유(정치적 자유, 경제적 자유 등)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예컨대 밀, 롤스, 노직으로 대표되는 현대 자유주의 철학자 대다수가 전자에 비해 후자에 너무 무게추를 두고 있음으로서 실패하고 있다. 19세기에 대비해, 사회가 정치적, 경제적으로 자유로워진 21세기 현재를 생각해보자. 그렇다고 하여 인간이 느끼는 행복이 확연하게 늘어났냐면, 그것은 "알 수 없다". 도리아 20세기 이후 지속된 지나친 물질적인 자유는 [[마르틴 하이데거]]가 말한 고향상실(heimatlos)와 [[장 보드리야르]]가 말한 [[시뮬라시옹 시뮬라크르]]를 촉발시켜 인간을 어떠한 부분에서는 심리적으로 위축시켰다. 쉽게 말해, 물질적으로 자유로워진다 치더라도 인간의 생각, 사고, 심리 등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라면 그것이 올바른 사회라고 볼 수 있겠냐는 것이다.
 
* 자유주의는 인간의 "자유"의 물질적 개념과 관념적 개념을 혼동한다.
** 자유주의는 사회의 자유가 인간을 자유롭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자유의 이원적 분류에 따르면 사회 자유는 물질적 자유이고 인간 자유는 관념적 자유이다. 인간은 자유를 자신이 마음대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통해 안식과 편안함을 얻고, 궁극적으로 행복감을 얻게 된다. 그것은 정치적인 자유나 경제적인 자유만으로서는 이루어지기 힘든 것이다. 종교나 이데올로기와 같은 관념적인 자유가 반드시 필요한 것인데, 자유주의는 관념적인 자유가 물질적인 조건으로서 충족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점에서 논리적인 허점을 가진다. 한마디로 말해 관념적인 자유와 물질적인 자유를 스스로도 혼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 인간의 행복이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되어선 안된다.
**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거나 적게 받는 자유, 그리고 개인에게 무한대로 맡겨진 자유가 행복을 위해 정당화된다면, 이것은 위험한 존재로 돌변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극단적으로, 자유주의자들은 단지 재미(행복)만으로 차별을 할 자유를 외친다. 그것이 우리 사회와 공동체에 무슨 기여를 하고, 행복에 무슨 기여를 한단 말인가.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자유주의가 말하는 자유가 너무나도 근시안적이라는게 이것 때문이다. 더 나아가 행복만을 위한 사회는 디오니소스적 인간만을 만들 뿐이다. 향락에 취한 인간들이 과연 진정한 행복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철학적이고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인간을 만드는 것도 목표가 되어야하는데 안타깝게도 자유주의는 그것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아보인다.
 
==== (자유)민주주의 비판 ====
{{인용문|민주주의는 헌정의 한 형태도 아니며 사회의 한 형태도 아니다. 인민의 권력이란 사회 구성원 전체의 권력이 아니며 다수의 권력도, 노동계급의 권력도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통치 받을 자격만큼이나 통치할 자격을 가지지 못한 자들의 고유한 권력인 것이다.<br>민주주의는 자신만이 보유하는 고유하며 항구적인 행위에만 자신의 운명을 맡기고 있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모습은 철학의 힘을 사용하는 데에 익숙한 자들에게 충분한 공포감과 증오감을 자극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어느 누구와도 공평하게 권력을 나눠 가질 수 있는 사람들에겐 민주주의는 용기와 기쁨을 선사한다.<br>{{align|right|- [[자크 랑시에르]]}}}}
{{인용문|만약 우리가 정치의 정의를 "현재 지배질서에 의해 억압받는 새로운 가능성의 결과를 펼쳐내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일정한 원칙 아래 조직화된 집단적 행동"이라고 상정한다면, 선거의 동학이 본질적으로 비-정치적인 절차라고 결론지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선거 과정이 국가적 형식, 자본주의적 의회주의의 형식에 편입되었고, 기존의 질서 유지에 적합하며, 따라서 보수적인 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이다.<br>{{align|right|- [[알랭 바디우]]}}}}
 
=== 일상의 철학 ===
 
=== 영향을 받은 인물 ===
* [[석가모니]](शाक्यमुनि)
* [[플라톤]](Πλάτων)
*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
*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 [[막스 베버]](Max Weber)
*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
*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 [[알랭 바디우]](Alain Badiou)
*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
*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 [[에티엔 발리바르]](Étienne Balibar)
*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 [[헤르베르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
* [[칼 세이건]](Carl Sagan)

2025년 7월 13일 (일) 14:49 기준 최신판

포털

역대 총선거

1988년 제13대 총선거
정당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한겨레민주당 무소속
당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제정구
지역구 의석수 58석 133석 23석 1석 9석
전국구 의석수 26석 38석 11석 0석
의석 총합 84석 171석 34석 1석 9석
비율 28.1% 57.3% 11.3% 0.3% 3.0%
1992년 제14대 총선거
정당 민주당 신민주연합당 민주자유당 통일국민당 민중당 신정치개혁당 무소속
당수 김영삼 김대중 김윤환 정주영 이재오 박찬종
지역구 의석수 91석 96석 18석 14석 3석 1석 14석
전국구 의석수 25석 27석 5석 4석 1석 0석
의석 총합 116석 123석 23석 18석 4석 1석 14석
비율 38.7% 41.1% 7.7% 6.0% 1.3% 0.3% 4.7%
1996년 제15대 총선거
정당 국민회의 신한국당 자유민주연합 민중당 전국연합 무소속
당수 김대중 이회창 김종필 김문수 김근태
지역구 의석수 96석 112석 27석 2석 4석 12석
전국구 의석수 18석 21석 5석 1석 1석
의석 총합 114석 133석 32석 3석 5석 12석
비율 38.1% 44.5% 10.7% 1.0% 1.7% 4.0%
2000년 제16대 총선거
정당 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 자유민주연합 민주국민당 민주노동당 무소속
당수 이회창 김상현 김종필 조순 권영길
지역구 의석수 123석 79석 13석 1석 6석 5석
비례대표 의석수 21석 (42.6%) 16석 (32.3%) 4석 (8.6%) 1석 (3.2%) 4석 (8.4%)
의석 총합 144석 95석 17석 2석 10석 5석
비율 52.7% 34.8% 6.2% 0.7% 3.7% 1.8%
2004년 제17대 총선거
정당 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 자유민주연합 민주노동당 개혁국민정당 무소속
당수 최병렬 조순용 김종필 권영길 노무현
지역구 의석수 132석 96석 3석 8석 2석 2석
비례대표 의석수 23석 (38.6%) 14석 (21.4%) 0석 (2.9%) 7석 (13.3%) 12석 (19.8%)
의석 총합 155석 110석 3석 15석 14석 2석
비율 51.8% 36.7% 1.0% 5.0% 4.7% 0.7%
2004년 제17대 총선거
정당 한나라당 통합민주당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 국민중심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무소속
당수 강재섭 손학규 유시민 강기갑 심대평 심상정 문국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