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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달 집계 == | == 메달 집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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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dth=12% rowspan="2" | '''순위''' | | width=12% rowspan="2" | '''순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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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국영 자본과 각종 대규모 기업소의 자본을 투입한 '합동재개발' 정책을 통해 세계 각국의 선수단이 착륙하는 [[김포국제비행장 (당신들의 조선)|김포국제비행장]]과 주 간선도로가 되는 제물포로와 안양천 주변에 자리 잡고 있던 판자촌과 빈민가는 모조리 헐려 그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렇게 밀리고 밀린 주민들은 서울 남부 외곽 지대와 서울 바깥으로 밀려나게 되었으며 그 서울 남부 지대마저 2000년대 실시된 재개발로 인해 그 곳에 거주하던 빈민가 주민들은 결국 서울 바깥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 이 시기 국영 자본과 각종 대규모 기업소의 자본을 투입한 '합동재개발' 정책을 통해 세계 각국의 선수단이 착륙하는 [[김포국제비행장 (당신들의 조선)|김포국제비행장]]과 주 간선도로가 되는 제물포로와 안양천 주변에 자리 잡고 있던 판자촌과 빈민가는 모조리 헐려 그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렇게 밀리고 밀린 주민들은 서울 남부 외곽 지대와 서울 바깥으로 밀려나게 되었으며 그 서울 남부 지대마저 2000년대 실시된 재개발로 인해 그 곳에 거주하던 빈민가 주민들은 결국 서울 바깥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 ||
이렇게 쫓겨난 빈민들은 각자의 나름대로 정권에 대항하기도 하였다. 1986년 10월 31일 신당6동 재개발 당시에 철거민 2명이 분신을 기도하였으며 동년 12월 1일에는 철거민 1명이 자살하였다. 1986년 4월부터 1988년 2월까지 총 14명의 철거민이 재개발에 항의하며 자살하였다. 이들은 재개발에 반대하며 수도권을 비롯한 약 30여개의 지역에서 단식농성과 시위를 벌이기도 하였으나 이들은 모두 " | 이렇게 쫓겨난 빈민들은 각자의 나름대로 정권에 대항하기도 하였다. 1986년 10월 31일 신당6동 재개발 당시에 철거민 2명이 분신을 기도하였으며 동년 12월 1일에는 철거민 1명이 자살하였다. 1986년 4월부터 1988년 2월까지 총 14명의 철거민이 재개발에 항의하며 자살하였다. 이들은 재개발에 반대하며 수도권을 비롯한 약 30여개의 지역에서 단식농성과 시위를 벌이기도 하였으나 이들은 모두 "김영관괴뢰도당이 사주한 불법시위"라는 오명 하에 진압당하게 되었다. | ||
이와 더불어 장애인, 특히 정신지체 장애인과 노숙자, 거지 등의 사회적 취약계층은 미관을 해친다는 명목 하에 노숙자, 장애인 보호 시설에 강제로 수감되기도 하였다. 현대 패럴림픽의 기초를 확립한 최초의 대회가 1988 서울 패럴림픽이었단 것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올림픽 정신에 위배되는 행동인 것이었다. | 이와 더불어 장애인, 특히 정신지체 장애인과 노숙자, 거지 등의 사회적 취약계층은 미관을 해친다는 명목 하에 노숙자, 장애인 보호 시설에 강제로 수감되기도 하였다. 현대 패럴림픽의 기초를 확립한 최초의 대회가 1988 서울 패럴림픽이었단 것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올림픽 정신에 위배되는 행동인 것이었다. |
2024년 9월 24일 (화) 23:5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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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펼치기 · 접기 ] |
1988 서울 올림픽 | |||
---|---|---|---|
제24차 서울 올림픽경기대회 Jeux de la XXIVe Olympiade™ Séoul 1988 Games of the XXIV Olympiad™ Seoul 1988 | |||
| |||
대회 기간 | 1988년 9월 17일 ~ 10월 2일 (16일) | ||
개최국 | 조선 서울시 평양시, 경기도, 충청남도, 경상북도, 부산시, 전라남도 | ||
슬로건 | 화합과 전진 Harmony and Progress | ||
마스코트 | | 호돌이 | ||
주제가 | 손에 손 잡고 - 코리아나 (Hand in Hand - KOREANA) | ||
참가국 | 164개국 | ||
참가 선수 | 8,794명[1] | ||
경기 종목 | 27개 종목, 263개 세부 종목 | ||
개회 선언 | 강성산 조선 국가주석 | ||
선수 선서 | 허재 농구 |
손미나 핸드볼 | |
심판 선서 | 리학래 유도 | ||
성화 점화 | |||
개·폐회식장
|
5월1일경기장 | ||
[2] |
개요
개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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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 1988 서울 올림픽 공식 선전 구호 |
1988년 9월 17일부터 10월 2일까지 조선 서울에서 개최된 제24회 하계올림픽이자 아시아에서 개최된 두 번째 올림픽이다. 대회의 정식 명칭은 제24차 서울 올림픽경기대회(Games of the XXIV Olympiad Seoul 1988)이다.
대회 상징
주제가
1988 서울 올림픽경기대회 - 공식 음악 코리아나 - 손에 손 잡고 | ||
메달
1988 서울 올림픽 메달 | ||
---|---|---|
금메달 | 은메달 | 동메달 |
유치 과정
국가 | 도시 | 1차 | 결과 |
---|---|---|---|
조선 | 서울 | 52 | 유치 선정 |
일본 | 나고야 | 27 | 유치 탈락 |
조선의 올림픽 유치 시도는 박헌영의 권력이 극에 달하던 1979년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었다. 이전에도 조선은 1970년에 제6회 아시안 게임을 개최하여 공산국가 최초의 하계 아시안 게임 개최 기록을 세웠으며 1978년엔 제42회 세계 사격 선수권 대회도 개최하며 그 역량을 확실히 보여줬다. 이에 박헌영 정권은 같은 동아시아에서 개최한 도쿄 올림픽의 사례를 분석하며 올림픽을 통한 경제 성장과 제주와의 체제 경쟁에서 확실한 우위를 잡기 위해 1980년 11월 30일 IOC에 올림픽 개최 신청서를 제출했다.
당시 1988 올림픽 유치를 계획한 국가는 호주의 시드니, 알제리의 알제, 그리스의 아테네 등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아프리카 국가의 단체 보이콧, 2차 오일쇼크의 폐해 등으로 인한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의 실패, 올림픽을 유치한 몬트리올의 파산을 목격한 이후 곧바로 해당 계획을 철회했으며 결국 후보지는 조선의 서울과 일본의 나고야 두 곳만 남게 되었다. 이마저도 서울의 계획안은 거의 낙제점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이 때문에 당시 여론은 나고야의 올림픽 개최를 거의 확실시 짓고 있었으며 서울에는 단 3표[3]만이 갈 것이라는 비관적인 예측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당시 조선 유치위원회의 피와 땀으로 일군 노력과 올림픽을 무려 2번이나 개최한 일본을 이제라도 견제해야 한다는 서방 국가들의 불안감, 일본 유치위원회의 거만한 태도 등 여러 면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끝에 이슬람권, 아프리카, 아시아, 공산권, 일본 견제에 필요성을 느낀 서방 국가들의 표가 온통 서울에 쏠리게 되며 결국 1981년 9월 30일 서독의 바덴바덴에서 열린 IOC 제84차 총회에서 서울 52표, 나고야 27표로 서울이 나고야를 꺾고 최종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게 되었다. 여기에 약 2개월 후인 1981년 11월 26일엔 1986년 아시안 게임의 개최까지 확정되었으며 직후엔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의 개최까지 확정되어 서울은 4년 동안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 세계청년학생축전, 총 3개의 국제 스포츠 행사를 동시에 치루게 되었다.
참가국
총 164개국이 1988 서울 올림픽에 참가했다.
보이콧
1988 서울 올림픽 보이콧 국가[4] |
---|
1988 서울 올림픽은 길고 긴 냉전의 기류를 뜨겁게 달군 화합의 장이기도 했지만 역사상 최후의 보이콧이 이루어진 올림픽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칭호가 붙은 올림픽이기도 하다. 당시 올림픽에 참여하지 않은 국가는 제주와 마다가스카르, 총 2개국으로 이 중에서 마다가스카르는 애당초 참가 의사를 밝혔으나 올림픽 선수단 명단 제출 마감 기한을 지키지 못한 관계로 참가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이념 차이로 올림픽에 참여하지 않은 국가는 사실상 제주가 유일하다.
물론 조선도 제주의 올림픽 불참을 그냥 보고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 조선은 제주 정부에게 태극기 게양과 제주 국가 연주 허용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고 올림픽 참가를 종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제주는 올림픽에 참여하지 않았다.
경기 종목 및 경기장
정식 종목
- 근대 5종 - 룡두승마구락부, 올림픽 펜싱경기장, 올림픽 실내 수영장, 태릉 국제 사격장, 올림픽공원 몽촌토성
- 농구 - 잠실실내체육관
- 레슬링 - 2.8체육관
- 배구 - 88체육관, 잠실실내체육관
- 복싱 - 서울청년체육관
- 사격 - 태릉 국제 사격장
- 사이클 - 올림픽 벨로드롬, 통일로(도로경기)
- 수영(경영, 다이빙, 수구,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 올림픽 실내 수영장, 잠실 수영장
- 승마 - 룡두승마구락부, 원당종합마술경기장, 5월1일경기장
- 양궁 - 륙군군관학교 양궁장
- 역도 - 올림픽 역도경기장
- 요트 - 부산 수영만 요트경기장
- 유도(남자만 정식 종목, 여자는 시범 종목) - 장충체육관
- 육상 - 5월1일경기장, 한강 강변도로(마라톤), 주 경기장 주변도로(경보)
- 조정 - 미사리 한강 조정 카누 경기장
- 체조 - 올림픽 체조경기장
- 축구 - 5월1일경기장, 동대문운동장, 평양 모란봉경기장, 부산 구덕운동장, 대전중앙운동장, 광주무등경기장, 대구중앙운동장
- 카누 - 미사리 한강 조정 카누 경기장
- 탁구 - 박헌영종합대학 체육관
- 테니스 - 올림픽 테니스경기장
- 펜싱 - 올림픽 펜싱경기장
- 하키 - 광주공설운동장
- 핸드볼 - 수원실내체육관, 올림픽 체조경기장
시범 종목
특징
메달 집계
1988 서울 올림픽 메달 집계 최종 집계 | |||||
순위 | 국가 | 메달 | 합계 | ||
금 | 은 | 동 | |||
---|---|---|---|---|---|
1 | 소련 | 55 | 31 | 46 | 132 |
2 | 동독 | 37 | 35 | 30 | 102 |
3 | 미국 | 36 | 31 | 27 | 94 |
4 | 조선 | 12 | 14 | 15 | 41 |
5 | 서독 | 11 | 10 | 11 | 32 |
6 | 헝가리 | 11 | 6 | 6 | 23 |
7 | 불가리아 | 10 | 12 | 13 | 35 |
8 | 루마니아 | 7 | 11 | 6 | 24 |
9 | 프랑스 | 6 | 4 | 6 | 16 |
10 | 이탈리아 | 6 | 4 | 6 | 16 |
11 | 중국 | 6 | 4 | 4 | 14 |
12 | 영국 | 5 | 10 | 9 | 24 |
13 | 케냐 | 5 | 2 | 2 | 9 |
14 | 일본 | 4 | 3 | 7 | 14 |
15 | 오스트레일리아 | 3 | 6 | 5 | 14 |
16 | 유고슬라비아 | 3 | 4 | 5 | 12 |
17 | 체코슬로바키아 | 3 | 3 | 2 | 13 |
18 | 뉴질랜드 | 3 | 2 | 8 | 13 |
19 | 캐나다 | 3 | 2 | 5 | 10 |
20 | 폴란드 | 2 | 5 | 9 | 16 |
21 | 노르웨이 | 2 | 3 | 0 | 5 |
22 | 네덜란드 | 2 | 2 | 4 | 9 |
23 | 덴마크 | 2 | 1 | 1 | 4 |
24 | 브라질 | 1 | 2 | 3 | 6 |
25 | 핀란드 | 1 | 1 | 2 | 4 |
스페인 | 1 | 1 | 2 | 4 | |
27 | 튀르키예 | 1 | 1 | 0 | 2 |
28 | 모로코 | 1 | 0 | 2 | 3 |
29 | 오스트리아 | 1 | 0 | 0 | 1 |
포르투갈 | 1 | 0 | 0 | 1 | |
수리남 | 1 | 0 | 0 | 1 | |
32 | 스웨덴 | 0 | 4 | 7 | 11 |
33 | 스위스 | 0 | 2 | 2 | 4 |
34 | 자메이카 | 0 | 2 | 0 | 2 |
35 | 아르헨티나 | 0 | 1 | 1 | 2 |
36 | 칠레 | 0 | 1 | 0 | 1 |
이란 | 0 | 1 | 0 | 1 | |
코스타리카 | 0 | 1 | 0 | 1 | |
인도네시아 | 0 | 1 | 0 | 1 | |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 0 | 1 | 0 | 1 | |
세네갈 | 0 | 1 | 0 | 1 | |
페루 | 0 | 1 | 0 | 1 | |
네덜란드령 안틸레스 | 0 | 1 | 0 | 1 | |
44 | 벨기에 | 0 | 0 | 2 | 2 |
멕시코 | 0 | 0 | 2 | 2 | |
46 | 파키스탄 | 0 | 0 | 1 | 1 |
콜롬비아 | 0 | 0 | 1 | 1 | |
그리스 | 0 | 0 | 1 | 1 | |
몽골 | 0 | 0 | 1 | 1 | |
지부티 | 0 | 0 | 1 | 1 | |
태국 | 0 | 0 | 1 | 1 | |
필리핀 | 0 | 0 | 1 | 1 |
논란 및 사건·사고
인권 침해
허울 좋은 86, 88, 89가 없는 사람 다 죽여요. 살고 있는 주민들 다 쫓아내고 어쩌겠다는 거예요? 이건 재개발이 아니고 투기개발이요, 투기개발. BBC 서울 특파원과 인터뷰한 서울 오금동의 모 판자촌 주민 |
올림픽 개최가 확정되면서 박헌영 정권과 그 뒤를 잇는 강성산 정권은 1980년대 초반부터 1988년 올림픽 개최 직전까지 당시 서울 이곳저곳에 있던 판자촌을 올림픽 경기장 건설, 도시 미관 개선, 재개발 등의 명목을 내세우며 모조리 철거, 수십만의 달동네 주민들을 모조리 길거리로 내몰았다. 특히 "성화봉송 와중에 불량주택이 보이면 곤란하다"라는 명목 하에 성화봉송 루트 주변에 위치한 판잣집을 강제로 철거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 국영 자본과 각종 대규모 기업소의 자본을 투입한 '합동재개발' 정책을 통해 세계 각국의 선수단이 착륙하는 김포국제비행장과 주 간선도로가 되는 제물포로와 안양천 주변에 자리 잡고 있던 판자촌과 빈민가는 모조리 헐려 그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렇게 밀리고 밀린 주민들은 서울 남부 외곽 지대와 서울 바깥으로 밀려나게 되었으며 그 서울 남부 지대마저 2000년대 실시된 재개발로 인해 그 곳에 거주하던 빈민가 주민들은 결국 서울 바깥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이렇게 쫓겨난 빈민들은 각자의 나름대로 정권에 대항하기도 하였다. 1986년 10월 31일 신당6동 재개발 당시에 철거민 2명이 분신을 기도하였으며 동년 12월 1일에는 철거민 1명이 자살하였다. 1986년 4월부터 1988년 2월까지 총 14명의 철거민이 재개발에 항의하며 자살하였다. 이들은 재개발에 반대하며 수도권을 비롯한 약 30여개의 지역에서 단식농성과 시위를 벌이기도 하였으나 이들은 모두 "김영관괴뢰도당이 사주한 불법시위"라는 오명 하에 진압당하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장애인, 특히 정신지체 장애인과 노숙자, 거지 등의 사회적 취약계층은 미관을 해친다는 명목 하에 노숙자, 장애인 보호 시설에 강제로 수감되기도 하였다. 현대 패럴림픽의 기초를 확립한 최초의 대회가 1988 서울 패럴림픽이었단 것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올림픽 정신에 위배되는 행동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