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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자베스 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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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7일 (금) 11:19 판

역대 미국 대통령


미합중국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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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조지 워싱턴 존 애덤스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매디슨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제임스 먼로 존 퀸시 애덤스 앤드루 잭슨 마틴 밴 뷰런
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윌리엄 헨리 해리슨 존 타일러 제임스 K. 포크 재커리 테일러
제13대 제14대 제15대 제16대
밀러드 필모어 프랭클린 피어스 제임스 뷰캐넌 에이브러햄 링컨
제17대 제18대 제19대 제20대
앤드루 존슨 율리시스 S. 그랜트 러더퍼드 B. 헤이스 제임스 A. 가필드
제21대 제22대 제23대 제24대
체스터 A. 아서 그로버 클리블랜드 벤저민 해리슨 그로버 클리블랜드
제25대 제26대 제27대 제28대
윌리엄 매킨리 시어도어 루스벨트 윌리엄 H. 태프트 우드로 윌슨
제29대 제30대 제31대 제32대
워런 G. 하딩 캘빈 쿨리지 허버트 후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제33대 제34대 제35대 제36대
게리 쿠퍼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애들레이 E. 스티븐슨 린든 B. 존슨
제37대 제38대 제39대 제40대
넬슨 록펠러 지미 카터 존 코널리 월터 먼데일
제41대 제42대 제43대 제44대
제럴딘 페라로 밥 돌 존 에드워즈 테드 크루즈
제45대
엘리자베스 워런
미연합국 대통령 · 미합중국 부통령

게리 쿠퍼

미합중국 제33대 대통령
게리 쿠퍼
Gary Cooper
본명 프랭크 제임스 쿠퍼
Frank James Cooper
출생 1901년 5월 7일
미국 몬태나 주 헬레나
사망 1961년 5월 13일 (향년 60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묘소 프랭크 제임스 쿠퍼 국립사적지 묘지
재임기간 제33대 대통령
1941년 1월 20일 ~ 1949년 1월 20일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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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아버지 찰스 쿠퍼(1865. 9. 15 ~ 1946. 9. 18.)
어머니 앨리스 쿠퍼(1873. 10. 10. ~ 1967. 10. 6)
배우자 베로니카 쿠퍼(1913. 5. 27. ~ 2000. 2. 16, 1933년 결혼)
자녀 딸 마리아 쿠퍼(1937년 9월 15일 ~ )
학력 프린스턴 대학교 (정치철학, 사학 / 학사)
종교 성공회가톨릭
신체 191cm
소속 정당 공화당
의원 선수 1 (상원)
의원 대수 75

개요

미국의 제33대 대통령.

역대 최연소의 나이에 당선되고,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취임한 미국 대통령이자, 최초의 20세기 출생 대통령이기도 하다.

3명의 프린스턴 대학교 출신 미국 대통령 중 한 명이자, 에이브러햄 링컨 등과 함께 미국 공화당을 대표하는 존재이자 강하게 지지 받는 정치인으로, 미국 보수층과 공화당 지지자들의 정신적 지주에 그접한 대통령이다.

약력

  • 1924. 주이탈리아 미국대사관 3등 서기관
  • 1926. 주프랑스 미국대사관 2등 서기관
  • 1928. 주영국 미국대사관 1등 서기관
  • 1936. 제75대 미국 연방 상원의원 당선 (몬태나주, 공화당)
  • 1940.1. 제33대 미국 대통령

생애

미국 몬태나주 헬레나에서 1901년 5월 7일에 태어났다. 본명은 프랭크 제임스 쿠퍼.

부모님은 잉글랜드 이민자 출신으로 헬레나 외곽에 600에이커, 즉 70만 평이 넘는 대농장을 소유하고 있어서 자연스레 어려서부터 형 아서와 어울리며 승마와 카우보이 기술을 터득할 수 있었다. 아버지 찰스 쿠퍼는 몬태나주 대법원 판사로 복무한 법조인이었다.

자식들이 자신들의 뿌리인 영국 문화를 익히길 원했던 어머니 앨리스 쿠퍼의 주도로 초등학생 시절 형과 함께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는데, 이때 학교에서 프랑스어를 익혔다. 같은 시기에 라틴어도 수학했다. 1912년 귀국해 헬레나로 복학했으며, 이후 몬태나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 1919년 뉴저지주 프린스턴 대학교에 입학했다. 전공은 우드로 윌슨과 함께 [정치철학]], 사학으로, 재학 중 국제법·외교사·정치철학 분야에서 우수한 성취를 보였으며, 교내 토론 클럽과 웅변 대회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1923년 우등 졸업한다.

외교관

대학교 졸업 직후 미국 국무부에 합류해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초임지는 이탈리아 로마였으며, 이후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을 순차적으로 거쳤다. 외교관으로 생활하며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했으며, 라틴어 역시 문서 독해 수준으로 활용했다. 발음은 프랑스 현지인들도 만족하는 수준이었다고 전해진다.

로마 근무 시절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이 공고화되는 과정을 현장에서 목격했으며, 파리 근무 시절에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불안정과 프랑스의 대독 유화 기조를 관찰했다. 런던 근무 시절에는 영국 외무부 관계자들과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 당시, 쿠퍼는 국무부 내에서 유럽 정세 분석 보고서로 상관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1930년대 들어서는 에티오피아 위기, 라인란트 재무장, 스페인 내전 등 유럽의 연쇄적 위기 상황에 관한 분석으로 워싱턴 정가에도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1937년 이후 일본중국 침략이 가시화되면서 국무부 내 태평양 담당 라인과도 긴밀히 협력했다. 이 무렵 쿠퍼는 국무부 내에서 유럽과 태평양 양쪽 정세를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외교관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정계 입문

한편 1934년 몬태나로 일시 귀환해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으며, 1936년 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이는 엄청난 이변이었는데, 당시 루스벨트의 뉴딜 지지층이 두터웠던 몬태나에서 공화당 후보가 승리한 것은 충격적인 결과라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외교관 경력이 본업이었던 만큼 상원의원으로서의 활동은 주로 외교위원회에 집중되었으며, 세입위원회에서도 재정 보수주의 노선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유럽 정세에 관해 당내 고립주의 강경파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는 독자적 노선을 취했으며, "미국의 지속적 무관심은 결국 더 큰 개입을 불러올 것"이라는 논지를 반복적으로 제기했다.

이후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1940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경선 초반 유력 후보로 분류되지 않았으나, 전당대회 막판 교착 상태에서 서부와 중서부 주 대의원들이 대거 쿠퍼 지지로 선회하면서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과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가 타협 후보로서의 매력으로 작용한 것이다.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

본선 상대는 헨리 A. 월리스였다. 쿠퍼 캠프는 뉴딜로 인한 연방 재정 팽창 비판, 연방 권한의 주 환원, 외교관 출신의 대외 협상 경험, 즉각적 참전 반대 및 단계적 관여를 통한 전쟁 억지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
2000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
퀘일 52인 (9.7%)
(90.3%) 486인 케네디
1996년 11월 5일
1996년 대선
2000년 11월 7일
2000년 대선
2004년 11월 2일
2004년 대선
선거일시 2000년 11월 7일
투표율 54.2% ▲ 2.5%p
선거 결과
후보 공화당
민주당
홈스테이트 퀘일 인디애나
스톡데일 캘리포니아
케네디 뉴욕
브로 루이지애나
승리 주 9 41 + D.C.
선거인단
52인 486인
전국 득표
42,023,594
39.7%
61,540,407
58.4%
당선자
민주당
존 F. 케네디 주니어

개요

미국의 제41대[1] 혹은 42대 대통령[2]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로 현지 시간으로 2000년 11월 7일 열렸으며 20세기에 치러진 마지막 미국 대통령 선거이다.

존 F. 케네디의 아들이자, 뉴욕주 상원의원이였던 민주당 후보 존 F. 케네디 주니어가 현직 대통령인 댄 퀘일을 상대로 압승을 거둬 민주당이 4년만에 다시 정권을 찾아왔다.

배경

199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댄 퀘일 대통령은 취임 후 뚜렷한 국정 동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잦은 실언과 말실수가 임기 내내 반복되며 언론의 조롱 섞인 보도가 끊이지 않았고, 정책 성과와 무관하게 대통령 개인의 신뢰도를 지속적으로 갉아먹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경제 여건 자체도 그다지 좋은 상황도 아니었기에 정부의 국정 운영 능력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굳어지면서 임기 후반 국정 지지율은 30%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부통령인 제임스 스톡데일 역시 뚜렷한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며 행정부 전반의 이인자 리스크가 꾸준히 제기되었다.

경선

공화당

Worth Fighting For
싸울 가치가 있는 미국

2000 퀘일-스톡데일 티켓 슬로건

공화당 경선은 민주당과 달리 시작 전부터 사실상 승부가 정해져 있었다. 현직 대통령인 댄 퀘일이 낮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당내 뚜렷한 대항마가 없는 상태에서 사실상 단독 후보로 경선에 임했다.

일부 당내 인사들 사이에서 퀘일의 재지명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존재했으나, 현지 대통령에 맞서 당내 경선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으로 큰 부담을 수반하는 선택이었기에, 결국 이렇다 할 도전자 없이 퀘일이 압도적인 대의원 수를 확보하며 재지명되었다.

퀘일은 1996년 대선에 이어 제임스 스톡데일 부통령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다만 그가 매우 고령이라는 점이 지속해서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한 전쟁 영웅이자 명예훈장 수훈자로서 상당한 존경을 받는 인물이지만, 정치에서의 대중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대해서는 재임 4년 내내 물음표가 따라다녔다. 당 일각에서는 새로운 얼굴로의 교체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퀘일은 그냥 무시하고 지명을 선택했다.

민주당

Tomorrow Begins Today
미래는 오늘 시작된다

2000 케네디-브로 티켓 슬로건

퀘일 행정부의 낮은 지지율로 민주당은 이번 대선을 충분히 승리할 수 있는 선거라고 보았다. 민주당 내에서는 일찍부터 후보군에 대한 하마평이 무성했는데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부상한 인물이 존 F. 케네디 주니어였다.

케네디는 1994년 뉴욕주 상원의원 당선 직후 부친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으로부터 물려받은 압도적인 이름값과 대중적 인지도, 그리고 젊고 호감형인 이미지로 인해 당선 직후부터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어 왔다.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며 전국 순회 강연, 지역 당 조직과의 교류 등을 통해 민주당 내에서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였다.

케네디에 맞선 주요 경쟁자로는 뉴저지주 상원의원 빌 브래들리, 코네티컷주 상원의원 조 리버만, 그리고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이자, 1996년 미국 대통령 선거 후보인 마이클 듀카키스가 있었다.

케네디는 아이오와 코커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를 포함한 초반 경선 일정에서 압도적인 득표율로 승리하며 사실상 경선을 조기에 종결시켰다. 슈퍼 화요일 이후 브래들리와 리버만은 잇따라 경선 중단을 선언했으며, 듀카키스 역시 뒤이어 완주를 포기했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케네디는 사실상 만장일치에 가까운 지지로 대통령 후보 지명을 수락했다.

케니디는 부통령 후보로 루이지애나주 연방 상원의원인 존 브로를 지명했다. 뉴욕 상원의원이자 북동부, 도심 지역 기반의 진보적 이미지가 강한 케네디와 달리, 브로는 딥사우스 출신의 중도실용주의 협상가로서 오랜 상원 경력을 통해 초당적 조정 능력을 인정받아온 인물이다. 이 지명은 케네디의 상대적 약점으로 지적되던 남부 지역 기반과 국정 경험 부족을 동시에 보완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되었다.

민주당 대선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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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역대 대통령 선거 결과
연도 후보자 득표수 득표율 선거인단 결과
대통령 부통령
1828년 앤드루 잭슨 존 C. 칼훈 638,348 55.5% 178/261 당선
1832년 마틴 밴 뷰런 701,780 54.2% 219/286 당선
1836년 마틴 밴 뷰런 리처드 멘터 존슨 764,176 50.8% 170/294 당선
1840년 마틴 밴 뷰런 - 1,128,854 46.8% 60/294 낙선
1844년 제임스 K. 포크 조지 M. 댈러스 1,339,494 49.5% 170/275 당선
1848년 루이스 카스 윌리엄 O. 버틀러 1,223,460 42.5% 127/290 낙선
1852년 프랭클린 피어스 윌리엄 R. 킹 1,607,521 50.8% 254/296 당선
1856년 제임스 뷰캐넌 존 C. 브레킨리지 1,836,072 45.3% 174/296 당선
1860년 스티븐 A. 더글러스 허셜 V. 존슨 1,380,202 29.5% 12/303 낙선
1864년 조지 B. 매클레런 조지 H. 펜들턴 1,812,807 45.0% 21/233 낙선
1868년 호레이쇼 시모어 프렌시스 P. 블레어 2,706,829 47.3% 80/294 낙선
1876년 새뮤얼 J. 틸던 토머스 A. 헨드릭스 4,286,808 50.9% 184/369 낙선
1880년 윈필드 스콧 핸콕 윌리엄 잉글리쉬 4,444,260 48.2% 155/369 낙선
1884년 그로버 클리블랜드 토머스 A. 헨드릭스 4,914,482 48.8% 219/401 당선
1888년 그로버 클리블랜드 앨런 G. 셔먼 5,534,488 48.6% 168/401 낙선
1892년 그로버 클리블랜드 애들레이 E. 스티븐슨 1세 5,556,918 46.0% 277/422 당선
1896년 윌리엄 J. 브라이언 아서 슈월 6,510,807 46.7% 176/447 낙선
1900년 애들레이 E. 스티븐슨 1세 6,370,932 45.5% 155/447 낙선
1904년 앨턴 B. 파커 헨리 G. 데이비스 5,083,880 37.6% 140/476 낙선
1908년 윌리엄 J. 브라이언 존 W. 컨 6,408,984 43.1% 162/483 낙선
1912년 우드로 윌슨 토머스 R. 마셜 6,296,284 41.8% 435/531 당선
1916년 9,126,868 49.2% 277/531 당선
1920년 제임스 M. 콕스 프랭클린 D. 루스벨트 9,139,661 34.1% 127/531 낙선
1924년 존 W. 데이비스 찰스 W. 브라이언 8,386,242 28.8% 136/531 낙선
1928년 앨 스미스 조지프 T. 로빈슨 15,015,464 40.8% 87/531 낙선
1932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존 낸스 가너 22,821,277 57.4% 472/531 당선
1936년 27,752,648 60.8% 523/531 당선
1940년 헨리 A. 월리스 27,313,945 54.7% 449/531 당선
1944년 해리 S. 트루먼 25,612,916 53.4% 432/531 당선
1948년 해리 S. 트루먼 앨번 W. 바클리 24,179,347 49.6% 303/531 당선
1952년 애들레이 E. 스티븐슨 존 스파크먼 27,375,090 44.3% 89/531 낙선
1956년 에스테스 키포버 26,028,028 42.0% 73/531 낙선
1960년 존 F. 케네디 린든 B. 존슨 34,220,984 49.7% 303/537 당선
1964년 린든 B. 존슨 휴버트 험프리 43,129,040 61.1% 486/537 당선
1968년 휴버트 험프리 에드먼드 머스키 29,807,839 40.7% 84/537 낙선
1972년 조지 맥거번 에이브러햄 리비코프 34,615,304 44.5% 118/537 낙선
1976년 헨리 M. 잭슨 월터 먼데일 40,831,881 50.1% 297/537 당선
1980년 43,266,986 50.0% 386/538 당선
1984년 월터 먼데일 제럴딘 페라로 44,063,078 47.6% 171/538 낙선
1988년 로이드 벤슨 마이클 두카키스 46,389,210 50.6% 279/538 당선
1992년 50,131,085 48.0% 517/538 당선
1996년 마이클 두카키스 앨 고어 41,625,723 43.2% 234/538 낙선
2000년 존 F. 케네디 주니어 존 브로 61,540,407 58.4% 486/538 당선
2004년 존 브로 콜린 파월 64,722,946 52.9% 364/538 당선
2008년 존 에드워즈 에반 베이 60,817,703 49.7% 264/538 낙선
2012년 조 바이든 하워드 딘 62,224,358 48.2% 246/538 낙선
2016년 버니 샌더스 셰러드 브라운 63,120,128 46.2% 307/538 당선
2020년 78,891,737 49.8% 312/538 당선
2024년 피트 부티지지 그레천 휘트머 72,728,844 46.9% 226/538 낙선
  1. 댄 퀘일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2. 존 F. 케네디 주니어가 당선될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