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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 외교와 군사력 강화==== | ====균형 외교와 군사력 강화==== | ||
왕디는 여느 자유당 수상처럼 친중과 반중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펼치려고 시도'''했'''다. 그는 임기 초 냉랭해진 [[서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ref>심지어는 양국 관계가 악화된 것은 티베트의 책임이 아니었다.</ref> 무역협정을 맺기 위해 재무상과 외무상을 충칭으로 보냈으나 그들이 마주한 것은 [[서중국]] 측의 고압적인 태도였다. 이후에도 왕디는 서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몇 차례 시도하였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게다가 티베트 국내에서 서중국에 대한 여론까지 | 왕디는 여느 자유당 수상처럼 친중과 반중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펼치려고 시도'''했'''다. 그는 임기 초 냉랭해진 [[서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ref>심지어는 양국 관계가 악화된 것은 티베트의 책임이 아니었다.</ref> 무역협정을 맺기 위해 재무상과 외무상을 충칭으로 보냈으나 그들이 마주한 것은 [[서중국]] 측의 고압적인 태도였다. 이후에도 왕디는 서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몇 차례 시도하였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게다가 티베트 국내에서 서중국에 대한 여론까지 악화되자 결국 그는 그의 외교정책을 상당 부분 수정해야만 했다. | ||
이후 왕디는 군사력 증강 계획을 야심차게 발표했다. 계획명은 '디펜스 2040'이었다. 구체적으로 산악보병의 정예화와 무인항공 및 방공전력 확충, 비상시 신속한 병력 동원 등을 골자로 | 이후 왕디는 군사력 증강 계획을 야심차게 발표했다. 계획명은 '디펜스 2040'이었다. 디펜스 2040은 구체적으로 산악보병의 정예화와 무인항공 및 방공전력 확충, 비상시 신속한 병력 동원 시스템 구축 등을 골자로 했으며, 기한은 2040년까지였다. 그는 이 계획을 "티베트 국민의 안전을 지켜줄 보루"라고 표현했다. | ||
====우정 민영화와 조기 총선==== | ====우정 민영화와 조기 총선==== | ||
2022년 11월 4일 (금) 11:5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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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관의 모든 인물, 사건, 단체, 국가는 가상이며 현실의 어떠한 인물이나 단체도 찬양하거나 비하할 의도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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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티베트 수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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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베트국 제22·23대 수상 타시 왕디 Tashi Wangdi | བཀྲ་ཤིས་དབང་འདུས་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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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1947년 4월 15일 | ||||||||||||
| 티베트 시가체 | |||||||||||||
| 국적 | |||||||||||||
| 현직 | 티베트국 수상 티베트 자유당 총재 | ||||||||||||
| 임기 | 티베트국 22대 수상 | ||||||||||||
| 2020년 9월 19일 ~ 2022년 10월 31일 | |||||||||||||
| 티베트국 23대 수상 | |||||||||||||
| 2022년 11월 1일 ~ 현재 | |||||||||||||
| 링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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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티베트의 제23, 24대 수상. 티베트 자유당이 배출한 네 번째 총리다.
생애
정계 입문 전
1947년, 독립국가였던 티베트 시가체에서 태어났다. 그가 세 살이던 1950년, 공산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하여 티베트와 자치권 협정을 맺어 병합하였다. 이후 1959년, 공산중국이 1950년에 약속한 자치권을 침해하자 티베트인들이 봉기했는데, 이 봉기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타시 왕디는 부모님을 따라인도의 티베트 망명정부로 망명했다. 왕디는 1966년부터 티베트 망명정부의 문화성 공무원으로 일했으며 1971년 티베트가 재독립하자 티베트 본국으로 돌아왔다. 1973년에는 영국 덜햄 대학교에서 정치사회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5년, 티베트 자유당의 입당 제의를 받고 문화성에 사표를 쓰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정치인 시절
왕디는 티베트 자유당의 전국구 공천을 받아 1986년 1회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고항인 시가체에 출마하여 당선, 재선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동시에 자유당 최고위원과 자유당 대변인도 역임했다. 4선 의원 시절에는 당 원내부대표를 맡기도 하였다.
이후 롭상 텐진 내각에서 교육상으로 처음 입각했으며 롭상 텐진의 뒤를 이은 텐진 테통 내각에 걸쳐 문화상과 부수상을 역임했다. 9회 총선에서 자유당이 패배하자 자유당 비상대책위원장에 추대되었으며 이후 원내대표로 선출되었다. 2018년, 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되었고 2020년 총선에서 자유당이 승리하면서 수상에 취임했다.
티베트 수상
코로나 사태 대처
이전 국민민주당의 롭상 상가이 내각이 코로나에 봉쇄로 대응하다 경제를 말아먹었기에 왕디 내각은 봉쇄조치를 해제하는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시키고 엄격히 단속했다. 또 아태연합 측의 도움으로 백신을 확보해 접종을 시작했다. 이후 티베트에서의 코로나 사태는 어느 정도 진정되었고 내수 시장의 상황도 상당히 개선되었으나 무역 감소로 인해 경제는 여전히 안 좋았다.
균형 외교와 군사력 강화
왕디는 여느 자유당 수상처럼 친중과 반중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펼치려고 시도했다. 그는 임기 초 냉랭해진 서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1] 무역협정을 맺기 위해 재무상과 외무상을 충칭으로 보냈으나 그들이 마주한 것은 서중국 측의 고압적인 태도였다. 이후에도 왕디는 서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몇 차례 시도하였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게다가 티베트 국내에서 서중국에 대한 여론까지 악화되자 결국 그는 그의 외교정책을 상당 부분 수정해야만 했다.
이후 왕디는 군사력 증강 계획을 야심차게 발표했다. 계획명은 '디펜스 2040'이었다. 디펜스 2040은 구체적으로 산악보병의 정예화와 무인항공 및 방공전력 확충, 비상시 신속한 병력 동원 시스템 구축 등을 골자로 했으며, 기한은 2040년까지였다. 그는 이 계획을 "티베트 국민의 안전을 지켜줄 보루"라고 표현했다.
우정 민영화와 조기 총선
사상 및 견해
비판 및 논란
거친 언행
여담
소속 정당
| 소속 | 기간 | 비고 |
|---|---|---|
| 1985 - 현재 | 정계 입문, 입당 |
각주
- ↑ 심지어는 양국 관계가 악화된 것은 티베트의 책임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