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unist 1968 (토론 | 기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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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인도교, 한강철교가 폭파되면서 주요 병력이 한강 북쪽으로 이동할 수 없었고 한강 남역에서 항전하던 병사 10만명 중 2만명은 전사하고 6만명은 포로로 붙잡혀 2만명만이 목숨만 건져 한강 이북으로 도피하는 심각한 인력 손실을 겪었다. 망명정부의 총사령관을 맡은 [[지청천 (리좀)|지청천]] 장군은 아쉬운대로 북녘에 남은 7만의 병력과 도피한 2만의 병력을 합쳐 만주에서 9만 3천여명 규모의 [[대한 광복군 (리좀)|대한 광복군]]을 설립, 중화민국군과 동맹을 맺어 해방을 도모하게 된다. 한편 7월 10일 한반도 전역을 점령한 일본은 [[천안 (리좀)|천안]]을 수도로 삼아 자국의 괴뢰 국가인 대한국, 이른바 [[천안 괴뢰정부 (리좀)|천안 괴뢰정부]]를 설립하였다. 망명정부는 이에 반발하며 자신들이 제1공화국의 법통을 이어받은 "자유 대한"임을 주장했는데 이에 착안하여 중국에서 활동한 망명정부를 오늘날까지 "자유 대한"이라고 부른다. | 한강인도교, 한강철교가 폭파되면서 주요 병력이 한강 북쪽으로 이동할 수 없었고 한강 남역에서 항전하던 병사 10만명 중 2만명은 전사하고 6만명은 포로로 붙잡혀 2만명만이 목숨만 건져 한강 이북으로 도피하는 심각한 인력 손실을 겪었다. 망명정부의 총사령관을 맡은 [[지청천 (리좀)|지청천]] 장군은 아쉬운대로 북녘에 남은 7만의 병력과 도피한 2만의 병력을 합쳐 만주에서 9만 3천여명 규모의 [[대한 광복군 (리좀)|대한 광복군]]을 설립, 중화민국군과 동맹을 맺어 해방을 도모하게 된다. 한편 7월 10일 한반도 전역을 점령한 일본은 [[천안 (리좀)|천안]]을 수도로 삼아 자국의 괴뢰 국가인 대한국, 이른바 [[천안 괴뢰정부 (리좀)|천안 괴뢰정부]]를 설립하였다. 망명정부는 이에 반발하며 자신들이 제1공화국의 법통을 이어받은 "자유 대한"임을 주장했는데 이에 착안하여 중국에서 활동한 망명정부를 오늘날까지 "자유 대한"이라고 부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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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2일 (목) 11:54 판
| 공산1968 | 리조니 | Arrondissments | 레스 어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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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공화국 大韓共和國 | Republic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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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명 정부 | |||
| 국가 | 애국가 독립군가 | ||
| 수도 | 경성 (京城) (헌법상) | ||
| 수뇌부 위치 | 합이빈 (1940~1941) 남경 (1941~1944) 상해 (1944~1945) | ||
| 정치 체제 | 공화제, 중앙집권제, 대통령 중심제, 망명정부 | ||
| 역대 대통령 | 김창암 (1940~1945) | ||
| 역대 수상 | 조소앙 (1940~1945) | ||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결사 항전을 주장하던 김창암, 조만식, 조소앙, 여운형 등의 정치인들과, 김원봉, 지청천, 이범석, 최용덕, 김홍일 등의 군부 인사들이 중국으로 망명하여 세운 망명정부이다.
일본과 협력한 천안의 대한국 정부, 박헌영과 김일성이 주축이 된 대한 소비에트 정부와는 대립하였으며, 중화민국, 미국과 같은 연합군과 협력하였다. 통념과 달리 김원봉 등과 같은 소수를 제외하면 항일 빨치산과는 거의 관계가 없으며 빨치산은 망명정부와는 거리가 있는 독립된 조직이었다.[1]
전후 대한공화국에서 이들이 주축이 되어 제2공화국, 3공화국이 건국되었고 지금의 대한공화국 정부도 여기서 이어진다.
역사
1940년, 독일과 동맹을 맺은 일본이 중립국 대한공화국을 침공함에 따라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였다. 대한공화국은 내부의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일본의 침공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고, 총사령관 신성모가 겁에 질려 금강 유역에 중요한 무기들을 전부 버리고 도망치며 상황이 악화되었다. 급기야 1940년 6월 22일 총리였던 이승만도 국민들에게 안심하라는 연설을 한 후 한강철교와 대교를 폭파시키고 자기 혼자 신의주로 도망치며 대한 공화국은 개전 불과 6주만에 사실상의 멸망을 고한다. 격노한 김창암 대통령은 당일 이승만을 총리직에서 해임하고 조소앙을 총리로 임명, 비상 대권을 선포하고 만주로 망명하여 결사항전을 할 것을 정부 요인들에게 주문했다.
한강인도교, 한강철교가 폭파되면서 주요 병력이 한강 북쪽으로 이동할 수 없었고 한강 남역에서 항전하던 병사 10만명 중 2만명은 전사하고 6만명은 포로로 붙잡혀 2만명만이 목숨만 건져 한강 이북으로 도피하는 심각한 인력 손실을 겪었다. 망명정부의 총사령관을 맡은 지청천 장군은 아쉬운대로 북녘에 남은 7만의 병력과 도피한 2만의 병력을 합쳐 만주에서 9만 3천여명 규모의 대한 광복군을 설립, 중화민국군과 동맹을 맺어 해방을 도모하게 된다. 한편 7월 10일 한반도 전역을 점령한 일본은 천안을 수도로 삼아 자국의 괴뢰 국가인 대한국, 이른바 천안 괴뢰정부를 설립하였다. 망명정부는 이에 반발하며 자신들이 제1공화국의 법통을 이어받은 "자유 대한"임을 주장했는데 이에 착안하여 중국에서 활동한 망명정부를 오늘날까지 "자유 대한"이라고 부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