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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은 당대 철학의 경향성을 보았을 때 상당히 특이한 조류에 속하였다. 하이데거와 같은 독일의 실존주의자들은 프랑스 실존주의가 자신들의 철학과 별 상관이 없다고 여겼고 프랑스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들<ref>루이 알튀세르, 앙리 르페브르 등</ref>과 공산당 지도부는 실존주의 철학을 "관념론"으로 치부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프랑스의 좌파 실존주의는 프랑스 대학생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얻으며 대중적인 공산주의 운동에서 큰 지분을 차지하게 된다. |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은 당대 철학의 경향성을 보았을 때 상당히 특이한 조류에 속하였다. 하이데거와 같은 독일의 실존주의자들은 프랑스 실존주의가 자신들의 철학과 별 상관이 없다고 여겼고 프랑스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들<ref>루이 알튀세르, 앙리 르페브르 등</ref>과 공산당 지도부는 실존주의 철학을 "관념론"으로 치부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프랑스의 좌파 실존주의는 프랑스 대학생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얻으며 대중적인 공산주의 운동에서 큰 지분을 차지하게 된다. | ||
계보적으로 보자면 프랑스 실존주의와 독일 실존주의가 인식했던 당대 위기 상황은 전반적으로 비슷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하이데거의 철학에서 중요한 부분인 고향상실(heimatlos)은 자본주의 산업화에 대한 실존주의 철학의 문제 의식을 대표한다. '''그러나''' 후기 하이데거 철학에서 고향상실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은 | 계보적으로 보자면 프랑스 실존주의와 독일 실존주의가 인식했던 당대 위기 상황은 전반적으로 비슷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하이데거의 철학에서 중요한 부분인 고향상실(heimatlos)은 자본주의 산업화에 대한 실존주의 철학의 문제 의식을 대표한다. '''그러나''' 후기 하이데거 철학에서 고향상실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은 자연으로의 복귀, 생명경외이기 때문에 산업화와 경제결정론을 주장하는 마르크스주의와 엄청난 차이점이 존재한다. 카를 바르트(실존주의적 신학)나 카를 야스퍼스(기독교 실존주의)와의 차이는 더욱 크다. 그런데 사르트르나 카뮈는 그런 것을 모르고 전기 하이데거의 철학만을 받아들였다고 하이데거가 생전에 직접 평가를 한 바 있다. | ||
사실 이 점은 프랑스의 "과학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실존주의를 비판한 지점이기도 하다. [[루이 알튀세르|알튀세르]]의 비판에 의하면 프랑스 실존주의자들이 마르크스주의에서 지목한 지점은 인간소외 ''하나''에 불과하며, 엄밀한 과학적 방법론을 추구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관념론에 치우쳤다. 이런 비판의식 속에서 1960년대에 프랑스 좌파 철학계에서 실존주의를 타파하려는 운동이 있었고 푸코, 알튀세르, 레비-스트로스로 대표되는 [[구조주의]]가 실존주의를 밀어내고 마르크스주의 주류를 차지하게 된다. | |||
== 주요 학자, 저술가 == | |||
* [[모리스 메를로퐁티]] - 마르크스주의적 현상학 | |||
* [[장폴 사르트르]] | |||
* [[ | |||
* [[알베르 카뮈]] | |||
* <del>[[조르주 바타유]]</del> - 프랑스 국적의 실존주의자였으나 사회주의자가 아니었다. | |||
== 같이 보기 == | == 같이 보기 == | ||
* [[실존주의]] | * [[실존주의]] |
2023년 6월 4일 (일) 15:2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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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1950년대 프랑스에서 전개된 좌파적 실존주의 경향성을 일컫는다. 야스퍼스, 하이데거로 대표되는 20세기 독일 실존주의는 마르크스주의와 별 연관이 없었지만, 강단좌파의 전통이 강했던 프랑스에서는 장폴 사르트르, 모리스 메를로퐁티 등이 자본주의 인간소외의 대안으로 실존주의를 선택하며 좌파적인 실존주의가 전개되었다.
상세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은 당대 철학의 경향성을 보았을 때 상당히 특이한 조류에 속하였다. 하이데거와 같은 독일의 실존주의자들은 프랑스 실존주의가 자신들의 철학과 별 상관이 없다고 여겼고 프랑스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들[1]과 공산당 지도부는 실존주의 철학을 "관념론"으로 치부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프랑스의 좌파 실존주의는 프랑스 대학생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얻으며 대중적인 공산주의 운동에서 큰 지분을 차지하게 된다.
계보적으로 보자면 프랑스 실존주의와 독일 실존주의가 인식했던 당대 위기 상황은 전반적으로 비슷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하이데거의 철학에서 중요한 부분인 고향상실(heimatlos)은 자본주의 산업화에 대한 실존주의 철학의 문제 의식을 대표한다. 그러나 후기 하이데거 철학에서 고향상실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은 자연으로의 복귀, 생명경외이기 때문에 산업화와 경제결정론을 주장하는 마르크스주의와 엄청난 차이점이 존재한다. 카를 바르트(실존주의적 신학)나 카를 야스퍼스(기독교 실존주의)와의 차이는 더욱 크다. 그런데 사르트르나 카뮈는 그런 것을 모르고 전기 하이데거의 철학만을 받아들였다고 하이데거가 생전에 직접 평가를 한 바 있다.
사실 이 점은 프랑스의 "과학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실존주의를 비판한 지점이기도 하다. 알튀세르의 비판에 의하면 프랑스 실존주의자들이 마르크스주의에서 지목한 지점은 인간소외 하나에 불과하며, 엄밀한 과학적 방법론을 추구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관념론에 치우쳤다. 이런 비판의식 속에서 1960년대에 프랑스 좌파 철학계에서 실존주의를 타파하려는 운동이 있었고 푸코, 알튀세르, 레비-스트로스로 대표되는 구조주의가 실존주의를 밀어내고 마르크스주의 주류를 차지하게 된다.
주요 학자, 저술가
같이 보기
- ↑ 루이 알튀세르, 앙리 르페브르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