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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민국 38)#제3공화국과 현대|헌법 개정]] [[1994년]] [[7월 28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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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30일 (금) 22:5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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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 中華民國 | Republic of Chin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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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 국장 | |||||||||||||||||||||||||||||||||||||||
三民主義 五權分立 삼민주의 오권분립 | ||||||||||||||||||||||||||||||||||||||||
상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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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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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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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LD | ||||||||||||||||||||||||||||||||||||||||
.cn, .中國, .中華 | ||||||||||||||||||||||||||||||||||||||||
국가 코드 | ||||||||||||||||||||||||||||||||||||||||
158, CHN, ROC | ||||||||||||||||||||||||||||||||||||||||
국제전화코드 | ||||||||||||||||||||||||||||||||||||||||
+86 | ||||||||||||||||||||||||||||||||||||||||
차량 통행 방향 | ||||||||||||||||||||||||||||||||||||||||
오른쪽[4], 왼쪽[5] | ||||||||||||||||||||||||||||||||||||||||
위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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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8K로 촬영된 중국의 모습 |
중화민국(中華民國) 또는 중국(中國)은 아시아의 중국 대륙에 있는 공화국이다.
수도는 난징(南京)이며 일반적으로 동아시아의 국가로 간주되지만 영토가 넓은 편이라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국가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현존하는 아시아의 가장 오래된 공화국으로, 1912년 건국을 선포한 이후 100년이 넘는 장수 공화국이 되었다. 현재의 중화민국이라는 국체는 1912년 신해혁명 이후에 탄생한 것으로 그 이전까지는 청나라라는 전제군주제 제국이 중국대륙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편전쟁을 비롯한 서방열강들의 침탈과 청 황실의 무능에 분개한 쑨원을 비롯한 개혁가들의 혁명인 신해혁명으로 청나라는 붕괴되었으며 이후 공화국인 중화민국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중화민국 수립이후 임시정부, 북양정부, 군벌시대등의 여러 정치체계를 겪었기에 1912년의 중화민국과 현재의 중화민국은 판이하게 다르며 현재의 체제는 실질적으로 1925년 국민정부의 수립과 1949년 중국내전 승리이후 확립된 것이다.
중국내전 승리이후 3개의 헌정체제가 존재하였으며 현재의 헌정체제인 제3공화국은 장제스와 국민당의 3당 훈정 체제와 개발독재, 제1차·제2차 전민항쟁과 2번의 헌법개정 등의 약간의 체제개변을 거치고 탄생한 것이다.
중국은 UN의 창립국이자 상임이사국이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와 3위의 영토를 보유한 대국이며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자 군사대국으로 세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대국이다. 친중 민주주의 국가들의 안보·경제동맹인 상호안보협력기구(MSCO)의 주도국이며 미국 중심의 북대서양 조약기구(나토, NATO) 소련 중심의 우호협력평화기구(FCPO)와의 3강구도를 이루고 있다.
국가 상징
국명
언어별 명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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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 Republic of China (ROC) | ||||||||||||||||||||||||
표준중국어 | |||||||||||||||||||||||||
한국어 | 중화민국 중국 | ||||||||||||||||||||||||
일본어 | |||||||||||||||||||||||||
프랑스어 | République de Chine | ||||||||||||||||||||||||
러시아어 | Китайская Республика | ||||||||||||||||||||||||
스페인어 | República de China | ||||||||||||||||||||||||
아랍어 | جمهورية الصين | ||||||||||||||||||||||||
[ 기타 중국어 표기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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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제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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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수민족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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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외 언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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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명칭은 중화민국(中華民國)이며, 약칭은 중국(中國)이다. 표준중국어 발음은 중궈(Zhōngguó, [ʈʂʊ́ŋ.kwǒ]). 중화민국은 중화민궈(Zhōnghuá Mínguó, [ʈʂʊ́ŋ.xwǎ mǐn.kwǒ])라고 발음한다.
'중국(中國)'이라는 단어는 시경의 大雅民勞篇 중 “惠此中國, 以綏四方”이라는 구절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이때 '중국'이라는 말은 주나라의 수도를 일컫는 말로 쓰였다. '중원(中原)', '중화(中華)'라고도 했다. 이는 '가운데 지역'이라는 의미로 주변에 비해 발달된 문명을 가졌던 스스로를 동이, 서융, 남만, 북적 등 주변 '오랑캐'와 구분하기 위해 쓰이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 대륙에서는 전통적으로 왕조 이름이 국명처럼 쓰였으며 중국이라는 명칭은 나라 이름보다는 지역 이름에 가까웠다. 그러나 청나라가 네르친스크 조약 당시 스스로를 만주어로 ᡩᡠᠯᡳᠮᠪᠠᡳ ᡤᡠᡵᡠᠨ(dulimbai gurun, 가운데에 있는 나라)로 칭한 이후부터 점차 '중국'이라는 이름이 지명에서 하나의 국호로 정착되어 갔다.
신해혁명 이후 등장한 신정부는 공화주의를 표방하였으며 이에따라 청(淸), 명(明), 송(宋)등의 왕조명을 국명으로 사용 할 수 없게되었다. 그러자 아편전쟁 이후부터 불어온 민족주의 열풍에 따라 왕조와 관계없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이름인 '중국', '중화'가 새로운 국가의 국명후보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결국 중국인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국(中國)', '중화(中華)'와 'Republic'의 한문 번역어인 '민국(民國)'을 조합한 중국 대륙 사상 최초의 공화국인 '중화민국(中華民國)'을 세웠고, 약칭을 '중국(中國)'이라 하였다.
영어에서는 이 나라를 차이나(China) 혹은 리퍼블릭 오브 차이나(Republic of China)라 하고 다른 유럽계열 언어에서도 대부분 이와 비슷한 명칭을 쓴다. 학계에서는 '차이나'라는 명칭이 진나라를 뜻하는 친(Chin)이 산스크리트어로 치나(Cīna)로 변형된 것으로 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치나'라는 명칭이 포르투갈 상인들을 거쳐 유럽전역으로 퍼짐으로서 대부분의 유럽언어들이 중국을 차이나, 치나, 키나 등으로 부륵 되었다는 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러시아어를 비롯한 대부분의 동슬라브계 언어에서는 본래 거란족을 이르는 말이었던 키타이(Китай)라고 중국을 부르며 영어권에서도 이에 대응되는 캐세이(Cathay)라는 명칭이 있으나 일부사례를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잘 쓰이지 않는다.
한국,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권에서는 중국이라는 말보다는 이전 중국의 왕조 중 하나인 당(唐)이나 청(淸)으로 주로 호칭하였으며 한국의 경우에는 70년대까지 일본의 경우에는 일부 경우에 한해서는 현대까지도 이러한 명칭들이 쓰인다. 한편 중국이라는 국호가 확립되기 이전에는 위의 산스크리트어 '치나'에서 비롯된 支那(지나/시나)등도 많이쓰였으나 현대에 와서는 사장된 표현이며[6] 특히 제국주의 시대의 일본이 중국을 비하할 목적으로 지나라는 명칭을 사용한 전적이 있기에 대부분의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지나/시나라는 표현은 매우 모욕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
국기
청천백일만지홍기 青天白日滿地紅旗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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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 | 중국의 국기 |
채택일 | 1928년 12월 9일 |
설계자 | 루하오둥, 쑨원 |
근거법령 | 중화민국 헌법 제1장 제6조 |
비율 | 2:3 |
중화민국 국기는 붉은 바탕에 좌측 상방에 파란 바탕에 하얀 태양이다. 中華民國國旗定為紅地,左上角青天白日。 중화민국 헌법 제1장 제6조 |
한마음 한 뜻으로 끝까지 변치 말고 나아가자, 청천백일만지홍. 同心同德,貫徹始終,青天白日滿地紅。 <중화민국 국기가> 4행 |
중국의 국기는 청천백일만지홍기이며 루하오둥과 쑨원에 의하여 제작되었다. 1928년 12월 17일 국민정부 시절에 공식적인 국기로 채택되었다.
청천백일만지홍기는 중국의 국부 쑨원이 창시한 삼민주의 사상을 파란색, 빨간색, 흰색의 세가지 색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파란색은 청명과 순수, 자유 그리고 민족을, 빨간색은 희생과 유혈, 박애, 한족을 중심으로 하는 다민족국가인 중국과 삼민주의의 민생을 상징하고, 백색은 정직, 이타, 평등, 민생을 각각 상징하고 있다. 좌측 상단의 청천백일기의 태양에서 뻗어나오는 12개의 빛줄기는 하루 24시간을 2시간씩 12개로 표현하고 1년 12개월을 형상화한 것으로서 국민들이 끊임없이 정진하고 자강불식(自強不息)할 것을 상징한다.
국장
청천백일 青天白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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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 | 중국의 국장 |
채택일 | 1928년 12월 17일 |
설계자 | 허잉친 |
사용처 | 국가기관 국가문서 여권 훈장 해외공관 |
중국의 국장은 청천백일문양으로 1924년 황푸 군관학교 총교관으로 근무하고 있던 허잉친에 의해 제작되었으며 위의 국기와 마찬가지로 1928년에 국장으로 채택되었다. 파란색 원 안에는 12개의 햇살을 가진 하얀색 태양이 그려져 있다. 중국국민당의 당 휘장과 유사하게 생겼으나 원의 색상과 백일의 크기가 다르다.
태양은 혁명 정신을 뜻하며 태양에서 뻗어나오는 12개의 빛줄기는 하루 24시간을 2시간씩 12개로 표현하고 1년 12개월을 형상화한 것으로서 국민들이 끊임없이 정진하고 자강불식(自強不息)할 것을 상징한다. 파란색과 하얀색은 삼민주의를 두 가지 색으로 표현한 것으로 번영과 민주주의를 뜻한다.
국가
중화민국 국가 中華民國國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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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 | 중국의 국가 | ||
채택일 | 1930년 3월 24일 | ||
작사 | 쑨원 | ||
작곡 | 청마오윈 | ||
[ 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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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국가는 '중화민국 국가'로 별칭으로는 '삼민주의가'라고 불린다. 가사는 1924년에 쑨원이 광저우에 있었던 황푸 군관학교에서 한 연설 내용을 48자로 요약한 것이며 이후 1928년에 작곡가 청마오윈이 이 가사에 선율을 붙여 만든 곡이 현재의 '중화민국 국가'이다. 본래 중국국민당의 당가로 사용되어 왔으나 1930년에 장제스가 중화민국의 국가로 지정하였다.
중국국민당의 당가와 동일하며 이로인해 다른 국가를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국민정부 이후 계속 존재하였으나 현재의 국가가 사용된지도 9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고 무엇보다도 작사가가 중국의 국부인 쑨원이라는 점에서 대다수의 국민들은 국가 변경에 거부감을 느끼는 상황이나 아직도 민주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국가변경을 요구하기도 한다.
국민정부 시절에는 삼민주의가의 국가화를 못마땅하게 여긴 중국 교육부가 국가변경을 시도했었고 실제로 황쯔의 곡이 새로운 국가로 채택되려고 했으나 당시 장제스 국민정부 주석에 의해 거부되어 아래의 국기가로 사용중이다.
국기가
중화민국 국기가 中華民國國旗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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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 | 중국의 국기가 | ||
채택일 | 1937년 -월 -일[7] | ||
작사 | 미상 | ||
작곡 | 황쯔 | ||
[ 가사 ]
|
중화민국 국기가는 청천백일만지홍기가 게양·하강될 때에 부르는 노래이다. 본래 중국국민당의 당가인 삼민주의가가 중국의 실질적인 국가의 지위에 오르자 이를 대체하기위해 중국 교육부에서 공모하여 선택된 황쯔의 곡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되듯 장제스 당시 국민정부 주석이 이를 반려하였고 1937년 가사를 붙여 현재의 국기가로 사용중이다.
역사
신해혁명과 건국
북양정부와 군벌의 할거
북벌과 중국의 통일, 국민정부
중일전쟁과 국공합작
중국전쟁과 제1공화국
민주화와 제2공화국
제3공화국과 현재
1996년 공산당 소속 자오쯔양이 최초로 개정헌법에 의해 총통으로 선출되었다. 자오쯔양 정부는 출범 당시 진보적인 사회정책과 기득권 청산을 공약하였으며 실제로 그의 집권기 당시 동성애의[8] 전면적인 합법화가 이루어졌으며 국민당 소유의 건물 및 재산에 대한 국유화와 부패관료 및 재벌들에 대한 대대적인 시찰 등 구악일소 정책이 실행되었다. 또한 한국의 김영삼 총리의 정책을 일부 모방하여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가 실시되었으며 문화안전국이 완전히 폐지되고[9] 총통부 일대가 완전히 개방되는 등 탈권위주의, 자유주의적인 정책이 이어졌다. 사회진보 정책과 복지정책등으로 높은 평가를 받던 자오쯔양 정부였으나 집권여당이었던 사회당의 분당과 아시아 경제위기 당시의 경기침체로 인해 자오쯔양 총통은 차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계를 은퇴하게 되었다.
2000년 총통 선거에서 사회당 소속의 차오스을 꺾고 승리한 롄잔 총통은 선진경제와 활기찬 국가를 슬로건으로 삼았다. 제1기 장쩌민 정부 당시에는 교련[10]을 폐지하고 인도 및 유럽과 FTA를 채결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으나 당내의 세 거물이던 렌잔과 쑹추위의 타협으로 선출된 총통후보였던 만큼 큰 권력을 가지지는 못했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선이다. 그러나 2004년 총통선거 당시 쑹추위의 탈당 및 독자출마로 인해 내훙을 겪던 국민당을 성공적으로 승리로 이끈 이후부터로는 그의 권력이 공고화 되었다. 2기 장쩌민 정부는 신성장정책을 표방하였다. 기존의 제조업 일변도의 정책에서 벗어나 첨단산업 유치 및 성장을 추진하였고 정보혁명의 물결속에서 중국을 뒤쳐지지 않게 하기위해 정보혁명 정책또한 추진하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임기 만료 직전 2008년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지지율이 급하락 했고 국민당은 관료출신 우방궈를 총통후보로 내세웠으나 사회당의 후진타오에게 패배하며 사회당이 집권하게 되었다.
후진타오 정부는 경제회복과 복지정책을 목표로 삼았다. 전세계가 연루된 경제위기와 더불어서 경제성장 과정에서 무시되던 빈부격차 및 부의 되물림 현상의 문제점이 대두되었고 이에 후진타오 총통은 국가주도의 부의 재분배를 표방하였다. 대도시 주택공급 정책과 더불어서 충칭과 란저우를 중심으로한 서부 개발계획을 통하여 대규모의 일자리 창출을 통한 부의 분배를 추진하였다. 이런 정책이 완전히 성공을 거두었다고 보기에는 어려웠으나 경제위기 속에서 타국에 비해 선방한 대응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에 충분했고 2012년 선거에서도 사회-민주 연합이 다시 집권하게 되었다. 2기 후진타오 정부는 전반적으로 별볼일 없이 지나갔고 후진타오 본인에 대한 평가도 나름 괜찮았기에 범홍진영의 정권연장이 예상되었으나 측근들의 비리로 인한 지지율 하락을 피할 수 없었고 2016년 선거에서 보시라이 후보가 국민당 마잉주 후보에게 패배하며 국민당이 다시 집권하였다.
마잉주 정부는 젊은 정부와 민생 정부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633정책[11]을 내세운 마잉주 총통은 그 사회당 보시라이 후보의 실책에 힘입어 큰 인기를 얻었고 기존 정부의 정책기조 일부를 유지하여 주택공급 정책과 일자리 안정화, 선별적 복지등의 정책을 실행했고 50%대 중반의 상당히 높은 지지율을 유지 할 수 있었다. 2기 마잉주 정부가 출범하면서 이런 인기는 많이 사그라 들었으나 여당 내의 온건파와 협력하며 순조로운 국정 운영을 이어나갔고 행정혁신과 교육제도 개혁등의 정책들을 안정적으로 추진해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시진핑을 필두로 한 당내 강경파 세력이 당권을 장악하여 집권 말기에는 잡음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강경파의 지지를 받은 시진핑-한궈위가 국민당의 정부총통 후보로 선출되며 국민당의 지지율은 점차 하락 일로를 걷게 되었으며 사회당-민주당 연합의 리커창-차이링 후보에게 국민당 후보들이 패배하면서 다시 한번 정권이 교체되었다.
리커창 정부는 코로나로부터의 완전한 회복과 인민 생활이 제일을 슬로건으로 삼았다. 전임자인 마잉주 총통과 마찬가지로 상대 후보의 수 많은 실책으로 인하여 리커창 총통은 높은 지지율을 확보 할 수 있었고 경제학자로서의 노련함에 힘입어 성공적인 경제정책들을 다수 추진 해냈다. 또한 야당이었던 국민당이 지속적으로 우경화 되면서 극단적인 행보를 보인 덕분에 리커창 총통은 매우 쉽게 재선에 성공하였고 총선에서도 대승을 거두며 안정적으로 2기 리커창 정부를 운영해 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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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 ↑ 서기 - 1911
- ↑ 일상생활에서는 서력 혼용
- ↑ 실생활에서는 척관법 혼용
- ↑ 본토 기준
- ↑ 홍콩, 마카오 한정
- ↑ 단 Sino-centrism(중화사상), Sino-Japanese War(청일전쟁)등 영어권에서는 고유명사에 한해서 아직 유효한 표현이다.
- ↑ 일자 미상
- ↑ 동성혼이 아닌 동성애로 동성혼의 법제화는 2019년 원자바오 정부 당시의 일이다.
- ↑ 사실상의 폐지는 저우언라이 정부 당시 이루어졌으나 덩샤오핑 정부 12년 내내 정부조직법에는 남아있는 상태였다.
- ↑ 현지식으로는 군훈(軍訓)
- ↑ 연 경제 성장률 6%, 1인당 국민 소득 3만 달러, 실업률 3% 이하 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