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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교 == | == 외교 == | ||
=== 첨한관계 === | === 첨한관계 === | ||
첨관과 대한민국은 상당히 긴밀한 외교관계를 맻고 있는 나라이다. 한첨관계는 단순한 우방 관계를 뛰어넘어 핵심적인 가치를 공유하는 호혜적 동반자 관계라 할 수 있으며, 한국과 거의 유일하게 역사적 앙금없이 절친한 이웃 나라는 첨관 단 한 국가 뿐이다. 한국과 첨관은 일제강점기란 비슷한 시기를 겪었고 독립 이후 비슷한 처지에 동질감을 느꼈다. 그래서 두 나라는 여러가지 협력을 하며 공동발전을 도모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첨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고 첨관도 한국과 교류를 활발히 했다. 다만 독재정권 당시 한국, 동남아의 독재 정권과 결탁한 흑역사를 가지고 있다. 비록 지금은 민주화가 되긴 했지만 여전히 첨관과 한국의 교류는 활발하며 특히 경제적으로 중요한 기술 협력 및 무역 파트너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 |||
한국 입장에서 첨관은 신뢰할 수 없는 다른 주변 국가들과는 달리 신뢰할 수 있는 국가이고 국력도 상당하기에 최적의 파트너라고 할 수 있다. 첨관 입장에서도 일본을 견제하고 공동전선을 구성하기 위해선 반일이라는 가치를 공유하는데다 국력이 비슷한 한국이 반드시 필요하며, 꼭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상호간 국민감정이 매우 좋은 편이고 교류도 활발하기 때문에 최상의 파트너로 여길만한 국가다. | |||
1980년대까지 이어진 독재자들의 개인적 친분 역시 한첨관계의 우호에 영향을 끼쳤지만, 양국의 민주화 이후에도 한첨관계는 중요시되고 있었기에 오히려 우호 관계는 더욱 더 강화되었다. 그 사례가 바로 1990년대 첨관의 사토 에이치 대통령에 의해 전개된 일자외교 계획과 2000년대 한국 노무현 수상이 주도한 동북아 전략적 동반자론이다. 게다가 첨관의 구왕가 역시 조선을 뿌리로 하는 전주 이씨 출신이였기 때문에 이 또한 한첨관계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이희 공은 첨관인들과 융합되려 노력하였고, 이후 구왕가 인물들도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고 경제위기 당시 가문의 재산을 기부하는 등의 공로를 세워 첨관인들에게 계속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현 첨관은 비록 공화국이지만 구왕가특별법으로 사실상 왕가의 지위가 인정되고 있으며 그 수장은 국가원로 대우를 받고 있다. | |||
한국 외교 의전에서 첨관은 미국에 준하는 대우를 받고 있으며, 첨관 역시 마찬가지로 한국을 미국과 동일한 외교 의전에 놓고 있다. 실제로 2010년대 이후 미국이 한첨이 아닌 일본과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이면 한첨 양국이 서로 연대하며 대처하는 형국이 자주 보였다. 군사적으로도 백두산-천관산 합동훈련을 매년마다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으며, 무기 공동개발에도 자주 나서는 등 두터운 협력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 |||
=== 첨일관계 === | === 첨일관계 === | ||
첨관은 일본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 중 하나이다. 첨관인들은 과거 부라쿠민이라 불리던 일본 내 하층민들의 후손으로 차별 받아왔고 첨관 이주 역시 일본인들에 의한 강제이주에 가까웠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첨관인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마찬가지로 첨관인들도 인간 대우를 받지 못한 채 학살 당한 경험이 있어 일본인에게 이를 갈고 있다. | |||
이런 국민감정과는 별개로 양국 정부는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며 미국의 동맹국으로써 군사적 협력관계에 있다. 일본의 첨단 산업에 있어 첨관의 전자부품 및 장비가 필요하기 떄문에 외교관계 단절은 불가능하다. 첨관도 일본이란 거대한 시장을 잃는건 곤란하기 때문에 양국정부는 최대한 마찰을 줄이려 노력한다. 첨관 선주민의 경우 일본인과 직접적으로 접촉한 적은 없지만 그들이 남긴 공예품이나 거석상 같은 유산은 일제 당시 아시아의 각종 문물 수집에 열을 올렸던 일본인 수집가들의 목표가 되었다. 최북단의 태평양계 민족의 작품이란 희귀함으로 일본의 유명 수집가들은 선주민의 유물 수집을 선호했으며 수집 후 자택이나 회사 정원에 전시하는 것을 즐겼다. | |||
=== 첨미관계 === | === 첨미관계 === | ||
미국은 첨관 해방의 주역이자 안보의 동반자로서 첨관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첨관은 미국의 해외령인 북마리아나와 괌과 인접해 있는데 이로 인해 첨미 양국은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으며 첨관에서 생산된 식량이 괌으로 수출되는 중이다. | |||
첨미관계에 있어 군사협력을 논하지 않을수 없는데 주요 공군기지인 센칸지마 비행장은 미군과 첨관 정부가 공동으로 소유 하고 있으며 현재 주첨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주첨미군은 육군과 공군, 해군 보급부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실상 육상방위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고 첨관 육군은 사실상 주첨미군의 보조역에 가깝다. 첨관은 섬나라인 특성상 해공군 위주로 양성해온데다 대륙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기 때문에 육군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주첨미군에게 육상방위를 맡기고 육군 예산을 줄여 해공군에 투자하는 것이 더욱 이득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방향으로 육성되었다. 여담으로 미국인들은 첨관인과 일본인을 구분하는 것을 힘들어해서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보이는데 그때면 첨관인들은 미국인과 캐나다인은 뭐가 다르냐며 반발하는 경우가 많다. | |||
[[분류:첨관]] |
2023년 8월 11일 (금) 18:4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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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요
첨관 공화국(일본어: 尖冠共和国, 영어: Republic of Senkan)은 서태평양 마리아나해 해상에 위치한 도서국가로 인구는 2023년 기준 약 3500만명이다.
4년 중임제 대통령제 공화국으로, 수도는 센칸토이고 영토는 본도라 일컫는 센칸도와 나루미 제도를 비롯한 주변도서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의 첨관 공화국은 1945년 일제의 패망 이후 미군정의 산하에 들어간 후 1952년 미군정에서 벗어나 수립된 공화국이다. 첨관은 일본계 국가이지만 일본과는 다른 첨관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독립 당시 발표한 첨관독립주의 선언에서 일본과는 별개의 문화권임을 원칙으로 하였다. 첨관은 아시아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뛰어난 경제력과 기술력을 보유한 선진국이며, 1950년대 이후 초고도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현재도 많은 대기업이 소재하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통화는 첨관 엔을 사용중이며, 대체로 약 1000 첨관 엔이 1 미국 달러와 비슷한 수준의 환율을 가지고 있다.
현재 첨관은 남국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초고도 경제성장을 이룩하여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였다. 정치적으로는 1960~80년대에는 군부독재를 겪었으나 1992년 신정혁명이라 불리는 민주화 혁명을 통해 문민정부가 들어서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현재 대통령은 2016년 선거를 통해 선출된 뒤 2020년 연임에 성공한 민주당 소속의 미케츠카미 소시이다.
2.국호
현재 첨관 공화국이 국호로 쓰는 첨관(일본어: 尖冠)이란 명칭의 유래는 센칸도에 상륙한 이마가라가 섬의 최고봉 천관산(일본어: 天冠山)의 모습이 뾰족한 관과 같다고 말한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 뒤 첨관 해방군, 첨관 임시정부 등 첨관의 일제강점기 당시 첨관인들이 첨관이라는 명칭을 자신들의 상징으로 사용하며 첨관과 그 민족을 지칭하는 명칭으로 확립되었다. 1952년 독립 당시 국명이 첨관 공화국으로 확정되며 마침내 첨관이라는 명칭은 국명으로까지 굳어졌다.
영어로는 센칸(영어: Senkan)이라고 불리는데, 이것은 첨관의 일본어 발음인 센칸을 당시 들은 서양인들이 그것이 첨관의 국명이라고 인식하며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서방 국가들이 첨관을 센칸이라고 지칭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도 센칸이라고 표현되었으며 그 이전인 1902년 미국 국무부의 문서에서도 센칸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이미 1900년대 이전부터 그러한 명칭이 사용되어 졌음을 알 수 있다.
3.역사
4.정치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한 국가로 독립 당시 미국의 정치구조를 답습해 대통령에게 강력한 권한이 부여되었으며, 단원제 국회와 대법원이 존재해 삼권분립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리고 과거 중화민국처럼 오권분립을 할것인지 논의가 있었지만 결국 반영되지는 못했다.
대통령은 국민들이 직선제로 선출하며, 만 30세 이상의 첨관 국민이면 일정한 조건만 갖출 시 누구나 출마가 가능하다. 임기는 4년이며 1회 연임이 가능하다. 총리는 국회에서 선출한 후보를 대통령의 지명에 따라 임명한다. 국회는 300명의 의원들로 구성되며 의원 임기는 4년이다. 법원은 3심제로 운영되며, 대통령이 임명하는 대법원장의 임기는 6년이다. 행정구역으로 수도 센칸토가 도로 지정되어 있고 그외 지방은 인구가 많고 발전된 지역은 직할시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외에는 지방자치제를 따라 8개의 현으로 나뉘며 나루미 제도는 별도로 특별자치현으로 지정되었다.
4.1.행정부
4.2.입법부
4.3.사법부
5.경제
첨관은 현재 인구 3500만명(2023년)으로 범오세아니아권 국가 중 인구가 가장 많고, 명목 국내 총생산(GDP)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는 경제선진국이다. 2016년 미국의 타임지는 첨관을 "동아시아-동남아시아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국가"로 꼽으며 "첨단 고부가가치 산업이 발달하였고 이를 토대로 미래를 꾸준히 개척해나가는 중"이라고 호평하는 등 첨관은 국제적인 경제적 모범국가로 인정받고 있는 국가이다. 그런만큼 첨관의 산업이나 대도시권 등도 첨관의 경제를 넘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오세아니아까지도 많은 경제적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많은 인력과 자본, 자원까지 보유한 우수한 첨관의 산업과 경제권은 첨관 경제를 구성하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임업, 농업 같은 1차 산업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2차 대전 이후 독립하면서 산업구조의 변화를 시도하게 된다. 가장 먼저 중계무역의 거점으로 발전하기 위해 해외에서 차관을 빌려 항만시설을 갖추었고, 자체적인 경제력 확보를 위해 산업화를 시도했다. 마에바라 신이치 정권 하 추진된 도시화운동에서는 발달된 광업을 통해 채취된 철광석과 석탄을 발판 삼아 해외연수와 초빙 등으로 기술력을 갖춰나가면서 경제력을 발전시켰다. 또한 동시에 제조업 및 IT 사업에도 상당한 투자를 했다. 중계무역은 첨관의 지리적인 특성상 북쪽에 한국과 일본, 남서쪽에 필리핀, 동남쪽에 마리아나와 괌을 두고 있는 중간지로서 서태평양 무역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낼 수 있게 하였다. 점차 동남아시아 연합의 규모가 커지면서 첨관의 중계무역 수지는 더 큰 탄력을 받으리라 기대되는 중이다.
IT 산업의 경우 첨관은 주로 부품 하청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였으나 점차 그 규모가 커지자 자체적으로 부품을 생산해 공급하게 되었다. 현재 세계 최상위권의 부품 생산기업 다수가 첨관계 기업이다. 그래서 첨관에서 생산된 전자부품은 전세계에 퍼져 있으며 주로 미국과 중국, 일본의 기업들을 주고객으로 한다. 그렇기에 첨관은 대체로 IT 경쟁력 순위 5위권 이하로 내려온 적이 없는 저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관광업에도 집중해 첨관의 자연환경을 이용한 휴양지와 각종 랜드마크를 건설해 전세계 관광객을 유치하였고 그 결과 현재 첨관은 세계적인 수준의 관광명소로 손꼽히고 있으며 이러한 서비스업의 발달로 3차 산업의 비중이 역시 상당히 증가하여 2020년대에는 60%대에 육박하고 있다. 주요 관광 명소로 남국의 정취가 느껴지는 해수욕장은 어느 곳이든 훌륭하다는 평이 대다수며 그외 첨관 최고봉 천관산과 센칸토에 높게 솟은 마천루 동방 타워가 있다.
첨관의 주요 무역 대상국은 미국, 한국, 중국, 일본, 동남아연합, 프랑스 등이다. 첨관내 주요 대기업으로는 아시아 최대 반도체 생산업체인 히카리온(Hikalion)을 거느린 나가하마 그룹과 석유재벌로 유명한 사사오카 오일, 중공업으로 유명한 하이스터 그룹 등이 있다. 또한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대규모로 발생한 부라쿠민의 첨관 이주 당시 이주한 부라쿠민들이 가지고 있던 자신의 특기를 살려 다양한 사업체를 창업하였는데, 그것이 기원이 되어 현 첨관에는 독창적인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진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이 많이 생겨났다. 그렇기에 첨관 경제의 주축은 탄탄한 중소기업들이 뭉쳐 하나의 거대 기업 집단을 이루는 '케이레츠'가 지탱하고 있다. 많은 해외 대기업들이 첨관 케이레츠와 협업하고 있으며, 일부 케이레츠들은 하청 대기업으로 성장해 국제적인 '슈퍼 을'로 군림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사오카를 위시로 한 화석 연료 산업체 또한 1970년대 이후 급성장하여 첨관 경제의 주축으로 부상하였다. 마에바라 신이치 대통령은 지나친 자원 의존을 방지하기 위하여 미국을 모델로 하여 화석 연료 산업체를 통제하며 육성하였고, 그 결과 효율적으로 자국 산업과 연계하며 화석 연료 산업체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첨관의 화석 연료 산업체는 아시아 최대 수준의 규모를 자랑하며, 신흥 거대 정유사 중 한 곳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또한 마리아나해에 매장된 다양한 자원은 화석 연료 산업체의 성장을 도왔을 뿐만 아니라 월본 경제 성장에도 상당한 이득을 주었다. 특히 나루미해 인근의 자원은 첨관과 일본 사이의 해상 국경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6.외교
6.1.첨한관계
첨관과 대한민국은 상당히 긴밀한 외교관계를 맻고 있는 나라이다. 한첨관계는 단순한 우방 관계를 뛰어넘어 핵심적인 가치를 공유하는 호혜적 동반자 관계라 할 수 있으며, 한국과 거의 유일하게 역사적 앙금없이 절친한 이웃 나라는 첨관 단 한 국가 뿐이다. 한국과 첨관은 일제강점기란 비슷한 시기를 겪었고 독립 이후 비슷한 처지에 동질감을 느꼈다. 그래서 두 나라는 여러가지 협력을 하며 공동발전을 도모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첨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고 첨관도 한국과 교류를 활발히 했다. 다만 독재정권 당시 한국, 동남아의 독재 정권과 결탁한 흑역사를 가지고 있다. 비록 지금은 민주화가 되긴 했지만 여전히 첨관과 한국의 교류는 활발하며 특히 경제적으로 중요한 기술 협력 및 무역 파트너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 첨관은 신뢰할 수 없는 다른 주변 국가들과는 달리 신뢰할 수 있는 국가이고 국력도 상당하기에 최적의 파트너라고 할 수 있다. 첨관 입장에서도 일본을 견제하고 공동전선을 구성하기 위해선 반일이라는 가치를 공유하는데다 국력이 비슷한 한국이 반드시 필요하며, 꼭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상호간 국민감정이 매우 좋은 편이고 교류도 활발하기 때문에 최상의 파트너로 여길만한 국가다.
1980년대까지 이어진 독재자들의 개인적 친분 역시 한첨관계의 우호에 영향을 끼쳤지만, 양국의 민주화 이후에도 한첨관계는 중요시되고 있었기에 오히려 우호 관계는 더욱 더 강화되었다. 그 사례가 바로 1990년대 첨관의 사토 에이치 대통령에 의해 전개된 일자외교 계획과 2000년대 한국 노무현 수상이 주도한 동북아 전략적 동반자론이다. 게다가 첨관의 구왕가 역시 조선을 뿌리로 하는 전주 이씨 출신이였기 때문에 이 또한 한첨관계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이희 공은 첨관인들과 융합되려 노력하였고, 이후 구왕가 인물들도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고 경제위기 당시 가문의 재산을 기부하는 등의 공로를 세워 첨관인들에게 계속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현 첨관은 비록 공화국이지만 구왕가특별법으로 사실상 왕가의 지위가 인정되고 있으며 그 수장은 국가원로 대우를 받고 있다.
한국 외교 의전에서 첨관은 미국에 준하는 대우를 받고 있으며, 첨관 역시 마찬가지로 한국을 미국과 동일한 외교 의전에 놓고 있다. 실제로 2010년대 이후 미국이 한첨이 아닌 일본과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이면 한첨 양국이 서로 연대하며 대처하는 형국이 자주 보였다. 군사적으로도 백두산-천관산 합동훈련을 매년마다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으며, 무기 공동개발에도 자주 나서는 등 두터운 협력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6.2.첨일관계
첨관은 일본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 중 하나이다. 첨관인들은 과거 부라쿠민이라 불리던 일본 내 하층민들의 후손으로 차별 받아왔고 첨관 이주 역시 일본인들에 의한 강제이주에 가까웠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첨관인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마찬가지로 첨관인들도 인간 대우를 받지 못한 채 학살 당한 경험이 있어 일본인에게 이를 갈고 있다.
이런 국민감정과는 별개로 양국 정부는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며 미국의 동맹국으로써 군사적 협력관계에 있다. 일본의 첨단 산업에 있어 첨관의 전자부품 및 장비가 필요하기 떄문에 외교관계 단절은 불가능하다. 첨관도 일본이란 거대한 시장을 잃는건 곤란하기 때문에 양국정부는 최대한 마찰을 줄이려 노력한다. 첨관 선주민의 경우 일본인과 직접적으로 접촉한 적은 없지만 그들이 남긴 공예품이나 거석상 같은 유산은 일제 당시 아시아의 각종 문물 수집에 열을 올렸던 일본인 수집가들의 목표가 되었다. 최북단의 태평양계 민족의 작품이란 희귀함으로 일본의 유명 수집가들은 선주민의 유물 수집을 선호했으며 수집 후 자택이나 회사 정원에 전시하는 것을 즐겼다.
6.3.첨미관계
미국은 첨관 해방의 주역이자 안보의 동반자로서 첨관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첨관은 미국의 해외령인 북마리아나와 괌과 인접해 있는데 이로 인해 첨미 양국은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으며 첨관에서 생산된 식량이 괌으로 수출되는 중이다.
첨미관계에 있어 군사협력을 논하지 않을수 없는데 주요 공군기지인 센칸지마 비행장은 미군과 첨관 정부가 공동으로 소유 하고 있으며 현재 주첨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주첨미군은 육군과 공군, 해군 보급부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실상 육상방위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고 첨관 육군은 사실상 주첨미군의 보조역에 가깝다. 첨관은 섬나라인 특성상 해공군 위주로 양성해온데다 대륙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기 때문에 육군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주첨미군에게 육상방위를 맡기고 육군 예산을 줄여 해공군에 투자하는 것이 더욱 이득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방향으로 육성되었다. 여담으로 미국인들은 첨관인과 일본인을 구분하는 것을 힘들어해서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보이는데 그때면 첨관인들은 미국인과 캐나다인은 뭐가 다르냐며 반발하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