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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일본에 의해 강제적으로 주권을 빼앗기고 식민지가 되었다. 그러나 끊임없는 국내외적인 독립운동, 특히 1950년에 발생한 조선독립전쟁으로 일본에서도 점차 조선을 독립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1960년에 4.19혁명이 발생하자 당시 '식민지무용론'을 주장하던 내각총리대신 이케다 하야토가 조선의 독립을 승인, 8월에 여운형에 의해 해방과 건국이 선포되었다. 독립 이후에는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지만 미국이 일본의 동맹이라는 점과 소련이 독립을 지원했다는 점 때문에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오랫동안 친소·반미 경향을 보였다. 오늘날에는 경제강국이자 군사강국으로서 크게 성장하였지만, 중국과 일본 사이의 긴장 상태에서 방향을 못 잡고 있다.


==중국==
==중국==

2023년 10월 4일 (수) 21:02 판

[ 문서 보기 ]
[ 세계관 설명 ]
[ 세계관 설명 ]
國民が選擧し
국민이 선거하고


國民を代表し
국민을 대표하고


國民的勢力を中心とし
국민적 세력을 중심으로

민본은 "만약 일본이 다이쇼 데모크라시를 성공하였다면?" 이라는 상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대체역사 세계관입니다.
민본
民本
國民が選擧し、國民を代表し、國民的勢力を中心とし
국민이 선거하고, 국민을 대표하고, 국민적 세력을 중심으로
장르 대체역사, 동아시아사
제작자 제리코
시작일 2023년 9월 28일
(시작일로부터 +802일, 2주년)
상징 색 빨간색 (#ad3f4c)
저작권 CC-0

개요


떠오르는 태양의 나라
國民が選擧し、國民を代表し、國民的勢力を中心とし
국민이 선거하고, 국민을 대표하고, 국민적 세력을 중심으로

사이토 다카오, 1940년 2월 2일 제국의회에서 행한 연설 중

제리코의 장편 대체역사 세계관이다.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과정을 거치며 민주주의 국가가 된 일본 제국과 동아시아를 다루고 있다.

세계관 제목인 민본(民本)은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기에 도쿄제국대학 교수인 요시노 사쿠조(吉野作造)가 democracy를 '민본주의(民本主義)'로 해석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상세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열망은
일본을 근본적으로 바꾸었습니다.

양당 정치는 제국의회에 뿌리를 내렸고
군부의 불온한 시도는 모두 실패하였습니다.

비록 대부분의 식민지를 상실하였지만
부국강병한 제국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만세일계 (萬世一系)의 천황 폐하 아래에
떠오르는 태양의 제국 (大日本帝󠄁國)은 영원할 것입니다.

1927년(쇼와 2년) 3월 14일, 재무대신 카타오카 나오하루가 모종의 이유로 중의원 예산위원회 참여가 늦어지면서 '쇼와 금융공황'이 발생하지 않는다.[1] 그 덕분에 와카쓰키 레이지로 내각과 시데하라 기주로의 협조 외교 방침도 유지된다. 이로 인해 산동파병은 발생하지 않고, 장제스-와카쓰키 회담으로 일본과 국민당의 이해관계 조정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국민당의 북벌과 정부의 온건한 대응에 군부, 특히 관동군은 불만이 많았고, 자칫했다가는 만주까지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생기게 된다. 결국 1928년(쇼와 3년) 6월 4일, 봉천군벌의 수장인 장쭤린이 탄 열차를 폭파시키며 그를 암살시킨다.(황고둔 사건) 관동군은 장쭤린의 뒤를 이은 어린 장쉐량이 일본에 순종적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상과 다르게 국민당에 복종을 선언해버린다.

황고둔 사건으로 만주가 국민당의 손에 넘어가자 일본은 전국적으로 큰 충격에 빠졌다. 이에 시데하라 내각은 천황의 재가 하에 "황고둔사건 해결문서"를 공개, 사건의 모든 책임을 군부에게 돌리며 군부의 힘을 크게 축소시킨다. 이후 1930년(쇼와 5년) 4월 22일, 런던 해군 군축조약이 체결되면서 군부는 다시 한 번 분노하였지만, 1932년(쇼와 7년), 혈맹단 사건 조사 도중 쿠데타 준비가 발각되면서 5.15사건은 일어나지 않고, 1936년(쇼와 11년), 2.26사건 또한 천황의 반대와 내각의 강경진압으로 실패로 돌아간다.

결국 1947년, 내각총리대신이 된 시데하라 기주로에 의해 '군부대신 현역무관제'가 폐지되면서 군부의 정치 개입 시도는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된다. 이후, 냉전 시기 동안 핵개발과 경제개혁 등으로 세계적인 강대국이 된 일본 제국은 1989년(헤이세이 원년) 10월 29일, '신헌법'을 제정하면서 영국식 입헌군주제로 전환하게 된다.

국가

일본

자세한 내용은 '일본 (민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일본국
大日本國

1928년 황고둔 사건으로 시작된 군부와 내각의 끊임없는 불화는 1947년에 '군부대신 현역무관제'가 폐지되면서 내각의 승리로 끝났다. 그 뿐만 아니라 1936년부터 1950년까지 정권을 잡고 있던 입헌민정당은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완수를 위해 일련의 개혁이 완수하며, 민주적인 국가로 탈바꿈하였다. 냉전 동안에는 미국과 동맹을 맺으며 극동의 최전선 역할을 하였으며, 1960년에는 조선을, 1972년에는 대만을 독립시키면서 제국주의 국가의 탈도 벗었다. 이후, 1989년에는 아키히토 천황이 완전한 민주주의 달성을 위한 '신헌법' 제정을 승인하며, 천황이 상징적 존재로만 남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극동의 강대국이자 신흥강대국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최전선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조선

자세한 내용은 '조선 (민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조선인민공화국
朝鮮人民共和國

1910년, 일본에 의해 강제적으로 주권을 빼앗기고 식민지가 되었다. 그러나 끊임없는 국내외적인 독립운동, 특히 1950년에 발생한 조선독립전쟁으로 일본에서도 점차 조선을 독립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1960년에 4.19혁명이 발생하자 당시 '식민지무용론'을 주장하던 내각총리대신 이케다 하야토가 조선의 독립을 승인, 8월에 여운형에 의해 해방과 건국이 선포되었다. 독립 이후에는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지만 미국이 일본의 동맹이라는 점과 소련이 독립을 지원했다는 점 때문에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오랫동안 친소·반미 경향을 보였다. 오늘날에는 경제강국이자 군사강국으로서 크게 성장하였지만, 중국과 일본 사이의 긴장 상태에서 방향을 못 잡고 있다.

중국

자세한 내용은 '중국 (민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중화민국
中華民國

대만

자세한 내용은 '대만 (민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만국
臺灣國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대만 섬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 곳곳에서 독립 열풍이 불면서 대만도 본격적인 독립 운동이 시작되었고, 1972년 '중일공동성명'으로 대만의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필요성이 사라지면서 12월에 독립하게 된다. 독립 이후에는 대통령이 된 민주당의 리덩후이가 독재 정치를 펼치며 경제 개발과 인권 탄압이라는 양면성을 띄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거세지는 시민의 저항에 의해 리덩후이가 물러나고, 2000년에 진보당의 천수이볜이 당선되면서 민주화를 이륙하였다. 오늘날 대만은 중화민국의 총통인 시진핑이 고토 수복을 명분으로 대만을 위협하면서 국제적으로 주목 받고 있다.

연표

자세한 내용은 '민본/연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영향을 받은 매체

  1. 실제 역사에서는 파산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도쿄 와타나베 은행이 드디어 파산을 했습니다."라고 발언하며 쇼와 금융공황을 초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