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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아시아적 규모로 일어난 전쟁은 일본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앞뒤 가릴 것 없어진 미국이 본격적으로 일본을 규탄하기 시작하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일본은 항복을 선언, 1992년에 대아대전을 패배로 종결되게 되었다. 대아대전 이후 일본 경제는 영국병 시기 영국은 우습게 보일 정도로 몰락하였고 군부는 명목 상 패전의 책임을 지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으나 실질적으로는 정부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야당 역시 명목상 허용되었을 뿐 많은 탄압을 받고 있다. 변화 없는 현실에 분노한 일본인들의 부름에 답하여 익찬회 내의 개혁파이던 호소카와 모리히로가 총리가 되었으나 1997년 경제위기로 인해 사임하였고 호소카와 내각의 붕괴와 함께 개혁의 물결 또한 멈추게 되었다. | 범아시아적 규모로 일어난 전쟁은 일본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앞뒤 가릴 것 없어진 미국이 본격적으로 일본을 규탄하기 시작하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일본은 항복을 선언, 1992년에 대아대전을 패배로 종결되게 되었다. 대아대전 이후 일본 경제는 영국병 시기 영국은 우습게 보일 정도로 몰락하였고 군부는 명목 상 패전의 책임을 지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으나 실질적으로는 정부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야당 역시 명목상 허용되었을 뿐 많은 탄압을 받고 있다. 변화 없는 현실에 분노한 일본인들의 부름에 답하여 익찬회 내의 개혁파이던 호소카와 모리히로가 총리가 되었으나 1997년 경제위기로 인해 사임하였고 호소카와 내각의 붕괴와 함께 개혁의 물결 또한 멈추게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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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2일 (목) 19:31 판
Sindan 제작 | CC BY-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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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 黄昏| Tasogar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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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 | 단편 |
장르 | 대체역사, 정치 |
현황 | 연재중 |
연재기간 | 2023년 11월 2일 ~ 현재 (출범일로부터 +390일, 1주년) |
연재자 | 신단 |
저작권 | CC BY-NC |
개요
신단이 연재하고 있는 단편 대체역사 세계관으로 중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 제국의 황혼기를 다루고 있다.
상세
1937년 난징 전투 당시 일본군은 난징을 탈출하던 장제스와 국민당 지도부가 타고있던 비행기를 격추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국가지도층과 수도를 모두 잃은 중국군은 군벌 지도자인 리쭝런과 옌시산 등을 중심으로 항전을 지속하나 실패하였고 1939년, 중일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막을 내리게 된다. 또한 중국이 항복한 그해에 독소 불가침조약이 맺어졌고 당시 소련과 교전 중이던 일본은 이를 배신 행위로 규정, 방공 협정을 파기를 결정하게 된다.
1940년, 프랑스 침공으로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독일에 점령당하고 영국이 오늘내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자 일본 제국은 동남아시아 침공을 시작하였다. 침공이 시작된지 얼마되지 않아 동남아 각국에서는 서구 열강에 압제에 반대하는 현지인들의 반란이 이곳저곳에서 일어나기 시작했고 일본군은 순식간에 미국령 필리핀과 인도 아대륙을 제외한 대부분의 동남아시아 지역을 점령하기에 이른다.
한편 독일은 미국의 랜드리스를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모스크바 공략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한 히틀러는 미국의 랜드리스를 종결시키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고심 끝에 히틀러는 일본 측에 미국을 공격하여 달라는 서신을 보냈다. 일본이 미국을 공격한다면 미국의 시선이 일본 방향으로 쏠려 미국의 지원이 감소 혹은 종료되고 그 틈에 영국과 소련을 정리하면 된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를 거부했고 되려 미국에 이 서신을 그대로 전달하였는데 이는 동남아 침공 이후 미국에 의해 이루어지던 경제 제재를 풀어보려는 계산이었다. 극도로 분노한 미국은 현실보다는 조금 늦은 1942년에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고 일본 역시 대세가 기울던 1944년에 참전을 선언함으로서 결과적으로 1945년 독일의 항복을 이끌어 내게 된다.
전후 냉전이 시작되자 미국과 소련은 아시아의 패권을 쥐고 있는 일본을 자신들의 편으로 돌리기 위해 일본의 동남아 점령을 묵인하고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고 일본은 국제연합 상임이사국에 선출되며 전후 호황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1974년 1차 오일쇼크로 인해 일본 경제가 혼란에 빠지며 호황기의 끝을 알렸다. 그러나 보수적이고 경직된 일본 사회는 그 어떠한 개혁조치도 없이 1차 오일쇼크를 흘려보냈고 이는 1980년 2차 오일쇼크 당시의 대혼란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게 되었다.
2차 오일쇼크 이후 일본 사회가 혼란에 빠지자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군부는 1980년 5.17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였다. 군사정부는 경제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일본 본토에는 억압 정책을, 식민지와 괴뢰국들에는 극단적인 탄압 정책을 펼쳤다. 1987년, 군부에 식민지 탄압에 반발한 반란군이 중국에서 봉기하며 저항의 시작을 알렸고 일본 제국의 억압과 수탈에 신음하던 여러 식민지들이 이에 호응하여 일명 대아대전이 발발하게 되었다.
범아시아적 규모로 일어난 전쟁은 일본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앞뒤 가릴 것 없어진 미국이 본격적으로 일본을 규탄하기 시작하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일본은 항복을 선언, 1992년에 대아대전을 패배로 종결되게 되었다. 대아대전 이후 일본 경제는 영국병 시기 영국은 우습게 보일 정도로 몰락하였고 군부는 명목 상 패전의 책임을 지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으나 실질적으로는 정부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야당 역시 명목상 허용되었을 뿐 많은 탄압을 받고 있다. 변화 없는 현실에 분노한 일본인들의 부름에 답하여 익찬회 내의 개혁파이던 호소카와 모리히로가 총리가 되었으나 1997년 경제위기로 인해 사임하였고 호소카와 내각의 붕괴와 함께 개혁의 물결 또한 멈추게 되었다.
주요 문서
- 총리
- 여당 정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