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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4일 (목) 02:3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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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 인물 양산
개신 인물 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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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자 명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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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91년 3월 10일 (40세) | ||||||||||||||||||||||
아이치현 나고야시 나고야시립대학병원 | |||||||||||||||||||||||
거주지 | 아이치현 나고야시 기타야마혼마치 2-9초메 도쿄도 아카오치아이 4초메 11-6 [1] | ||||||||||||||||||||||
현직 | 제51대 참의원 의원 | ||||||||||||||||||||||
서명 | |||||||||||||||||||||||
링크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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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일본의 신학자이자 정치인, 조치대학에서 초빙교수로 재직도중 재27대 참의원 의원 총선거에 당선되어 정치에 입문하였다.
생애
유소년기
1991년 3월 10일에 아이치현 나고야에서 태어났다. 당시 국제무역회사의 이사였던 아버지와 그리스계 이민 2세대인 어머니 아래서 태어났으며 나고야에서 명문중 하나이고, 당시 아버지가 가톨릭을 믿었기 때문에[7] 남산대학 부속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종교적으로는 어릴때부터 어머니의 영향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어릴때부터 정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가톨릭계열 학교인 남산초등학교, 남산 중고등학교는 엘리베이터식 진학으로 진학하게 되었다.
중, 고등학교 또한 남산계열을 나왔는데, 남산중학교 여자부와 남산고등학교 여자부를 졸업하였으며, 원래대로라면 난잔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겠지만 당시 성적으로는 교내 다섯손가락 안에 들었던 덕분과, 아버지의 인맥을 통하여 난잔 대학보다도 상위 대학인 조치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학자시기
조치 대학에서는 총학생회에 1학년부터 들어갔으며 경건회에서 활동하였다. 3학년때는 경건회장으로까지 활동하였다. 다만, 2학년때부터 철학과의 복수전공을 하게 되었으므로 정말 바빠서 연애를 하긴 했으나 1년에 몇번 만나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결국 당연히 헤어지게 되었다 한다. 이후 4학년때는 총학에서 내려와선 신학과를 졸업하고 철학과 졸업논문을 쓰기위해 작업을 시작했으나, 시간표에 맞추어져 있던 강의 3개가 폐강되는 바람에 그만 5학년을 보내게 되었고 그렇게 철학과의 학점까지 채우고 졸업하게 되었다. 당시 철학과에서 졸업논문으로 낸것은 『アウグスティヌス主義と現代キリスト教哲学との相関 (2016)』[8] 이다.
대학원은 추천서와 여러 조건이 맞아 아테네 국립 카포디스트리아스 대학교, 이하 국립 아테네 대학교에서 석박사를 하게 되었는데, 석사로는 정교회 교의학[9]을 전공하게 되었고, 2년간 공부 후 석사 졸업논문으로 『Η ιστορική διαδικασία διαμόρφωσης και η σημασία της Θείας Ευχαριστιακής Λειτουργίας του Ιωάννη του Χρυσοστόμου (2018, 지도교수 Αθανάσιος Ποτολεμαίος)』[10]을 내게 되었다.
박사는 5년동안 수련하였는데, 거의 1년은 수도원에서 폐관수련을 "당했"다고 한다. 수도생활을 마친 이후에서야 지도교수가 작업을 허락했다 한다. 박사에서는 역사신학을 전공하고 일본 본토의 선교사와 초대교회 시대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가 당시엔 야만인이라 멸칭되던 다키아인들에 대한 선교사업을 비교하고, 가톨릭교회의 예수회와 러시아 정교회의 선교사업의 관계에 대해 다룬 논문을 냈다.『Σύγκριση του ιεραποστολικού έργου του Ιωάννη Χρυσοστόμου στη Δακία και του Ορθόδοξου ιεραποστολικού έργου στην Ιαπωνία και της ιστορικής σχέσης της Ορθόδοξης Εκκλησίας με τους Καθολικούς Ιησουίτες. (2023, 지도교수 Ηράκλειτος Θεόφιλος)』[11] 이 논문을 내고 나서 일본으로 돌아왔으며, 당시 일본 신학계에서는 꽤나 이름이 알려진 상태였다고 한다.
동문이자 명성이 꽤 있었던 그녀는 모교인 조치 대학에서 초빙교수를 하였으며, 교양과목으로 에큐메니컬, 동방에 관한 강의를 했었다. 초빙교수 대우는 꽤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돈도 꼬박꼬박 잘 주고 연구실도 구석이지만 주긴 주었다고. 이후 교수로 재직도중 당시 청년들에게 유행이었던 개신당에 대해 알게되었고, 학생들과 친해지고자 어떻게든 접점을 만들고 싶었던 그녀는 개신당에 가입하게 되었다.
다만, 당비는 꾸준히 납부하다가 당원중 무작위로 뿌리던... 진취적 사람들 당원 모임에 흥미를 느껴 가입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잔 다르크 얼터를 만나게 되었고 대화가 통하면서 정치에 뜻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정계 입문은 되지 못한것이 이미 공천은 끝난 상태였으므로 다음으로 기회를 미루기로 하였고, 제27대 참원선때 간발의 차로 어떻게든 공천에 성공하여 의원이 될 수 있었다. 실제로 이때 공천순위는 28위였는데, 참의원에서 중의원에 비해 큰 약세인 개신당이었기에 아슬아슬하였다.
정계입문
참의원에 겨우 당선된 그녀는 계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는데, 바로 유일한 참의원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계파에서 참의원에 관한 거의 모든 권한은 다 가지게 되었는데, 의결도 그냥 당대표한테 찬반여부만 묻는 정도로 마친다고 한다. 사실상 그냥 허수아비 본인도 자신이 위치를 잘 아는지 참의원으로서 활동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대변인으로 나오는 경우는 있는데 이때 대변인으로는 별명이 "벽(壁, かべ)" 인데, 마땅한 대답은 하는거 같은데, 질문을 회피하거나 대답 자체를 일부러 곡해해서 동문서답을 하는 등, 의도적으로 질문을 회피하는데 기본 언변술이 좋은지라 쫓아낼 수도 없고 짜증나게 한다고, 대화가 벽보는듯 하다 해서 붙은 별명이다.[12] 이런 역할 때문에 미소노 미카 참의원 의원과 분쟁이 있기도 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미소노 미카 폭행 논란에서 다룬다.
참의원 의원으로서 공식 참여한 행사중 얼굴을 비친 행사도 몇 없었는데, 국회 개회식과 몇개의 행사나 회의에 불과하다. 다만 너무 강렬한 인상을 미소노 미카 의원이 만들어준 바람에 어쩌다보니 쪼인트 까인 후임 이미지가 되어버렸다. 이후 인터뷰로는 미소노 미카 의원과 같은 기독교 신자로서 내적 친밀감이 있다고 밝히긴 하였다.[13]
의정활동
의정 활동에 있어서 물밑에서 조용히 움직였으나, 몇몇 부분에선 강력한 목소리를 냈다. 특히 통일교 관련해서 전문가로 알려지기도 했다. 정확히는, 사이비와 사교들에 대하여 개신당 내 전문가이다.
임시 종교단체의 해산심의 필요성(臨時宗教団体の解散心の必要性) 이라는 보고서를 의원실에서 발표하기도 했다. 종교단체에 관한 의정활동 외에도, 재범방지와 같은 사회적인 부분에서 공동참여자 등의 직책으로 보조하여 활동하고 있다.
공동 조사
아사히 신문 · 도쿄대학 다니구치 연구실 공동 조사 2025년 중·참동시선거 후보자 정보 - 히무로 신카쿠 | ||
이슈 | 질문 | 답변 |
개헌 | 헌법 개정 | 찬성[14] |
정부 | 사회복지 등 정부의 서비스가 나빠져도 예산이 들지 않는 작은 정부가 더 낫다. | 반대 |
소비세 | 한시적이거나 영구적으로 소비세율을 낮춰야 한다. | 무응답 |
일자리 확충 | 공공 사업을 통한 일자리 확충은 필요하다. | 찬성 |
재정 지출 | 당장은 재정 재건을 위한 세출의 억제보다는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 투입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 반대 |
격차 해소 | A: 사회적 격차가 다소 있더라도 경제 경쟁력 향상을 우선해야 한다. B: 경제 경쟁력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격차 시정을 우선해야 한다. |
A |
재정 적자 | A: 국채는 안정적으로 소화되고 있어 재정 적자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B: 재정적자는 위기 수준이기 때문에, 국채 발행을 억제해야 한다. |
A |
부자 증세 | 소득이나 자산이 많은 사람에 대한 과세를 강화해야 한다. | 반대 |
법인세 증세 | 기업들이 내는 법인세율을 인상해야 한다. | 찬성 |
산업 | A. 국내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 B: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를 추진해야 한다. |
B |
최저임금 | 시간당 최저임금을 1700엔 이상으로 인상해야 한다. | 무응답 |
황권강화 | 황실의 권한은 확대되어야 한다. | 중립[15] |
치안·인권 |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 정보 보호 및 개인의 권리가 제한되는 것은 당연하다. | 찬성 |
마약 | 향정신성 의약품이 의료 및 일부 오락용으로 사용되는 것은 허용되어야 한다. | 반대 |
외국인 노동 | 외국인 노동자의 수용을 추진해야 한다. | 반대 |
탈원전 | A: 지금 바로 원자력 발전을 폐지해야 한다. B: 앞으로도 원자력 발전을 에너지 원의 하나로 유지해야 한다. |
B |
가족관 | A: 부부와 여러 아이들이 갖추어져 있는 형태가 가족의 기본이다. B: 한부모 가정이나 사실혼 등 가족의 형태는 다양한 것이 좋다. |
A[16] |
핵개발 | 비핵 3원칙[17] 을 견지해야 한다. | 무응답 |
국방 | 일본의 방위력은 더 강화해야 한다. | 찬성 |
선제 공격 | 타국으로부터의 공격이 예상되는 경우 선제 공격도 주저해서는 안 된다. | 무응답 |
대북관계 | 북한에 대해 대화보다 압력을 우선해야 한다. | 찬성[18] |
일본군 | 일본의 안보 강화를 위해 일본군을 다시 재건하여야 한다. | 찬성 |
미일안보조약 | A: 위기 때 미국과의 협력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미일 안보조약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B: 일본과 관계없는 전쟁에 말려들지 않도록 미일 안보조약 강화에 신중해야 한다. |
A |
중국 위협론 | A: 중국은 일본에 위협이 된다. B:일본에 있어서 중국은 파트너이다. |
A |
제2 수도 | 오사카/교토를 제2의 수도로 지정하여야 한다. | 무응답 |
도주제 | 현재의 도도부현을 폐지하고 고도의 자치권이 부여되는 주(州)로 개편하여야 한다. | 무응답 |
직능대표제 | 중의원의 비례대표를 폐지하고 직능대표제를 도입하여야 한다. | 무응답 |
'조금'의 답변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자면(どちらかと言えば)'이며 '중립'은 '어느쪽도 아니다(どちらとも言えない)'이다. |
여담
- 처음 무명 정치인 시절에서 이제 막 의원이 되었을때, 천주교 신자라고 알려졌었다. 본인은 정정을 요청하기도 했으나 이미 기사가 너무 많아져서 정정을 모두 요청할 수 없기에 그냥 방치했다고... 이후 미소노 미카 폭행 논란에서 정교회 신자인게 뒤늦게 밝혀졌다.
- 이름의 뜻은 신(申)은 별 의미가 없고, 예로부터 신선과 벗하는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지는 학(鶴)을 넣었다고 한다. 신이란 한자엔 훈계하다, 가르치다란 뜻도 있는데 이후 교수가 된것을 보면 아이러니가 있다.
- 좋아하는 음식으로는 달달한 다과를 좋아한다고 한다. 연구실이나 사무실에 가면 모나카가 없는적이 없다고...차는 씁쓸한 말차를 좋아한다. 왜냐면 모나카랑 같이 먹기가 좋아서.
- 종교를 가장한 범죄를 모두 단죄해야 한다. 라고 발언하면서, 통일교뿐만 아닌 옴진리교까지 발언하기도 하였다. 다소 흥분한듯한 목소리였다고...
소속 정당
소속 | 기간 | 비고 |
2023 - | 정계입문 |
선거 이력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정당 | 득표수 | 당락 | 비고 |
2025 | 제27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 전국 비례대표 | 000,000 (00.00%) | 당선(28위) | 초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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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대표 제27대 참의원 의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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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대 참의원 의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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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 인물 량산2
현재 레이와 개신은 2031년 8월 31일입니다. 일부 문서는 아직 업데이트 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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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자 명단 |
일본국 중의원 의원 (아이치현 2구) | ||||
제50대 후루카와 모토히사 |
→ | 제51대 난죠 예레나 |
→ | 현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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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 옐레나(イエレナ)[19], 토파즈(トパーズ)[20] | ||||||||||||||||||||||
출생 | 1979년 11월 8일 (51세) | ||||||||||||||||||||||
아이치현 나고야시 치쿠사구 | |||||||||||||||||||||||
거주지 | 교토부 미나미구 히가시쿠조 이시다초 22-26 아이치현 나고야시 치쿠사구 도메이초 2초메 20-1 | ||||||||||||||||||||||
현직 | 제51대 중의원 의원 | ||||||||||||||||||||||
서명 | |||||||||||||||||||||||
링크 | [21] | [22] | [23]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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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일본의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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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조사
아사히 신문 · 도쿄대학 다니구치 연구실 공동 조사 2025년 중·참동시선거 후보자 정보 - 사시로 토모에 | ||
이슈 | 질문 | 답변 |
개헌 | 헌법 개정 | 반대[26] |
정부 | 사회복지 등 정부의 서비스가 나빠져도 예산이 들지 않는 작은 정부가 더 낫다. | 반대 |
소비세 | 한시적이거나 영구적으로 소비세율을 낮춰야 한다. | 조금 반대 |
일자리 확충 | 공공 사업을 통한 일자리 확충은 필요하다. | 찬성 |
재정 지출 | 당장은 재정 재건을 위한 세출의 억제보다는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 투입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 조금 찬성 |
격차 해소 | A: 사회적 격차가 다소 있더라도 경제 경쟁력 향상을 우선해야 한다. B: 경제 경쟁력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격차 시정을 우선해야 한다. |
조금 B |
재정 적자 | A: 국채는 안정적으로 소화되고 있어 재정 적자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B: 재정적자는 위기 수준이기 때문에, 국채 발행을 억제해야 한다. |
A |
부자 증세 | 소득이나 자산이 많은 사람에 대한 과세를 강화해야 한다. | 찬성 |
법인세 증세 | 기업들이 내는 법인세율을 인상해야 한다. | 찬성 |
산업 | A. 국내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 B: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를 추진해야 한다. |
A |
최저임금 | 시간당 최저임금을 1700엔 이상으로 인상해야 한다. | 찬성 |
황권강화 | 황실의 권한은 확대되어야 한다. | 반대 |
치안·인권 |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 정보 보호 및 개인의 권리가 제한되는 것은 당연하다. | 반대 |
마약 | 향정신성 의약품이 의료 및 일부 오락용으로 사용되는 것은 허용되어야 한다. | 반대 |
외국인 노동 | 외국인 노동자의 수용을 추진해야 한다. | 찬성 |
탈원전 | A: 지금 바로 원자력 발전을 폐지해야 한다. B: 앞으로도 원자력 발전을 에너지 원의 하나로 유지해야 한다. |
A |
가족관 | A: 부부와 여러 아이들이 갖추어져 있는 형태가 가족의 기본이다. B: 한부모 가정이나 사실혼 등 가족의 형태는 다양한 것이 좋다. |
A |
핵개발 | 비핵 3원칙[27] 을 견지해야 한다. | 찬성 |
국방 | 일본의 방위력은 더 강화해야 한다. | 반대 |
선제 공격 | 타국으로부터의 공격이 예상되는 경우 선제 공격도 주저해서는 안 된다. | 반대 |
대북관계 | 북한에 대해 대화보다 압력을 우선해야 한다. | 반대 |
일본군 | 일본의 안보 강화를 위해 일본군을 다시 재건하여야 한다. | 반대 |
미일안보조약 | A: 위기 때 미국과의 협력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미일 안보조약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B: 일본과 관계없는 전쟁에 말려들지 않도록 미일 안보조약 강화에 신중해야 한다. |
B |
중국 위협론 | A: 중국은 일본에 위협이 된다. B:일본에 있어서 중국은 파트너이다. |
B |
제2 수도 | 오사카/교토를 제2의 수도로 지정하여야 한다. | 조금 반대 |
도주제 | 현재의 도도부현을 폐지하고 고도의 자치권이 부여되는 주(州)로 개편하여야 한다. | 조금 반대 |
직능대표제 | 중의원의 비례대표를 폐지하고 직능대표제를 도입하여야 한다. | 반대 |
'조금'의 답변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자면(どちらかと言えば)'이며 '중립'은 '어느쪽도 아니다(どちらとも言えない)'이다. |
삼회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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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자 명단 |
삼회합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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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세력 | 열풍회 (구) 평화헌법연구회 트레센 향우회 |
이유 | 개신당내 권력질서 개편에 따른 좌파의 단결 |
결과 | 열풍회 (신) 으로 흡수합병 |
대표자 | 열풍회 회장 미야미즈 미츠하 평화헌법연구회 회장 니시미야 쇼코 트레센 향우회 회장 키타산 블랙 |
개요
첫째, 열풍회와 평화헌법연구회 그리고 트레센 향우회는 열풍회로 흡수합병한다. 둘, 합병됨에 따라 각 계파의 구성원은 열풍회에 참여한다. 셋, 모든 의원들은 새로운 계파에 참여한다. 넷, 모든 정책 및 의사결정에 있어 모든 의견에 경청하는 범진보 계파가 될 수 있도록 한다. 다섯, 민주주의의 역량의 총 단합을 위하여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모든 정당과 단체 개인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동참을 호소한다. 그러나, 새로운 계파에 참여하지 않는 어떠한 개인, 정파나 단체라도 의회민주주의를 신봉하는 한 대화와 타협으로 정치발전을 위해 긴밀히 협조한다. まず、熱風会、平和憲法研究会、トレセン香友会は熱風会に吸収合併する。 二、合併すると、各派閥のメンバーは熱風会に参加します。 三、すべての議員は新しい派閥に参加します。 四、すべての政策および意思決定において、すべての意見に耳を傾ける汎進歩の派閥になるようにする。 五、民主主義の能力の総団結のために私たちと意志を共にするすべての政党と団体個人に文豪を開放し、参加を呼びかける。しかし、新しい派閥に参加しないいかなる個人、政派や団体でも議会民主主義を信奉する限り、対話と妥協で政治発展のため緊密に協力する |
삼회합회(
배경
2020년 개신당의 창당 이후 개신당 내 계파는 무수히 많은 계파들이 생겨나며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이후 내부적인 통폐합이 이루어지며 좌우와 중도와 극단을 나누어 15개 남짓하게 남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2022년이 우익이 득세하는 분위기가 되고, 23년과 24년부터 숙적이라 할 수 있는 레이와 정책연구회와 그 정책연구회의 분신이면서도 전국적인 계파인 개신퍼스트회의 등장, 바다를 보는 모임의 득세, 신잔의 죽음, 아카 쿠레나이가 자취를 감추고 사라진 진보계파 열풍회의 해산과 나구모 시노부의 몰락과 스파르타쿠스의 모임의 등장, SOS단의 수장 스즈미야 하루히가 확실한 대권주자가 되고 마도카가 여성천황이 되는 등 온갖 정치적인 사건사고와 변수가 난무하는 가운데, 점점 규합하는 개신당내 우익들에 비해 분열된 개신당내 좌파들은 그 위치가 점점 불안해지고 있었다.[28]
이러한 상황에서 점점 다가오는 제2차 개신당 전당대회는 열풍회에겐 큰 부담이었다. 따라서, 좌익계열의 계파들이 연합하여 강한 세를 가져야 한다는 논리가 점점 퍼지고 있었고, 아케미 호무라가 천황의 황후가 되고 프린츠 오이겐이나 블라디레나 밀리제와 같은 우익정치인들이 득세할수록 점점 위기감은 고조되었다, 따라서 전당대회에서 대반격을 위해 원래 정책노선이 비슷했던 열풍회와 평화헌법연구회가 처음 중진들이 모여 처음 논의를 시작하였고, 논의가 진행되던 도중 트레센의 해산 이후 남은 진보성향의 의원모임인 트레센 향우회가 참여하며 3회 합회의 틀이 갖추어졌고, 2023년 7월경 세 계파의 중진들이 연합회의를 개최하며 대외적으로 삼회합회가 구설수에 오르게 되었다.
여기서, 혁신진영 3개 계파중 나머지 계파인 패트레이버의 모임(현재의 스파르타쿠스)는 나구모 시노부가 거절하면서 합회 대열에서 이탈하였고, 적녹회는 당시까지 존재하였으나 아카 쿠레나이가 합회 거절의사를 밝혔다. 이후 2024년은 대격변이 있었다. 적녹회가 갑자기 붕괴하고 개신퍼스트회가 창설되고, 나구모 시노부가 대외에서 물러나고 스에히로 아나스타샤와 같은 신규 정치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더불어, 네르프의 붕괴론이 점점 더 제기되어오고 있었다.
가장 큰 사건은 2024년 마도카가 일본 천황으로 즉위한것이다. 이는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개신당에선 천황에 대한 여러 의견이 오갔고, 혁신 진영에서는 통일된 입장으로는 확실한 입장을 표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우익에서 입장이 명확하여 분열된것과 달리 좌익은 이미 분열된 상태에서 천황제를 얼마나 동조하고 인정하는지가 서로 모두 다르기 때문에 입장이 충돌하며 하나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였기 때문에, 국민적인 신뢰가 점점 우익으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후 3개 계파는 합회를 결정하고선 어떻게 합회할것인지에 대해 논의하였고, 1년에 가까운 논의는 제2차 개신당 전당대회의 성적을 저조하게 만들었으나, 결국 열풍회의 흡수합당이 결정되며 범진보적 계파 설립이 성사되었다.
전개
모든 논의는 2022년 후반기에 거슬러 올라간다. 개신당의 창설 이후 초반에 조금 더 우세하던 좌파 개신당 세력(이하 좌익블록)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우파 개신당 세력(이하 우익블록)에 열세로 몰리는 상황이었다. 이는 여러 사건이 있었으나, 일단 당대까지만 해도 절대적인 영향력이 있었던 총리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나 22년 정국에서 주요인물인 블라디레나 밀리제, 그리고 아케미 호무라 당시 법무대신인 사토 일레이나, 그리고 어떤 일상의 연구회의 미사카 미코토[29], 이계를 생각하는 모임의 유우키 아스나[30]와 같은 중진들이 다수인데 반해 좌익 개신당엔 열풍회엔 호시코시 지로, 조금 인지도가 떨어지는 니시미야 쇼코나 적녹회의 수장이던 아카 쿠레나이. 그리고 안티가 많은 패트레이버의 모임의 나구모 시노부가 좌익블록의 대표주자들이었다.
하지만 제1차 소류 개조내각에 들어서자 상황은 달라진다. 개신당 자체의 세력은 분명히 강화되었으나 우익블록이 내각의 과반을 차지하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더불어 열풍회가 레이와 정책연구회, 그리고 어떤 일상의 연구회와 내각과 상임위원회 분배에서 갈등을 보이며 좌익이 다소 뒤쳐지는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하였다. 비록 좌익세력이 개신당 자체의 설립에 큰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에 이는 당시까지는 비약이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2023년 정국에 들어선 이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보수에게 있어서 큰 사건으로 여겨질만한 것은 미사카 미코토의 미사카 미코토 성상납 사건으로 징계를 받는 등 도덕적 해이로 인한 개신당 보수에 대한 비판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나 곧바로 같은 보수파벌인 레이와 정책연구회나 네르프와 같은 보수파벌이 스스로 쇄신을 말하며 미사카 미코토를 담궈버리는 바람에 분위기 환기에 성공시켜 노를 젓지 못하였다.
또한 사토 일레이나가 오사카도의 도지사로 간것 또한 보수에겐 여러 변수중 하나로 작용했다. 더불어 유우키 아스나의 성매매 논란까지 터지며 전체적으로 보수에게 좋은 뉴스는 적은 편이었다. 하지만 온건보수와 달리 극우는 성장하였다. 바다를 보는 모임의 블라디레나 밀리제가 보수세력에서 부상하고, 날이 갈수록 샤프트의 아케미 호무라와 카나메 마도카의 인지도는 오르고 있었다.
물론 2023년엔 온건좌익에겐 별 뉴스가 없었으나 좌익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는 나구모 시노부의 사건사고가 잇달아 일어났다. 당시 극좌는 몰락 직전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 몰리게 될 정도였다. 하지만 극우의 성장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는 몇몇 인물들이 있었고, 평화헌법연구회와 열풍회는 한배를 탄다는 정치적 동맹을 사실상 맺게 되었다. 이는 현재의 합병에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진짜 위기는 2024년에 다가오고 있었다.
어떤 일상의 연구회 붕괴
미사카 미코토를 중심으로 있던 거대계파 어떤 일상의 연구회가 미사카 미코토 성상납 사건으로 붕괴하고 후신으로 일본 청춘단이 등장하는 일이 있었다. 트레센처럼 한순간에 공중분해되기보단 2022년에 미사카 미코토가 실각되고 2024년까지 천천히 하락세를 걷다가 결국 2024년 인력 유출과 하락세를 견디지 못하고 해산하게 된 것이다.
미사카 미코토가 당시 당내에서 2인자로 불리며 거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것에 비해 순식간에 침몰하듯 무너지자 계파는 점점 부서져갔고, 이로서 온건보수와 보수본류파의 입지가 흔들리는 계기가 되었다.
신잔의 갑작스런 사망
2024년, 7월에 마츠카제 신잔의 부고가 있었다. 좌익의 거두로서 개신당내 페미니즘과 정치원로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던 인물이 한순간에 가버리자, 트레센은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트레센은 이후 우익과 좌익으로 갈라졋고, 계파 내 중진들중 사일런스 스즈카를 필두로 아그네스 타키온, 멘하탄 카페가 우익계파로 이적하였고, 키타산 블랙과 그녀를 따르는 몇 인물만이 신잔의 유지를 이어 좌익활동을 계속하게 되었다. 이때 지금의 트레센 향우회가 생겨나게 되었다.
이로서 거대계파중 하나였던 트레센이 붕괴하자 정치구조에 다시 한번 큰 변화가 찾아왔고, 트레센에서 유출된 인원중 상당수가 우익블록에 가담하며 점점 저울추는 기울어지고 있었다.
소류 개조내각에서 우파 개신당의 과반 입각
제1차 소류 내각은 보수진영 13명, 진보진영 11명으로 거의 엇비슷하게 내각에 참여하고 있었다.[31]하지만 개조내각에서 큰 변화가 나타났다. 보수 19명과 진보 12명으로 격차가 매우 벌어지게 된 것이었다. 이렇게 된것은 특명담당대신직이 늘어간 것도 있지만 보수가 진보를 행정부에서 앞질르게 되었다는것에서 큰 사건이었다.
상임위원회나 개신당 당직자는 진보인사와 보수인사가 꽤 균등하게 분배된 편이었고, 제1차 소류내각까지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내각에서 저울추가 기울어지자 점점 진보세력에게 있어서 위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보수에게 밀린다는 주장이 비약이 아니라 진실이 되어버린 첫번째 사건이 되고야 말았다.
사토 일레이나의 오사카도지사 출마
호리코시 지로는 사토 일레이나가 오사카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여 당에 책임을 져야 한다 주장하였다. 이는 당시 법무대신이란 중책을 맡고있었던 사토 일레이나를 중앙정계에서 끌어내기 위한 수 였다.
사토 일레이나는 이에 응수하였고, 곧 의원직을 사임하고 오사카도지사 선거에 출마한다. 지로의 계획대로면 낙선하는거였고, 실제로 당선 가능성은 희박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사토 일레이나가 선거에 당선되면서 오히려 그쪽에 거점을 마련하는 상황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적녹회 붕괴
멀쩡하게 있던 혁신계열 계파인 적녹회가 2025년 결국 붕괴하게 되었다. 그 이유로는 아카 쿠레나이의 탈주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카 쿠레나이는 일방적으로 계파를 해산하고선 당을 탈퇴하고 한국으로 떠났다. 이는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한국으로 떠난 아카 쿠레나이를 추적했으나 결국 잡지 못하고 적녹회에선 중진들이 불출마를 선언하며 2025년 계파는 사멸하였다.
호리코시 지로의 도쿄도지사 출마
호리코시 지로는 책임론으로 사토 일레이나의 주장에 도쿄도지사에 출마하였고, 열풍회의 당권을 미야미즈 미츠하에게 넘기고선 출마하였다.
이는 호리코시 지로가 중앙정계에서 물러나면서도, 간접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참동시선
우파의 수적우위
카나메 마도카의 천황 즉위
제2회 개신당 전당대회
결과
결과적으로, 삼회합회로 참의원 18석, 중의원 56석의 명백한 대형파벌로 진화하는데 성공하였고, 좌파의 맹주로서 온전히 기능할 수 있게 되었으며 상대적 수적 열세에서 단결된 힘으로 사실상의 우위를 넘볼 수 있게 되었다. 이로서 확실히 키보토스를 제외하곤 혁신파 모두를 흡수한 것이 되었다.[32] 또한 지역적 기반인 도카이 이외의 전국적인 계파가 된 것 또한 큰 발전이다.
다만, 세개의 계파가 합쳐진만큼 계파 내 정치는 당분간 매우 혼란스럽다. 합의에 따라서 계파의 회장은 미야미즈 미츠하 총무대신이 맡게 되었으나, 기존의 니시미야 쇼코나 키타산 블랙같은 주역들, 그리고 기존의 중진인 유키노 유카리나 부겐빌리아 바이올렛과 같은 인물들 또한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새로운 열풍회 회칙 제정에 있어서 제동이 걸리고 있는 상황이다.
평가
신열풍회
현재 레이와 개신은 2031년 8월 31일입니다. 일부 문서는 아직 업데이트 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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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자 명단 |
열풍회 烈風会 미츠하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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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년도 | 청년정치연구회 2009년 8월 15일 2014년 5월 1일 2026년 n월 n일 |
명칭 변경 | 2022년 6월 5일 (열풍회) |
단가 | 벼랑 위의 포뇨 (崖の上のポニョ) |
회장 | 미야미즈 미츠하 |
설립자 | 호리코시 지로 |
성향 | 좌익 빅 텐트 (중도좌파 ~ 극좌) |
이념 | 사회주의 평화주의 생태주의 |
주요 인물 | 미야미즈 미츠하 (회장) 호리코시 지로 (최고고문) 니시미야 쇼코 (고문/수석부회장) 키타산 블랙 (고문/수석부회장) 유키노 유카리 (부회장) 부겐빌리아 바이올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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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 신시대 개막[33] |
개요
개신당의 계파중 하나. 개신당 내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대표주자로서, 3회합회를 통해 구 열풍회, 평화헌법연구회, 트레센 향우회가 연합하여 결성된 범진보 스펙트럼을 지니는 계파이다. 현재 수장은 구 열풍회때부터 현재까지 집권중인 미야미즈 미츠하.
명칭
진보정치연구회 시절 호리코시 지로가 맨날 말하고 다니던 열풍을 만들자라는 발언에서 착안해 단 30분만에 지어진 이름이다, 3합합회때도 열풍회에 흡수합병이란 결론을 지었기에 이 명칭을 계속 사용하게 되었다.
역사
2009년에 호리코시 지로가 세운 청년정치연구회와 마찬가지로 호리코시 지로가 2014년에 세운 진보정치연구회를 전신으로 하고있다. 이들 두 단체는 자민당의 독주를 타파하고 청년층에서 진보적 의제를 불러일으키자는 의도로 발족된 단체로 민주당, 사회민주당, 일본공산당 등 진보적인 의제를 다룬다면 당적에 상관없이 참여할 수 있던 정치 동호회였다.[34]
이 연구회의 성격이 바뀌게 되는 계기는 2022년의 개신당 창당이었다. 호리코시 지로는 청년 정치와 탈기성정치를 표방하는 개신당 창준위에 합류하면서 기존 진보정치연구회의 회원들을 대거 개신당으로 영입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청년정치연구회·진보정치연구회에 소속되었다가 영입된 사람들을 열풍회 구파라고 부르는데, 대표적인 인물로 미야미즈 미츠하 총무대신, 유키노 유카리 문부과학대신이 있다.
또, 지로는 창준위 발족과 동시에 진보정치연구회의 이름을 열풍회로 바꿔달고 자신이 현의회 의원을 맡고있던 미에현과 도카이 지방, 약 10년간 정치활동을 했던 도쿄를 중심으로 청년들을 대거 입당시킨다. 선풍적인 개신당 인기에 개신당 사이트가 다운되자 입당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1종 대형 면허를 따고 사비로 관광버스를 빌려 '움직이는 개신당'이라는 버스를 운전하며 입당원서를 받은 것은 유명하다. 이 개신당 창당 시점에 영입된 사람들을 열풍회 신파라고 부르며, 대표적인 인물로 스즈카제 아오바 열풍회 수석부회장이 있다.
이러한 호리코시 지로의 헌신과 관광버스 렌탈비에 힘입어 50회 중원선에서 30석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며 SOS단, 어느 일상의 연구회에 이은 당내 제3회파로 오르게 된다. 하지만, 공천 과정에서 열풍회 소속 후보가 지로가 몸담고 있던 미에현, 그리고 도카이에 주로 공천된 것은 계파 확장성의 측면에서 아쉽다고 평가된다.
50회 중원선의 개신당 돌풍 이후 집권한 소류 내각에서 니시미야파라고 불리우는 평화헌법연구회와 협동했으나 두 계파를 합쳐 3개의 대신직을 얻는데 그쳤다. 이후 이뤄진 당직 배분 과정과 국회 상임위원회 배분 과정에서 대신직 분배 문제와 겹치면서 레이와 정책연구회와 갈등을 빚게 되고 열풍회와 정책적으로 대척점에 있는, 그 중에서도 규모가 큰 어느 일상의 연구회과 함께 레이와 정책연구회는 열풍회와 앙숙이 되었다.
이후 제2차 개신당 당대회 이후에 부진한 성적을 거둔 진보는, 3자 합당 논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삼회합회를 통해 거대한 단일파벌인 신(新) 열풍회로 재탄생하였다. 이전까지 열풍회 신파와 구파 인물들은 모두 열풍회 구파 라고 통합되어 불리게 되었고, 삼회합회이후 영입된 사람들을 열풍회 신파 라고 부르게 되었다.
성향
역대 회장 목록
대수 | 이름 | 파벌 호칭 | 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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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호리코시 지로 | 지로파 | 2022년 ~ 2024년 |
2 | 미야미즈 미츠하 | 미츠하파 | 2024년 ~ |
2 | 미야미즈 미츠하 | 미츠하파 | 2026년 ~[35] |
지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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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디스 이즈 스파르타
현재 레이와 개신은 2031년 8월 31일입니다. 일부 문서는 아직 업데이트 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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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자 명단 |
개신당의 계파 분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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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쿠스의 모임 スパルタクスの集まり 아냐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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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년도 | 1955년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 2024년 (계승) |
회장 | 스에히로 아나스타샤 |
성향 | 극좌~좌익 |
표어 | 흔들림 없는 과감한 혁신, 타협하지 않는 양심 揺れのない大胆な革新、妥協のない良心 |
참의원 | 5석 / 90석 (5.6%) |
중의원 | 12석 / 360석 (3.3%) |
이념 | 공산주의[36] 마르크스-레닌주의[36] 유럽공산주의 공화주의 마르크스주의적 페미니즘 자유민주적 마르크스주의 주체사상[37] 마오주의[38] 혁명적 사회주의[38] |
주요 인물 | 스에히로 아나스타샤 (회장) 나츠나기 시에스타 (부회장) 사쿠라 바쿠신 (농림수산대신) 시키에이키 야마자나두 (부흥대신) 히메카이도 하타테 (특명담당대신) |
관보 | [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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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2026 상반기 포스터 - 우선 인간이 되자. [40][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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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가 - 강풍투쟁 (強風闘争)[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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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스파르타쿠스의 모임 (일본어: スパルタクスの集まり)은 개신당의 가장 극좌에 속하는 당내 조직으로 시뮬라크르 현상 연구소와 함께 당내 극좌파벌에 속한다, 정통적인 사회주의 노선에 충실하여 가장 급진적인 사회주의 혁명을 통한 노동자,여성,사회소외계층 해방과 점진적 군주제 폐지, 점진적 공화제 전환을 주장하는 당내 파벌이다.
후생노동대신 절대지켜
현재 레이와 개신은 2031년 8월 31일입니다. 일부 문서는 아직 업데이트 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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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자 명단 |
스에히로 아나스타샤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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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화 전 본명 | 아나스타샤 바실리예비치 리바코바 Анастасия Васильевна Рыбакова | ||||||||||||||||||||||||||||
출생 | 1999년 9월 19일 (31세) | ||||||||||||||||||||||||||||
훗카이도 미사카시 | |||||||||||||||||||||||||||||
사저 | 구마모토 현 고시시 토요오카 861-1115 | ||||||||||||||||||||||||||||
거주지 | 도쿄도 미나토구 아카사카 2초메 17-10[43] | ||||||||||||||||||||||||||||
소속 계파 | 스파르타쿠스의 모임 (회장) | ||||||||||||||||||||||||||||
현직 | 제51대 중의원 의원 | ||||||||||||||||||||||||||||
재임기간 | 제51대 중의원 의원 | ||||||||||||||||||||||||||||
2025 ~ 현재 | |||||||||||||||||||||||||||||
서명 | [44] | | ||||||||||||||||||||||||||||
링크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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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중력
개신당의 계파 분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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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중력세계 無重力世界 에밀리아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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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년도 | 2025년 |
회장 | 사테라 에밀리아 |
설립자 | 사테라 에밀리아 오카베 린타로 |
이념 | 보수자유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신자유주의 개발우선주의 과학지상주의 능력주의 |
성향 | 중도우파 ~ 우익 |
참의원 | 0석 / 90석 (0%) |
중의원 | 29석 / 360석 (3.9%) |
주요 인물 | 사테라 에밀리아 (회장) 오카베 린타로 (부회장) 츠네모리 아카네 (상임간사) 나츠키 스바루 (상임간사) 니알라토텝 냐루코 아이리스 아나 아르메리아 |
상징색 | 아인크라드 블루(#2B90BC) |
퓨쳐 민트(#66CDBB)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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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포스터 -「New World」 |
개요
개신당의 파벌 중 하나. 이계를 생각하는 모임의 회장인 사테라 에밀리아와 미래과학연구회의 회장인 오카베 린타로, 그리고 네르프의 스트렐라치아 제로투, 이카리 신지가 합세하여 만든 계파이다. 나름 네르프의 전신되는 정경숙인 겐도숙을 계승하여 운영하며, 계파의 모토로 "불완전한 인간세계를 완전하게"라 선언하며 세개의 계파가 합당하여 탄생하게 되었다.
명칭이 무중력 세계인 이유는, 목표로 하는 아인크라드가 공중에 떠있는 100층의 암석과 강철로 이루어진 부유섬이자 부유성이기 때문이며, 새로운 세계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담은 명칭이라고 한다.[49]
이념
이념적으로는 기술발전을 통한 아인크라드의 구축으로 인류보완계획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자유로운 경제활동과 급진적이고 철저한 과학의 개발이 필수적이며,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필요하다는게 이 계파의 주장이다. 급진적인 테크노크라트들인 미래과학연구회와 과학지상주의적 이상주의자인 이계를 생각하는 모임, 그리고 불완전한 인간의 관념을 온전히 기계로 지배하여 완전히 고통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인류보완계획 이념이 결합하여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계를 생각하는 모임의 계보를 이어서, 독립된 과학기술 발전을 원칙으로 삼고,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메타버스 사업을 국책사업으로 삼을것을 요구하며 아인크라드를 제2의 국토로 삼고, 이곳을 인류보완의 근거지로 삼아 완전한 세계로 만들어야 한다 주장한다. 주된 지지층은 도쿄에 거주하는 고학력, 고소득층, 일부 사토리 세대의 청년층 히키코모리 계층이 지지층이다. 완전히 상반된 두 지지층이 공존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지만, 실제 당무도 연구소와 정치·정책 사무는 또 별개로 진행되는만큼 두 계파의 지지층이 융화되어 있다.
특징
이들의 특징은 상당히 괴짜스러운 면모가 많다는 점이다. 이계를 생각하는 모임 시절부터 다소 황당하다는 지적은 많았으며, 테크노크라트이자 괴팍한 집단인 미래과학연구회와 합병한 이후엔 그러한 면모가 훨씬 강하게 되었다.
중앙 사무실
시즈오카시에 위치한 무중력연구소(無重力研究所) |
계파중 네르프가 해체되고, 기존 네르프의 사무실을 진취회가 가져가게 되는 바람에, 결국 에밀리아파의 본거지쯤 되는 시즈오카로 사무실을 이전해야만 했고, 연구공간과 여러가지를 고려했을때 공터를 사서 건축하는것이 합당하다고 결정되었고 최대한 건축비용을 아끼기 위해 컨테이너 박스를 이용해 건물을 짓게 되었다.
현재는 시즈오카의 명물, 혹은 시즈오카의 흉물이라는 두가지 상반된 평가를 듣는 특이한 건물이 지어지게 되었다. 건물 명칭은 무중력연구소(無重力研究所). 연구소장은 오카베 린타로 부회장이다. 현재 아인크라드의 구축을 위한 서버실이자 여러 과학연구가 이루어지는 연구소이자 계파의 사무실로서 사용되고 있으며, 선거철엔 마당에 개신당 홍보물을 풍선에 달아서 크게 띄워놓는다.
현재 중앙 사무실은 시즈오카에, 도쿄에는 아키하바라에 사무실이 위치하고 있다.
지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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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회장 목록
대수 | 이름 | 파벌 호칭 | 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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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사테라 에밀리아 | 에밀리아파 | 2025년 ~ |
각주
법정단
법치와 정의단 法治と正義団 마키마파 | |
형성 | 2025년 |
슬로건 | 正義社会の実現 정의사회의 실현 |
설립자 | 유키노시타 유키노 |
회장 | 쿠스노키 마키마 |
이념 | 법치주의 사법국가 대안우파 호모포비아 능력지상주의 보수주의 |
성향 | 보수 |
참의원 | 0석 / 90석 (0%) |
---|---|
중의원 | 20석 / 360석 (6.9%) |
주요 정치인 | 쿠스노키 마키마 (회장) 이토 카프카 (부회장) 히키가야 하치만 (상임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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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포스터 - 파사현정(破邪顯正).[50] |
개요
개신당의 파벌중 하나. 제2회 개신당 전당대회 이후 유키노시타 유키노의 다소 떨어진 리더쉽을 기회로 쿠스노키 마키마와 이토 카프카가 기습적으로 총회를 열어버려서[51] 현재 리더인 유키노를 완력싸움으로 이겨 방출시키고 계파를 접수하여 재설립되었다.
로고는 동그란 모양의 파도로, 거친 파도를 형상화 함으로써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였다 한다.
계파정리안
극좌·좌익 | 중도좌파 | 중도우파 | 극우·우익 |
---|---|---|---|
열풍회 | SOS단 | 법치와
정의단 |
레이와정책
연구회 |
시뮬라크르
현상 연구소 |
우정을 만드는 모임 | 무중력
세계 |
개신퍼스트회 |
스타르타쿠스의
모임 |
슈카군 | 진취회 | 샤프트+바다
(가)보익정우회 |
개신의 회 | 실력지상주의서클 |
- ↑ 참의원 의원 숙소
- ↑ 처음에 천주교로 잘못 알려졌었다. 세례명인 올림피아스는 천주교에서도 공경하는 성인이기 때문.
- ↑ 기독교 윤리 전공
- ↑ 복수전공, 학부 졸업논문 『アウグスティヌス主義と現代キリスト教哲学との相関 (2016)』
- ↑ 정교회 교의학 전공, 석사논문 『Η ιστορική διαδικασία διαμόρφωσης και η σημασία της Θείας Ευχαριστιακής Λειτουργίας του Ιωάννη του Χρυσοστόμου. (2018, 지도교수 Αθανάσιος Ποτολεμαίος)』
- ↑ 정교회 역사신학 전공, 박사논문 『Σύγκριση του ιεραποστολικού έργου του Ιωάννη Χρυσοστόμου στη Δακία και του Ορθόδοξου ιεραποστολικού έργου στην Ιαπωνία και της ιστορικής σχέσης της Ορθόδοξης Εκκλησίας με τους Καθολικούς Ιησουίτες. (2023, 지도교수 Ηράκλειτος Θεόφιλος)』
- ↑ 고등학교 입학 직후 어머니의 제안과 신부의 승인으로 정교회로 개종하게 되었다.
- ↑ 『아우구스티누스주의와 현대 기독교 철학 간의 상관 관계 (2016)』
- ↑ 교의학이라곤 하지만 실제로는 전례학을 더 많이 배운거같다고 말하였다.
- ↑ 『요한 크리소스토모스의 성찬예배의 역사적 형성과정과 의의 (2018, 지도교수 아타나시오스 프톨로마이오스)』
- ↑ 『요한 크리소스토모스의 다키아 선교사업과 일본에서의 정교회 선교의 비교 및 정교회와 가톨릭 예수회와의 역사적 관계. (2023, 지도교수 헤라클레이토스 테오필루스)』
- ↑ 실제로 어떤 대답을 해야할때는 대변인으로 알트리아 펜드래곤이 나온다.
- ↑ 그러면서 이단이라고 소리친건 안비밀이다.
- ↑ 어떤 부분을 바꾸어야 하는지는 답하지 않았다.
- ↑ 국교가 기독교가 아닌 국가에서는 대답할 수 없다고 답하였다.
- ↑ 강력히 강조하였다.
- ↑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
- ↑ 종교를 탄압하는 국가라고 비난하였다.
- ↑ 유튜브에서 사용한 별명이다.
- ↑ 이름인 황옥은 영어로 토파즈이다.
- ↑ 원래 사용하던 유튜브이다.
- ↑ 본방송의 클립과 쇼츠를 올리는 곳이다.
- ↑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곳이다, 자신의 의정활동과 기타 행보를 홍보하는 용도로 쓰인다. 구독자가 제일 적다.
- ↑ 어떠한 입장도 밝힌 바 없다.
- ↑ 공동성립자로서 전체 주주중 5위 정도의 지분이 있다, 출근하지 않지만 사무실은 있으며, 공식 직분은 CE이다.
- ↑ 일본국 헌법 제9조 폐지 반대
- ↑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
- ↑ 정확히는 혁신계열의 계파들.
- ↑ 당시까지 미사카 미코토는 당내 2인자로 여겨질정도로 중대한 인물이었다.
- ↑ 처음에 이미지가 좋았다. 하지만 미사카 미코토처럼 성에 관련한 도덕적 해이로 이미지가 나락을 찍었다.
- ↑ 정치성향이 보수, 진보로 딱 나눠지지 않는 인물들을 제외하면 약 보수 9~10명과 진보 7~8명 정도이다.
- ↑ 스파르타쿠스의 모임과 시뮬라크르 연구소는 혁명파로 구별한다.
- ↑ 포스터 속 인물은 열풍회 회장 미야미즈 미츠하
- ↑ 청년정치연구회와 진보정치연구회는 사실상 같은 단체로 본다.
- ↑ 삼회합회 이후 구별.
- ↑ 36.0 36.1 헌장에서 명시하고 있으며, 명목상 공산주의를 추종한다. 다만, 무력혁명과 같은 부분에 있어선 매우 온건하게 되었다.
- ↑ 중직인 사쿠라 바쿠신이 주된 인물이다.
- ↑ 38.0 38.1 나구모 시노부가 지역구에서 탈락하며 고문위원회 자체가 그냥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고, 쿠사나기 모토코는 원래 혁명운동에 소극적인데다 고토 키이치 초선 의원은 무력혁명에 이미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 밝혀 사실상 사장된 이념이 되었다.
- ↑ 공식 관보는 아니지만 사실상 관보로 취급받는다.
- ↑ 포스터 속 인물은 중의원 의원이자 회장인 스에히로 아나스타샤.
- ↑ 1987년, 일본국유철도 분할민영화때 자결한 200여명의 노동조합원을 기리고 열악한 노동현실을 알리는 의미로 선정되었다고 홈페이지에서 밝혔다.
- ↑ 과거에는 전진하는 사회주의 (前進する社会主義)를 주로 불렀고, 현재엔 강풍투쟁과 인간의 노래(人間の歌)를 주로 부른다.
- ↑ 중의원 의원 숙소
- ↑ 서명은 이름이 길어서 성씨만 대부분 쓴다, 본인의 이름을 한문으로 다 쓰면 이렇게 쓴다.
- ↑ 러시아계 이민자이다.
- ↑ 처음 러시아에서 살았을때는 러시아 정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았고, 일본으로 정착 이후엔 일본 정교회, 대학 입학 이후 냉담자를 거쳐 현재엔 무신론자가 되었다.
- ↑ 유아세례때 받은 이름은 알렉산드리아의 성 카타리나
- ↑ 한때 잠깐 수배령이 내려진적이 있었다. 현상금은 50만엔, 결국 자수를 했으나 인권변호사의 도움으로 무혐의로 풀려나게 되었다.
- ↑ 실제로는 서울의 청년공간인 "무중력지대"를 모티브로 삼았다. 로고 또한 모티브이다.
- ↑ 포스터 속 인물은 법치와 정의단 회장인 쿠스노키 마키마.
- ↑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요설과 음해라며 맞섰지만 결국 완력싸움에서 패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