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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9일 (금) 12:02 판
이 시대 재임했던 황제에 대한 설명은 소황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한의 연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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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무 시대 建武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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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 | 1973년 1월 1일 | |
종막 | 1974년 12월 31일 | |
황제 | 회종 애황제 | |
내각총리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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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1928년부터 1971년까지 쓰인 대한제국의 연호.
소황제가 세조 광무제가 왕망을 꺾고 한나라를 재조한 것처럼 장차 자신이 장성하여 대한을 제조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담아 광무제의 연호였던 건무를 본따 선정했지만, 소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즉위한 고조가 이 연호를 무효화하여 1972년을 이전의 연호인 대흥(大興)으로 표기하도록 했고[1] 그 다음 해인 1973년부터 성녕의 연호를 쓰게 하였다.
현대 대한에서 건무라는 연호는 사용된 시기가 너무 짧다는 점과, 고조의 습용 정책으로 의하여 역사책에 한두번 등장하는 것 외에는 사실상 사용되지 않는다.
사건
기타
- ↑ 이에 따르면 1972년은 대흥 45년이 된다. 이렇게 정통성 문제로 새 연호를 쓰지 않으려는 차원에서, 개원이나 황제의 붕어 등으로 대체된 기존 연호를 일부러 계속 쓰는 것을 전문 용어로 '습용'(襲用)이라고 한다. 다른 예시를 들자면, 삼국지에서 연초에 조조가 죽고 몇 달 뒤 한-위 선양이 일어난 220년에 건안 연호가 폐기되었는데, 촉한ㆍ동오는 220년에 연호를 바로 바꾸지 않고 습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