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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월 27일, 재계 순위 18위의 한보 그룹이 뇌물 수수 등 불법 행위를 저지른 것이 발각되어 지게 된 5조 가량의 빚을 이겨내지 못하고 도산한 것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에 유례 없는 금융 위기가 닥쳐오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주요 대기업들이 도산하고 1달러 당 원 환율이 2000원을 돌파했다. 문민정부의 지지율은 결국 한 자릿수까지 떨어지게 된다. 그러던 와중 당시 [[통일교 (돌아이)|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총재였던 [[문선명 (돌아이)|문선명]]이 문민정부에게 접근하여 "통일교를 국교로 선포하고 여의도에 통일교 세계 본부를 세우는 것을 허가한다면 한국이 지고 있는 빚 전체를 갚아주겠다"고 제안한다.
1997년 1월 27일, 재계 순위 18위의 한보 그룹이 뇌물 수수 등 불법 행위를 저지른 것이 발각되어 지게 된 5조 가량의 빚을 이겨내지 못하고 도산한 것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에 유례 없는 금융 위기가 닥쳐오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주요 대기업들이 도산하고 1달러 당 원 환율이 2000원을 돌파했다. 문민정부의 지지율은 결국 한 자릿수까지 떨어지게 된다. 그러던 와중 당시 [[통일교 (돌아이)|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총재였던 [[문선명 (돌아이)|문선명]]이 문민정부에게 접근하여 "통일교를 국교로 선포하고 여의도에 통일교 세계 본부를 세우는 것을 허가한다면 한국이 지고 있는 빚 전체를 갚아주겠다"고 제안한다.


당시 궁지에 물려 물불 가리지 않고 급한 불을 꺼야 했던 대통령 김영삼과 한나라당은 이에 혹하여 자유민주연합과 민주당, 무소속 인사들을 포섭하여 통일교 국교 지정을 내포한 10차 개헌을 단행한다. 당시 야당이었던 새정치국민회의는 정교분리 원칙 위배라며 이러한 개헌 단행에 적극적으로 발발, 이쪽도 민주당과 무소속 인사들을 영입하여 개헌을 최대한 저지하려고 했으나 결국 당시 재적 299석 중 200석이 개헌 찬성, '''단 한 석 차이로''' 개헌안이 통과되어 국민투표에 회부되었다. 새정치국민회의는 국민투표 반대 운동을 벌였으나 국민투표에 참여한 유권자 32,290,415명 중 16,145,208명이 찬성, '''단 한 명 차이로''' 국민투표에서 개헌안이 가결되어 1998년 1월 1일, '''통일교가 대한민국의 국교로 선포되었다.'''
당시 궁지에 몰려 물불 가리지 않고 급한 불을 꺼야 했던 대통령 김영삼과 한나라당은 이에 혹하여 자유민주연합과 민주당, 무소속 인사들을 포섭하여 통일교 국교 지정을 내포한 10차 개헌을 단행한다. 당시 야당이었던 새정치국민회의는 정교분리 원칙 위배라며 이러한 개헌 단행에 적극적으로 발발, 이쪽도 민주당과 무소속 인사들을 영입하여 개헌을 최대한 저지하려고 했으나 결국 당시 재적 299석 중 200석이 개헌 찬성, '''단 한 석 차이로''' 개헌안이 통과되어 국민투표에 회부되었다. 새정치국민회의는 국민투표 반대 운동을 벌였으나 국민투표에 참여한 유권자 32,290,415명 중 16,145,208명이 찬성, '''단 한 명 차이로''' 국민투표에서 개헌안이 가결되어 1998년 1월 1일, '''통일교가 대한민국의 국교로 선포되었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당시 아시아 전역에 닥친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으나 이로 인해 대한민국은 통일교에게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완전히 종속된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한편 국가적 위기가 닥쳐온 것은 북한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은 1995년부터 이미 고난의 행군 체제에 돌입하여 경제적으로 매우 빈곤한 상태에 처하게 되었는데 여기에 다시 문선명 총재가 북한에게 손을 뻗어 김일성과 회담하여 북한의 경제 개방과 통일교의 선교 활동을 보장하는 대가로 북한에게 처한 경제적 위기를 통일교가 전부 부담하여 해결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렇게 북한마저 통일교의 영향력에 종속되었다.


== 영향을 받은 매체 ==
== 영향을 받은 매체 ==

2024년 11월 13일 (수) 20:50 판

[ 세계관 설명 ]

돌아이는 "만일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통일교가 국교로 제정됐다면?" 이라는 상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브위키의 대체역사 세계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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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이
Dol-A-I
장르 대체역사
참여자 벨지엄
연재 시작일 2024년 11월 13일
(연재 시작일로부터 +1일, 0주년)
상징 색 초록색 (#849E7D)
라이선스 [1]

라이선스 제공하지 않음[2]

개요


이 청춘 다 져서 뭘 하오
차라리 돌이 되어 구르리
저기 저기 달이 지고 해가 뜨는 산 넘어
멀리 멀리 정처 없이 구르리

돌아이 - 문효진

이브위키의 대체역사 단편 세계관.

상세

1997년 1월 27일, 재계 순위 18위의 한보 그룹이 뇌물 수수 등 불법 행위를 저지른 것이 발각되어 지게 된 5조 가량의 빚을 이겨내지 못하고 도산한 것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에 유례 없는 금융 위기가 닥쳐오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주요 대기업들이 도산하고 1달러 당 원 환율이 2000원을 돌파했다. 문민정부의 지지율은 결국 한 자릿수까지 떨어지게 된다. 그러던 와중 당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총재였던 문선명이 문민정부에게 접근하여 "통일교를 국교로 선포하고 여의도에 통일교 세계 본부를 세우는 것을 허가한다면 한국이 지고 있는 빚 전체를 갚아주겠다"고 제안한다.

당시 궁지에 몰려 물불 가리지 않고 급한 불을 꺼야 했던 대통령 김영삼과 한나라당은 이에 혹하여 자유민주연합과 민주당, 무소속 인사들을 포섭하여 통일교 국교 지정을 내포한 10차 개헌을 단행한다. 당시 야당이었던 새정치국민회의는 정교분리 원칙 위배라며 이러한 개헌 단행에 적극적으로 발발, 이쪽도 민주당과 무소속 인사들을 영입하여 개헌을 최대한 저지하려고 했으나 결국 당시 재적 299석 중 200석이 개헌 찬성, 단 한 석 차이로 개헌안이 통과되어 국민투표에 회부되었다. 새정치국민회의는 국민투표 반대 운동을 벌였으나 국민투표에 참여한 유권자 32,290,415명 중 16,145,208명이 찬성, 단 한 명 차이로 국민투표에서 개헌안이 가결되어 1998년 1월 1일, 통일교가 대한민국의 국교로 선포되었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당시 아시아 전역에 닥친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으나 이로 인해 대한민국은 통일교에게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완전히 종속된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한편 국가적 위기가 닥쳐온 것은 북한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은 1995년부터 이미 고난의 행군 체제에 돌입하여 경제적으로 매우 빈곤한 상태에 처하게 되었는데 여기에 다시 문선명 총재가 북한에게 손을 뻗어 김일성과 회담하여 북한의 경제 개방과 통일교의 선교 활동을 보장하는 대가로 북한에게 처한 경제적 위기를 통일교가 전부 부담하여 해결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렇게 북한마저 통일교의 영향력에 종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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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 해당 세계관의 연재자인 벨지엄은 천주교 모태신앙에다 무신론자로 통일교를 믿지도 않고, 통일교를 옹호할 의사도 없다. 돌아이는 어디까지나 흥미와 재미만을 위한 세계관이고 앞으로의 연재도 흥미와 재미 위주로 흘러갈 예정이기에 돌아이를 읽는 독자들은 이러한 점을 사전에 숙지하고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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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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