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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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는 작은 구장을 이용하는 '''타격의 팀'''이다. 대체로 타격은 OPS 히터 등 장타자들이 분포하여 주루같은 디테일 야구보다는 타격 생산성으로 점수를 내는 팀이었고, 반면 투수 파트에서는 1990년대 김상엽, 2000년대 JOKKA나 배영수를 빼면 파이어볼러가 비교적 적고 있어도 제대로 육성되지 않은 반면 상당수의 주축급 선발투수가 경기운영, 제구, 구위, 변화구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기교파 투수였다. 다만 시민구장 이상의 타자 친화 구장으로 꼽히는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로 이전한 홍준학 체제 이후에는 마운드는 물론 타격도 안 되는 팀이었다.
전반적으로는 작은 구장을 이용하는 '''타격의 팀'''이다. 대체로 타격은 OPS 히터 등 장타자들이 분포하여 주루같은 디테일 야구보다는 타격 생산성으로 점수를 내는 팀이었고, 반면 투수 파트에서는 1990년대 김상엽, 2000년대 JOKKA나 배영수를 빼면 파이어볼러가 비교적 적고 있어도 제대로 육성되지 않은 반면 상당수의 주축급 선발투수가 경기운영, 제구, 구위, 변화구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기교파 투수였다. 다만 시민구장 이상의 타자 친화 구장으로 꼽히는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로 이전한 홍준학 체제 이후에는 마운드는 물론 타격도 안 되는 팀이었다.
크게 왕조 시절 이전과 이후로 다른 모습을 보인다. 원래는 전체적으로 메이저 리그의 메타를 따르는 전형적인 현대야구식 구단이었다. 애초에 김응용 감독 시절부터 메이저리그식 훈련법을 도입했으며, 김응용 본인부터 미친 수준의 빅볼 성애자이다보니 선수들 몸을 불리고 거포를 만들어야 한다는 식의 운영을 했다. 당시 수비코치로 재직한 류중일도 LA 다저스의 수비 교범을 구해 번역본을 만들어 공부하면서 적극적으로 선진 야구를 수용할 정도였다. 또한 웨이트 트레이닝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이마양, 채최박 트리오 등 많은 파워 히터들을 배출했으며 타자 친화 구장인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을 잘 활용하는 구단으로 호평받았다.
그러나 2016년부터 돌입한 암흑기를 거치며 급격히 팀의 지향점이 역행하여 갑자기 1980-90년대에나 유행했던 올드스쿨 야구를 지향하는 구단이 되어버렸다. 오히려 왕조 시절까지 보여줬던 2000년대 메이저리그를 따르는 팀 시스템과 운영 기조에서 답보세이거나, 어느 면에서는 그 이전으로 퇴보해버렸을 정도. 메이저리그 시스템은 홍준학 체제를 거치며 아예 사라졌으며 스몰볼을 시도하고 있었고 웨이트 트레이닝도 오승환 같은 일부를 빼면 다소 약화된데다 기껏해야 2000년대 메이저리그 이론에서나 통하는 육성 중 대표적으로 회전 수 이론, 체감 구속 이론 등을 통한 정현욱 코치의 팔각도 높이기 코칭이 있는데 사실 회전 수와 체감 구속, 익스텐션은 2020년대 시점에서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걸 위해 팔각도를 높이며 제구와 구속을 모두 크게 희생시키는 것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결론이 내려진 상황이다. 단 2000년대 당시에는 클레이튼 커쇼, 팀 린스컴같은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 이 즈음은 평균 구속 증가세가 둔화되던 시기로 체감 구위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던 시절이라 메이저리그에서도 저런 투구폼이 주류였기 때문에 팀이 전방위적으로 망가졌다. KBO 리그 자체도 전반적으로 현대야구에 뒤쳐진 행보로 비판받는데, 그러한 KBO 리그에서도 가장 극심한 올드스쿨 야구를 고수하는 구단으로 악명높았다.
전통적인 팀 컬러는 '백수(百獸)의 왕' 사자를 내세운 라이온즈답게 장타를 중심으로 한 빅볼 야구였다. WAR 기준으로 1982년부터 1990년까지 항상 공격력 리그 1위 또는 2위를 차지했고, 이후로도 2016년까지 2007-08년 두 시즌을 제외하면 공격력이 리그 4위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1980년대부터 이만수(1983~1985년), 김성래 (1987, 1993년) 등 홈런왕을 여러 차례 배출했고, 리그 역사상 최고의 교타자로 평가받는 장효조도 리드오프로 활약했다. 1990년대에는 초반엔 양준혁이, 후반엔 이승엽이라는 슬러거가 혜성처럼 나타났으며 2002년부턴 [[롯데 자이언츠]] 출신 [[마해영]]까지 더해 '''[[이마양]]''' 트리오를 구축하면서 [[삼성증권배 2002 프로야구 한국시리즈|구단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특히 2003년에는 이 이마양 트리오가 도합 127홈런 295타점이라는 폭발적인 공격력을 보여주었다. 이후 이승엽이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하고 마해영도 [[KIA 타이거즈]]로 FA 이적하여 이마양 트리오는 해체되었고, 2000년대 중반에 출범한 [[선동열]] 감독 체제에선 [[배영수|강속구 선발 에이스]]와 [[권오준|쌍권총]] [[권혁|계투진]], 그리고 [[오승환|리그 최정상급 마무리 투수]]로 이어지는 강력한 지키는 야구를 통해 이기는 팀이 되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된 중심 타자들의 이탈로 인해 팀의 공격력은 크게 약화되었고, 이 때문에 80-90년대부터 삼성 야구를 봐온 올드팬들에겐 '재미없는 야구'라고 혹평받기 일쑤였다. 그러나 2008년부터 '''[[채최박]]'''으로 대표되는 타선 리빌딩이 시작되며 2009-10년엔 공격력이 리그 2, 3위에 올라섰고, 이 시기 [[안지만]]의 각성과 [[윤성환]]의 선발진 안착, [[장원삼]]의 영입까지 이루어지며 투수진 또한 한층 더 깊이가 생긴 모습을 보였다.
이후 2011년 취임한 [[류중일]] 감독 재임기에 들어 [[최형우]], [[박석민]] 등 새로운 파워 히터들이 전성기를 맞으면서 공격 야구의 시대가 돌아왔다. 사실 2011년에는 [[WAR]] 기준 타선 4위, 투수진 1위였기에 이때 달성한 정규시즌, [[2011 롯데카드 프로야구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2011 아시아 시리즈|아시아 시리즈]] 트리플 크라운은 타선보단 투수진의 힘이 컸고, [[이승엽]]이 일본에서 복귀한 2012년부터 진짜 공격 야구가 다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특히 2014년에는 비록 역대급 [[타고투저]]의 흐름을 타긴 했으나 1987년 삼성의 팀 타율 0.300을 넘어서는 0.301의 신기록을 세웠고, 이듬해인 2015년에 곧바로 0.302로 경신했다. 2015년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도 팀 타율 3할에 도전했으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만난 삼성이 9이닝 1안타로 넥센 타선을 잠재우며 몸소 3할 아래로 떨어뜨려줬고, 2017년 [[KIA 타이거즈]]가 달성하기 전까진 팀 타율 3할을 기록한 팀은 삼성이 유일했다.[* 2017년 KIA의 팀 타율은 0.302로 2015년 삼성과 공동 최고 기록이었다.] 4년 연속 통합우승, 5년 연속 정규시즌 우승을 이룩한 [[삼성 왕조]]의 원동력은 그야말로 불을 뿜는 타선이었다고 할 수 있었고, 호성적과 더불어 파워 히터는 아니지만 [[배영섭]], [[이지영(야구선수)|이지영]], [[박해민]], [[구자욱]] 등 준수한 신인 야수들도 꾸준히 등장했다. 그러나 2015년 말부터 2016년 말까지 1여 년의 시간동안 [[박석민]], [[최형우]]가 FA를 통해 타 팀으로 이적했고, [[야마이코 나바로]]도 삼성을 떠나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했으며 [[채태인]]도 트레이드로 팀을 떠나면서 순식간에 타선이 붕괴되었다. 이후로는 [[구자욱]]과 외국인 타자([[다린 러프]]-[[호세 피렐라]])를 주축으로 겨우 타선을 지탱하고 있으며 [[이원석(1986)|이원석]], [[강민호]], [[오재일]] 등 내부 육성보단 외부 FA 영입을 통해 타선 강화를 꾀하고 있다.
2024년에는 어퍼스윙, 풀히팅, 적극적 타격, 쿠세 읽기, 팀배팅 거부 등의 메이저리그식 타격이론을 극단적으로 신봉하는 [[이진영]] 코치를 영입하며 다시 라팍을 이용하는 빅볼야구가 부활, 용병 타자가 10개 구단 중 가장 망한 팀임인데도 KBO 리그 전체 팀 홈런 수 압도적 1위를 달성했다. 다만 그 댓가로 출루율이 크게 낮아지며 이진영 코치는 삼성 팬덤에게 비판을 받았지만 적어도 타자 파트는 메이저리그식 야구이론을 신봉하던 2000년대 김응용 시절로 어느 정도는 회귀한 셈이다.
팀 컬러가 잠시 스몰볼+지키는 야구로 바뀐 선동열 시대를 빼면 극단적 빅볼야구를 구사하는 구단답게 도루가 매우 적다. 왜냐하면 굳이 아웃이나 부상의 리스크가 있는 [[도루]]를 하면서 상대 배터리를 흔들지 않아도 타선의 엄청난 파괴력으로 손쉽게 대량 득점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구의 클린업 타자 [[양준혁]]이 193도루로 팀 통산 도루 1위였을 만큼 준족 성향의 선수가 드물었고, [[2010년대]] 이전까지의 리드오프였던 [[류중일]]과 [[박한이]]도 전형적인 리드오프라기엔 주력이 모자란 선수들이었다.[* 사실 류중일은 타격도 나쁘지 않았지만 [[유격수]]였던 만큼 '''수비'''에서 더 강점을 보였던 선수였다. 당시 삼성 타선은 장타에 특화된 타자들이 여럿 포진되어 있었기에 팀 내에서 출루 능력과 주루 센스가 돋보이는 류중일이 리드오프로 기용되었다. 하지만 준수한 주루 센스와 달리 단순 주력은 그다지 빠르지 않아서 20개 이상 도루를 기록한 시즌은 1990년 딱 한 번뿐이었다. 박한이는 컨택 면에선 자타가 공인하는 수준급 타자였고, 발도 결코 느리진 않았으나 주루 센스가 꽤 나빴다. 괜히 [[김응용]] 감독이 농반진반으로 "박한이는 정신병자다"라고 언급한 게 아닌데, 주루에서 [[본헤드 플레이]]가 잦았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삼성은 전통적으로 소총부대보다는 대포부대의 이미지가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팀 컬러와 대척점에 서 있는 팀이 [[LG 트윈스]]다. LG는 홈런왕 배출 경험은 단 한번도 없지만 [[MBC 청룡]] 시절부터 [[김인식(1953)|김인식]], [[김재박]], [[이해창(1953)|이해창]], [[류지현(야구)|유지현]], [[이대형]] 등 기본적으로 발이 빠르고 주루 센스가 훌륭한 선수들이 대대로 배출되었고, [[1990년대]]에는 대포보다는 집중력 있는 연속 안타로 상대를 흔드는 '신바람 야구'로 인기를 얻었던 팀이었다. LG가 암흑기에서 벗어나 부흥기에 들어선 [[2020년대]]에도 [[홍창기]], [[문성주]], [[신민재]] 등 이런 타입의 선수들이 타선에 많이 포진되어 있다. 삼성이 2024년 들어 홈구장을 이용하는 뻥야구를 하는 것과는 정반대.] 오죽하면 [[김상수(타자)|팀의 첫 도루왕]]이 창단 32년만인 2014년에 나왔을까. 하지만 [[류중일]] 감독 시기에 어느 정도 체질 개선이 이뤄지면서 첫 도루왕 배출 이후 2015-18년 [[박해민]]이 4년 연속 도루왕을 차지했고, 2015년 1군에 데뷔한 [[구자욱]]도 어렵지 않게 두 자릿수 도루를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투수진의 경우 역대 최고수준의 타선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편. 이는 피네스 피처 중시 성향이 문제라는 의견도 있으나, 우수한 피네스 피처들이 많이 배출된 2010년대 초중반을 감안하면 그냥 팀이 투수를 상대적으로, 특히 20세기까지는 상당히 못 키운 것에 가깝다. 20세기 삼성은 레전드급 타선이 분포한 극단적 타격의 팀이었는데, 투수진은 그에 비해서 리그 평균에 미치지 못했다.[* 실제로 팀 타선 올타임 레전드의 경우 20세기나 21세기나 모두 분포해있는 반면 배영수, --윤성환--, 장원삼, JOKKA 등의 레전드 투수들은 거의 다 21세기 선수들이다.] 1982년 창단 이후 [[김응용]] 감독 취임 직전인 2000년까지 19시즌동안 타선은 단 한번도 상위권을 벗어난 적이 없지만, 투수진은 다섯 시즌(1982, 1984, 1985, 1993, 1990)을 제외하면 줄곧 하위권에 머물렀다. 그래서 1980-90년대 당시 [[선동열]]을 필두로 막강한 투수진을 갖추고 있었던 [[해태 타이거즈]]에게 한국시리즈에서 번번히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고,[* 정규시즌 우승을 위해선 타선이 중요하지만, 한국시리즈 우승을 위해서는 투수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래서 삼성은 타선의 힘으로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해놓고도 한국시리즈에서 미끄러지는 일이 잦았다. 해태 에이스들인 조계현, 선동열, 이강철 등에게 탈탈 털린 것은 물론이거니와 오히려 한국시리즈에선 저런 에이스급들이 아닌 다른 백업급 선수들에게도 심하게 농락당하며 준우승만 여러 차례 달성했다.] 투타 밸런스가 비로소 맞기 시작한 [[2000년대]]에 들어서야 본격적인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다. [[2000년대]] 중후반 [[선동열]] 감독 재임기에는 [[권오준]]과 [[오승환]]으로 대표되는 불펜진이 중심이었지만, [[2010년대]] 초반 [[류중일]] 감독 재임기에는 [[윤성환]]-[[장원삼]] 원투 펀치를 앞세운 선발진 중심으로 전환했다. 따라서 두 감독의 투수 운용 방식에는 차이가 있었는데, 선동열은 선발 투수를 퀵후크하고 불펜을 일찍 가동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면 류중일은 선발 투수를 되도록 길게 끌고 가면서 이닝을 많이 먹이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선동열 재임기의 불펜진이 어디 가진 않아서 '[[JOKKA 라인]]'으로도 불렸던 KBO 역사상 최고의 불펜진은 2012년 5월 24일 LG전부터 2014년 5월 27일 롯데전까지 '''7회 리드시 144연승'''이라는 절대 깨지지 않을 대기록을 세웠다. 또 앞서 언급했듯이 류중일 재임기에 선발 중심 야구로 전환하면서 2013-15년에는 리그 역사에 남을 수준의 선발진을 구축하게 되었다. 2013년에는 [[배영수]](14승)-[[윤성환]](13승)-[[장원삼]](13승)-[[차우찬]](10승)이라는 토종 10승 투수 4명을 배출하였고, 외국인 투수들이 부상에 시달리지 않고 분발했다면 5명의 10승 투수를 배출하는 흔치 않은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 2014년에는 [[오승환]]이 일본으로 떠나 공석이 된 [[마무리 투수]] 자리를 맡게 된 [[임창용]]이 크게 부진하면서 불펜진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 와중에도 지옥 수준의 타신투병에서 9개 구단 중 유일하게 선발 5명 전원이 100이닝을 소화해 투수진 WAR 리그 1위를 기록했다. 2015년에는 팀 타선의 역대급 득점 지원까지 힘입어 [[윤성환]](17승)-[[알프레도 피가로]](13승)-[[차우찬]](13승)-[[타일러 클로이드]](11승)-[[장원삼]](10승), 선발 5명 전원이 10승을 달성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2015 타이어뱅크 KBO 한국시리즈|2015년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터진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원정 도박 스캔들]]로 인해 [[임창용]]이 시즌 종료 후 계약 해지되었고, 이후 2016년 시즌 중 [[안지만]]이 도박 관련 추가 혐의가 드러나 방출되어 투수진이 급격히 붕괴했다. 사실 이미 2015년부터 투수진 붕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선발진이 5명 전원 10승을 달성했다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외국인 투수 피가로-클로이드의 후반기 부진과 장원삼의 노쇠화라는 어두운 이면이 있었고, 불펜진은 이전부터 [[권오준]], [[정현욱]], [[오승환]], [[권혁]]이 차례로 이탈하면서 셋업맨 안지만과 마무리 임창용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아진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도박 스캔들로 인해 셋업맨과 마무리가 이탈했으니 남은 필승조 투수인 [[심창민]]이 혹사당하는 것은 필연적이었고, 설상가상으로 선발진도 2016-17년 외국인 투수들이 전혀 제 몫을 해주지 못하면서 2016년엔 [[윤성환|윤]]-[[차우찬|차]]-패패패, 2017년엔 [[윤성환|윤]]-패패패패 수준으로 전락했다. 암흑기엔 그나마 오랜 기간 부진했던 [[백정현]]이 2017년 이후 선발의 새로운 한 축으로 떠올랐고, 2018년엔 비록 한 해뿐이지만 [[최충연]]의 각성을 필두로 불펜진 WAR 리그 1위, 투수진 WAR 4위까지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위안거리였다.
전반적으로 발 느린 거포, 파워히터를 선호하는 타선과는 이미지가 맞지 않게도 전성기 김상엽과 배영수[* 전성기 배영수는 안우진과 비슷한 스타일이었으며 이마저도 토미존을 받은 뒤에는 구속 10km가 날아가 다른 삼성 투수들처럼 기교파가 되었다.]를 빼면 역사적으로 경기운영과 제구가 뛰어난 피네스 피처를 선호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사실 [[중간 계투]]와 [[마무리 투수]]는 보직 특성상 당연히 [[임창용]], [[안지만]], [[오승환]] 등 구위가 압도적인 선수들이 많았지만, [[선발 투수]]는 [[2000년대]] 초중반 [[배영수]]를 제외하면 파워 피처보다는 [[피네스 피처]]가 흔한 것이 특징이다. 그 배영수마저도 혹사의 여파로 구속이 하락하면서 2000년대 후반 이후 피네스 피처로 전향했고, 마침 이즈음부터 [[윤성환]]-[[장원삼]] 두 피네스 피처가 팀의 토종 1, 2선발로 자리잡아 왕조를 이끌었으며 왕조 이후로도 [[백정현]], [[최채흥]], [[원태인]] 등 대부분의 토종 선발 투수가 피네스 피처다. 20세기부터 성준, 전병호 등 흑마구 투수들이 다수 배출되는 등 최근 암흑기의 투수 육성 기조를 비판하는 시선에서의 편견과는 달리 투수 파트 쪽에서의 팀 컬러는 '''암흑기 이전부터도''' 전반적으로 경기운영이 좋은 피네스 피처가 크게 우세했다.
다만 타선에서 암흑기 이후 죄다 작전수행능력이 뛰어난 교타자 위주로 지명하는 방향으로 틀어버린 것과 달리 암흑기 시절부터는 극도로 피네스 피처 경향이 심해져버렸다. 김한수 시절에 최충연과 장필준이 필승조로 활약했으나 이들이 혹사로 망하자 투수들을 죄다 피네스 피처로 뽑고 현역 시절 JOKKA 라인의 핵심 불펜 중 하나였던 정현욱이 아이러니하게 투수코치가 되더니만 그 선수들을 팔각도를 천편일률적으로 올리는 잘못된 코칭으로 망치며 팀 투수진 팜 전체가 나락을 가버렸다. 즉 이 기간동안에는 경기운영이 좋다고 알려진[* 윤성환, 장원삼처럼 실제 경기운영이 좋은 투수가 아니다! 실제 경기운영이 좋은 투수는 구창모, 윤영철 등의 사례. 전형적인 왕조 시절까지의 삼성 스타일인 투수들이다.] 공 느린 무툴 투수들과 역시나 쌕쌕이 위주의 강한울식 슬랩 히터로 상위지명을 도배해 팜 전체가 멸망했으며 이로 인해 2023년까지는 운동능력이 떨어지거나 운동능력이 있어도 BQ가 회생불가인 선수들만 팜에 잔뜩 쌓여서 단체로 썩어가는 충격적인 투타 팜을 자랑했었고 이는 투수 파트 한정으로 팀 개편 이후 리빌딩이 진행되며 타선이 뻥야구 체제로 전환된 2024년에도 현재진행형이다. 투수 파트가 육성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걸 감안해야겠지만. 이후 2025년에는 비로소 정현욱이 나가며 그나마 투수진이 정상화되고 있다.
또한 [[류중일]], [[김한수]], [[이승엽]], [[박석민]], [[채태인]], [[김상수(타자)|김상수]], [[박해민]] 등 수비가 뛰어난 야수들이 대대로 많이 배출되었다. 여기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선수들이라도 삼성 야수진은 전통적으로 수비 기본기가 좋은 편이며, 이는 선수들의 타고난 재능과 피 나는 연습 덕도 있지만 [[2000년대]]에 이미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의 수비 교범을 들여왔으며 수비의 중요성을 꾸준히 강조해온 코칭스태프진의 역할도 컸다.[* 특히 [[유격수]] 출신 감독이었던 [[류중일]]은 수비 기본기가 갖춰지지 않은 유망주는 잘 기용하지 않았다. 이건 국대 감독 시절에도 마찬가지. 마찬가지로 유격수 출신인 [[박진만]] 감독도 스프링캠프에서 혹독하게 [[펑고]]를 쳤다. 둘 다 삼성 레전드 유격수 출신이다.]
10개 구단을 통틀어 최고 수준의 훌륭한 통산 성적과는 별개로, 전통적으로 포스트시즌에 약한 팀이다. 우선, 삼성은 2024년 기준으로 KBO 리그 역대 최초 포스트시즌 단일 팀 통산 100패를 달성했다.[* 포스트시즌 단일 팀 통산 첫 100승은 2021년 플레이오프에서 두산 베어스가 달성했다. 공교롭게도 2021년 플레이오프도 삼성과 했다.] KBO 리그 통산 승률 1위의 명문 구단에 7회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한 팀이 무슨 포스트시즌에 약하냐고 여길 수 있겠지만, 삼성의 포스트시즌 통산 승률은 '''현존 10개 구단 중 한화 다음가는 9위이다.''' 심지어 가을을 많이 못 간 한화[* 한화는 2006년까지는 나름 준 단골 수준으로 가을에 많이 갔으나 이쪽도 빙그레 시절 해태한테 매년 두들겨맞으며 가을야구 성적이 나쁘다.]와는 달리 삼성은 가을야구에 많이 진출했기에 가을야구에서의 부진이 더욱 두드러진다. 2010년대 이후로 LG나 키움의 팬덤이 자 팀이 포스트시즌에서 약하다는 불평을 하지만, 삼성보다는 포스트시즌 승률이 높은 편이다. 이것도 그나마 2002년-2014년에 상당수 끌어올려놓은 것. 특이사항으로 삼성은 [[박병호|준플레이오프에는 강하지만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에서는 열세를 보이며,]] 이는 해태-KIA 타이거즈와 정반대의 요소이다.[* 해태-KIA 타이거즈는 한국시리즈에서는 극강이나, 플레이오프-준플레이오프 성적은 매우 좋지 않다. 특히 준플레이오프는 통산 전적이 2승 9패에 불과하다.]
삼성이 포스트시즌에서 약세를 보이게 된 데에는 1980년대부터 이어진 달구벌의 저주가 상당히 컸는데, 이 기간동안 KBO 리그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가을에 약한 투수였던 김시진과 가을야구에서 클러치 실책을 잦게 한 장효조[* 장효조가 아예 가을에 못하는 선수라는 오해가 있으나 장효조의 통산 포스트시즌 타격성적은 역대 최고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비슷한 수준의 선수가 지금은 메이저리그에 간 이정후 하나가 끝일 정도. 정작 이정후도 KBO 한국시리즈 우승을 추가하진 못했다. 엄밀히 말해 장효조는 성적과 실력이 문제가 아니라 클러치 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게 문제였다.] 등의 문제로 포스트시즌, 특히 한국시리즈 승률이 몹시 좋지 않았다. 결국 2002년 백투백 홈런으로 따낸 우승 전까지 한국시리즈 우승은 하지 못했으며, 각 기간동안에도 팀에 포스트시즌에서 못하는 것으로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 한두명쯤은 꼭 있을 정도.[* 대표적으로 20세기 김시진, 2000년대 김진웅, 2018년 이후엔 강민호.] 왕조때 윤성환/장원삼 등 빅게임 피처가 있었던 것과는 정반대.
특히 한국시리즈에서 성적이 많이 안 좋은 편인데, 통산 한국시리즈 승률은 뒤에서 2위[* 승률 꼴찌는 한화로 이쪽도 한국시리즈 잔혹사가 심각하다. 다만 한화는 2006년 이래로 한국시리즈 진출 자체가 없으며, 거기서도 삼성한테 졌다.]로 매우 안 좋으며, 이것도 대부분 라이벌 팀들인 해태-KIA[* 단 해태-KIA는 애초에 한국시리즈 준우승 자체가 없다. 후술할 두산도 2017년에는 KIA 상대로 손도 못 쓰고 졌다.], 두산[* 두산에게는 원년 준우승은 물론 충격적인 2001/2015년 업셋까지 당하며 두산이 우승한 세 번 중에 절반을 헌납했다. 이로 인해 준우승 9번으로 발생한 콩산 이미지가 삼성한테는 매우 약할 정도.], 롯데[* 가장 대표적 사례는 바로 '''악명높은 [[1984년 한국시리즈]]'''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무려 [[최동원]] 하나한테 팀이 압살당하며 기나긴 한국시리즈의 잔혹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정작 롯데는 [[백인천]] 시대를 거치며 이젠 한국시리즈에 못 가는 팀이 됐다.], 지금은 없어진 현대[* 9차전까지 간, 현재까지 명승부로 회자되는 2004년 한국시리즈.] 등에게, 그것도 매번 임팩트 있게 두들겨맞으며 나온 결과라 체감이 훨씬 더 안 좋다. 1984년 한국시리즈, 2001년 한국시리즈, 2004년 한국시리즈 등 굉장히 유명한 한국시리즈에서 패퇴한 전적이 있으며, 업셋 우승은 하나도 없지만 피업셋은 적지 않다. 그나마 2004년 한국시리즈는 삼성이 도전자 입장이었고 비록 이기진 못했지만 배영수의 비공인 10이닝 노히트노런 등 많은 찬사를 받았으나, 져주기 게임의 저주이자 최동원 한 명한테 압도당한 1984년, 두산에게 두 번 피업셋당한 2001년, 2015년 한국시리즈 등은 그야말로 빼도박도 못하는 흑역사나 다름없다.
사실 이 준우승들은 20세기에 다 쌓은 것이며 삼성의 전성기로 불리는 2002년 이후로 자를 시 7회 우승에 4회 준우승, 흑역사인 2001년까지 합쳐도 우승 횟수가 더 많다. 2002년부터 왕조 때까지만 계산할 시 7회 우승에 2회 준우승으로 업셋은 하나도 못했지만 일단 정규시즌에 우승해서 한국시리즈 진출을 선점한 상황에서는 반드시 우승했다. 그러나 암흑기가 시작된 2015년부터는 2회 진출해서 2승 8패, 그것도 전성기 이전까지 한국시리즈에서 신나게 두들겨맞았던 라이벌 팀들에게만 기록하며 그동안 만회한 것을 다시 깎아먹고 다시 부진에 빠졌다. 물론 애초에 이 기간동안 삼성은 암흑기가 진행되며 한국시리즈 자체에 많이 못 나갔고, 해당 한국시리즈들에서는 삼성 측의 전력 이탈이 워낙에 극심해[* 저 두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은 KBO 한국시리즈 역사상 최악의 전력 이탈을 겪었다. 2015년에는 악명높은 원정 도박 사건이 일어났고 2024년에는 주전 선수들이 한국시리즈 직전에 귀신같이 전부 부상당해 백업들로 경기했다.] 삼성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할 것이라는 의견은 거의 없다시피했다.
삼성이 한국시리즈에서 불운을 겪기도 했고 삼성에 굵직굵직하게 포스트시즌에서 부진한 선수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상당히 나쁜 통산 포스트시즌 성적의 근본 원인은 삼성 선수들이 전반적으로 새가슴이라서라기보다는 삼성이 전통적으로 타격 위주로 팀을 꾸렸기에 발생했던 문제로, 단기전에서는 기본적으로 마운드의 위상이나 비중이 훨씬 커지는데 반해 삼성이 한창 가을야구에서 죽을 쑤던 20세기까지는 삼성의 마운드 뎁스가 팀 성적에 비해 좋지 않은 편이었기에 매번 가을에서 물을 먹었다. 타격의 경우 컨디션이나 멘탈리티에 따라 기량이 널을 뛰는 편이고 안 그래도 한국시리즈 우승 가뭄으로 전반적인 부담이 심했던 상황에서 삼성의 타자들이 포스트시즌, 특히 한국시리즈 등 투수력과 집중력이 매우 높아지는 무대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1984년 한국시리즈 당시의 충격으로 인하여 한국시리즈=삼성의 무덤이라는 인식이 강해졌고 선수들이 주눅들며 더욱 부진하는 면모가 적지 않았으나 2002년 한국시리즈 이후로 이러한 부정적인 점을 상당수 극복했다. 삼성이 포스트시즌에서 그나마 강해진 2000년대 이후로 김응용 시기와 선동열 시기를 거치며 마운드가 개선되었고 이들이 상당수 미스터 옥토버 기질까지 있어 그렇게 가을야구에서의 약점까지 사라지며 삼성 왕조가 건설된 것이다. 그러나 암흑기가 시작된 2015년 한국시리즈 이후로는 다시 포스트시즌에 강한 팀이라고 보기도 어려워졌으므로[* 가을야구에 많이 못 나갔을뿐더러 나갔을 때의 성적도 안 좋았다. 2015년 한국시리즈 1승 후 4연패로 탈락, 2021년 타이브레이커-플레이오프 3연패. 2024년엔 플레이오프에서 LG를 3승 1패로 꺾고 올라왔으나 한국시리즈에서 사상 초유의 서스펜디드 선언과 주전 선수들의 부상으로 1승만 챙겼다.] 최고의 명문 구단 중 하나로 꼽히는 삼성이 앞으로도 8년간의 암흑기를 떨쳐내고 그 위상을 잡으려면 차츰 해결해나가야 하는 문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 역사 ==
== 역사 ==

2025년 9월 7일 (일) 02:59 판


틀:KBO 리그

틀:삼성 라이온즈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png
삼성 라이온즈
Samsung Lions
창단 1982년 2월 3일(43주년)
법인 설립 1982년 3월 5일(43주년)
법인명 (주) 삼성라이온즈
정식 명칭 파일:삼성 라이온즈 글씨 .png
구단 형태 프로야구단
구단 사무실 대구광역시 수성구 대구전설로 1[1]
연고지 파일:대구광역시 ci.svg 대구광역시
구단주 유정근
이사장 유정근[2]
단장 송삼봉
감독 75 류중일
주장 5 구자욱
구장 홈구장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1995~/16,000석)
이전 홈구장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2016~/35,000석)
제 2구장
포항 야구장
(2000~/25,000석)
2군 구장 경산 볼파크
마스코트 파일:블레오.png
블레오
킷 스폰서 파일:언더아머 Logo.svg
스타디움 스폰서
워드마크 [3]
[4]
링크
디시인사이드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
최종 우승(9회)
페넌트레이스 우승(0회)
포스트시즌 진출(1회)
플레이오프 2001년
준플레이오프 2001년
와일드카드 결정전 2001년
프랜차이즈 팀 기록
[ 펼치기 · 접기 ]
최고 승률 .573
1997년 126경기 71승 53패 2무
최저 승률 .123
1999년 122경기 1승 108패 10무
최다 승 71승
1997년 126경기 71승 53패 2무
최다 패 108패
1999년 122경기 1승 108패 10무
최다 관중 30000명[5]
최소 관중 3명[6]
타자 FA 최고액 3년 5억 5천만원
1999년 김성식(金成植)
투수 FA 최고액 3년 5억 2천만원
2000년 표대박(表大㺪)

개요

WIN OR WOW
2025년 구단 캐치프레이즈


KBO 리그 소속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함경북도 대홍단군이다. 홈구장은 청진시 나남구 강덕동에 위치한 청진 종합운동장 야구장 함경북도 대홍단군 삼장읍에 위치한 국부 강용석 천리마 야구장이다.

구단 소개

팀컬러

전반적으로는 작은 구장을 이용하는 타격의 팀이다. 대체로 타격은 OPS 히터 등 장타자들이 분포하여 주루같은 디테일 야구보다는 타격 생산성으로 점수를 내는 팀이었고, 반면 투수 파트에서는 1990년대 김상엽, 2000년대 JOKKA나 배영수를 빼면 파이어볼러가 비교적 적고 있어도 제대로 육성되지 않은 반면 상당수의 주축급 선발투수가 경기운영, 제구, 구위, 변화구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기교파 투수였다. 다만 시민구장 이상의 타자 친화 구장으로 꼽히는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로 이전한 홍준학 체제 이후에는 마운드는 물론 타격도 안 되는 팀이었다.

크게 왕조 시절 이전과 이후로 다른 모습을 보인다. 원래는 전체적으로 메이저 리그의 메타를 따르는 전형적인 현대야구식 구단이었다. 애초에 김응용 감독 시절부터 메이저리그식 훈련법을 도입했으며, 김응용 본인부터 미친 수준의 빅볼 성애자이다보니 선수들 몸을 불리고 거포를 만들어야 한다는 식의 운영을 했다. 당시 수비코치로 재직한 류중일도 LA 다저스의 수비 교범을 구해 번역본을 만들어 공부하면서 적극적으로 선진 야구를 수용할 정도였다. 또한 웨이트 트레이닝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이마양, 채최박 트리오 등 많은 파워 히터들을 배출했으며 타자 친화 구장인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을 잘 활용하는 구단으로 호평받았다.

그러나 2016년부터 돌입한 암흑기를 거치며 급격히 팀의 지향점이 역행하여 갑자기 1980-90년대에나 유행했던 올드스쿨 야구를 지향하는 구단이 되어버렸다. 오히려 왕조 시절까지 보여줬던 2000년대 메이저리그를 따르는 팀 시스템과 운영 기조에서 답보세이거나, 어느 면에서는 그 이전으로 퇴보해버렸을 정도. 메이저리그 시스템은 홍준학 체제를 거치며 아예 사라졌으며 스몰볼을 시도하고 있었고 웨이트 트레이닝도 오승환 같은 일부를 빼면 다소 약화된데다 기껏해야 2000년대 메이저리그 이론에서나 통하는 육성 중 대표적으로 회전 수 이론, 체감 구속 이론 등을 통한 정현욱 코치의 팔각도 높이기 코칭이 있는데 사실 회전 수와 체감 구속, 익스텐션은 2020년대 시점에서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걸 위해 팔각도를 높이며 제구와 구속을 모두 크게 희생시키는 것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결론이 내려진 상황이다. 단 2000년대 당시에는 클레이튼 커쇼, 팀 린스컴같은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 이 즈음은 평균 구속 증가세가 둔화되던 시기로 체감 구위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던 시절이라 메이저리그에서도 저런 투구폼이 주류였기 때문에 팀이 전방위적으로 망가졌다. KBO 리그 자체도 전반적으로 현대야구에 뒤쳐진 행보로 비판받는데, 그러한 KBO 리그에서도 가장 극심한 올드스쿨 야구를 고수하는 구단으로 악명높았다.

전통적인 팀 컬러는 '백수(百獸)의 왕' 사자를 내세운 라이온즈답게 장타를 중심으로 한 빅볼 야구였다. WAR 기준으로 1982년부터 1990년까지 항상 공격력 리그 1위 또는 2위를 차지했고, 이후로도 2016년까지 2007-08년 두 시즌을 제외하면 공격력이 리그 4위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1980년대부터 이만수(1983~1985년), 김성래 (1987, 1993년) 등 홈런왕을 여러 차례 배출했고, 리그 역사상 최고의 교타자로 평가받는 장효조도 리드오프로 활약했다. 1990년대에는 초반엔 양준혁이, 후반엔 이승엽이라는 슬러거가 혜성처럼 나타났으며 2002년부턴 롯데 자이언츠 출신 마해영까지 더해 이마양 트리오를 구축하면서 구단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특히 2003년에는 이 이마양 트리오가 도합 127홈런 295타점이라는 폭발적인 공격력을 보여주었다. 이후 이승엽이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하고 마해영도 KIA 타이거즈로 FA 이적하여 이마양 트리오는 해체되었고, 2000년대 중반에 출범한 선동열 감독 체제에선 강속구 선발 에이스쌍권총 계투진, 그리고 리그 최정상급 마무리 투수로 이어지는 강력한 지키는 야구를 통해 이기는 팀이 되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된 중심 타자들의 이탈로 인해 팀의 공격력은 크게 약화되었고, 이 때문에 80-90년대부터 삼성 야구를 봐온 올드팬들에겐 '재미없는 야구'라고 혹평받기 일쑤였다. 그러나 2008년부터 채최박으로 대표되는 타선 리빌딩이 시작되며 2009-10년엔 공격력이 리그 2, 3위에 올라섰고, 이 시기 안지만의 각성과 윤성환의 선발진 안착, 장원삼의 영입까지 이루어지며 투수진 또한 한층 더 깊이가 생긴 모습을 보였다.

이후 2011년 취임한 류중일 감독 재임기에 들어 최형우, 박석민 등 새로운 파워 히터들이 전성기를 맞으면서 공격 야구의 시대가 돌아왔다. 사실 2011년에는 WAR 기준 타선 4위, 투수진 1위였기에 이때 달성한 정규시즌, 한국시리즈, 아시아 시리즈 트리플 크라운은 타선보단 투수진의 힘이 컸고, 이승엽이 일본에서 복귀한 2012년부터 진짜 공격 야구가 다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특히 2014년에는 비록 역대급 타고투저의 흐름을 타긴 했으나 1987년 삼성의 팀 타율 0.300을 넘어서는 0.301의 신기록을 세웠고, 이듬해인 2015년에 곧바로 0.302로 경신했다. 2015년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도 팀 타율 3할에 도전했으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만난 삼성이 9이닝 1안타로 넥센 타선을 잠재우며 몸소 3할 아래로 떨어뜨려줬고, 2017년 KIA 타이거즈가 달성하기 전까진 팀 타율 3할을 기록한 팀은 삼성이 유일했다.[* 2017년 KIA의 팀 타율은 0.302로 2015년 삼성과 공동 최고 기록이었다.] 4년 연속 통합우승, 5년 연속 정규시즌 우승을 이룩한 삼성 왕조의 원동력은 그야말로 불을 뿜는 타선이었다고 할 수 있었고, 호성적과 더불어 파워 히터는 아니지만 배영섭, 이지영, 박해민, 구자욱 등 준수한 신인 야수들도 꾸준히 등장했다. 그러나 2015년 말부터 2016년 말까지 1여 년의 시간동안 박석민, 최형우가 FA를 통해 타 팀으로 이적했고, 야마이코 나바로도 삼성을 떠나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했으며 채태인도 트레이드로 팀을 떠나면서 순식간에 타선이 붕괴되었다. 이후로는 구자욱과 외국인 타자(다린 러프-호세 피렐라)를 주축으로 겨우 타선을 지탱하고 있으며 이원석, 강민호, 오재일 등 내부 육성보단 외부 FA 영입을 통해 타선 강화를 꾀하고 있다.

2024년에는 어퍼스윙, 풀히팅, 적극적 타격, 쿠세 읽기, 팀배팅 거부 등의 메이저리그식 타격이론을 극단적으로 신봉하는 이진영 코치를 영입하며 다시 라팍을 이용하는 빅볼야구가 부활, 용병 타자가 10개 구단 중 가장 망한 팀임인데도 KBO 리그 전체 팀 홈런 수 압도적 1위를 달성했다. 다만 그 댓가로 출루율이 크게 낮아지며 이진영 코치는 삼성 팬덤에게 비판을 받았지만 적어도 타자 파트는 메이저리그식 야구이론을 신봉하던 2000년대 김응용 시절로 어느 정도는 회귀한 셈이다.

팀 컬러가 잠시 스몰볼+지키는 야구로 바뀐 선동열 시대를 빼면 극단적 빅볼야구를 구사하는 구단답게 도루가 매우 적다. 왜냐하면 굳이 아웃이나 부상의 리스크가 있는 도루를 하면서 상대 배터리를 흔들지 않아도 타선의 엄청난 파괴력으로 손쉽게 대량 득점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구의 클린업 타자 양준혁이 193도루로 팀 통산 도루 1위였을 만큼 준족 성향의 선수가 드물었고, 2010년대 이전까지의 리드오프였던 류중일박한이도 전형적인 리드오프라기엔 주력이 모자란 선수들이었다.[* 사실 류중일은 타격도 나쁘지 않았지만 유격수였던 만큼 수비에서 더 강점을 보였던 선수였다. 당시 삼성 타선은 장타에 특화된 타자들이 여럿 포진되어 있었기에 팀 내에서 출루 능력과 주루 센스가 돋보이는 류중일이 리드오프로 기용되었다. 하지만 준수한 주루 센스와 달리 단순 주력은 그다지 빠르지 않아서 20개 이상 도루를 기록한 시즌은 1990년 딱 한 번뿐이었다. 박한이는 컨택 면에선 자타가 공인하는 수준급 타자였고, 발도 결코 느리진 않았으나 주루 센스가 꽤 나빴다. 괜히 김응용 감독이 농반진반으로 "박한이는 정신병자다"라고 언급한 게 아닌데, 주루에서 본헤드 플레이가 잦았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삼성은 전통적으로 소총부대보다는 대포부대의 이미지가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팀 컬러와 대척점에 서 있는 팀이 LG 트윈스다. LG는 홈런왕 배출 경험은 단 한번도 없지만 MBC 청룡 시절부터 김인식, 김재박, 이해창, 유지현, 이대형 등 기본적으로 발이 빠르고 주루 센스가 훌륭한 선수들이 대대로 배출되었고, 1990년대에는 대포보다는 집중력 있는 연속 안타로 상대를 흔드는 '신바람 야구'로 인기를 얻었던 팀이었다. LG가 암흑기에서 벗어나 부흥기에 들어선 2020년대에도 홍창기, 문성주, 신민재 등 이런 타입의 선수들이 타선에 많이 포진되어 있다. 삼성이 2024년 들어 홈구장을 이용하는 뻥야구를 하는 것과는 정반대.] 오죽하면 팀의 첫 도루왕이 창단 32년만인 2014년에 나왔을까. 하지만 류중일 감독 시기에 어느 정도 체질 개선이 이뤄지면서 첫 도루왕 배출 이후 2015-18년 박해민이 4년 연속 도루왕을 차지했고, 2015년 1군에 데뷔한 구자욱도 어렵지 않게 두 자릿수 도루를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투수진의 경우 역대 최고수준의 타선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편. 이는 피네스 피처 중시 성향이 문제라는 의견도 있으나, 우수한 피네스 피처들이 많이 배출된 2010년대 초중반을 감안하면 그냥 팀이 투수를 상대적으로, 특히 20세기까지는 상당히 못 키운 것에 가깝다. 20세기 삼성은 레전드급 타선이 분포한 극단적 타격의 팀이었는데, 투수진은 그에 비해서 리그 평균에 미치지 못했다.[* 실제로 팀 타선 올타임 레전드의 경우 20세기나 21세기나 모두 분포해있는 반면 배영수, --윤성환--, 장원삼, JOKKA 등의 레전드 투수들은 거의 다 21세기 선수들이다.] 1982년 창단 이후 김응용 감독 취임 직전인 2000년까지 19시즌동안 타선은 단 한번도 상위권을 벗어난 적이 없지만, 투수진은 다섯 시즌(1982, 1984, 1985, 1993, 1990)을 제외하면 줄곧 하위권에 머물렀다. 그래서 1980-90년대 당시 선동열을 필두로 막강한 투수진을 갖추고 있었던 해태 타이거즈에게 한국시리즈에서 번번히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고,[* 정규시즌 우승을 위해선 타선이 중요하지만, 한국시리즈 우승을 위해서는 투수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래서 삼성은 타선의 힘으로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해놓고도 한국시리즈에서 미끄러지는 일이 잦았다. 해태 에이스들인 조계현, 선동열, 이강철 등에게 탈탈 털린 것은 물론이거니와 오히려 한국시리즈에선 저런 에이스급들이 아닌 다른 백업급 선수들에게도 심하게 농락당하며 준우승만 여러 차례 달성했다.] 투타 밸런스가 비로소 맞기 시작한 2000년대에 들어서야 본격적인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다. 2000년대 중후반 선동열 감독 재임기에는 권오준오승환으로 대표되는 불펜진이 중심이었지만, 2010년대 초반 류중일 감독 재임기에는 윤성환-장원삼 원투 펀치를 앞세운 선발진 중심으로 전환했다. 따라서 두 감독의 투수 운용 방식에는 차이가 있었는데, 선동열은 선발 투수를 퀵후크하고 불펜을 일찍 가동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면 류중일은 선발 투수를 되도록 길게 끌고 가면서 이닝을 많이 먹이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선동열 재임기의 불펜진이 어디 가진 않아서 'JOKKA 라인'으로도 불렸던 KBO 역사상 최고의 불펜진은 2012년 5월 24일 LG전부터 2014년 5월 27일 롯데전까지 7회 리드시 144연승이라는 절대 깨지지 않을 대기록을 세웠다. 또 앞서 언급했듯이 류중일 재임기에 선발 중심 야구로 전환하면서 2013-15년에는 리그 역사에 남을 수준의 선발진을 구축하게 되었다. 2013년에는 배영수(14승)-윤성환(13승)-장원삼(13승)-차우찬(10승)이라는 토종 10승 투수 4명을 배출하였고, 외국인 투수들이 부상에 시달리지 않고 분발했다면 5명의 10승 투수를 배출하는 흔치 않은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 2014년에는 오승환이 일본으로 떠나 공석이 된 마무리 투수 자리를 맡게 된 임창용이 크게 부진하면서 불펜진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 와중에도 지옥 수준의 타신투병에서 9개 구단 중 유일하게 선발 5명 전원이 100이닝을 소화해 투수진 WAR 리그 1위를 기록했다. 2015년에는 팀 타선의 역대급 득점 지원까지 힘입어 윤성환(17승)-알프레도 피가로(13승)-차우찬(13승)-타일러 클로이드(11승)-장원삼(10승), 선발 5명 전원이 10승을 달성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2015년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터진 원정 도박 스캔들로 인해 임창용이 시즌 종료 후 계약 해지되었고, 이후 2016년 시즌 중 안지만이 도박 관련 추가 혐의가 드러나 방출되어 투수진이 급격히 붕괴했다. 사실 이미 2015년부터 투수진 붕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선발진이 5명 전원 10승을 달성했다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외국인 투수 피가로-클로이드의 후반기 부진과 장원삼의 노쇠화라는 어두운 이면이 있었고, 불펜진은 이전부터 권오준, 정현욱, 오승환, 권혁이 차례로 이탈하면서 셋업맨 안지만과 마무리 임창용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아진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도박 스캔들로 인해 셋업맨과 마무리가 이탈했으니 남은 필승조 투수인 심창민이 혹사당하는 것은 필연적이었고, 설상가상으로 선발진도 2016-17년 외국인 투수들이 전혀 제 몫을 해주지 못하면서 2016년엔 --패패패, 2017년엔 -패패패패 수준으로 전락했다. 암흑기엔 그나마 오랜 기간 부진했던 백정현이 2017년 이후 선발의 새로운 한 축으로 떠올랐고, 2018년엔 비록 한 해뿐이지만 최충연의 각성을 필두로 불펜진 WAR 리그 1위, 투수진 WAR 4위까지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위안거리였다.

전반적으로 발 느린 거포, 파워히터를 선호하는 타선과는 이미지가 맞지 않게도 전성기 김상엽과 배영수[* 전성기 배영수는 안우진과 비슷한 스타일이었으며 이마저도 토미존을 받은 뒤에는 구속 10km가 날아가 다른 삼성 투수들처럼 기교파가 되었다.]를 빼면 역사적으로 경기운영과 제구가 뛰어난 피네스 피처를 선호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사실 중간 계투마무리 투수는 보직 특성상 당연히 임창용, 안지만, 오승환 등 구위가 압도적인 선수들이 많았지만, 선발 투수2000년대 초중반 배영수를 제외하면 파워 피처보다는 피네스 피처가 흔한 것이 특징이다. 그 배영수마저도 혹사의 여파로 구속이 하락하면서 2000년대 후반 이후 피네스 피처로 전향했고, 마침 이즈음부터 윤성환-장원삼 두 피네스 피처가 팀의 토종 1, 2선발로 자리잡아 왕조를 이끌었으며 왕조 이후로도 백정현, 최채흥, 원태인 등 대부분의 토종 선발 투수가 피네스 피처다. 20세기부터 성준, 전병호 등 흑마구 투수들이 다수 배출되는 등 최근 암흑기의 투수 육성 기조를 비판하는 시선에서의 편견과는 달리 투수 파트 쪽에서의 팀 컬러는 암흑기 이전부터도 전반적으로 경기운영이 좋은 피네스 피처가 크게 우세했다.

다만 타선에서 암흑기 이후 죄다 작전수행능력이 뛰어난 교타자 위주로 지명하는 방향으로 틀어버린 것과 달리 암흑기 시절부터는 극도로 피네스 피처 경향이 심해져버렸다. 김한수 시절에 최충연과 장필준이 필승조로 활약했으나 이들이 혹사로 망하자 투수들을 죄다 피네스 피처로 뽑고 현역 시절 JOKKA 라인의 핵심 불펜 중 하나였던 정현욱이 아이러니하게 투수코치가 되더니만 그 선수들을 팔각도를 천편일률적으로 올리는 잘못된 코칭으로 망치며 팀 투수진 팜 전체가 나락을 가버렸다. 즉 이 기간동안에는 경기운영이 좋다고 알려진[* 윤성환, 장원삼처럼 실제 경기운영이 좋은 투수가 아니다! 실제 경기운영이 좋은 투수는 구창모, 윤영철 등의 사례. 전형적인 왕조 시절까지의 삼성 스타일인 투수들이다.] 공 느린 무툴 투수들과 역시나 쌕쌕이 위주의 강한울식 슬랩 히터로 상위지명을 도배해 팜 전체가 멸망했으며 이로 인해 2023년까지는 운동능력이 떨어지거나 운동능력이 있어도 BQ가 회생불가인 선수들만 팜에 잔뜩 쌓여서 단체로 썩어가는 충격적인 투타 팜을 자랑했었고 이는 투수 파트 한정으로 팀 개편 이후 리빌딩이 진행되며 타선이 뻥야구 체제로 전환된 2024년에도 현재진행형이다. 투수 파트가 육성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걸 감안해야겠지만. 이후 2025년에는 비로소 정현욱이 나가며 그나마 투수진이 정상화되고 있다.

또한 류중일, 김한수, 이승엽, 박석민, 채태인, 김상수, 박해민 등 수비가 뛰어난 야수들이 대대로 많이 배출되었다. 여기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선수들이라도 삼성 야수진은 전통적으로 수비 기본기가 좋은 편이며, 이는 선수들의 타고난 재능과 피 나는 연습 덕도 있지만 2000년대에 이미 MLB의 수비 교범을 들여왔으며 수비의 중요성을 꾸준히 강조해온 코칭스태프진의 역할도 컸다.[* 특히 유격수 출신 감독이었던 류중일은 수비 기본기가 갖춰지지 않은 유망주는 잘 기용하지 않았다. 이건 국대 감독 시절에도 마찬가지. 마찬가지로 유격수 출신인 박진만 감독도 스프링캠프에서 혹독하게 펑고를 쳤다. 둘 다 삼성 레전드 유격수 출신이다.]

10개 구단을 통틀어 최고 수준의 훌륭한 통산 성적과는 별개로, 전통적으로 포스트시즌에 약한 팀이다. 우선, 삼성은 2024년 기준으로 KBO 리그 역대 최초 포스트시즌 단일 팀 통산 100패를 달성했다.[* 포스트시즌 단일 팀 통산 첫 100승은 2021년 플레이오프에서 두산 베어스가 달성했다. 공교롭게도 2021년 플레이오프도 삼성과 했다.] KBO 리그 통산 승률 1위의 명문 구단에 7회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한 팀이 무슨 포스트시즌에 약하냐고 여길 수 있겠지만, 삼성의 포스트시즌 통산 승률은 현존 10개 구단 중 한화 다음가는 9위이다. 심지어 가을을 많이 못 간 한화[* 한화는 2006년까지는 나름 준 단골 수준으로 가을에 많이 갔으나 이쪽도 빙그레 시절 해태한테 매년 두들겨맞으며 가을야구 성적이 나쁘다.]와는 달리 삼성은 가을야구에 많이 진출했기에 가을야구에서의 부진이 더욱 두드러진다. 2010년대 이후로 LG나 키움의 팬덤이 자 팀이 포스트시즌에서 약하다는 불평을 하지만, 삼성보다는 포스트시즌 승률이 높은 편이다. 이것도 그나마 2002년-2014년에 상당수 끌어올려놓은 것. 특이사항으로 삼성은 준플레이오프에는 강하지만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에서는 열세를 보이며, 이는 해태-KIA 타이거즈와 정반대의 요소이다.[* 해태-KIA 타이거즈는 한국시리즈에서는 극강이나, 플레이오프-준플레이오프 성적은 매우 좋지 않다. 특히 준플레이오프는 통산 전적이 2승 9패에 불과하다.]

삼성이 포스트시즌에서 약세를 보이게 된 데에는 1980년대부터 이어진 달구벌의 저주가 상당히 컸는데, 이 기간동안 KBO 리그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가을에 약한 투수였던 김시진과 가을야구에서 클러치 실책을 잦게 한 장효조[* 장효조가 아예 가을에 못하는 선수라는 오해가 있으나 장효조의 통산 포스트시즌 타격성적은 역대 최고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비슷한 수준의 선수가 지금은 메이저리그에 간 이정후 하나가 끝일 정도. 정작 이정후도 KBO 한국시리즈 우승을 추가하진 못했다. 엄밀히 말해 장효조는 성적과 실력이 문제가 아니라 클러치 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게 문제였다.] 등의 문제로 포스트시즌, 특히 한국시리즈 승률이 몹시 좋지 않았다. 결국 2002년 백투백 홈런으로 따낸 우승 전까지 한국시리즈 우승은 하지 못했으며, 각 기간동안에도 팀에 포스트시즌에서 못하는 것으로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 한두명쯤은 꼭 있을 정도.[* 대표적으로 20세기 김시진, 2000년대 김진웅, 2018년 이후엔 강민호.] 왕조때 윤성환/장원삼 등 빅게임 피처가 있었던 것과는 정반대.

특히 한국시리즈에서 성적이 많이 안 좋은 편인데, 통산 한국시리즈 승률은 뒤에서 2위[* 승률 꼴찌는 한화로 이쪽도 한국시리즈 잔혹사가 심각하다. 다만 한화는 2006년 이래로 한국시리즈 진출 자체가 없으며, 거기서도 삼성한테 졌다.]로 매우 안 좋으며, 이것도 대부분 라이벌 팀들인 해태-KIA[* 단 해태-KIA는 애초에 한국시리즈 준우승 자체가 없다. 후술할 두산도 2017년에는 KIA 상대로 손도 못 쓰고 졌다.], 두산[* 두산에게는 원년 준우승은 물론 충격적인 2001/2015년 업셋까지 당하며 두산이 우승한 세 번 중에 절반을 헌납했다. 이로 인해 준우승 9번으로 발생한 콩산 이미지가 삼성한테는 매우 약할 정도.], 롯데[* 가장 대표적 사례는 바로 악명높은 1984년 한국시리즈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무려 최동원 하나한테 팀이 압살당하며 기나긴 한국시리즈의 잔혹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정작 롯데는 백인천 시대를 거치며 이젠 한국시리즈에 못 가는 팀이 됐다.], 지금은 없어진 현대[* 9차전까지 간, 현재까지 명승부로 회자되는 2004년 한국시리즈.] 등에게, 그것도 매번 임팩트 있게 두들겨맞으며 나온 결과라 체감이 훨씬 더 안 좋다. 1984년 한국시리즈, 2001년 한국시리즈, 2004년 한국시리즈 등 굉장히 유명한 한국시리즈에서 패퇴한 전적이 있으며, 업셋 우승은 하나도 없지만 피업셋은 적지 않다. 그나마 2004년 한국시리즈는 삼성이 도전자 입장이었고 비록 이기진 못했지만 배영수의 비공인 10이닝 노히트노런 등 많은 찬사를 받았으나, 져주기 게임의 저주이자 최동원 한 명한테 압도당한 1984년, 두산에게 두 번 피업셋당한 2001년, 2015년 한국시리즈 등은 그야말로 빼도박도 못하는 흑역사나 다름없다.

사실 이 준우승들은 20세기에 다 쌓은 것이며 삼성의 전성기로 불리는 2002년 이후로 자를 시 7회 우승에 4회 준우승, 흑역사인 2001년까지 합쳐도 우승 횟수가 더 많다. 2002년부터 왕조 때까지만 계산할 시 7회 우승에 2회 준우승으로 업셋은 하나도 못했지만 일단 정규시즌에 우승해서 한국시리즈 진출을 선점한 상황에서는 반드시 우승했다. 그러나 암흑기가 시작된 2015년부터는 2회 진출해서 2승 8패, 그것도 전성기 이전까지 한국시리즈에서 신나게 두들겨맞았던 라이벌 팀들에게만 기록하며 그동안 만회한 것을 다시 깎아먹고 다시 부진에 빠졌다. 물론 애초에 이 기간동안 삼성은 암흑기가 진행되며 한국시리즈 자체에 많이 못 나갔고, 해당 한국시리즈들에서는 삼성 측의 전력 이탈이 워낙에 극심해[* 저 두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은 KBO 한국시리즈 역사상 최악의 전력 이탈을 겪었다. 2015년에는 악명높은 원정 도박 사건이 일어났고 2024년에는 주전 선수들이 한국시리즈 직전에 귀신같이 전부 부상당해 백업들로 경기했다.] 삼성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할 것이라는 의견은 거의 없다시피했다.

삼성이 한국시리즈에서 불운을 겪기도 했고 삼성에 굵직굵직하게 포스트시즌에서 부진한 선수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상당히 나쁜 통산 포스트시즌 성적의 근본 원인은 삼성 선수들이 전반적으로 새가슴이라서라기보다는 삼성이 전통적으로 타격 위주로 팀을 꾸렸기에 발생했던 문제로, 단기전에서는 기본적으로 마운드의 위상이나 비중이 훨씬 커지는데 반해 삼성이 한창 가을야구에서 죽을 쑤던 20세기까지는 삼성의 마운드 뎁스가 팀 성적에 비해 좋지 않은 편이었기에 매번 가을에서 물을 먹었다. 타격의 경우 컨디션이나 멘탈리티에 따라 기량이 널을 뛰는 편이고 안 그래도 한국시리즈 우승 가뭄으로 전반적인 부담이 심했던 상황에서 삼성의 타자들이 포스트시즌, 특히 한국시리즈 등 투수력과 집중력이 매우 높아지는 무대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1984년 한국시리즈 당시의 충격으로 인하여 한국시리즈=삼성의 무덤이라는 인식이 강해졌고 선수들이 주눅들며 더욱 부진하는 면모가 적지 않았으나 2002년 한국시리즈 이후로 이러한 부정적인 점을 상당수 극복했다. 삼성이 포스트시즌에서 그나마 강해진 2000년대 이후로 김응용 시기와 선동열 시기를 거치며 마운드가 개선되었고 이들이 상당수 미스터 옥토버 기질까지 있어 그렇게 가을야구에서의 약점까지 사라지며 삼성 왕조가 건설된 것이다. 그러나 암흑기가 시작된 2015년 한국시리즈 이후로는 다시 포스트시즌에 강한 팀이라고 보기도 어려워졌으므로[* 가을야구에 많이 못 나갔을뿐더러 나갔을 때의 성적도 안 좋았다. 2015년 한국시리즈 1승 후 4연패로 탈락, 2021년 타이브레이커-플레이오프 3연패. 2024년엔 플레이오프에서 LG를 3승 1패로 꺾고 올라왔으나 한국시리즈에서 사상 초유의 서스펜디드 선언과 주전 선수들의 부상으로 1승만 챙겼다.] 최고의 명문 구단 중 하나로 꼽히는 삼성이 앞으로도 8년간의 암흑기를 떨쳐내고 그 위상을 잡으려면 차츰 해결해나가야 하는 문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역사

구장

1군 구장

국부 강용석 천리마 야구장

대홍단 포타토즈
Daehongdan Potatos
대홍단 국부 강용석 천리마 야구장
(Daehongdan Pater Patriae Kang Yongseok Chollima Baseball Stadium)
[ 펼치기 · 접기 ]
2016년 두만강 유역 대홍수로 인하여 구장이 유실되었다.

스타디움 스폰서 천리마 마트의 이름인 천리마가 들어갔다.


청진종합운동장 야구장

대홍단 포타토즈
Daehongdan Potatos
청진종합운동장 야구장
(cheongjin Baseball Stadium)


경원종합운동장 야구장

대홍단 포타토즈
Daehongdan Potatos
경원종합운동장 야구장
(Gyeongwon Baseball Stadium)

2군 구장

대홍단 감자 야구장

대홍단 포타토즈
Daehongdan Potatos
대홍단 감자 연습장
(Daehongdan Potato Training Center)

원래는 감자밭에서 겨울에 수확을 끝내고 적당히 땅을 다져서 했는데, 대홍단 포타토즈가 당시 상승세를 타자 농협에서 20억원을 대출받아 야구장을 만들었다. 당시 인터뷰를 보면 당시 선수인 김성식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 다음해 여름에 야구장과 그 일대가 침수하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신인 드래프트

대홍단의 스타들

은퇴식

은퇴식은 넓은 공터에서 이루어진다. 일반적인 은퇴식처럼 연사와 여러 사람들이 참석하여 이루어지지만 특이한 문화가 있는데, 이를 위해서 온갖 방송사들을 불러모은다. 그리고선 모든 사람들에게 삶은 감자를 하나씩 나누어주고 은퇴하는 선수에게 던지는 것이다. 초반에는 일반 생감자를 던져서 부상자가 나오기도 했었다. 지금은 삶은 감자로 던지는데, 상품성이 있는 식용감자를 던져 음식으로 장난친다는 비판여론이 생겨 가치가 없는 작은 감자로 던지라는 요구가 있었으나, 구단은 "대홍단감자는 모두 훌륭하고 커서 작아서 상품성이 없는건 없다."...라는 이유로 인해서 멍든 감자를 삶아서 던지게 되었다.


응원

응원이 거칠기로 유명하다. 상대 선수 에이스에게 생감자를 던지는것은 기본, 우리 선수라도 강원도 출신이면 니네감자나 먹으라며 생감자를 던지고, 상대팀이 이길거같으면 아예 상대 선수들의 차에 썩은 감자테러를 하는 등 과격하기로 유명하다.


인기와 팬덤

여담

관련 기록

지역 연고 학교

사건사고

둘러보기

  1.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내
  2. 삼성라이온즈 대표이사 겸임
  3. 인터넷 무료 소스에서 가져온 것이다.
  4. 처음에는 그냥 평범하게 평면으로 된 글씨였으나, 좀 변화를 주라 해서 기울임체로, 좀 더 격동적이게 하라는 구단주의 요구에 의해 이렇게 완성되었다.
  5. 이때 연예인을 초청한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몰려왔다. 절대 야구를 보러온건 아닌듯 하다.
  6. 한국 야구 역사상 최저 기록, 대홍단 감자 야구장에서 이루어진 경기에서 비도오고 성적도 저조한 마당에 마침 산사태 예고로 한명도 오지 않오게 되자, 지역에서 감자캐던 주민 3명이 공짜로 표를 얻어 들어가 관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