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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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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의 군사 국가화와 익찬 의회 체제로의 국가 개조를 목표로 1930년(쇼와 5년)에 결성된 초국가주의적인 비밀 결사 조직.
1930년 9월, 참모본부의 하시모토 긴고로 중령, 육군성의 사카타 요시로 중령, 도쿄 경비사령부의 히구치 기이치로 중령이 발기인이 되어 설립했다.
참모본부나 육군성의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엘리트 장교가 모여, 카게사 요시아사, 와치 타카지, 쵸우 이사무, 이마이 다케오, 나가이 야쓰지 등의 '노령통'라고 불리는 상관, 위관이 많았고 20여 명이 참가했다.
설립 취지서에는 정당 정치의 부패와 군축에 대한 저주가 언급돼 군부 독재 정권 수립에 의한 국가 개조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회원은 1931년 5월경에는 100여명까지 증가했지만 내부에는 파괴파·건설파·중간파의 3파가 있어 끊임없이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하시모토 · 쵸우 등을 중심으로 한 급진적인 그룹은 오카와 슈메이 등과 협력하여 1931년(쇼와 6년) 3월의 3월 사건, 같은 해 10월의 10월 사건을 계획하여 군부의 독주를 도왔다. 사쿠라회는 매월 회의 때 가이코샤를 이용하고 있었지만 이윽고 자금이 풍부해지자 급진파는 신바시 마스다야에서 기생들을 끼고 유희를 즐겼기 때문에 훗날 청년 장교들에게 "연회파"라고 불리게 되었다.
사쿠라회는 10월 사건 후에 해산되었지만 그 잔당들은 통제파 성향의 "청군파"라는 약소파벌을 형성했다.
황도파가 중앙에서의 신임을 잃자 5.15 사건과 아이자와 사건[6], 2.26 사건 등의 쿠데타 시도로 자멸하면서 자연스레 일본 제국 육군을 완전히 장악하고, 쇼와 천황의 묵인 속에 총력전 체제라는 명분으로 군국주의 체제를 수립한다. 통제파는 일본군의 지배적인 세력이 되었고, 견제 세력이 없어지자 1940년 정도에 파벌로서는 사라졌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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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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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25일 (월) 23:11 기준 최신판

총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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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사령부
總司令部 | General Headquarters
창설일 1931년 6월 1일
종류 최고군령기관
역할 대한제국군에 대한 통수권 행사
총사령관 대원수 영강황제
총참모장 해군 부원수 양용모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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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 한성부 주작대로 175

일치봉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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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의 군사 국가화와 익찬 의회 체제로의 국가 개조를 목표로 1930년(쇼와 5년)에 결성된 초국가주의적인 비밀 결사 조직.

1930년 9월, 참모본부의 하시모토 긴고로 중령, 육군성의 사카타 요시로 중령, 도쿄 경비사령부의 히구치 기이치로 중령이 발기인이 되어 설립했다.

참모본부나 육군성의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엘리트 장교가 모여, 카게사 요시아사, 와치 타카지, 쵸우 이사무, 이마이 다케오, 나가이 야쓰지 등의 '노령통'라고 불리는 상관, 위관이 많았고 20여 명이 참가했다.

설립 취지서에는 정당 정치의 부패와 군축에 대한 저주가 언급돼 군부 독재 정권 수립에 의한 국가 개조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회원은 1931년 5월경에는 100여명까지 증가했지만 내부에는 파괴파·건설파·중간파의 3파가 있어 끊임없이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하시모토 · 쵸우 등을 중심으로 한 급진적인 그룹은 오카와 슈메이 등과 협력하여 1931년(쇼와 6년) 3월의 3월 사건, 같은 해 10월의 10월 사건을 계획하여 군부의 독주를 도왔다. 사쿠라회는 매월 회의 때 가이코샤를 이용하고 있었지만 이윽고 자금이 풍부해지자 급진파는 신바시 마스다야에서 기생들을 끼고 유희를 즐겼기 때문에 훗날 청년 장교들에게 "연회파"라고 불리게 되었다.

사쿠라회는 10월 사건 후에 해산되었지만 그 잔당들은 통제파 성향의 "청군파"라는 약소파벌을 형성했다.

황도파가 중앙에서의 신임을 잃자 5.15 사건과 아이자와 사건[6], 2.26 사건 등의 쿠데타 시도로 자멸하면서 자연스레 일본 제국 육군을 완전히 장악하고, 쇼와 천황의 묵인 속에 총력전 체제라는 명분으로 군국주의 체제를 수립한다. 통제파는 일본군의 지배적인 세력이 되었고, 견제 세력이 없어지자 1940년 정도에 파벌로서는 사라졌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공존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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