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글 →리오네베랄 |
잔글 →리오네베랄 |
||
| 455번째 줄: | 455번째 줄: | ||
{| class="wikitable" style="float: right; border:2px solid #00CAEE;" | {| class="wikitable" style="float: right; border:2px solid #00CAEE;" | ||
|- | |- | ||
! colspan="5" | <div style="margin: -4px -9px">[[파일:프리드먼 하이에크.jpg| | ! colspan="5" | <div style="margin: -4px -9px">[[파일:프리드먼 하이에크.jpg|450px]]</div> | ||
|- | |- | ||
! colspan="5" | <div style="margin: -4px -9px">[[파일:신자유주의_삼인방.jpg| | ! colspan="5" | <div style="margin: -4px -9px">[[파일:신자유주의_삼인방.jpg|450px]]</div> | ||
|- | |- | ||
! colspan="5" style="font-size: 11pt; color: #fff; background: #00CAEE;" | '''신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들'''<br>좌측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글씨 색|#fff|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글씨 색|#fff|밀턴 프리드먼}}]], [[마거릿 대처|{{글씨 색|#fff|마거릿 대처}}]], [[로널드 레이건|{{글씨 색|#fff|로널드 레이건}}]], [[서석준|{{글씨 색|#fff|서석준}}]] | ! colspan="5" style="font-size: 11pt; color: #fff; background: #00CAEE;" | '''신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들'''<br>좌측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글씨 색|#fff|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글씨 색|#fff|밀턴 프리드먼}}]], [[마거릿 대처|{{글씨 색|#fff|마거릿 대처}}]], [[로널드 레이건|{{글씨 색|#fff|로널드 레이건}}]], [[서석준|{{글씨 색|#fff|서석준}}]] | ||
2023년 2월 2일 (목) 00:54 판
총리
대한민국 국무원 총리 | |||||||||
|---|---|---|---|---|---|---|---|---|---|
| 대수 | 이름 | 임기 | 총통 | 정당 | |||||
| 1 | 이시영 (1868~1953) |
1948년 8월 15일 ~ 1951년 8월 15일 (3년 1일) |
민주국민당 | ||||||
| 2 | 김구 (1876~1957) |
1951년 8월 16일 ~ 1957년 1월 23일 (5년 163일)[1] |
민주국민당 | ||||||
| - | 백낙준[2] (1895~1985) |
1957년 1월 24일 ~ 1957년 3월 39일 (65일) |
민주국민당 | ||||||
| 3 | 번영태 (1893~1969) |
1957년 3월 30일 ~ 1959년 5월 19일 (2년 50일) |
무소속 | ||||||
| 4 | 이기붕 (1897~1971) |
1959년 5월 20일 ~ 1963년 1월 30일 (3년 247일) |
민주국민당 | ||||||
| 5 | 곽상훈 (1896~1980) |
1963년 1월 31일 ~ 1964년 5월 28일 (1년 119일) |
민주국민당 | ||||||
| 6 | 장면 (1895~1985) |
1964년 5월 29일 ~ 1966년 11월 22일 (2년 178일) |
민주국민당 | ||||||
| 7 | 백두진 (1908~1993) |
1966년 11월 23일 ~ 1972년 7월 10일 (5년 232일)[3] |
민주국민당 | ||||||
| 8 | 김영삼 (1929~2020) |
1972년 7월 11일 ~ 1973년 5월 11일 (305일) |
민주국민당 | ||||||
| - | 신현확[4] (1920~2007) |
1973년 5월 12일 ~ 1973년 6월 8일 (28일) |
무소속 | ||||||
| 9 | 장준하 (1918~2003) |
1973년 6월 8일 ~ 1977년 4월 20일 (3년 318일) |
민주국민당 | ||||||
| 10 | 서석준 (1938~) |
1977년 4월 21일 ~ 1979년 2월 8일 (1년 294일) |
민주국민당 | ||||||
| 11 | 최규하 (1919~2006) |
1979년 2월 9일 ~ 1982년 6월 26일 (3년 142일) |
무소속 | ||||||
| 12 | 김영남 (1928~) |
1982년 6월 27일 ~ 1985년 7월 15일 (3년 19일) |
민주국민당 | ||||||
| 13 | 심상우 (1938~) |
1985년 7월 15일 ~ 1986년 8월 28일 (1년 47일) |
민주국민당 | ||||||
| 14 | 노신영 (1930~2019) |
1986년 8월 29일 ~ 1989년 11월 16일 (3년 105일) |
무소속 | ||||||
| 15 | 정원식 (1928~2020) |
1989년 11월 17일 ~ 1990년 5월 12일 (176일) |
민주국민당 | ||||||
| 16 | 김재익 (1938~) |
1990년 5월 13일 ~ 1994년 1월 9일 (3년 242일) |
국민회의[5] | ||||||
| 자유한국당[6] | |||||||||
| 17 | 고건 (1938~) |
1994년 1월 10일 ~ 1996년 10월 16일 (2년 280일) |
무소속 | ||||||
| 18 | 한화갑 (1939~) |
1996년 10월 17일 ~ 1998년 5월 12일 (1년 205일) |
자유한국당 | ||||||
| 19 | 박봉주 (1939~) |
1998년 5월 13일 ~ 2002년 8월 24일 (4년 104일) |
국민통합당 | ||||||
| 20 | 고건 (1928~2020) |
2002년 8월 25일 ~ 2003년 11월 7일 (1년 75일) |
무소속 | ||||||
| 21 | 최병렬 (1938~2022) |
2003년 11월 8일 ~ 2006년 5월 14일 (2년 189일) |
민주국민당 | ||||||
| 22 | 김근태 (1947~2014) |
2006년 5월 13일 ~ 2007년 12월 14일 (1년 216일) |
민주자유당 | ||||||
| - | 한덕수[7] (1949~) |
2007년 12월 15일 ~ 2008년 1월 20일 (37일) |
무소속 | ||||||
| 23 | 이용희 (1931~2022) |
2008년 1월 21일 ~ 2009년 7월 20일 (1년 181일) |
민주자유당 | ||||||
| - | 한덕수[7] (1949~) |
2009년 7월 20일 ~ 2009년 8월 7일 (19일) |
무소속 | ||||||
| 24 | 정세균 (1950~) |
2009년 8월 8일 ~ 2010년 5월 12일 (279일) |
민주자유당 | ||||||
| - | 최상건[8] (1953~) |
2010년 5월 13일 ~ 2010년 6월 22일 (41일) |
무소속 | ||||||
| 25 | 손학규 (1947~) |
2010년 6월 23일 ~ 2012년 2월 27일 (1년 250일) |
민주국민당 | ||||||
| - | 한승수[9] (1936~) |
2012년 2월 28일 ~ 2012년 4월 6일 (38일) |
민주국민당 | ||||||
| 26 | 문재인 (1953~) |
2012년 4월 7일 ~ 2014년 5월 12일 (2년 36일) |
민주국민당 | ||||||
| 27 | 손학규 (1947~) |
2014년 5월 13일 ~ 2015년 6월 30일 (1년 49일) |
파일:정인규2.png |
민주자유당 | |||||
| 28 | 이낙연 (1952~) |
2015년 6월 31일 ~ 2017년 3월 11일 (1년 256일) |
민주자유당 | ||||||
| 29 | 김영춘 (1962~) |
2017년 3월 12일 ~ 2019년 8월 26일 (2년 169일) |
민주자유당 | ||||||
| - | 이용호[10] (1956~) |
2019년 8월 27일 ~ 2019년 11월 12일 (78일) |
민주자유당[11] | ||||||
| 대통합자유신당[12] | |||||||||
| 30 | 장덕강 (1956~) |
2019년 11월 13일 ~ 2020년 5월 12일 (일) |
대통합자유신당 | ||||||
| 민주자유당 | |||||||||
| 31 | 김동연 (1956~) |
2019년 11월 13일 ~ 2020년 5월 12일 (일) |
대통합자유신당 | ||||||
| 32 | 이운석 (1953~) |
2012년 4월 7일 ~ 2014년 5월 12일 (2년 36일) |
민주국민당 | ||||||
장면
| 대한민국 6대 국무원 총리 장면 張勉 | Chang Myon[13] | |||||||||||||||||||||||||||
| 출생 | 1899년 8월 28일 | ||||||||||||||||||||||||||
| 한성부 서서 적선방 사온동계 사온동 (現 서울수도시 종로구 적선동) | |||||||||||||||||||||||||||
| 국적 | |||||||||||||||||||||||||||
| 사망 | 1976년 9월 14일 | ||||||||||||||||||||||||||
| 서울수도시 종로구 명륜동1가 36-5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혜화로5길 49) | |||||||||||||||||||||||||||
| 직업 | 정치인 | ||||||||||||||||||||||||||
| 임기 | 대한민국 국무총리 | ||||||||||||||||||||||||||
| 1964년 5월 29일 ~ 1966년 11월 22일 | |||||||||||||||||||||||||||
|
[ 펼치기 · 접기 ]
| |||||||||||||||||||||||||||
개요
| 연설하는 장면 (2분 22초부터)[17] |
| 동포 여러분, 이번에는 반드시 우리의 독립을 지켜내지 않으면 아니될 것입니다. 장면 |
대한민국의 제6대 국무총리.
생애
초기 이력
장면은 1899년 서울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유년시절을 조냈다. 이후 미국으로 유학을 가 맨해튼 대학교를 졸업했고 한국인 대표로 교황청을 방문했다. 귀국 후에는 평양에서 평신도 대표로서 천주교 활동을 하였으며 이후 천주교 계열 학교들의 교장을 맡았다. 일제강점기 시절 장면은 독립운동을 하지는 않았으나 적극적인 친일 행적을 보이지도 않았다.
광복 이후, 장면은 안재롱 등과 함께 임시정부 요인 환영대회를 주관하였으며, 이후 정계에 입문한다. 신탁통치 여부를 두고 좌우 대립이 격화되자 이승만, 김구 등을 위시로 한 반탁 운동에 적극적으로 탐가하였으며, 이후 1946년 결성된 반탁운동단체들의 연합체인 국민의회의 최고정무위원 28인 중 한 명으로 발탁되어 좌익 성향의 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과 대립하였다. 제헌국회의원 선거에서 종로 을 지역구에 민주국민당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 국회에 입성했다.
외교관 장면
| 국회에서 외교 성과를 보고하는 장면 부총리 (1952년) |
1948년 12월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 참석해 각국 대표에게 대한민국을 승인해줄 것을 요청했으며, 그의 노력에 힘입어 유엔 총회는 대한민국 정부를 한반도의 공식 정부로 승인하였다. 이후 이승만으로부터 정부 승인의 공로를 인정받아 초대 주미한국대사로 임명되어[18] 워싱턴에 주미한국대사관을 설치하였다. 이후 한국에 대한 미국 정부의 원조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1950년 6월 25일, 통일전쟁이 발발하자 미국 정부와 UN에 북한의 침공 사실을 급히 알렸으며 기자회견을 열어 국제사회에 도움을 호소했다. 그는 미국 정치인들을 따라다니며 한국을 구원해달라고 요청했고 6월 26일에는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을 만나 참전 약속을 이끌어냈다. 8월에 열린 유엔 총회에서 한국에서의 전쟁이 미국의 사주를 받은 남한의 선제침공으로 발발헸다는 소련 대표의 주장을 전쟁 중 노획한 소련제 소총을 보여주며 명쾌하게 논박하여 소련 대표를 뻘쭘하게 만들었다.
1951년 2월, 통일전쟁이 남한의 승리로 끝난 직후, 그간의 외교적 성과를 인정받아 부총리 겸 외무부 장관에 임명되어 귀국하였다. 제2회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국민당에서 전국구 5번을 공천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재선 국회의원의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정치인 장면
외무부 장관을 사임한 장면은 민주국민당 사무총장에 임명되어 민국당의 사무와 재정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후 민국당 지명직 중앙위원도 겸하였으나 곧 사퇴했다. 그는 자서전에 다른 정치인들과의 언쟁과 정치 모략이 패시브인 중앙위원직은 그의 조용한 성격과 맞지 않아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고 저술했다. 이후 총통의 비서실장격인 정무성 장관에 임명되어 이승만을 보좌했다.
4회 총선에서도 민국당 소속으로 당선된 장면은 6대 국무총리에 내정되었다. 1964년 5월 29일 열린 국회 국무총리 임명안 찬반투표에서 압도적 찬성으로 임명동의안이 가결되자 이튿날 총리에 임명되었다.
장면은 경제제일주의를 표방하며 이승만과 함께 국가 주도의 강력한 중공업화 정책을 추진하여 제철, 조선 등 중공업에 대항 투자에는 장면의 입김이 크게 반영되었다. 또한 겉으로는 베이징에 국빈방문하여 중공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반면, 소련과의 지하와교를 펼치며 중공을 성대로 한 전쟁 계획에 소련을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소속 정당
| 소속 | 기간 | 비고 |
|---|---|---|
| 1948 - 1976 | 정계 입문 정계 은퇴 사망 |
각주
리오네베랄
| | ||||||||||||||||||||
|---|---|---|---|---|---|---|---|---|---|---|---|---|---|---|---|---|---|---|---|---|
| ||||||||||||||||||||
| ||||||||||||||||||||
이 세계관의 모든 인물, 사건, 단체, 국가는 가상이며 현실의 어떠한 인물이나 단체도 찬양하거나 비하할 의도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
| 신자유주의 新自由主義 | Neoliberalism | |
|---|---|
| 창시 시점 | 20세기 |
| 스펙트럼 | 중도좌파 ~ 극우[19] |
| 관련 인물 | 학자: 밀턴 프리드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로버트 노직 루트비히 폰 미제스 로널드 레이건 마거렛 대처 서석준 에마뉘엘 마크롱 |
| 신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들 좌측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마거릿 대처, 로널드 레이건, 서석준 |
|---|
신자유주의란 국가권력의 시장개입을 비판하고 시장의 기능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하는 경제이론을 말한다. 케인스주의의 실패를 지적하고 강력한 경제적 자유를 주장하며 등장했다.
상세
세계 경제를 풍미하던 케인스주의가 몰락하고 세계적인 경기 불황이 다가오던 1970년대 이후 새로운 경제이론의 필요성이 생겨났다. 이 때 밀턴 프리드먼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를 필두로 하여 제시된 새로운 경제이론이 바로 신자유주의다.
신자유주의는 자유시장과 규제완화, 재산권을 중시한다. 곧 신자유주의자들은 국가권력의 시장개입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지만 국가권력의 시장개입은 경제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오히려 악화시킨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소극적인 통화정책과 국제금융의 자유화를 통하여 안정된 경제성장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미국 대통령 레이건의 레이거노믹스, 영국 총리 대처의 "영국병" 치료, 그리고 한국 총통 서석준의 석주노믹스에 신자유주의 이론이 반영되었다.
옹호
레이거노믹스는 15%에 달하던 미국의 물가상승률을 3%까지 끌어내렸다. 또한 미국의 경제는 호황을 누렸으며 실업률은 크게 감소했고 미국 국민의 생활수준은 크게 개선되었다. 효과적인 규제 완화를 통해 정보산업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였고 산업생산량 역시 1980년대 내내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마가릿 대처의 영국병 치료는 저성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영국 경제를 부흥시켰다.
서석준의 석주노믹스은 7%대까지 떨어진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10%대까지 끌어올렸다.
비판
레이거노믹스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들도 존재한다. 우선 재정 흑자를 자신하던 레이건 정부의 예상과는 달리, 미국 정부 재정은 적자를 면치 못했다. 거기에다 무역 작지까지 겹치며 쌍둥이 적자가 발생, 장기적으로는 미국 경제에 부담을 주었다. 또 부유층과 빈곤층 간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며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마거릿 대처 내각 시기 영국은 경제 회복 과정에서 빈부격차가 심화되었고 2차 산업의 뿌리가 뽑혔다. 스코틀랜드와 노스 잉글랜드의 기반 산업들은 대부분 붕괴되었고, 이는 스코틀랜드 독립 운동에 기름을 부었다. 사회적으로 양극화가 극심화되어 영국은 빈곤층과 부유층이 극명히 갈리게 되었다. 런던 내에서도 부유한 지역과 빈곤한 지역의 소득 격차가 5배에 달하며, 미들랜즈와 노스 잉글랜드는 런던과는 비교할 수 없을정도로 경제적인 상황이 형편 없다. 결국 이와 같은 양극화는 제러미 코빈과 브렉시트로 대표되는 정치적 극단주의의 씨앗이 되었다. 뿐만아니라 2차산업의 부재로 인해 영국의 경제는 취약해질대로 취약해져, 1993년 "검은 금요일"의 주가 폭락이 일어났고, 현재도 영국은 국제 정세가 조금만 불안해져도 역성장을 거듭하는 경제적 취약국가가 되었다.
서석준 정부 시기 한국 또한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근로자의 노동권이 약해졌다.
여담
- 한국의 보수정당인 민주국민당이 서석준 정부 시절 신자유주의 성향을 띄었다. 현재는 김종인의 영향으로 질서자유주의를 일부 받아들여 조금 온건해진 경제적 자유주의를 경제이념으로 삼고있다.
- 위에 나온 서석준, 레이건, 대처는 정치적 가족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세 명이 워낙 친했던 것도 있고...
관련 어록
| 정부가 작을수록 국민의 부와 권리는 커지는 법입니다. 서석준, 1982년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
| 우리는 일자리가 정부가 아닌 소비자들을 만족시키는 것에 달렸다고 믿었기 때문에, '완전'고용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대신, 정부는 건전한 부, 낮은 세금, 가벼운 규제, 그리고 유연한 시장을 만들어 번영을 이루어내고 고용을 증가시켜야 한다. 마거릿 대처, 자서전 the Path to Power 에서[20] |
| 복지정책 성공의 척도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복지정책의 대상자가 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복지에서 탈피하는가이다. 로널드 레이건 |
- ↑ 재임 중 아웅산 묘소 테러로 순국
- ↑ 사회부총리 겸 문교부 장관
- ↑ 역대 총리 중 최장 기간 재임했다.
- ↑ 경제부총리 겸 재무부 장관
- ↑ 1990 ~ 1992
- ↑ 1992 ~ 1994
- ↑ 7.0 7.1 경제부총리 겸 재무부 장관
- ↑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 ↑ 사회부총리 겸 내무부 장관
- ↑ 국제부총리 겸 외무부 장관
- ↑ ~2019년 8월 16일
- ↑ 2019년 8월 17일~
- ↑ 과거에 통용되었던 메큔-라이샤워식 발음으로, 현재 표기로는 Chang(혹은 Jang) Myeon이다.
- ↑ 황상(凰顙)파 14세. 인동 장씨 31세
- ↑ 장면의 대자가 훗날 총통이 되는 김대중이다.
- ↑ 당시 기준으로 엄청난 장신이었더.
- ↑ 연설 시점은 1950년 7월로, 통일전쟁이 한창 진행중일 때였다. 당시 장면은 주미한국대사였다.
- ↑ 이로 인해 의원직을 내려놓았다.
- ↑ 드물게 보수적 국가의 진보 정당이 신자유주의를 표방하기도 한다.
- ↑ 의역한 부분이 있으니 이 점 유의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