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unist 1968 (토론 | 기여) |
Communist 1968 (토론 | 기여) |
||
| 57번째 줄: | 57번째 줄: | ||
[[대한 소비에트 정부 (리좀)|대한 소비에트 정부]]와 그 산하 조직이었던 [[항일 빨치산 (리좀)|항일 빨치산]]의 각종 테러 행위로 인해 정치는 극히 혼란스러웠다. 내각총리대신 박중양이 백주대낮에 공산당원의 총을 맞고 사망하거나, 종로경찰서가 폭탄 테러를 당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등 경성 시내에서 테러가 일어나지 않는 일이 드물었으며 1944년 초엽 이후로 정부는 함경도와 강원도, 경상북도 등 산지 지역의 행정권을 사실상 상실했다. 멸망 직전 괴뢰정부가 행정권을 가진 지역은 천안과 경성, 경기도 일대에 지나지 않았으며 나머지는 빨치산과 자유대한정부, 혹은 일본군 군부에 의해 점령되어 제대로 된 통치 행위가 불가능했다. | [[대한 소비에트 정부 (리좀)|대한 소비에트 정부]]와 그 산하 조직이었던 [[항일 빨치산 (리좀)|항일 빨치산]]의 각종 테러 행위로 인해 정치는 극히 혼란스러웠다. 내각총리대신 박중양이 백주대낮에 공산당원의 총을 맞고 사망하거나, 종로경찰서가 폭탄 테러를 당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등 경성 시내에서 테러가 일어나지 않는 일이 드물었으며 1944년 초엽 이후로 정부는 함경도와 강원도, 경상북도 등 산지 지역의 행정권을 사실상 상실했다. 멸망 직전 괴뢰정부가 행정권을 가진 지역은 천안과 경성, 경기도 일대에 지나지 않았으며 나머지는 빨치산과 자유대한정부, 혹은 일본군 군부에 의해 점령되어 제대로 된 통치 행위가 불가능했다. | ||
1943년 7월 일본 내각부의 대동아성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한 국민의 '''92%'''가 괴뢰정부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ref>그러나 본격적인 수탈 행위가 일어나기 전 과연 전국민적으로 괴뢰정부에 반대하는 여론이 형성되어져있었는가는 역사학계에서의 논쟁거리이다. 공화정의 무능에 지친 소시민 중 상당수가 괴뢰 정부를 지지했고, 이후 수탈 행위가 본격화되자 지지를 철회했다는 것이 현재 사학계의 주류 입장이다.</ref> 공산주의자나 노동조합원들의 거센 반발 외에도 일반 국민들 역시 조세를 거부하거나 철도에 돌을 뿌려 탈선을 일으키는 것 같이 국소적인 저항 행위를 이어나갔다. 격노한 일본 정부는 1944년 대한국 정부를 붕괴시키고 조선총독부를 | 1943년 7월 일본 내각부의 대동아성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한 국민의 '''92%'''가 괴뢰정부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ref>그러나 본격적인 수탈 행위가 일어나기 전 과연 전국민적으로 괴뢰정부에 반대하는 여론이 형성되어져있었는가는 역사학계에서의 논쟁거리이다. 공화정의 무능에 지친 소시민 중 상당수가 괴뢰 정부를 지지했고, 이후 수탈 행위가 본격화되자 지지를 철회했다는 것이 현재 사학계의 주류 입장이다.</ref> 공산주의자나 노동조합원들의 거센 반발 외에도 일반 국민들 역시 조세를 거부하거나 철도에 돌을 뿌려 탈선을 일으키는 것 같이 국소적인 저항 행위를 이어나갔다. 격노한 일본 정부는 1944년 대한국 정부를 붕괴시키고 조선총독부를 설치해 억압적으로 한국을 통치하기로 결정한다. | ||
== 경제 == | == 경제 == | ||
2023년 2월 2일 (목) 14:39 판
| 공산1968 | 리조니 | Arrondissments | 레스 어틀라 |
이 문서는 리좀 세계관의 공식 설정입니다. 해당 문서의 내용은 CC-0 (퍼블릭 도메인)으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문서의 모든 내용은 허구입니다. |
대한국 大韓國 | State of Korea
| |||
|---|---|---|---|
| 국가 | 대한국 애국가 애국 행진곡 | ||
| 인구 | 23,249,000명 (1940년) 22,012,532명 (1944년) | ||
| 수상부 위치[1] | 천안 (天安)[2] | ||
| 정치 체제 |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중앙집권제 (명목상) 일본의 괴뢰국 | ||
| 대한국 황제[3] | 소화 황제 (1940~1944) | ||
| 내각총리대신 | 박중양 (1940~1942) 김윤정 (1943~1944) | ||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기간인 1940~1944년 한반도 지역에 존속한 일본제국의 괴뢰국이자 협력국. 대한공화국을 공식적으로 국호로 사용하고 법통도 이어받은 자유대한정부와 달리 국호를 대한국으로 바꾸고 1930년 이전의 체제인 입헌군주제로 헌법을 복구시켰다. 현대 대한공화국 정부는 이 정부를 천안 괴뢰정부 혹은 천안 친일정부라 칭하고 있는데, 이는 수상부가 위치한 지역이 현재의 천안시여서 그렇다. 공식적인 수도를 두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경성이 경제와 문화 수도의 기능을 담당하였다. 다만 경성의 강 남북쪽을 잇는 한강인도교와 철교가 파괴되어 교통의 부재로 정치 수도의 기능을 할 수 없어, 수상부를 비교적 일본에 가깝고 교통의 요지이며 반도의 중심 지역인 천안에 설치한 것이다.
국가수반은 전 총리 박중양이었으나 박중양은 1942년 12월 24일 조선공산당 소속 빨치산 부대원에게 암살되어 1943년 정초 김윤정으로 교체된다. 국가원수는 명목상 대한국 황제였으나 일본 천황이 황제를 동군연합했으므로 일본 천황이 한국을 마찬가지로 다스리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역사
정치
대한 소비에트 정부와 그 산하 조직이었던 항일 빨치산의 각종 테러 행위로 인해 정치는 극히 혼란스러웠다. 내각총리대신 박중양이 백주대낮에 공산당원의 총을 맞고 사망하거나, 종로경찰서가 폭탄 테러를 당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등 경성 시내에서 테러가 일어나지 않는 일이 드물었으며 1944년 초엽 이후로 정부는 함경도와 강원도, 경상북도 등 산지 지역의 행정권을 사실상 상실했다. 멸망 직전 괴뢰정부가 행정권을 가진 지역은 천안과 경성, 경기도 일대에 지나지 않았으며 나머지는 빨치산과 자유대한정부, 혹은 일본군 군부에 의해 점령되어 제대로 된 통치 행위가 불가능했다.
1943년 7월 일본 내각부의 대동아성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한 국민의 92%가 괴뢰정부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4] 공산주의자나 노동조합원들의 거센 반발 외에도 일반 국민들 역시 조세를 거부하거나 철도에 돌을 뿌려 탈선을 일으키는 것 같이 국소적인 저항 행위를 이어나갔다. 격노한 일본 정부는 1944년 대한국 정부를 붕괴시키고 조선총독부를 설치해 억압적으로 한국을 통치하기로 결정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