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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7대 민선에서 원강원 의원이 건강을 이유로 불출마하자 성진시에 출마해 마침내 당선되었다. 18대 민선에서도 55%의 준수한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하였다. 재선 성공 직후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에 출마해 당선되었고, 그 다음 전당대회에서는 수석최고위원에 당선되었다. | 2010년 17대 민선에서 원강원 의원이 건강을 이유로 불출마하자 성진시에 출마해 마침내 당선되었다. 18대 민선에서도 55%의 준수한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하였다. 재선 성공 직후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에 출마해 당선되었고, 그 다음 전당대회에서는 수석최고위원에 당선되었다. | ||
손학규 대통령이 하야하고 | 손학규 대통령이 하야하고 이에 책임을 지고 당대표였던 문병호 대표가 사퇴하자 수석최고위원으로서 당대표 대행을 지냈다. 허나 정동영 대통령이 1월 내 사퇴하라는 요구를 무시하면 대행직을 사퇴하겠다고 했다가 정동영 대통령이 1월 내 사퇴를 거부하면서 대행이 된지 3개월이 안되어 대행직에서 물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구가 분구된 19대 민선에서는 오히려 직전 선거보다 오히려 득표율이 상승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지역구 내 건재함을 증명했다. | ||
2020년 대선출마를 위해 경선에 출마하였으나 2.8%를 득표하며 5인 중 4위로 낙선했다. 예상외로 소수점대를 득표할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이북에서 어느정도 표를 확보하면서 선전했다는 평가가 있다. 민주당이 참패한 20대 민선에서도 무난한 득표율로 4선에 성공했다. 김성태 원내대표가 낙선한 상황인지라 원내대표를 노려볼만하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스스로 불출마를 선언했다. | 2020년 대선출마를 위해 경선에 출마하였으나 2.8%를 득표하며 5인 중 4위로 낙선했다. 예상외로 소수점대를 득표할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이북에서 어느정도 표를 확보하면서 선전했다는 평가가 있다. 민주당이 참패한 20대 민선에서도 무난한 득표율로 4선에 성공했다. 김성태 원내대표가 낙선한 상황인지라 원내대표를 노려볼만하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스스로 불출마를 선언했다. | ||
== 저서 == | == 저서 == | ||
* 조선로동당 경제부 증언 (2008년 저서) | * 조선로동당 경제부 증언 (2008년 저서) |
2023년 3월 26일 (일) 16:09 판
대한민국 민의원 의원 (함북 성진 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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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구 분구 김가자 |
→ | 제19·20대 김가자 |
→ | 현직 |
김가자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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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20대 민의원 의원 김가자 金嘉子 | Kim Ga-j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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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5년 4월 20일 (68세) |
함경북도 김책시 금천동 (현 함경북도 성진시 금연동) | |
사저 | 한경북도 성진시 금연동 천성마운틴자이아파트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 서초래미안아파트 |
현직 | 제20대 민의원 의원 민주당 성진시 갑 지구당 위원장 |
서명 | |
링크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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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전 북한의 경제관리이자, 현 대한민국의 제17-20대 민의원을 지낸 정치인이다.
상세
1955년 함북 김책시에서 핵심계층이던 아버지와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든든한 빽 덕분에 무난하게 학교를 졸업할수 있었다. 본래 부모님은 당시 대부분이 그랬던것 처럼 김가자가 엘리트층, 또는 비슷한 핵심계층과 결혼해 현모양처로 살기를 바랬지만 김가자는 이를 거부하고 장철구평양상업대학에 입학해 경리학부를 졸업했다. 이러한 문제로 부모님과 갈등이 많았다고 한다.
졸업 이후 조선로동당 경제부에서 일하기 시작해 여성으로서 유일무이하게 과장까지 승진했으나, 통일전쟁이 발발하자 한국군에 충성맹세를 하고 살아남을수 있었다.[3] 전쟁이 끝나자 고향인 성진으로 돌아와 관선 시장을 돕는 정책자문위원에 위촉됐다.
이북지역의 계엄령이 해제되어 처음으로 이북인들이 참정권을 행사할수 있게된 제5차 동시선거에 민의원으로 출마하고자 민주당에 입당했으나 조선로동당 당간부 이력으로 인해 컷오프되었다. 또한 2007년 지선에서도 성진시장으로 출마하고자 했으나 동일한 문제로 인해 컷오프되었다. 이에 분노해 무소속으로 출마하고자 했으나 이내 포기하고 3년간 야인으로 지냈다.
2010년 17대 민선에서 원강원 의원이 건강을 이유로 불출마하자 성진시에 출마해 마침내 당선되었다. 18대 민선에서도 55%의 준수한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하였다. 재선 성공 직후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에 출마해 당선되었고, 그 다음 전당대회에서는 수석최고위원에 당선되었다.
손학규 대통령이 하야하고 이에 책임을 지고 당대표였던 문병호 대표가 사퇴하자 수석최고위원으로서 당대표 대행을 지냈다. 허나 정동영 대통령이 1월 내 사퇴하라는 요구를 무시하면 대행직을 사퇴하겠다고 했다가 정동영 대통령이 1월 내 사퇴를 거부하면서 대행이 된지 3개월이 안되어 대행직에서 물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구가 분구된 19대 민선에서는 오히려 직전 선거보다 오히려 득표율이 상승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지역구 내 건재함을 증명했다.
2020년 대선출마를 위해 경선에 출마하였으나 2.8%를 득표하며 5인 중 4위로 낙선했다. 예상외로 소수점대를 득표할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이북에서 어느정도 표를 확보하면서 선전했다는 평가가 있다. 민주당이 참패한 20대 민선에서도 무난한 득표율로 4선에 성공했다. 김성태 원내대표가 낙선한 상황인지라 원내대표를 노려볼만하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스스로 불출마를 선언했다.
저서
- 조선로동당 경제부 증언 (2008년 저서)
소속 정당
소속 | 기간 | 비고 |
1978 - 2000 | 공직입문 | |
무소속 | 2000 - 2007 | 정당 해산[4] |
2007 - | 정계입문 |
선거 이력
연도 | 선거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
2010 | 제17대 민의원 의원 선거 | 함북 성진 | 100,321표 (45.92%) | 당선 (1위) | 초선 | |
2014 | 제18대 민의원 의원 선거 | 154,832표 (54.98%) | 3선 | |||
2018 | 제19대 민의원 의원 선거 | 함북 성진 갑 | 106,821표 (57.30%) | 4선 | ||
2022 | 제20대 민의원 의원 선거 | 97,500표 (56.34%) | 5선 |
여담
- 생각과는 달리 이북 사투리가 생각보다 약한편에 속한다. 말도 잔잔히 하는 편이라서 민의원 내에서는 꽤나 신사적이라는 말을 듣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