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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요 == | | == 개요 == |
| [[대한국 (충신불사이군)|대한국]]의 제65-68대 [[대한국 내각총리대신 (충신불사이군)|내각총리대신]]으로 '''희령시대 최장 기간 집권한 총리대신'''이라는 기록을 보유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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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인 (충신불사이군)|김종인]] 총리의 사임 이후 무능과 불안정으로 점철되고, 2008년 경제위기 대처에 부진했던 이전 총리인 [[정홍원 (충신불사이군)|정홍원]]과 [[한덕수 (충신불사이군)|한덕수]] 총리의 실정으로 한때 [[대한독립당 (충신불사이군)|한독당]]의 지지율이 [[사회당 (충신불사이군)|사회당]]에게 역전당하는 상황에 처했다. 결국 당내외의 압박으로 사임한 [[정홍원 (충신불사이군)|정홍원]] 총리의 뒤를 이어 2012년 12월 총리대신에 취임한다. 취임 이후 40여일만인 2013년 1월 [[제26회 민의원 의원 총선거 (충신불사이군)|제26회 민의원 의원 총선거]]에서의 압승으로 정권 교체의 위협을 이겨내고 정권 유지에 성공, 총리직을 유임하며 한독당내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구축하는데 성했다.(제2차 이명박 내각) 2년 뒤인 2015년 [[제27회 민의원 의원 총선거 (충신불사이군)|제27회 민의원 의원 총선거]]와 2년 뒤인 2017년 [[제26회 민의원 의원 총선거 (충신불사이군)|제26회 민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도 압도적 다수 의석을 그대로 유지하여 정권을 연장했다.(제3, 4차 이명박 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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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내각 성립 이후의 이명박은 역대 총리대신들 중 손꼽힐 수준의 상당한 정치적 업적과 유산들을 남긴 것으로 평가된다. 정치적 측면에서는 [[김종인 (충신불사이군)|김종인]]의 임기 종료 이후 약 7년간 회전문 총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불안정했던 내각을 자신의 탄탄한 지지율을 기반으로 안정시켰다.<ref>여담으로 회전문 총리 시기, 한국 언론에서는 내각제의 단점을 까며 한국도 실권자인 총리에게 강력한 권력을 부여해야 국정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며 일본의 수상공선제를 도입해야 된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나오기도 했다.</ref> 경제적 측면에서는 단단한 권력 기반을 바탕으로 [[747 계획 (충신불사이군)|747 계획]]라는 이름의 강력한 양적 완화 정책을 실시하여, 한국의 경제를 상당 수준 활성화하는 데 성공<ref>코스닥은 취임 초와 비교했을 때 무려 2.1배 이상 상승했다. 실업률, 전세대의 유효 구인 배율, GDP 수치 등 대부분의 경제 지표들은 이명박 내각 기간 동안 줄줄이 신기록을 경신했다. </ref>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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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교적 측면에선 [[미합중국 (충신불사이군)|미국]]과 [[서방]] 진영에게, [[중화인민공화국 (충신불사이군)|중국]], [[러시아 (충신불사이군)|러시아]] 등을 위시한 반 서방 세력 견제의 매우 중요한 조력자<ref>역대 한국의 총리들 중 [[이인제 (충신불사이군)|이인제]], [[김종인 (충신불사이군)|김종인]]과 더불어 가장 [[친미]] 성향이 강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2차 내각 이후는 미국과 서방 세력의 패권이 과거와 달리 중국, 러시아 등 반서방 진영에게 위협 받았던 시점이므로, 이명박이 서구 세계 입장에선 상단의 두 총리대신들보다 훨씬 더 고마운 존재로 인식되었다. 당장 정권교체를 건 선거를 치루던 [[사회당 (충신불사이군)|사회당]]은 미국 대신, 중국 중심의 [[친중]] 스탠스로 이동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의 입장에선 상당한 위협이 되는 상황이었다.</ref>로 인식되었다. [[747 계획 (충신불사이군)|747 계획]]나 [[이명박 독트린 (충신불사이군)|이명박 독트린]]이 국제 사회에서 별 잡음없이 통과된 데에는 이같은 배경이 깔려있다고 보면 된다. 반면, [[일본국 (충신불사이군)|일본]]과 [[중화인민공화국 (충신불사이군)|중국]]에서는 이명박의 역사관을 이유로 들어 대한관계 악화의 원인으로 지목해 비판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2013년에는 과거 [[간도방위출동 (충신불사이군)|간도방위출동]]과 [[황궁사건 (충신불사이군)|황궁사건]]에서 사망한 순국 무관과 [[안중근 (충신불사이군)|안중근]]등 중국과 일본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전몰호국자들이 합사된 [[장충원 (충신불사이군)|장충원]] 참배를 강행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계속 장충원에 참배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며 주변국의 반발을 불렀다. 참고로 이명박은 한국 최대의 강경 보수 단체인 [[황국협회 (충신불사이군)|황국협회]]의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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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사적 측면에서는 [[한국의 재무장 (충신불사이군)|재무장]] 및 군비 증강을 일관되게 추진했다. [[신냉전]] 구도의 당사자인 중국은 당연히 이를 [[동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을 악화시키는 행동이라 주장하고 있으며, 일본도 이러한 행보에 우려를 표하는 중이다. [[G7]] 서방국가들의 ‘요구’와 한국 내 강경 우익 세력의 '요구'에 응하여<ref>이전부터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한국이 군대를 가질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며 자신들에게 안보를 의존하는 짠돌이 행태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불만은 [[21세기]] 들어 경제적으로 급격히 성장하여 군사적 팽창을 시도하는 중국과 미국의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연이은]] [[이라크 전쟁|파병 실패]]로 인한 군축을 계기로 폭발했다.</ref> 진행하고 있다. 더욱이 한국의 경기가 나아져 매년 늘어난 GDP와 세수액 및 예산을 비교해 본다면 비록 매년 증가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1%대 군사비를 지출하는 한국은 오히려 일(GDP 대비 1.6%)이나 중국(GDP 대비 2.0%)과 비교하였을 때 양호한 수치를 유지하고 있다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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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8월, 지병 문제<ref>당뇨와 기관지 질환</ref>로 7년만에 총리직을 사임하였으나, 여전히 당내 최대 파벌 [[우남회 (충신불사이군)|우남회]]의 영수이자 당내 실세로서 힘을 발휘했고 후임 총리인 [[이재오 (충신불사이군)|이재오]]와 [[주호영 (충신불사이군)|주호영]]을 옹립하는 데에도 깊이 관여했으나, [[이명박 측근의 불충 발언 논란 (충신불사이군)|불충 논란]]으로 인하여 차기 민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사실상의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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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국 (충신불사이군)|대한국]]의 제65-68대 [[대한국 내각총리대신 (충신불사이군)|내각총리대신]]을 지냈다. [[이명박 (충신불사이군)|이명박]] 내각의 [[총무장관 (충신불사이군)|총무장관]]으로 장기간 재임해 최장기 재임 총무장관으로 남아 있다. | | [[대한국 (충신불사이군)|대한국]]의 제65-68대 [[대한국 내각총리대신 (충신불사이군)|내각총리대신]]을 지냈다. [[이명박 (충신불사이군)|이명박]] 내각의 [[총무장관 (충신불사이군)|총무장관]]으로 장기간 재임해 최장기 재임 총무장관으로 남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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