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흡입음: 두 판 사이의 차이

(전에 하던 세계관은 아마도 안버렸습니다.)
 
(계보 수정)
52번째 줄: 52번째 줄:


== 상세 ==
== 상세 ==
 
=== 대통령 계보 ===
* 42. 빌 클린턴 (1993. 1. 20 ~ 1997. 1. 20)
* 42. 빌 클린턴 (1993. 1. 20 ~ 1997. 1. 20)
* 43. 로스 페로 (1997. 1. 20 ~ 2001. 1. 20)
* 43. 로스 페로 (1997. 1. 20 ~ 2001. 1. 20)
* 44. 잭 켐프 (2001. 1. 20 ~ 2009. 1. 20)
* 44. 도널드 트럼프 (2001. 1. 20 ~ 2005. 1. 20)
* 45. 존 F. 케네디 주니어 (2009. 1. 20 ~ 2017. 1. 20)
* 45. 척 헤이글 (2005. 1. 20 ~ 2009. 1. 20)
* 46. 버락 오바마 (2017. 1. 20 ~)
* 46. 존 F. 케네디 주니어 (2009. 1. 20 ~ 2017. 1. 20)
* 47. 버락 오바마 (2017. 1. 20 ~)


=== 소개 ===
이 세계관의 변곡점은 바로 <span class="plainlinks">[https://en.wikipedia.org/wiki/1992_United_States_presidential_election 1992년 대통령 선거]</span>이다. OTL<ref>Our TimeLine</ref>에서 로스 페로가 '지지자들이 50개 주 전역에 등록해준다면 출마할 용의가 있다'며 얼버무린 것과 달리, 이 세계관에서는 즉각 대통령 출마를 선언했다. 페로 돌풍은 OTL보다 더욱 크게 일어났고, 3년 더 빠른 개혁당 설립을 불러왔다.
이 세계관의 변곡점은 바로 <span class="plainlinks">[https://en.wikipedia.org/wiki/1992_United_States_presidential_election 1992년 대통령 선거]</span>이다. OTL<ref>Our TimeLine</ref>에서 로스 페로가 '지지자들이 50개 주 전역에 등록해준다면 출마할 용의가 있다'며 얼버무린 것과 달리, 이 세계관에서는 즉각 대통령 출마를 선언했다. 페로 돌풍은 OTL보다 더욱 크게 일어났고, 3년 더 빠른 개혁당 설립을 불러왔다.



2023년 9월 4일 (월) 20:58 판

누벨프랑스 어기.svg
What if the Reform Party had been more successful?

거대한 흡입음
Giant Sucking Sound
장르 대체역사, 정치
현황 연재중
변곡점 1992년 2월 20일
로스 페로는 래리 킹 라이브에서 공식적으로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한다.
주연 로스 페로, 도널드 트럼프
연재기간 2023년 9월 4일 ~ 현재
(출범일로부터 +453일, 1주년)
연재자 Nebraska Admiral
저작권

개요

우리는 일자리를 외국에 유출하는걸 멈춰야합니다. 이건 아주 간단합니다. ⋯ 그리고 당신이 돈을 버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신경쓰지 않는다면, 남쪽으로 향하는 거대한 흡입음이 있게될겁니다.[1]

로스 페로, 1992년 대통령 선거 후보토론 中.

거대한 흡입음(Giant Sucking Sound; GSS)개혁당이 성공한 대체역사를 다루는 세계관이다.

시놉시스

"Leadership for a Change"
"변화를 위한 지도력"


1992년은 정치혁명의 해였습니다.

빌 클린턴이 최초의 부머 세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팻 뷰캐넌이 현직 대통령 조지 H. W. 부시를 꺾을 뻔했으며, 로스 페로가 무소속 후보로 최고의 득표율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클린턴의 인기는 금새 시들어졌고, 뷰캐넌은 극우 정치와 담합해 몰락했으며, 페로의 개혁당은 실패한 개혁 운동으로 끝나버렸습니다.

1992년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바뀔 수 있었던 마지막 순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로스 페로의 출마가 좀 더 성공적이었다면?

만약, 개혁당이 성공적으로 제도권에 안착했다면?

만약, 1992년의 정치혁명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면?

상세

대통령 계보

  • 42. 빌 클린턴 (1993. 1. 20 ~ 1997. 1. 20)
  • 43. 로스 페로 (1997. 1. 20 ~ 2001. 1. 20)
  • 44. 도널드 트럼프 (2001. 1. 20 ~ 2005. 1. 20)
  • 45. 척 헤이글 (2005. 1. 20 ~ 2009. 1. 20)
  • 46. 존 F. 케네디 주니어 (2009. 1. 20 ~ 2017. 1. 20)
  • 47. 버락 오바마 (2017. 1. 20 ~)

소개

이 세계관의 변곡점은 바로 1992년 대통령 선거이다. OTL[2]에서 로스 페로가 '지지자들이 50개 주 전역에 등록해준다면 출마할 용의가 있다'며 얼버무린 것과 달리, 이 세계관에서는 즉각 대통령 출마를 선언했다. 페로 돌풍은 OTL보다 더욱 크게 일어났고, 3년 더 빠른 개혁당 설립을 불러왔다.

한편, 양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은 혼란에 빠졌다. 민주당에서는 아웃사이더 후보인 제리 브라운과 폴 송거스가 생각외로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빌 클린턴의 뒤를 바짝 추격했다. 클린턴은 근소한 차이로 대의원 과반수를 확보했지만, 얼마안가 민주당 전국위원회가 클린턴을 의도적으로 밀어줬다는 문건이 폭로되면서 지지층의 대규모 이탈을 불러왔다. 공화당에서는 팻 뷰캐넌이 조지 H. W. 부시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했지만, '부정선거'를 부르짖으며 대대적으로 반발했다.

페로는 이러한 혼란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는 양당에게 소외된 중도층, 反 부시 공화당원, 보호무역주의자들, 농민과 노동자 계층을 모두 규합했다. 포퓰리즘을 기초로 한 로스 페로의 정책 공약은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선호받았다. 그의 여론조사 지지율은 클린턴, 부시와 함께 2위와 3위를 오갔고, 비판적이었던 제도권 언론들도 그의 출마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2번의 대통령 후보 토론은 각각 클린턴과 페로의 승리로 끝났고, 로드니 킹 폭동, 클린턴의 병역기피 의혹, 역차별론 따위의 이슈들이 난발한 끝에 본선이 치뤄졌다. 페로는 예상된만큼의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1968년의 조지 월리스를 이래로 최초로 선거인단을 획득한 제3당 후보가 되었다. 개혁당은 하원과 상원에서 몇몇 협력자들을 구할 수 있었고, 당의 후원금은 수백만 달러를 돌파했다. 신기루와 같았던 여태까지의 제3당들과는 달리, 개혁당은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클린턴은 압도적으로 승리했지만, 그는 이제 보수주의자들의 반발과 당내 불화를 맞닥뜨려야했다. 클린턴의 참모진들은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명백히 그에게 불리한 싸움을 이길 수 있게하지는 못했다. 클린턴의 재선 전망에는 벌써부터 먹구름이 드리웠다. 공화당, 민주당, 개혁당 3당은 강력한 어조로 클린턴을 공격했다. 1994년 중간선거는 당내 클린턴주의자들은 물론 민주당 전체의 패배로 끝났다.

그리고 1996년, 페로는 민주당의 클린턴과 공화당의 밥 돌을 꺾고 가장많은 선거인단을 획득했으며, 대선 정국을 교착상태로 이끌었다. 하원의회는 타협 끝에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포로 구호 운동의 선구자이자 66세의 기업가, 포퓰리스트 정치가인 로스 페로는 미국의 제43대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개혁당은 민주당, 공화당과 함께 미국의 주요 정당 반열에 올랐다. 개혁당의 성공과 함께 미국 납세자당, 녹색당, 자유당과같은 군소정당들도 더불어 성장했다. 미국의 전통적인 양당제는 붕괴했다. 그리고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었다.

연표

영향을 준 매체

  • 이브위키 내부
  1. 번역기를 다듬은 의역이므로 양해바람
  2. Our Time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