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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big>중화민국</big>'''<br><br>오랫동안 동방의 황제국으로 군림하던 중국은 제국주의로 무너지고, 무능과 부패로 몰락하였습니다. 그렇게 안팎으로 억눌린 민중의 분노는 쑨 원 선생의 지도 하에 신해년 혁명으로 표출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세워진 중화민국은 여전히 제국주의가 옥죄고 있고, 내부로는 군벌들이 기승을 부렸습니다. 다행히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혁명군은 북벌을 단행하며 군벌들을 제압하고, 비로소 중국을 평화롭게 만들었습니다.<br><br>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중국은 과거 도움을 준 독일에게 은혜를 갚았다는 이유로 서방으로부터 고립되었습니다. 비록 소련과의 우호적인 관계는 유지되었지만, 이마저도 스탈린 사후 악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세계를 버릴 수 있을지언정, 세계가 중국을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1972년, 미국과 일본을 시작으로 서방과의 관계가 개선되었고, 서방 자본의 유입으로 중국은 역사상 유례 없는 고속 성장을 이루었습니다.<br><br>1975년, 장제스가 사망했지만 국민당 독재 정권은 무너지지 않았고, 장제스 사후 17년은 더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영원한 왕좌는 없는 법, 1989년, 민중의 분노 가득 찬 목소리가 천안문 과장에 울려퍼졌고, 비로소 국민당 독재 정권은 종결되었습니다.<br><br>오늘날 중국은 다시 한 번 중국의 세계 패권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비록 시진핑 주석이 독재를 시도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그의 행동을 지지할 뿐입니다.<br>중국은 이제 신중국이 주도하는 신세계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혁명을 시작한 것입니다.<br><br>'''" 삼민주의는 우리가 따를 길 "'''}}
{{인용문|'''<big>중화민국</big>'''<br><br>오랫동안 동방의 황제국으로 군림하던 중국은 제국주의로 무너지고, 무능과 부패로 몰락하였습니다. 그렇게 안팎으로 억눌린 민중의 분노는 쑨 원 선생의 지도 하에 신해년 혁명으로 표출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세워진 중화민국은 여전히 제국주의가 옥죄고 있고, 내부로는 군벌들이 기승을 부렸습니다. 다행히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혁명군은 북벌을 단행하며 군벌들을 제압하고, 비로소 중국을 안정케 만들었습니다.<br><br>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중국은 과거 도움을 준 독일에게 은혜를 갚았다는 이유로 서방으로부터 고립되었습니다. 비록 소련과의 우호적인 관계는 유지되었지만, 이마저도 스탈린 사후 악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세계를 버릴 수 있을지언정, 세계가 중국을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1972년, 미국과 일본을 시작으로 서방과의 관계가 개선되었고, 서방 자본의 유입으로 중국은 역사상 유례 없는 고속 성장을 이루었습니다.<br><br>1975년, 장제스가 사망했지만 국민당 독재 정권은 무너지지 않았고, 그의 사후에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영원한 왕좌는 없는 법, 1989년, 민중의 분노 가득 찬 목소리가 천안문 광장에 울려퍼졌고, 비로소 독재 정권은 종결되었습니다.<br><br>오늘날 중국은 다시 한 번 중국의 세계 패권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비록 시진핑 주석이 독재를 시도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그의 행동을 지지할 뿐입니다.<br>중국은 이제 신중국이 주도하는 신세계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혁명을 시작한 것입니다.<br><br>'''" 삼민주의는 우리가 따를 길 "'''}}


==대만==
==대만==

2023년 10월 8일 (일) 21:17 판

[ 문서 보기 ]
[ 세계관 설명 ]
[ 세계관 설명 ]
國民が選擧し
국민이 선거하고


國民を代表し
국민을 대표하고


國民的勢力を中心とし
국민적 세력을 중심으로

민본은 "만약 일본이 다이쇼 데모크라시를 성공하였다면?" 이라는 상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대체역사 세계관입니다.
민본
民本
國民が選擧し、國民を代表し、國民的勢力を中心とし
국민이 선거하고, 국민을 대표하고, 국민적 세력을 중심으로
장르 대체역사, 동아시아사
제작자 제리코
시작일 2023년 9월 28일
(시작일로부터 +802일, 2주년)
상징 색 빨간색 (#b0313f)
저작권 CC-0

개요


떠오르는 태양의 나라
國民が選擧し、國民を代表し、國民的勢力を中心とし
국민이 선거하고, 국민을 대표하고, 국민적 세력을 중심으로

사이토 다카오, 1940년 2월 2일 제국의회에서 행한 연설 중

제리코의 장편 대체역사 세계관이다.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과정을 거치며 민주주의 국가가 된 일본 제국과 동아시아를 다루고 있다.

세계관 제목인 민본(民本)은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기에 도쿄제국대학 교수인 요시노 사쿠조(吉野作造)가 democracy를 '민본주의(民本主義)'로 해석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상세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열망은
일본을 근본적으로 바꾸었습니다.

양당 정치는 제국의회에 뿌리를 내렸고
군부의 불온한 시도는 모두 실패하였습니다.

비록 대부분의 식민지를 상실하였지만
부국강병한 제국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만세일계 (萬世一系)의 천황 폐하 아래에
떠오르는 태양의 제국 (大日本帝󠄁國)은 영원할 것입니다.

1927년(쇼와 2년) 3월 14일, 재무대신 카타오카 나오하루가 모종의 이유로 중의원 예산위원회 참여가 늦어지면서 '쇼와 금융공황'이 발생하지 않는다.[1] 그 덕분에 와카쓰키 레이지로 내각과 시데하라 기주로의 협조 외교 방침도 유지된다. 이로 인해 산동파병은 발생하지 않고, 장제스-와카쓰키 회담으로 일본과 국민당의 이해관계 조정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국민당의 북벌과 정부의 온건한 대응에 군부, 특히 관동군은 불만이 많았고, 자칫했다가는 만주까지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생기게 된다. 결국 1928년(쇼와 3년) 6월 4일, 봉천군벌의 수장인 장쭤린이 탄 열차를 폭파시키며 그를 암살시킨다.(황고둔 사건) 관동군은 장쭤린의 뒤를 이은 어린 장쉐량이 일본에 순종적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상과 다르게 국민당에 복종을 선언해버린다.

황고둔 사건으로 만주가 국민당의 손에 넘어가자 일본은 전국적으로 큰 충격에 빠졌다. 이에 시데하라 내각은 천황의 재가 하에 "황고둔사건 해결문서"를 공개, 사건의 모든 책임을 군부에게 돌리며 군부의 힘을 크게 축소시킨다. 이후 1930년(쇼와 5년) 4월 22일, 런던 해군 군축조약이 체결되면서 군부는 다시 한 번 분노하였지만, 1932년(쇼와 7년), 혈맹단 사건 조사 도중 쿠데타 준비가 발각되면서 5.15사건은 일어나지 않고, 1936년(쇼와 11년), 2.26사건 또한 천황의 반대와 내각의 강경진압으로 실패로 돌아간다.

결국 1947년, 내각총리대신이 된 시데하라 기주로에 의해 '군부대신 현역무관제'가 폐지되면서 군부의 정치 개입 시도는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된다. 이후, 냉전 시기 동안 핵개발과 경제개혁 등으로 세계적인 강대국이 된 일본 제국은 1989년(헤이세이 원년) 10월 29일, '신헌법'을 제정하면서 영국식 입헌군주제로 전환하게 된다.

국가

일본

자세한 내용은 '일본 (민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일본국
大日本國


대일본국

" 임의 시대는 천 대에 팔천 대에 "

조선

자세한 내용은 '조선 (민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조선인민공화국
朝鮮人民共和國


조선인민공화국

" 조선 사람 조선으로 길이 보존하세 "

중국

자세한 내용은 '중국 (민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중화민국
中華民國


중화민국

오랫동안 동방의 황제국으로 군림하던 중국은 제국주의로 무너지고, 무능과 부패로 몰락하였습니다. 그렇게 안팎으로 억눌린 민중의 분노는 쑨 원 선생의 지도 하에 신해년 혁명으로 표출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세워진 중화민국은 여전히 제국주의가 옥죄고 있고, 내부로는 군벌들이 기승을 부렸습니다. 다행히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혁명군은 북벌을 단행하며 군벌들을 제압하고, 비로소 중국을 안정케 만들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중국은 과거 도움을 준 독일에게 은혜를 갚았다는 이유로 서방으로부터 고립되었습니다. 비록 소련과의 우호적인 관계는 유지되었지만, 이마저도 스탈린 사후 악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세계를 버릴 수 있을지언정, 세계가 중국을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1972년, 미국과 일본을 시작으로 서방과의 관계가 개선되었고, 서방 자본의 유입으로 중국은 역사상 유례 없는 고속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1975년, 장제스가 사망했지만 국민당 독재 정권은 무너지지 않았고, 그의 사후에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영원한 왕좌는 없는 법, 1989년, 민중의 분노 가득 찬 목소리가 천안문 광장에 울려퍼졌고, 비로소 독재 정권은 종결되었습니다.

오늘날 중국은 다시 한 번 중국의 세계 패권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비록 시진핑 주석이 독재를 시도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그의 행동을 지지할 뿐입니다.
중국은 이제 신중국이 주도하는 신세계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혁명을 시작한 것입니다.

" 삼민주의는 우리가 따를 길 "

대만

자세한 내용은 '대만 (민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만국
臺灣國


대만국

아름답다는 뜻의 '포르모사'라고도 불리 대만 섬은 투쟁의 역사로 얼룩졌습니다. 마지막 침략자인 일본은 중국으로부터 섬을 빼앗아 차지하였습니다. 그들은 섬을 근대화 시키고 발전시켰지만, 동시에 억압하고 착취하였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재앙이 끝났을 무렵, 아세아의 혁명가들은 주권을 되찾기 위한 투쟁을 시작하였습니다. 이에 대만 섬도 독립을 위한 투쟁에 동참하며, 압제자를 몰아내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1972년, 피로 얼룩진 우리의 투쟁은 끝내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외세의 압제자가 사라지자, 이제는 내부의 압제자가 다시 한 번 섬을 집어삼켰습니다. 리덩후이는 경제 개발과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며 대통령의 자리를 독재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유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막기에는 부족하였습니다. 새천년의 시작을 알리는 2000년에, 국민의 분노 가득찬 항쟁에 압제자는 다시 한 번 무너지고, 진정한 자유를 되찾았습니다.

오늘날에는 과거에 섬을 지배하였던 중국이 다시 한 번 우리의 독립을 무너뜨릴려는 야망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만은, 다시 한 번 전 국민이 하나 되어 압제자에 저항할 투쟁을 준비하게 될 것입니다.

" 온갖 고생을 이겨내며 산림을 일군다 "

연표

자세한 내용은 '민본/연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영향을 받은 매체

  1. 실제 역사에서는 파산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도쿄 와타나베 은행이 드디어 파산을 했습니다."라고 발언하며 쇼와 금융공황을 초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