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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인 [[신민당 (플로라)|신민당]]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이낙연 (플로라)|이낙연]] 총리와 항상 대립각을 세웠다. [[이재명 (플로라)|이재명]]이 세운 [[공정사회 (플로라)|공정사회]]에 합류하여 '[[이낙연 (플로라)|이낙연]] 저격수'로 이름을 날리며 [[자유당 (플로라)|자유당]] 의원들보다 훨씬 집요하게 [[이낙연 의정부 (플로라)|이낙연 의정부]]를 물어뜯었다. 당내 주요 인사들에게 공천을 빌미로 "비판도 정도껏 해야지. 윤 의원, 재선 안 할 거냐"라는 협박 아닌 협박을 받기도 했지만, "어쩔티비. [[이낙연 (플로라)|이낙연]] 총리는 공천 때문에 움직이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공천 때문에 움직이는 [[김용남 (플로라)|김용남]] 같은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쿨하게 무시했다. 이러한 윤차민의 반응을 접한 [[이낙연 (플로라)|이낙연]] 총리가 [[윤차민 (플로라)|윤차민]]을 향해 '참 독한 X'이라고 지칭했다는 후문이 있다. 공천을 빌미로 한 협박이 전혀 통하지 않자, [[이낙연 (플로라)|이낙연]]은 [[윤차민 (플로라)|윤차민]]을 [[신민당 (플로라)|신민당]] 중앙당기위원회에 회부하여 [[윤차민 (플로라)|윤차민]]을 제명하려고 시도하였으나, [[윤차민 (플로라)|윤차민]]은 "당기위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 이낙연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는 글을 자신의 SNS에 올리며 오히려 이낙연 일당을 조롱하는 모습을 보였다. [[윤차민 (플로라)|윤차민]]은 급기야 의회원에서의 투쟁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변희재 등과 협력하여 '[[이낙연 (플로라)|이낙연]] 퇴진을 위한 태극기·촛불 연합 집회'를 주최하기도 했다. | 여당인 [[신민당 (플로라)|신민당]]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이낙연 (플로라)|이낙연]] 총리와 항상 대립각을 세웠다. [[이재명 (플로라)|이재명]]이 세운 [[공정사회 (플로라)|공정사회]]에 합류하여 '[[이낙연 (플로라)|이낙연]] 저격수'로 이름을 날리며 [[자유당 (플로라)|자유당]] 의원들보다 훨씬 집요하게 [[이낙연 의정부 (플로라)|이낙연 의정부]]를 물어뜯었다. 당내 주요 인사들에게 공천을 빌미로 "비판도 정도껏 해야지. 윤 의원, 재선 안 할 거냐"라는 협박 아닌 협박을 받기도 했지만, "어쩔티비. [[이낙연 (플로라)|이낙연]] 총리는 공천 때문에 움직이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공천 때문에 움직이는 [[김용남 (플로라)|김용남]] 같은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쿨하게 무시했다. 이러한 윤차민의 반응을 접한 [[이낙연 (플로라)|이낙연]] 총리가 [[윤차민 (플로라)|윤차민]]을 향해 '참 독한 X'이라고 지칭했다는 후문이 있다. 공천을 빌미로 한 협박이 전혀 통하지 않자, [[이낙연 (플로라)|이낙연]]은 [[윤차민 (플로라)|윤차민]]을 [[신민당 (플로라)|신민당]] 중앙당기위원회에 회부하여 [[윤차민 (플로라)|윤차민]]을 제명하려고 시도하였으나, [[윤차민 (플로라)|윤차민]]은 "당기위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 이낙연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는 글을 자신의 SNS에 올리며 오히려 이낙연 일당을 조롱하는 모습을 보였다. [[윤차민 (플로라)|윤차민]]은 급기야 의회원에서의 투쟁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변희재 등과 협력하여 '[[이낙연 (플로라)|이낙연]] 퇴진을 위한 태극기·촛불 연합 집회'를 주최하기도 했다. | ||
사사건건 [[이낙연 (플로라)|이낙연]] 체제와 대립각을 세우며 '내부총질'에 앞장선 탓에 공천도 못 받을 것으로 예상되었던 [[윤차민 (플로라)|윤차민]]이었지만, [[제69대 의회원 의원 선거 (플로라)|제69대 의회원 의원 선거]]를 목전에 두고 [[이재명 (플로라)|이재명]] 체제가 들어서자 전세가 크게 역전되었다. [[이재명 (플로라)|이재명]]이 의장에 당선되자마자, 총선기획단에 합류하였으며, 공천관리위원회의 위원으로도 선임되었다. 이후, 자신의 트위터에 "'''인생은 실전이야, 낙연아'''"라는 내용의 글을 올려 [[신민당 (플로라)|신민당]]에 피바람이 불게 될 것을 예고했다. 실제로, [[윤차민 (플로라)|윤차민]]은 악역을 자처하며 [[이낙연 (플로라)|이낙연]] 잔재 청산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 |||
결국, [[윤차민 (플로라)|윤차민]]은 보란듯이 자신의 지역구에서 단수공천을 얻어 냈고, [[제69대 의회원 의원 선거 (플로라)|제69대 의회원 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플로라)|신민당]] 후보로 [[계양구 을 (플로라)|계양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윤형선 (플로라)|상대 후보]]를 여유 있게 꺾고 재선 의회원 의원이 되었다. | |||
== 성평등·인권정책 담당 특명담당대신 == | == 성평등·인권정책 담당 특명담당대신 == |
2023년 11월 4일 (토) 02:4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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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정치인 윤차민의 생애에 대해 서술한 문서이다.
정계 입문 전
유년 시절
1995년 10월 4일, 인천광역시 계양구 병방동에서 2남 1녀 중 둘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윤계양은 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 경영학과의 명예교수이며, 어머니 나희영은 안진회계법인의 대표까지 지냈었던 공인회계사이다. 부모님의 직업 때문인지 꽤 부유한 가정 환경에서 자랐다. 경인여자대학교부속유치원, 인천병방초등학교, 임학중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 1학년 시절, 롯데의 계양산 골프장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 거리로 나가 삼보일배 시위와 단식 농성을 하기도 했다. 이후 전국단위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인 새빛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에는 선요한 계양구청장을 러닝메이트로 삼아 새빛고등학교 학생회장선거에 출마하여 압도적인 차이로 당선되기도 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사회교육과에 입학하였다. '교사'는 자신의 꿈이었기도 하고, 일반사회의 모든 영역[1]에 흥미를 느껴서 사회교육과를 선택했다고.
대학교 3학년 시절, 지금의 배우자인 이서우 천지그룹 회장을 만났다. 이서우가 윤차민에게 첫눈에 반해 계속 쫓아다녔다고.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을 쫓아다니는 이서우가 싫지는 않았는지 한 달 만에 결국 못 이기는 척(?) 고백을 받아줬다고 한다. 서로 공부에 꽤 소질이 있었는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항상 늦은 밤까지 함께 놀러 다녔는데도 불구하고 둘 다 학과 수석을 놓친 적이 별로 없었다.
새빛고등학교 교사 시절
▲ EBSi 사회탐구영역 강사로서의 윤차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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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 후 모교인 새빛고등학교에서 일반사회과 교사로 재직했다. 원래 여느 사범대생들과 같이 인천광역시 지역에서 임용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으나, 당시에는 연인 사이였던 남편의 권유로 새빛고등학교 정교사 채용 공고를 보고 아무 생각 없이 지원했는데 덜컥 합격해버려서 깜짝 놀랐다고. 공립 학교에서 근무하고 싶었지만,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모교에서 근무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새빛고등학교에서 정치와 법, 사회·문화, 경제, 통합사회, 한국지리[2] 등을 과목을 담당했다. 교사가 되자마자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에 진학하여 일반사회교육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윤차민의 회상에 의하면, 교직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남편 이서우도 새빛고등학교에서 윤차민과 함께 교사로 근무했었다. 사내에서 사내 연애
2018년 말에는 EBSi 강사 모집에 도전하여 EBSi 사회탐구영역 강사가 되었고, 2019년부터 '알잘딱깔센'이라는 이름의 수능 개념완성 강의를 진행했다. EBSi에 입성한지 얼마 안 되어 사회·문화와 정치와 법 과목의 1타 강사가 되었다. 입소문을 통해 유명세를 얻어 여러 학원과 인터넷 강의 사이트에서 틈만 나면 윤차민에게 영입 제안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신민당 입당을 위해 윤차민이 학교를 그만둘 때 주변에서는 사교육 업계에서 윤차민을 데리고 간 줄 알고 있었다고.
교사로 재직하는 중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 활동하며 인천지부 지부장을 맡기도 했다. 2020년 초에 "교총은 루즈하고, 전교조는 이념에 매몰되어 있다"며 지부장을 내려놓고 전교조를 탈퇴했다. 이후 인천교사노동조합 창립에 참여하고 초대 위원장이 되었다. 친한 사이인 도지호 인천광역시교육감과는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다고.
정계 입문
계양을 위한 신민당의 선택
계양의 다른 미래, 윤차민 |
2022년 재·보궐선거 슬로건 |
2022년 3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신민당에 인재로 영입되었다. 원래 정계에 발을 들일 생각은 없었지만, 마침 학교 현장에서 교육을 위해 평교사로서 할 수 있는 일에 한계를 느끼던 차에 갑자기 영입 제안이 와서 애인의 격렬한 반대[3]에도 불구하고 고심 끝에 수락하게 되었다고 한다.
영입 인재 환영식에서는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고 말했으나, 신민당에 입당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과 송영길의 사퇴[4]로 공석이 된 계양구 을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이와 동시에 2022년 재·보궐선거 중 계양구 을 의회원 의원 보궐선거에 출마를 선언했고, 신민당으로부터 전략공천을 받았다.
2022년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려고 준비하던 송영길계 인사인 박성민 인천광역시의원 등이 '윤차민의 공천은 계양구민의 의사를 무시하는 낙하산 막장 공천'이라며 전략공천에 반발하여 신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해 표가 분산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신민당이 우세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은 승부가 전망되었으나, 송영길과 송영길계 인사들의 막장 행각[5]으로 인해 지역 주민들의 민심이 멀리 떠나버린 지 꽤 오래되었기 때문에 큰 이변은 없었다. 윤차민이 계양구에서 초·중·고를 모두 졸업하고 지금도 계속 거주하고 있는 계양구 토박이라는 점도 윤차민에게 플러스 요인이 되었다. 결국 윤차민이 과반이 넘는 55.26%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자유당 윤형선 후보를 20%가 넘는 격차로 따돌리며 국회에 입성하게 되었다.
제68·69대 의회원 의원
국회에 입성하고 나서는 교육위원회에서 활동했다. 교사로서 학교 현장에서 활동했던 경험을 살린 의정 활동으로 동료 의원들과 언론의 많은 호평을 받았다. 항상 날카롭고 심도 있는 질의를 하는데다,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엄청 쏘아보는 탓에 공무원들이 윤차민을 무서워했다고. 교육위원회에서 시민교육, 스쿨미투, 입시 제도,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 학급당 학생 수, 교원 정원, 교육과정 등의 의제에 집중했다. 물론, 지역구인 계양구 을의 교육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예산을 확보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특히, 인천당산초를 증축에 증축을 거듭하기만 하여 답이 없었던 동양지구의 과밀학급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귤현동과 동양동 사이에 초등학교를 신설하는 것을 빠르게 확정시켜 동양동 주민들에게 감사패를 받았다.
초선 의원 시절부터 탁월한 지역구 관리 능력을 보여주었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인천 북부권의 의료 인프라를 개선하기 위해 계양역 코앞에 제2인천의료원을 유치했다. 또한 홍미영 시장을 설득해 빌딩을 매입하여 인천광역시청 신관으로 쓰려는 계획을 폐기하고, 신청사를 계양구에 건립하는 것을 확정시켰다. 그 누구도 실현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던 계양역 복합환승센터와 GTX-D·인천국제공항발 KTX의 계양역 정차도 확정시켰다. 공약 이행률도 92%에 달해 인천 지역 의회원 의원 중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여당인 신민당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이낙연 총리와 항상 대립각을 세웠다. 이재명이 세운 공정사회에 합류하여 '이낙연 저격수'로 이름을 날리며 자유당 의원들보다 훨씬 집요하게 이낙연 의정부를 물어뜯었다. 당내 주요 인사들에게 공천을 빌미로 "비판도 정도껏 해야지. 윤 의원, 재선 안 할 거냐"라는 협박 아닌 협박을 받기도 했지만, "어쩔티비. 이낙연 총리는 공천 때문에 움직이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공천 때문에 움직이는 김용남 같은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쿨하게 무시했다. 이러한 윤차민의 반응을 접한 이낙연 총리가 윤차민을 향해 '참 독한 X'이라고 지칭했다는 후문이 있다. 공천을 빌미로 한 협박이 전혀 통하지 않자, 이낙연은 윤차민을 신민당 중앙당기위원회에 회부하여 윤차민을 제명하려고 시도하였으나, 윤차민은 "당기위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 이낙연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는 글을 자신의 SNS에 올리며 오히려 이낙연 일당을 조롱하는 모습을 보였다. 윤차민은 급기야 의회원에서의 투쟁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변희재 등과 협력하여 '이낙연 퇴진을 위한 태극기·촛불 연합 집회'를 주최하기도 했다.
사사건건 이낙연 체제와 대립각을 세우며 '내부총질'에 앞장선 탓에 공천도 못 받을 것으로 예상되었던 윤차민이었지만, 제69대 의회원 의원 선거를 목전에 두고 이재명 체제가 들어서자 전세가 크게 역전되었다. 이재명이 의장에 당선되자마자, 총선기획단에 합류하였으며, 공천관리위원회의 위원으로도 선임되었다. 이후, 자신의 트위터에 "인생은 실전이야, 낙연아"라는 내용의 글을 올려 신민당에 피바람이 불게 될 것을 예고했다. 실제로, 윤차민은 악역을 자처하며 이낙연 잔재 청산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윤차민은 보란듯이 자신의 지역구에서 단수공천을 얻어 냈고, 제69대 의회원 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계양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상대 후보를 여유 있게 꺾고 재선 의회원 의원이 되었다.
성평등·인권정책 담당 특명담당대신
제70-72대 의회원 의원
선임대신 겸 교육대신
2031년 7월 27일, 제3차 이재명 의정부의 첫 선임대신 겸 교육대신으로 취임하였다. 국무조정실은 "윤차민은 교사 출신으로, 의회원 교육위원회에서 다재다능한 역량을 보여준 교육 전문가이자, 학교 현장에 대해서 잘 아는 교육개혁의 적임자"라고 밝혔다. 강민정 전 선임대신 겸 교육대신 이후로 오랜만에 등장한 교사 출신 교육대신이다.
이른바 '사랑의 도피' 논란과 배우자인 이서우 천지그룹 회장과 관련한 의혹 등으로 인하여 청문회에서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결국 수많은 진통 끝에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었다.
취임 직후, '8주기 교원양성기관 역량진단'에서 유일하게 E등급을 받은 가톨릭관동대학교 사범대학을 방문하여 학령인구 급감과 사회·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른 대학구조 개혁과 교원양성체제 개편을 강조했다. 윤차민은 이 자리에서 "좀스럽고 민망한 곳에서 발급한 교원 자격증은 가치가 없다. 임용시험 낭인이 이렇게 넘쳐나는데 교원 자격증 소지자의 수를 절대적으로 줄일 필요가 있다. 학창 시절에 공부도 해본 적 없고 교사를 괴롭히기만 했던 X들이 교단에 서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교원양성기관 역량진단'을 통해 하위 등급을 받은 곳에서 발급한 교원 자격증을 전부 말소시킬 것을 지시했다. 당연히 가톨릭관동대학교 사범대학에서는 '윤차민 교육대신과 이파람 정무차관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이권 카르텔'이라며 반발했지만, 윤차민은 "이렇게 '가관'인 곳은 처음 봤다. 학교도 없애고, 학적부도 다 날리겠다"며 강력하게 대응했고, 반발이 수그러들지 않자 결국 교육부와 인천가톨릭학원, 천주교 인천교구와의 3자 협상을 통하여 의과대학의 정원을 인천가톨릭대학교로 넘겨 주는 조건으로 가톨릭관동대학교의 폐교와 재학생과 졸업생 전원의 학적과 교원 자격증 등의 말소[6]를 이끌어냈다. 이렇게 윤 교육대신의 절대 복종을 강요하는 대학 정책에 반발한 웅지세무대학교도 비슷한 방식으로 폐교 조치가 되자, 대학교들은 "화진대학교 말고 안전한 곳은 없다"며 폐교당하기 싫었는지 교육부의 말을 잘 듣게 되었다고 한다.
2031년 9월 12일, 천안시에 위치하고 있는 대학교들이 교양 강좌로 '천안학'을 개설하고 있다는 제보를 접하자마자, "이딴 게 무슨 학문이냐. 다른 지역학은 몰라도, '천안학'은 학문으로서의 가치가 전혀 없다. '천안학' 강의를 개설하는 대학은 정부 지원 사업에서 반드시 배제하겠다"며 '천안학' 강의를 전부 없애버릴 것을 지시하였다.
국무부총리대신
제73대 의회원 의원
2034년 10월 11일, 황제의 갑작스러운 붕어로 치러지게 된 제73대 의회원 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계양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어 6선 의회원 의원이 되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상대 후보를 더블 스코어로 누르고 압도적인 차이로 당선되어 '윤차민 왕국'은 건재하다는 것을 다시금 입증시켰다.
제73대 의회원 의원 선거 직후, 이재명이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신민당 의장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공정사회를 해체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렇게 신민당의 지도부가 공석이 됨에 따라,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하기 위한 임시당대회가 열리게 되었다. 이재명의 뒤를 이을 마땅한 후보군이 없는 상황에서 제3차 이재명 의정부의 국무부총리대신을 맡고 있던 윤차민이 신민당의 유력한 차기 당권주자로 급부상하였다. 현직 부총리이자, 예능을 비롯한 각종 방송과 남편의 유튜브 채널에 자주 출연한 탓에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았던 윤차민이 은명원 기획재정대신 등의 예상 후보군을 제치고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다는 결과의 여론조사가 쏟아졌다.
총선 이후, 외부와의 접촉을 자제하고 있는 중인 윤차민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총선 패배에는 부총리였던 나의 책임도 어느 정도 있다. 다만, 당과 나라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아직은 정해진 것이 하나도 없다"며 당대회 출마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내비쳤다. 윤차민이 의장 출마에 대해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자, 이른바 '개딸' 세력은 윤차민의 측근들에게 문자 폭탄을 보내고, 윤차민의 배우자의 회사인 천지그룹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며, 트위터와 네이버 카페 '재명이네 마을'을 통해 '윤차민 수배령'을 내리며 "윤차민을 차기 의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인천 지역의 신민당 정치인과 윤차민의 측근 등이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윤차민의 당대회 출마를 공식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여기에 한술 더 떠, 주해은 행정안전대신과 문하현 의원이 윤차민의 출마를 위한 기반을 만들어주기 위해 "출마 안 하면 쳐들어간다~ 붕짜자 붕짝"을 외치며 선진회를 결성하였다.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당대회 출마 요구에 윤차민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성지순례를 하면서 입장을 정리하겠다"며 남편과 함께 부여로 내려가 낙화암을 찾았다. 주해은 행정안전대신에 의하면, 자신이 잘 해낼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아직 서지 않아 고심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쉽사리 마음을 열지 못하는 윤차민을 설득하기 위해 연지훈 의원과 선요한 계양구청장이 부여를 찾았고, 롯데아울렛 부여점에서 쇼핑하고 있던 윤차민을 붙잡고 설득에 설득을 장시간 거듭한 끝에 윤차민은 결국 의장 출마를 수락했다. 의장 출마를 결심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직후, 윤차민은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려 "그동안 여러분을 너무 외롭게 한 것 같다. 너무 늦게 결정해서 미안하다. 신민당의 승리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의장 출마를 선언하며 한성부로 돌아온 윤차민은 자신의 측근들이 만든 계파인 선진회에 합류하였고, 사무실을 계약하고 캠프 인선을 시작하는 등 임시당대회 출마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민당 임시당대회
승리를 부르는 당찬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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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당 임시당대회 슬로건 |
2034년 10월 23일, 윤차민은 신민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승리를 부르는 당찬 의장'이 되겠다"며 임시당대회 출마를 선언했다.
신민당 의장
- ↑ 사실 '일반사회' 교과를 이루고 있는 사회학, 문화인류학, 정치학, 법학, 경제학 등은 사회과학이라는 공통점만 있지 학문적 관점은 서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 ↑ 윤차민의 원래 전공은 일반사회이지만, 지리 교사의 수급 문제로 인해 지리교육을 복수전공한 윤차민이 한국지리를 잠시 맡게 된 적이 있다.
- ↑ 단식 투쟁을 하며 윤차민의 자택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 ↑ 주베트남대사에 임명되어 의회원 의원직을 사퇴했다.
- ↑ 인천광역시장까지 역임했던 사람이 인천광역시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가덕도 신공항을 찬성한 공로로 부산광역시의 명예시민으로 위촉되어 인천의 시민단체들이 '송영길 인천시민 박탈식'을 열었던 적이 있다. 부평구 십정동에 있는 인천광역시 농업기술센터를 계양구 을 지역구에 있는 다남동으로 이전하겠다고 공약하였으나, 정작 농업기술센터는 계양구 갑에 있는 서운동으로 이전했다. 이미 신축 계획이 확정되어 예산과 부지가 모두 확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양구보건소를 신축하겠다는 '숟가락 얹기'식의 황당한 공약을 냈다. 한술 더 떠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의 격렬한 반대로 무산되어 송영길 시정에서 시민자연공원을 만들기로 했던 계양산의 롯데 골프장 부지에 롯데 수목원을 유치하겠다고 주장하여 논란이 되었다. 계양구와 부천시 오정구 대장동에 있는 소각장이 가까이 붙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부평구와 계양구의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계양구에서 하루에 필요한 소각량인 60t의 10배나 되는 600t 규모의 쓰레기를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광역 소각장'을 계양구 귤현동에 설치하려는 인천광역시의 계획에 "환경국장이 멋대로 한 것이라 몰랐다"라며 모르쇠로 일관하여 계양구민들에게 큰 비난을 받았다. 소각장 문제 해결을 위해 지역 주민들이 개최한 토론회에 "격이 안 맞는다"라는 이유로 불참하였고, '계양 광역 소각장'은 계양구 전체의 문제인데도 '동양동·귤현동 일대 소각장'이라는 과도하게 축소된 표현을 사용하여 특정 지역만의 문제로 일축하려고 했다. 지역 주민들이 인천광역시청 앞에서 매일 처절하게 1인 시위를 이어나갈 동안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노력은 전혀 하지 않고 한가하게 쓸모없는 웹드라마나 촬영하는 등 황당한 행보를 이어나갔다. 3선 연임 제한에 걸린 현직 구청장과 공모하여 신민당 계양구청장 경선에서 특정 예비후보에게 20%라는 부당한 감산이 적용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송영길이 다음 선거에서 당선되기는 글러먹었다고 생각했는지 주베트남대사가 되어 베트남으로 도망쳐 '송트남'이라는 별명에 쐐기를 박았다.
- ↑ 가톨릭관동대학교에 다녔다는 기록이 모조리 없어졌으므로, 전부 고졸이 되었다. 가톨릭관동대학교 출신인 교육공무원도 교원 자격증이 증발되었으므로 전부 파면되었으나, 그렇게 인원이 많은 것이 아니라 큰 영향은 없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