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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투에서 대한제국군이 일본군을 완전히 격파하고 대마도까지 수복함으로써 대한제국에서 잔존 일본군을 모두 축출하며 1940년 부터 4년 동안 진행된 한국전선이 종결되었으며, 이로써 아시아 전선의 주전장은 완전히 일본 본토로 넘어가게 된다. | 이 전투에서 대한제국군이 일본군을 완전히 격파하고 대마도까지 수복함으로써 대한제국에서 잔존 일본군을 모두 축출하며 1940년 부터 4년 동안 진행된 한국전선이 종결되었으며, 이로써 아시아 전선의 주전장은 완전히 일본 본토로 넘어가게 된다. | ||
=배경= | |||
== 어록 | ==1944년 한국전선의 상황== | ||
= 어록 = | |||
{{인용문1|부산에서의 마지막 순간은 마치 본토 결전이 실행된 순간 같았습니다. 한국군은 복수심에 불타서 물 밀듯이 밀려오고 있었고, 하늘에 아군 항공기는 보이지 않았어요. 우리 각 부대들은 참호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사수하기 위해 안간힘을 썻지만, 그것이 한국군의 포병대와 기갑부대에게 분쇄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죠. 결국엔 부산에서 철수하는 배에 몸을 실게 되었는데, 그때 항구는 난리였어요. 부산에 이주해왔던 우리 일본인들은 이제 몰려오는 한국군을 피해 항구에 정박한 배에 몸을 실으려고 안간힘을 썻죠. 그 난리통에서 사람들을 실고서 출항한 배들 중에 한국군의 공군과 해군을 뿌리치고 본토로 도착한건 10척중에 2척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 느꼈죠. 아, 본토 결전이 시작되면 우리 본토도 부산의 마지막 모습을 하겠구나.|미즈키 시게루 일본의 반전주의 만화가. 당시 일본군 소속.}} | {{인용문1|부산에서의 마지막 순간은 마치 본토 결전이 실행된 순간 같았습니다. 한국군은 복수심에 불타서 물 밀듯이 밀려오고 있었고, 하늘에 아군 항공기는 보이지 않았어요. 우리 각 부대들은 참호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사수하기 위해 안간힘을 썻지만, 그것이 한국군의 포병대와 기갑부대에게 분쇄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죠. 결국엔 부산에서 철수하는 배에 몸을 실게 되었는데, 그때 항구는 난리였어요. 부산에 이주해왔던 우리 일본인들은 이제 몰려오는 한국군을 피해 항구에 정박한 배에 몸을 실으려고 안간힘을 썻죠. 그 난리통에서 사람들을 실고서 출항한 배들 중에 한국군의 공군과 해군을 뿌리치고 본토로 도착한건 10척중에 2척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 느꼈죠. 아, 본토 결전이 시작되면 우리 본토도 부산의 마지막 모습을 하겠구나.|미즈키 시게루 일본의 반전주의 만화가. 당시 일본군 소속.}} | ||
=기타= | =기타= | ||
한국은 1946년 부터 부산이 해방된 6월 6일을 현충일로 지정하여 현재까지 추념일로서 기념하고 있다. | 한국은 1946년 부터 부산이 해방된 6월 6일을 현충일로 지정하여 현재까지 추념일로서 기념하고 있다. |
2023년 11월 23일 (목) 14:10 판
공지 | | 빌레펠트 연재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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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벨트크리그 | 주요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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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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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부산 전투 Third Battle of Busan 第3次釜山戦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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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벨트크리그 중 아시아 전선의 일부 | ||
날짜 | ||
1944년 5월 16일~1944년 6월 6일 | ||
장소 | ||
대한제국, 부산시 | ||
교전국 | 대한제국 | 일본인민공화국 |
지휘관 | 안중근 이범석 김홍일 김종오 백선엽 김원봉[1] |
우메즈 요시지로 이무라 조 허민국 |
병력 | 105만 4천명 | 71만 2천명 |
피해규모 | 총 사상자 약 28만명 | 총 사상자 약 36만명 포로 22만명 |
결과 | ||
대한제국의 대승 | ||
영향 | ||
한반도에서 일본군 완전 축출 한국전선 종결 일본군이 괴멸적인 타격을 입음 |
낙동강 물을 떠 마시는 6사단 7연대의 병사 |
개요
원수부 발표.
오늘 6월 6일, 오전 3시를 기점으로 치열하게 진행된 시가전 끝에, 이범석 원수의 제1 야전군이 일본군과 괴뢰군의 잔당들을 분쇄하며 부산 시내에 입성, 적의 마지막 배가 격침 되면서 부산에서의 전투가 완전히 종결되었다. 부산이 4년간의 압제를 끝내고 완전히 해방되었다!부산 수복 방송 |
제3차 부산 전투, 또는 부산 수복전이라고 불리는 전투는 1944년 5월 16일 부터 1944년 6월 6일까지 일본 인민공화국군 및 조선인민군[2]과 대한제국군간 부산 및 경상남도 전역에서 벌어진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대한제국군이 일본군을 완전히 격파하고 대마도까지 수복함으로써 대한제국에서 잔존 일본군을 모두 축출하며 1940년 부터 4년 동안 진행된 한국전선이 종결되었으며, 이로써 아시아 전선의 주전장은 완전히 일본 본토로 넘어가게 된다.
배경
1944년 한국전선의 상황
어록
부산에서의 마지막 순간은 마치 본토 결전이 실행된 순간 같았습니다. 한국군은 복수심에 불타서 물 밀듯이 밀려오고 있었고, 하늘에 아군 항공기는 보이지 않았어요. 우리 각 부대들은 참호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사수하기 위해 안간힘을 썻지만, 그것이 한국군의 포병대와 기갑부대에게 분쇄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죠. 결국엔 부산에서 철수하는 배에 몸을 실게 되었는데, 그때 항구는 난리였어요. 부산에 이주해왔던 우리 일본인들은 이제 몰려오는 한국군을 피해 항구에 정박한 배에 몸을 실으려고 안간힘을 썻죠. 그 난리통에서 사람들을 실고서 출항한 배들 중에 한국군의 공군과 해군을 뿌리치고 본토로 도착한건 10척중에 2척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 느꼈죠. 아, 본토 결전이 시작되면 우리 본토도 부산의 마지막 모습을 하겠구나. 미즈키 시게루 일본의 반전주의 만화가. 당시 일본군 소속. |
기타
한국은 1946년 부터 부산이 해방된 6월 6일을 현충일로 지정하여 현재까지 추념일로서 기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