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대 당시 외무성장관이자 개화당의 유력 정치인이었던 이승만은 그의 스승이자 같은 개화당 소속이며 당시 총리였던 서재필과 여러 분야에서 의견 충돌을 벌였다. 이로 인해 개화당은 현직 총재인 서재필을 따르는 파벌과 신흥 중진인 이승만을 따르는 파벌로 분열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승만이 친서재필 성향의 당 지도부를 향해 '바보같은 지도부'라고 공개 비난하는 이른바 바보 사건이 벌어진다. 이에 당 지도부가 이승만에 대한 징계안을 회부하자 이승만은 자기 파벌 인사들과 함께 탈당했다.
이승만은 바보 사건 이전부터 신당 창당 준비를 꾸준히 해왔다. 여기에다가 신속한 탈당과 신당 창당은 이승만이 '지도부로부터 탄압받는 정직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탈당 명분을 얻기 위해 일부러 바보 사건을 일으키고 자신에 대한 지도부의 징계를 유도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념 및 성향
대한국민회는 보수주의 빅텐트 정당이었다. 좌로는 보수자유주의자부터 우로는 국민보수주의자까지 넓은 스펙트럼의 정치인들이 분포해 있었으며 자유보수주의 성향의 대한민주당과 함께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대한민국의 보수정당을 대표했다.
국민회는 애국심 강조, 사회 체제의 안정 추구, 급진적 반공정책 실시 등 사회보수주의, 민족주의적 성향을 보였으나 여성 인권 신장과 취업훈련 지원 등을 주장하는 등 진보적인 정책들도 일부 지지했다.
일민주의
대한국민회는 일민주의(一民主義/Ilminism)라는 이념을 당 강령에 명시해두었다. 일민주의는 1918년 이승만이 8회 총선 직전에 창시한 이념으로, 대한국민회가 대한민주당과 합당해 신한국당을 창당할 때까지 당의 공식 이념이었다.
일민주의는 (시민)민족주의에 사회자본주의를 결합시킨 이념으로, 하나의 국민(一民)은 모두가 인간적인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사상이었다. 주로 이승만의 기독교 민주주의적 사상에서 기원했다고 평가받는다. 일민주의는 1920년대까지는 경제적으로 중도좌파적인 사상이었으나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의 등장으로 다소 우경화되어 1930년대부터는 중도적인 이념이 되었다.
만주군은 스스로의 전신을 청나라군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질적인 전신은 장징후이 등의 군벌 부대이다. 만주국의 첫 수상이었던 정샤오쉬는 "왕도정치에는 군대가 필요 없다"라며 군대 미보유를 주장했으나 장징후이 등과 한국 외무성이 강력하게 요구해 군대 창설이 결정되었다. 이후 강덕제를 통수권자로, 장하이펑을 총참모장으로 하여 창건되었다.
훈련중인 만주군 기관총부대 (1936)
초기에는 만주 내의 반만주국 군벌들을 토벌하기 위해 상당한 구모의 병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만주국에 대항하던 장쭤린, 마잔산 군벌이 와해된 이후에는 만주가 국방을 사실상 한국에 의존하여 만주군은 소규모 부대를 중심으로만 편제되었었지만 1936년 이웃한 녹우크라이나에서 치올코우스키 전투로 안보 위협이 가중되자 징병제를 급히 도입하고 군비를 대폭 증강하였다. 1940년 기준 민주군은 23만 명의 상비군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전차, 야포 등 중장비가 충분하지 않았다. 특히 대전차포 등 대전차 무기가 부족하였다.
결국 제3차 극동전쟁 당시 기갑부대와 대규모 제파공격전술을 앞세운 소련군에게 탈탈 털렸고 모든 영토를 상실하여 1차 대전 당시의 벨기에 꼴이 되고 말았다. 이후 압록강에서 한국군과 함께 최후의 저항을 하다가 독소전쟁 발발로 소련이 곤경에 처해 미국의 중재로 평화협정이 체결되자 국토를 수복하였다.
냉전 당시 만주는 명목상으로는 중립국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냉전의 최전선에 있는 상태였기에, 3차 극동전의 트라우마로 인해 만주는 아주 비대한 규모의 군대를 운용했다. 1970년에는 상비군이 100만 명에 이를 정도였다. 이후 데탕트를 거치며 군비 지출이 증가하는 속도가 감소하기 시작되었고 시작했고, 1980년대 중반 잠시 상승하였가다 소련의 붕괴 후 다시 감소했다. 이 추세는 200년대까지 이어져 2000년대의 연 군비증가율은 1% 내외였으며 병력은 40만 명까지 줄어들었다. 군축과 동시에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 수천 명 규모의 평화유지군을 파병하기도 했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강력해진 중국이 과거 중국 영토였던 국가들에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대만, 티베트, 몽골은 물론 중견국인 만주 역시 그 대상에 포함됐다. 이는 만주인들이 70년 전의 악몽을 떠올리게 만들었고 트라우마가 재발한 만주는 GDP 대비 국방비를 3.5%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빠른 속도로 군비 증강에 나섰다.
만주군의 통수권자는 만주의 국가원수인 만주국 황제로, 현재 통수권자는 영화제이다. 다만 만주국의 황권이 강한 편이라고 해도 엄연히 입헌군주제 국가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통수권은 황제에게서 내각총리대신이 위임받아 대신 행사한다. 내각의 일원인 수위대신이 군에 대한 감독권과 전반적인 인사권을 행사하며, 연합참모총감이 군 전체에 대한 군령권을 행사한다. 예하의 육군, 공군, 내군 총감은 군정권을 행사한다.
다만 전시에는 모든 지휘권이 FETO 총사령부에 이양된다. 민주군 연합참모총감은 당연직으로 FETO군 부사령관을 겸임한다.
만주군 수뇌부 전원은 군 통수권자인 황제를 직접 알현하고 임명된다. 물론 실제로는 황제는 실질적 군 통수권자인 수상이 임명을 요청하면 이를 임명한다. 다만 만주가 입헌군주국 치고는 군주의 권력이 강한 나라인 만큼 황제가 수상이 내정한 이를 임명 거부할 때도 종종 있다.
조직
육군
공군
내군
내군은 만주군의 3대 군종 중 하나로 내무군의 역할을 수행한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국내 치안 유지를 목적으로 창설되었다. 중국어로는 內軍, 만주어로는 ᠪᠣᠣ ᡮᠣᠣᠠ[16]이라고 부른다. 만주국 내군은 공공질서 유지, 정부청사 등 국가주요시설 경비, 테러 및 반란 진압 등을 담당한다. 국경경찰을 지원할 때도 있다.
전체 병력은 약 4만 명으로, 일반적인 경무장 경비부대 외에도 테러 진압을 위한 특수부대와 여러 기동부대가 편제되어있으며 다수의 경장갑 경무장 보병수송장갑차(APC)와 기타 전술기동차량을 운용하고있다. 사령부 예하에는 8개 경비여단과 대테러부대인 황룡대대를 두고 있다. 각 경비여단은 여러 개의 경비대대와 1개 기동대대를 예하에 둔다.
지휘관인 내군총감은 중장(☆☆☆)이 맡는다.
계급
수관급 군관
대원수(☆☆☆☆☆☆): 만주국에 단 한 명뿐이자 군 통수권자이 만주 황제의 계급으로, 황제 즉위시 자동으로 해당 계급을 받는다. 일반 군인은 스스로 황제가 되지 않는 이상 무슨 일이 있어도 대원수까지 진급하지 못한다.
원수(☆☆☆☆☆): 대장보다 한 단계 높은 계급으로, 총 5명의 군인이 원수 계급을 달았으나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로 원수로 진급한 군인은 없었다.
장관급 군관
대장(☆☆☆☆): 현대 만주군의 최선임 장교로, 연합참모총감 내정자는 연합참모총감에 임명되는 동시에 대장으로 진급한다. 1980년대 이후로 군 전체에서 연합참모총감 딱 한 보직만이 받을 수 있는 계급이다.
상장(☆☆☆): 현재 만주군 차선임 장교로, 3군 총감과 연합참모부총감이 가지는 계급이다. 즉 현재 만주군 존체에 딱 네 자리 있다.
중장(☆☆)
소장(☆): 만주군의 중추를 담당하는 계급이다. 보직의 꽃이라고 불리는 여단장과 비행단장에 바로 이 소장 계급의 장교가 보임된다. 이외에도 부사단장, 연합참모부 수석참모, 주요국 주재무관 등에도 준장이 보임된다.
교관급 군관
대교
중교
소교
위관급 군관
대위
중위
소위
준위: 군관학교(사관학교)의 군관후보생들이 가지는 임시계급. 군관후보생들은 군관학교 졸업 후에는 소위로 정식 임관한다.
부사관
사관장: 주임원사에 상당.
원사
상사
중사
하사
병
상등병
일등병
이등병
전력
지상장비
전차
3.5세대 전차 : 50대
3세대 전차 : 330대
2세대 전차 : 452대
장갑차
IFV : 575대
APC : 893대
자주포
170문
견인포
464문
다련장로켓포
146문
수송차량
약 1만 5천 대
항공장비
전투기
4세대 전투기 : 90기
3세대 전투기 : 78기
수송기
37기
조기경보기
0기
무인기
36기
공격헬기
42기
수송헬기
185기
각주
아이신기오로
아이신기오로 가문 爱新觉罗氏 | ᠠᡳᠰᡳᠨ ᡤᡳᠣᡵᠣ ᡥᠠᠯᠠ House of Aisin-Gio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