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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7일 (목) 02:12 판
개요
1979년 인민경제계획 수치 달성을 호소하는 선전 포스터 |
인민경제발전칠개년계획 / 人民經濟發展七個年計劃
Seven-year plans for the development of the people's economy of the DPRK
1956년부터 조선 정부의 지도 하에 실시된 국가주도 경제 발전 계획.
배경
조선 최초의 개년계획은 1950년 조국해방전쟁의 종전 이후 시행된 인민경제복구 3개년 계획(人民經濟復舊三個年計劃)이다. 1950년부터 1952년까지 시행된 3개년 계획은 전쟁으로 초토화된 조선 경제를 복구하고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시행된 경제 발전 계획으로 사회주의 국가들의 원조와 주민들의 대중동원체계 덕분에 해당 정책의 시행 이후 조선의 국민소득증가율은 30.1%, 공업생산증가율은 41.8%로 목표치에서 약 10%를 초과달성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1][2]
해당 성과를 본 김일성은 조선 최초의 장기 경제 계획인 인민경제 5개년 계획(人民經濟五個年計劃)을 1953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시키기 시작했다. '사회주의 공업화의 토대를 구축하고 주민들의 의식주 문제를 해결한다'는 목표 아래에서 시행된 5개년 계획은 중공업 우선주의 경제 개발과 농업공동화를 중점적으로 시행되었다. 그러나 해당 계획이 시행되던 도중 발생한 여러 정치적 사건들로 인해 김일성과 만주파는 그 권력을 잃고 숙청당하게 되었으며 부수상이던 박헌영과 남로당파가 권력을 획득하게 된다.
이들이 정권을 잡은 직후 가장 먼저 건든 것은 김일성이 주도하던 5개년 계획이었다. 김일성이 주도하던 중공업 우선주의 경제정책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이들은 중공업의 성장이 주된 목표였던 5개년 계획을 중단시키고 당장은 먹고 살 수 있는 경공업을 중심으로 하여 농업과 중공업에 골고루 예산이 분산된 새로운 경제 정책을 시행하니 이것이 7개년 계획이다.
1차 (1956-1962)
2차 (1963-1969)
3차 (1970-1976)
4차 (1977-1983)
5차 (1984-1990)
6차 (1991-1997)
7차 (1998-2004)
8차 (2005-2011)
9차 (2012-2018)
10차 (2019-2025)
10차 7개년 계획 선전 포스터 |
제10차 7개년 계획은 2018년에 개최된 조선로동당 제16차대회에서 그 시행이 결정되었다.
영향력
기타
관련 문서
- 5개년 계획 - 7개년 계획의 원조격 되는 경제 발전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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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만 곡물생산증가율은 목표치에서 약 3% 떨어진 7.1%를 달성하였다.
- ↑ 북한의 경제발전전략 70년의 회고와 향후 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