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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17일 (수) 17:4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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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극동
일본은 애당초 조선을 식민지화할 구상을 가지고 있었으나 조선의 근대화가 빠르게 이루어지며 조선의 식민화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해군의 의견을 따라 남방으로 진출하기로 결정했다. 때마침 조선은 북방으로 진출하기를 희망하고 있었는데, 북방으로 진출하려는 조선과 남방으로 진출하려는 일본은 공통적으로 청나라를 상대해야만 했다. 양측의 공동의 적이 생기면서, 조선과 일본은 1892년 비밀리에 동맹조약을 체결했다.[1]
새로운 농경기술은 조선에서의 식량 생산량을 크게 늘렸으나 인구가 천만이 훌쩍 넘어가며 한반도의 인구압은 극한에 도달했다. 이로 인해 많은 조선인들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청나라 영토인 간도에 정착했다.
간도의 조선인들은 청국인들과 농토를 두고 마찰을 빚었다. 이에 청나라는 지역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개의 영[2]을 파견하였고 조선 역시 간도의 조선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2개 육군연대를 파견했다. 간도방어사로 임명된 참장(소장) 이용익이 간도에 주둔한 청군을 기습공격해 간도 밖으로 몰아내자 청이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대응하며 조선 정부에 최후통첩을 보냈다.
조선 정부는 일본 정부와 합의를 거친 뒤 청에 공동으로 선전포고했다. 동시에 청과의 사대관계를 완전히 폐지하고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꿨다.
한국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청나라는 당황하였으나 곧 대규모 병력을 준비해 간도를 공격한다.
시베리아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