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나오미)

Rainbow (토론 | 기여)님의 2026년 9월 22일 (화) 21:3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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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관 설명 ]
먼동이 터오고 헤어질 시간이면
다시괴로워서
남몰래 흘린눈물이
뺨을적시네
샬라
"나오미"은 "조선이 일본과 동시기에 개화했다면?" 이라는 상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브위키의 대체역사 세계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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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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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
대한제국
공화국기
한성정부
현대
대한국
[1] 기자조선은 현대 주류 학설에서는 인정되지 않음
[2] 한사군은 조선사 포함 여부에 대해 논쟁이 있음
[3] 가야는 신라의 복속 이후에도 사료에서 존재가 확인되어 7세기 중엽까지 반독립적 상태로 존속했다는 학설도 있음
주요 민족: 한민족 (예맥 · 삼한)
대한국
관련 문서
대한제국
大韓帝國 | Empire of Korea

대한국
大韓國 | Empire of Dai Han
국기 (1897~1899년)
국기 (1899~1910년) 국장
광명천지
光明天地
상징
국가 애국가
국기가 국기가
국화 오얏꽃
위치
1897년의 행정구역
1897년 10월 12일 ~ 1919년 4월 10일
(N년 N일)
칭제건원 이전 멸망 이후
대조선국 한성정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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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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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한반도 및 부속 도서[1]
수도 황성 한성부(皇城 漢城府)
최대 도시
면적 220,903km² (내수면 비율 2.8%)
접경국 청나라의 기 청나라
러시아의 기 러시아 제국
인문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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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추산)
총인구
17,420,000명(1910년)
인구밀도
78명/km²
민족
한민족
공용어
근대 한국어, 한문
언어
한글, 한자[2]
종교
유교(성리학), 불교(대승 불교), 천도교,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 무속
군대
대한제국군
행정구역
1부 13도, 11부 316군 (1910년)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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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전제군주제[3]→준입헌군주제→전제군주제
국가원수 황제(대황제[4])
역대 황제
초대 고조 (1897년 ~ 1919)
국성 전주 이씨(全州 李氏)
정부수반 의정
행정부 의정부
입법부 중추원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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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 (1894~1902)
(1902~1907) 대한은행 원 (1907~1919)
GDP[5] 전체 GDP: $263억 (세계 26위)[6]
1인당 GDP: $1,523[7]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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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호 광무 (1897년 ~ 1919년)
시간대 UTC+08:30[8]
통행방향 우측통행[9]
도량형 SI 단위[10]
기타
현재 국가 대한국 (나오미)의 기 대한국

개요

대한제국(大韓帝國)은 1897년(광무 원년) 10월 12일 조선이 제국을 선포하여 세워진 한민족의 국가이자 전제군주제 국가로, 한국사에서 성립된 최초의 제국이다.

대조선국의 대군주인 고종이 건양 2년(1897년) 칭제건원하여 황제를 선포하고 국호를 대조선국에서 '대한제국'으로 개칭하였다. 아울러 광무개혁을 통하여 근대화를 추진하였다. 미국을 비롯한 수교국들의 공식 승인을 받았으며 서양에서 조선국을 부르던 Korea에서 따 와 국제적으로 Empire of Korea로 불렸다.[11] 과거 고려 왕조가 역성혁명으로 무너져 조선 왕조가 개국했던 것과 달리 대한제국의 국체는 조선에서 그대로 이어졌다.[12]

제국 선포 이후 구본신참을 표어로 내걸고 광무개혁을 시도하였으나, 황제권 강화에 치우친 태생적 한계와 일본의 침략 방해로 인해 실패하였다. 또한 일본 제국을 비롯한 열강으로부터 지속적인 간섭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은 한러일전쟁에서 의친왕을 위시한 독립협회 주도의 분조가 결성한 한러연합군이 승리하자 이후 고조의 실권이 위축되며 광무헌정이라고 불리는 준입헌군주제가 시행되었다.이를 시작으로 독립협회가 주도하는 각종 개혁이 시행되었으나, 러시아의 2월혁명을 목격하고 정치적 편집증이 격화된 고조의 친위쿠데타 무오정사로 일시적으로 전제정치가 시행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고조의 전제정은 미곡 가격 폭등에서 시작된 3.1혁명으로 종결되었다. 전국적으로 퍼진 반정부시위는 고조와 주요 종친들이 피신한 경운궁이 의문의 화재로 불타며 황족들이 일거에 사망하며 종결되고 임시정부가 구성되었다.

임시정부의 의정 이승만은 황실 유력인사의 부재를 틈타 공화정체를 근간으로 하는 신정부를 선언하고 일본과의 교섭으로 인천 앞바다에 일본 해군의 파병을 이끌어내고, 일본 해군의 무력시위를 통해 군부의 반발을 억눌렀다. 마침내 군부의 실세 조동윤 참모차장과 이승만이 교섭한 끝에 정동각서를 발표하며 군부가 공화국 선포에 동의하였고, 1919년 4월 10일에 한성정부가 선포됨으로써 대한제국은 기미국치로 멸망하였다.


  1. 간도 및 연해주 일대의 경우 고조 재위기 대한제국-청 국경 분쟁과 대한제국-러 국경 분쟁이 존재하고 있다.
  2. 갑오개혁을 계기로 국가 공문서에서 한문을 지양하게 되었으나 《조선왕조실록》 등 여러 국가 기록들이 여전히 한문으로 쓰였다. 한편 이 시기 한국어, 한문과 함께 문자 언어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던 이두는 한글 한국어의 확산으로 급격히 쇠퇴한다.
  3. 이전엔 갑오개혁과 독립협회에 의해 입헌군주제의 틀을 마련했었고, 형식상이긴 해도 전국자문회의 겸 행정심의회로서 중추원이 존재하였지만, 독립협회(중추원) 해산 후 대한제국에서 공인한 헌법은 황제의 무한한 군주권을 규정한 대한국 국제(1899년 제정) 밖에 남지 않았다.
  4. 대한국 국제나 수호 통상 조약 등에서 사용되는 표현.
  5. 1900년 기준
  6. 의외로 경제 규모가 큰데, 이는 한반도 자체가 인구가 꽤 많은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인구가 곧 경제력이었던 전근대 사회 특성상 한민족 국가들은 어느 정도의 경제력은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조선 초중기까지만 해도 경제 규모 10위권 이내에 들어간 적도 있었으니 대한제국은 오히려 하락한 것이다.
  7. 2025년 달러 기준. 원화로 환산하면 약 206만 원, 1900년 당시 달러 가치로는 약 40달러다.
  8. 1908년 관보 제3994호(칙령 제5호)에 따라 동경 127.5°를 기준으로 GMT+08:30 설정.
  9. 1906년 '우측통행령' 반포.
  10. 공식적으로는 1905년에 도량형법이 공포되었지만 민관에선 여전히 척관법이 혼용되었다.
  11. 조선이 Korea로 불린다는 사실은 전기 조선 시기부터 조정에서도 인지하고 있었는데 서양에서 조선을 자신들이 무너뜨린 고려라는 이름으로 부른다는 사실에 황당해 했다. 이는 사실 서양과 동양의 국호 관념이 다르기 때문으로, 동양의 국호는 곧 왕조와 같지만 서양에선 국호는 지역, 민족 느낌이 강하고 왕조와는 별개이다. 따라서 서양에선 왕조가 바뀐다고 지역이나 민족이 바뀐 건 아니니 과거에 그 지역의 이름이라고 각인된 '고려'로 조선을 계속 부른 것이다. 대한제국은 자국의 국호를 Empire of Dai Han으로 불러 줄 것을 각국에 요구했지만 당시 국제 사회에서는 과거부터 통용되던 국호인 Korea를 따와 Empire of Korea 또는 Korean Empire로 표기했다.
  12. 이로 인해 대한제국을 조선의 연속선상으로 보는 시각이 팽배하며, 한성정부에서는 아에 고조를 조선의 26대 군주로 간주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