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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기 퍼르메티 정부(알바니아어: Përmeti Government I 퍼르메티 고베른멘트 녀)는 1914년 3월 18일 구성된 알바니아의 두 번째 정부이다. 에사드 톱타니의 쿠데타 미수 이후 5월 20일 해산되어 제2기 퍼르메티 정부로 다시 재조직 되었다.
배경
알바니아의 첫 번째 정부인 이스마엘 체말리의 알바니아 임시 정부는 설립과 동시에 여러 어려움에 직면했다. 남부는 그리스군이 점령했고, 에사드 톱타니는 반정부를 구성하며, 1913년 10월, 중앙알바니아 공화국을 선포했다. 1914년 1월 22일, 이스마엘 체말리는 공무를 국제 통제 위원회에 넘겼고, 국제 통제 위원회의 아래에서 페이지 알리조티가 임시 정부를 구성해 통치한다. 2월, 국제 통제 위원회에 의해 중앙알바니아 공화국은 해산되었고, 남부의 그리스군은 철수하였다. 열강은 독일의 빌헬름 추 비트를 군주로 임명했고, 그는 1914년 3월 7일, 두러스에 도착해 통치하기 시작한다.
정부 구성
직책 | 성명 | 재임기간 | 정당 | |
수상 Kryeministër |
투르한 퍼르메티 | 1914년 3월 14일 ~ 1914년 5월 20일 | 무소속 | |
외무부장관 Ministër i Jashtëm | ||||
내무부장관 Ministër i Brendshëm |
에사드 톱타니 | 1914년 3월 18일 ~ 1914년 5월 18일 | 무소속 | |
전쟁부장관 Ministër i Luftës | ||||
재무부장관 Ministër i Financave |
가초 아다미디 | 1914년 3월 18일 ~ 1914년 5월 20일 | 무소속 | |
공공사업부장관 Ministër i Punëve Publike |
프렌크 비버 도다 | 1914년 3월 18일 ~ 1914년 5월 20일 | 무소속 | |
농업부장관 Ministër i Agrikulturës |
아지즈 브리오니 | 1914년 3월 18일 ~ 1914년 5월 20일 | 무소속 | |
교육부장관 Ministër i Arsimit |
미할 투르툴리 | 1914년 3월 18일 ~ 1914년 5월 20일 | 무소속 | |
체신부장관 Ministër i Post-Telegrafit |
하산 프리슈티나 | 1914년 3월 18일 ~ 1914년 5월 20일 | 무소속 | |
법무부장관 Ministër i Drejtësisë |
무피드 리보호바 | 1914년 3월 18일 ~ 1914년 5월 20일 | 무소속 | |
문화부장관 Ministër i Kultit |
1914년 3월 7일, 국제 통제 위원회가 스컨데르베우 2세에게 행정권을 위임한 후, 스컨데르베우 2세는 3월 15일, 투르한 퍼르메티에게 정부 구성을 위임한다. 퍼르메티 정부는 3월 18일 취임 선서를 하고 국정 운영을 맡았다. 수상 겸 내무부장관인 투르한 퍼르메티는 과거 1910년부터 1913년까지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재 오스만 제국 대사를 역임하는 등 오랜 기간 오스만 제국의 외교관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제1기 퍼르메티 정부는 주요 종교를 대표하며 구성되었지만, 내각 구성은 진보적인 알바니아인 사이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대부분의 인사들이 알바니아에 거주한 기간이 짧고, 독립 운동에 뚜렷한 업적이 없었고, 일부는 알바니아어조차 구사하지 못했다. 또한 대부분의 인사들이 중부와 남부의 보수적인 지주 귀족 계층이었다. 투르한 퍼르메티는 경험이 풍부하고 유능한 외교관이었으나, 에사드 톱타니의 계략과 음모에 무력했다.
해체
스컨데르베우 2세의 비서인 윌리엄 던컨 히튼암스트롱에 따르면 내각 구성원들은 첫 달의 대부분을 의미 있는 업무를 하는 대신 에사드 톱타니의 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보냈다. 첫 달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국제 통제 위원회에서 작성한 헌법 초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수동적인 환경은 에사드 톱타니로 하여금 야망을 실현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하게 했고, 자신의 지지자들을 무장시켜 쿠데타를 계획한다. 그러나 이는 스컨데르베우 2세에 의해 저지되고, 5월 18일 정부에서 축출된다.
에사드 톱타니가 축출되고 5월 20일, 스컨데르베우 2세는 내각을 해체하고 다시 조각할 것을 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