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종 인황제 이청

솔피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5월 26일 (일) 14:05 판
[ 소개 ]
매화 핀 진목정엔 잔설이 누웠는데
화사하게 웃는 설중매 담장 너머로 매향을 흩뿌리며
고운 자태 뽐내고 오가는 마실사람 눈웃음치며 유혹하네
김씨네가 살다가 도회로 가버린 초가지붕 용마루는 세월의 횡포 속에
사르르 녹아내렸고 마당에는 지게 갈퀴 쟁기대가리 홀태
써레 홍두깨 호미자루
잡살뱅이들이 널부러져 푸서리 속에 나뒹굴고 있네
조상의 숨결이 열려있는 초가삼간 설중매
"설중매"는 "현대까지 대한제국이 존속한다면?" 이라는 상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브위키의 대체역사 세계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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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대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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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황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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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
(광효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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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제2대 황제
선종 효황제 | 宣宗 孝皇帝
이름 이청(李土+寈)
출생 1881년 3월 8일
한성부 제중원
(現 황성 한성부 황실병원)
즉위 1912년 3월 23일
황성 한성부 경복궁 근정전
천붕 1923년 2월 27일 (향년 41세)
황성 한성부 황실병원
능묘 유릉(裕陵)
재위기간 대한제국 황태자
1895년 10월 12일 ~ 1913년 3월 23일
대한제국 제2대 황제
1913년 3월 23일 ~ 1923년 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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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전주 이씨
부모 부황 성조 태황제, 모후 원순태황후
형제자매 동생 환친왕
황후 정후 순공효황후
계후 순현효황후
후궁 성빈 강씨
자녀 장남 혜종 순황제
장녀 선경공주
학력 강학원 유치원 (수료)
강학원 초등과 (졸업)
강학원 중등과 (졸업)
육군무관학교 (졸업)
병역 대한제국군 육해공군 대원수
종교 유교 (성리학)
아명 준용(埈鎔)
대화(大和)
전호 익정전(翼丁殿)
묘호 선종(宣宗)
존호 장혜상정화흠승렬
(莊惠商貞和欽勝烈)
시호 문온무녕돈인성경효황제
(文溫武寧敦仁誠敬孝皇帝)[1]
연호 광정(光亨, 1914~1923)

개요

대한제국의 제2대 황제. 휘는 청(土+寈)이며, 연호는 광정(光亨), 묘호는 선종(宣宗), 시호는 효황제(孝皇帝)이다.

1881년 성조 태황제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만 2세의 나이에 왕세자에 봉해졌다. 어린 시절 부터 아버지 성조가 다혈질인것에 비하면 온후하고 점잖아 성조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아버지 성조가 문무를 겸비한 군주였고, 동생이자 대한의 제4대 황제가 되는 환친왕도 문무를 겸비했던 것과는 달리, 문신에 가까운 타입으로 경전과 서양의 지식, 잡기에 모두 능했으며 음악과 예술에 조예가 높았다고 한다. 이는 아들 혜종 순황제 또한 비슷했다.

선종 시기는 아버지 성조 시대에 이은 중흥의 시기이자 확장의 시기였다. 성조의 치세는 강력한 전제황권을 바탕으로 요동지방을 수복했고, 대마주를 편입하며, 유구와 일본을 대한의 영향권 하에 두었다면, 선종의 치세는 경제가 발전하여 신민들의 생활 수준이 향상되어 문화가 부흥하였고 1차대전에 참전하여 남양군도를 획득하고, 적백내전에 개입하여 연해주와 화태를 대한제국의 영토로 편입하여 대한제국의 전성기를 열었다.

또한 선종은 아버지 성조가 고안한 서구식 정치체제를 대한제국의 실정에 알맞게 적용하여 외견적이지만, 의회정치가 꽃을 피웠고 이러한 복합적인 요인덕에 성조와 선종의 치세는 연성지치라 불릴 정도로 현재까지도 대한의 전성기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찬란했던 선종의 치세는 허무하게 끝나고 만다. 1923년 2월 27일, 귀족원 개회사를 위해 마차를 탄 선종은 이동 도중 만주족 테러리스트의 폭탄 테러로 인해 향년 41세의 나이로 천붕했다. 이 사건으로 어린 황태자가 즉위했으나, 연성지치라 불린 성조와 선종의 치세와는 달리 새 황제 치하의 정치는 혼란에 빠졌고, 사회적으로는 대공황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으로 말미암은 육군 청년 장교들의 쿠데타와 한소전쟁의 패배로 이어지는 암흑기에 접어들고 만다.

생애

출생

청년기

즉위

사망

평가

여담

가계

대중 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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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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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완전한 시호는 선종장혜상정화흠승렬문온무녕돈인성경양효황제(宣宗莊惠商貞和欽勝烈文溫武寧敦仁誠敬孝皇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