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구르 독립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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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구르 독립전쟁
ئۇيغۇر مۇستەقىللىق ئۇرۇشى
ьуырур мустеqиллиq ьуруши
Uigurischer Unabhängigkeitskrieg
위림치 시내에 입성하고 있는 위구르 민족해방전선 소속 군인들
기간
1979년 7월 10일 ~ 1989년 10월 5일
장소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 전역
원인
위구르 지방 동튀르키스탄 민족주의자들의 독립 시도
교전 국가
중국 위구르 민족해방전선
동튀르키스탄 망명정부
국제 사회주의 노농해방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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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 국가
북대서양 조약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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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일본
유고슬라비아
파키스탄
러시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지휘관
장징궈
덩샤오핑
압둘라 메메지트
위르겐 브란트
에리히 호네커
뷜렌트 에제비트
병력
257,000명 (1985년)
112,000명 (철수 직전)
43,000명 (1982년)
740,000명 (1989년)
31,500명 (1986년)
피해
45,237명 전사
140,590명 부상
230명 실종
112,093명 전사
177,820명 부상
2,590명 실종
민간인 200,000명 사망 및 실종
결과
위구르 민족해방전선의 승리
영향
바오터우 조약 (1989년 12월 1일)
동튀르키스탄 제3공화국 건국

개요

1979년부터 1989년까지 약 10년간 전개된 위구르 지역의 독립 전쟁. 이 전쟁의 결과로 1956년 만주-몽골 위기로 중국에 복속된 동튀르키스탄은 33년만에 독립을 쟁취하게 되었으며, 중국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 지역의 지배권을 상실했다.

초기에는 전술과 병력에 있어 중국군이 우세했으나,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지원과 위구르 민중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위구르 독립군이 점차 전술적으로도 우세를 잡았다. 또한 장기간 지속된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소모는 중국의 1980년대 침체를 불러일으켰고, 더 나아가 서구권의 도덕성에도 타격을 입혀 서구권 혁명이 촉발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1988년 총통 장징궈가 사망한 후 좌파 성향의 덩샤오핑이 집권하면서 위구르 지역에서 병력을 철수하기 시작했고, 결국 1989년 10월 5일 중국군이 철수한 위림치 시내에 민족해방전선이 진주하며 신장위구르 자치정부가 멸망하며 전쟁이 종전되었다. 전쟁 후, 1989년 12월 동튀르키스탄 독립정부와 중국 정부는 바오터우 조약을 체결하였으며 이를 통하여 동튀르키스탄은 완전한 자주국가로 독립하게 되었다.

양측에서 35만명에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전쟁 도중 중국군에 의한 위구르 민간인 학살 문제가 전후 외교 문제로 비화되기도 하였다. 또한 전쟁 이후 동튀르키스탄에 거주하는 화교들의 강제 추방으로 인한 분쟁도 있었다.

전개

평가

영향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