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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람-중국 전쟁 반공호국전쟁 Chiến tranh chống cộng sản Sino-Tunglamese War | |
날짜 | |
1979년 4월 10일 ~ 1980년 1월 17일 | |
장소 | |
베트남 북부 일대, 중국 윈난성 | |
사유 | |
베트남 불법 혁명으로 인한 반외세 종교 정권 수립 뚱람 정권의 반공 정책에 대한 베트남 공산당의 반발 친공 국가를 세우려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의 개입 | |
결과 | |
뚱람 정권의 승리, 중국과 베트남 공산당의 패퇴 | |
영향 | |
동남아시아에 사회주의 정권을 세우려는 중국의 전략이 무산됨 | |
국가 | |
뚱람 지원국 티베트 망명정부[1] 대만 미국?[2] |
중국 베트남 공산당 지원국 소련 북한 파일:크메르 공화국 국기.svg 민주 캄푸치아 |
지휘관 | |
응오득후이 보응우옌잡 |
화궈펑 덩샤오핑 레주언 돈득탕 |
병력 | |
37,500명 | 21,000명 8,300명 |
피해 규모 | |
8,452명 전사 | 5,593명 전사 2,500명 전사 3,500명 항복 |
민간인 10만명 이상 사망 |
개요
Chúng ta sẽ đánh đuổi người Trung Quốc và những người cộng sản, giống như chúng ta đã đánh bật quân Yankees bốn năm trước. Cuộc cách mạng vĩ đại để giác ngộ phải tiếp tục!
우리는 4년 전에 양키들을 쫓아냈듯 중국인들과 공산주의자들은 내쫓을 것입니다. 깨달음을 위한 위대한 혁명은 지속되어야합니다! 응오득후이, 개전 연설 中 |
뚱람-중국 전쟁(영어: Sino-Tunglamese War 사이노-텅래미스 워[*]), 혹은 반공호국전쟁(베트남어: Chiến tranh chống cộng sản)은 뚱람 정권과 베트남 공산당, 중국이 벌인 전쟁이다. 공산당을 탄압하고 극보수주의적인 신정 체제를 건립하려 한 뚱람 정권과, 반대로 세속적인 공산주의 프롤레타리아 정권을 수립하려 한 베트남의 공산 세력이 충돌하여 일어난 전쟁이었다. 시각에 따라서는 제2차 베트남 내전[3]으로 보기도 한다.
중국의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과, 중심 지도자가 없었던 베트남 공산당 세력의 지리멸렬함으로 인하여 제2의 베트남 전쟁이 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전쟁은 일방적으로 베트남 공산당 게릴라의 패전으로 끝났고 공산군의 절대다수가 포로로 잡히거나 중국으로 도주하여 베트남 내에서 나름의 세력을 갖추고 있던 사회주의 세력은 무너져내렸다. 또한 이 일로 인해 중국 내에서도 화궈펑의 권력 기반이 약화되어, 덩샤오핑에게 정권을 선양하게 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크메르 루주 세력 역시 공산군을 지원했는데, 이에 뚱람 정부가 반발하면서 뚱람-캄보디아 전쟁이 발발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공산 세력과 자유 세력에 둘 다 맞서 싸워 승리한 뚱람 정권은 제3세계의 리더로서 입지를 확고하게 굳혔다. 현재도 뚱람은 대표적인 제3세계 국가로서 신냉전에서 지역 패권 국가로서 입지를 확고히하고 있다.
전쟁의 결과, 뚱람이 승리하여 중국은 뚱람 정권에게 막대한 보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동시에 군인 출신이었던 응오득후이에 의한 잔혹한 좌파 세력 탄압이 실시되었다. 1993년 부분적 민주화 이전까지 카를 마르크스의 책을 소지하고 있기만해도 추방되거나 처형당했으며, 공공연히 의회민주정에 대한 목소리조차 낼 수 없을정도로 사회는 경직되었다. 현재까지도 이 전쟁의 기억으로 인하여 뚱람 내에서 반좌파, 반중 정서는 상당한 편이다. 또한 뚱람 정부는 티베트 망명정부에 이때를 기점으로 막대한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한편 이 전쟁은 서구 지식인들에게 혼란을 불러 일으켰다. 뚱람이 서방 민주주의와 다른 체제를 성립하여 나름의 정치를 풀어나갈 것으로 기대했던 포스트 모더니즘 성향의 많은 좌파 지식인들은 뚱람 정부의 무자비한 좌익 지식인 및 시민 학살, 고문, 숙청에 적잖이 실망하였다고 한다.
반응
미국의 입장
미국 정부의 입장은 매우 애매하였다. 불과 5년 전까지 싸운 상대인 뚱람이 이제는 총구를 반대로 제2세계로 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인도주의적인 입장에서 베트남에 무리한 개입을 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상태였으나, 그렇다고 제2세계를 편들지도 않았다. 이 때문에 미국이 은밀히 뚱람 정부에게 무기를 지원하여 제2세계 국가를 상대로 뚱람이 잘 싸울수 있도록 도왔다는 베트남 사회주의 세력의 음모론이 퍼졌다.
2009년 공개된 기밀 문건에 따르면 이는 일정 부분 사실이나 응오득후이 뚱람 입승주직이 직접 미국에 과도한 지원을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하면서 반만 진실인 루머가 되었다. 현재 역사 학계에서는 뚱람이 미국의 지원이 없었더라도 수월히 중국으로부터 승전했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절대 다수이다.
한편, 미국이 도망치듯 베트남에서 철수하며 버려둔 무기는 뚱람이 중국과 대적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한국에서
한국 정부는 뚱람의 신정적 보수 체제와 베트남 공산당의 공산주의 체제에 둘 다 적대하는 입장이었기에 이러한 특수한 뚱람의 외교적, 정치적 입장은 잘 보도되지 않았다. 그러나 뚱람이 공산 정권과 치열하게 맞붙은 것은 역설적으로 한국 운동권이 베트남 전쟁에 대해 언급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른바 반미 반공 정권의 특수성 때문에 미국을 비판하는 것이 친공으로 낙인찍히지 않을 빌미를 주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리영희의 <전환 시대의 논리>라는 책으로 뚱람과 미국, 중국의 관계가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