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시 왕디

Curio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11월 7일 (월) 15:04 판
쿠리오 긴배 도프 공산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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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티베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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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국 제22·23대 수상
타시 왕디
Tashi Wangdi | བཀྲ་ཤིས་དབང་འདུས་
출생 1947년 4월 15일
티베트 시가체
국적 티베트
현직 티베트국 수상
티베트 자유당 총재
임기 티베트국 22대 수상
2020년 9월 19일 ~ 2022년 10월 31일
티베트국 23대 수상
2022년 11월 1일 ~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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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티베트 불교
소속 정당
소속 계파 온건파
의원 선수 10
의원 대수 1, 2, 3, 4, 6, 7, 9, 10, 11, 12
사상 고전적 자유주의, 온건주의, 시민국민주의, 아태연합주의
약력 티베트 망명정부 문화교육성 공무원 (1966~1971)
티베트 문화교육성 공무원 (1971~1985)
티베트 자유당 최고위원 (1990~1994)
티베트 자유당 수석대변인 (1991~1994)
티베트 자유당 원내부대표 (1997~1999)
티베트 문화교육상 (2000~2005)
티베트 행정개혁 담당 특명상 (2005~2007)
티베트 부수상 겸 문화교육상 (2009~2010)
티베트 자유당 사무총장 (2013)
티베트 자유당 원내대표 (2016~2018)
티베트 자유당 대표 (2018~)
티베트 수상 (2020~)

개요

티베트의 제23, 24대 수상. 티베트 자유당이 배출한 네 번째 총리다.

생애

정계 입문 전

1947년, 독립국가였던 티베트 시가체에서 태어났다. 그가 세 살이던 1950년, 공산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하여 티베트와 자치권 협정을 맺어 병합하였다. 이후 1959년, 공산중국이 1950년에 약속한 자치권을 침해하자 티베트인들이 봉기했는데, 이 봉기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타시 왕디는 부모님을 따라인도의 티베트 망명정부로 망명했다. 왕디는 1966년부터 티베트 망명정부의 문화성 공무원으로 일했으며 1971년 티베트가 재독립하자 티베트 본국으로 돌아왔다. 1973년에는 영국 덜햄 대학교에서 정치사회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5년, 티베트 자유당의 입당 제의를 받고 문화성에 사표를 쓰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정점을 향한 길

문화상 시절 타시 왕디

왕디는 티베트 자유당의 전국구 공천을 받아 1986년 1회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고항인 시가체에 출마하여 당선, 재선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동시에 자유당 최고위원과 자유당 대변인도 역임했다. 4선 의원 시절에는 당 원내부대표를 맡기도 하였다.

이후 롭상 텐진 내각에서 교육상으로 처음 입각했으며 롭상 텐진의 뒤를 이은 텐진 테통 내각에 걸쳐 문화상과 부수상을 역임했다. 9회 총선에서 자유당이 패배하자 자유당 비상대책위원장에 추대되었으며 이후 원내대표로 선출되었다. 2018년, 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되었고 2020년 총선에서 자유당이 승리하면서 수상에 취임했다.

티베트 수상

코로나 사태 대처

이전 국민민주당롭상 상가이 내각이 코로나에 봉쇄로 대응하다 경제를 말아먹었기에 왕디 내각은 봉쇄조치를 해제하는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시키고 엄격히 단속했다. 또 아태연합 측의 도움으로 백신을 어떻게든 확보해 접종을 시작했다. 이후 티베트에서의 코로나 사태는 어느 정도 진정되었고 내수 시장의 상황도 상당히 개선되었으나 백신은 여전히 부족했고 대외 무역 감소로 인해 경제는 여전히 안 좋았다.

균형 외교와 군사력 강화

왕디는 여느 자유당 수상처럼 친중과 반중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펼치려고 시도다. 그는 임기 초 냉랭해진 서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1] 무역협정을 맺기 위해 재무상과 외무상을 충칭으로 보냈으나 그들이 마주한 것은 서중국 측의 고압적인 태도였다. 이후에도 왕디는 서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몇 차례 시도하였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게다가 티베트 국내에서 서중국에 대한 여론까지 악화되자 결국 그는 그의 외교정책을 상당 부분 수정해야만 했다.

이후 왕디는 서중국의 군사적 위협이 상당하다고 여긴 것인지 군사력 증강 계획을 급히 발표했다. 계획명은 '디펜스 2040'이었다. 디펜스 2040은 구체적으로 산악보병의 정예화와 무인항공 및 방공전력 확충, 비상시 신속한 병력 동원 시스템 구축 등을 골자로 했으며, 기한은 2040년까지였다. 그는 이 계획을 "티베트 국민의 안전을 지켜줄 보루"라고 표현했다.

공기업 민영화와 조기 총선

가두연설서 자유당 지지를 호소하는 왕디

코로나로 인한 경제침체가 계속되자 티베트 정부 역시 심각한 재정적자를 기록했다. 일각에서는 군축의 필요성을 언급했으나 왕디는 외부로부터의 위협이 증대되는 상황에서 군축은 어렵다고 밝혔다. 그리하여 재정 적자를 상쇄하기 위해 단행된 조치가 공기업 민영화였다. 이전까지 공기업이었던 티베트 우정공사와 도로공사를 완전히 민영화하겠다는 것이었다. 우정공사와 도로공사는 매년 적자를 내고있었던 터라 세금으로 적자를 매워야 했다.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가 하고자 한 바를 이룰 것입니다. 쫄리면 사표 쓰시던가.
공기업 민영화에 반대하는 국무상들에게

민영화 방침이 발표되자 거센 반발이 몰아쳤다. 당사자인 공기업 직원들은 물론 야당인 국민민주당은 결사 반대의 입장을 내놨고 여당인 자유당 내에서도 이견이 표출된 것이다. 이에 왕디는 "그렇다면 국민에게 물어보자"라며 국회를 해산하고 수상직을 내걸은 조기 총선을 실시했다. 내각에서 국회 해산을 의결하는 과정에서 민영화에 반대하는 국무상들을 해임하고 자신이 스스로 국무상을 겸임하는 노빠구 행보를 보였다.

결국 2022년 10월 23일, 조기 총선이 치러졌는데, 티베트 자유당은 이전 선거 대비 의석 수가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여유롭게 국회 과반 의석수를 넘겼고 왕디는 연임에 성공했다. 경제국민적인 관심이 민영화 이슈에 몰리면서 침체 등 정부에 불리한 이유가 묻힌 덕도 있었다.

여하튼 위기를 국민적인 지지를 확인한 왕디는 23대 수상에 취임하자마자 우정공사와 도로공사를 민영화했다.

사상 및 견해

중도 성향의 자유주의자로, 개인의 자유 증진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는 정치적 자유, 경제적 자유, 사회적 자유 모두가 중요하다고 보지만 자유당원 치고는 복지에 우호적이며 전통적 가치에 대해서도 중요성을 인정한다. 이런 면에서 자유당 내 온건파로 여겨진다.

아태연합과의 협력에 찬성하며 궁극적으로는 아태연합에 가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서중국에 대해서는 전향적이고 협력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으나 시간이 갈수록 서중국에 대한 태도가 부정적으로 바뀌는 중으로 보인다.

비판 및 논란

"코로나는 좋은 경험" 발언

2021년 2월, 라싸의 TBC 스튜디오에서 열린 국민과의 간담화에서 한 청년이 코로나로 인한 경제난 때문에 먹고살기가 힘들다고 말하자 "코로나로 인한 어려움도 언젠가 큰 자산이 될 것" 이라고 말했다가 많은 비판을 받았다.국민민주당 등의 야당들은 "국민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는 수상"이라며 왕디를 비판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내각 지지율이 직전 조사 대비 2~3% 하락했다.

거친 언행

입이 험하기로 악명높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기업 민영화를 반대하는 국무상들에게 시전했던 "쫄리면 사표 쓰시던가" 발언. 이러한 투박한 언행은 발언 리스크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으나 실제로는 필요한 시기에만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거친 언행이 철저하게 계획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다.

여담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85 - 현재 정계 입문, 입당

각주

  1. 심지어는 양국 관계가 악화된 것은 티베트의 책임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