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원 (한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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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원
柳元 | Ryu Won
본명 류열찬 (柳悅燦)[1]
출생 1952년 05월 05일(1952-05-05) (71세)
한성부 종로구 숭인동
국적 대한제국
직업 소설가,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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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영광 류씨
학력 한성고등학교 (졸업 / 17회)
경희대학교 (불어불문학 / 학사)
경희대학교 (불어불문학 / 석사)
활동 기간 1973년 - 현재
부모 아버지 류강석
어머니 조춘자
배우자 김희연
종교 무종교
소속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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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 )
데뷔작 방황하는 눈사람 (1973)
언어 한국어
사조 포스트모더니즘, 참여 문학, 문학 평론
주요 작품 30 (1975)
갈망 (1981)
오래된 그늘 (1999)
소금 (2011)
수상 동인문학상 (1999)
만해문학상 (2001)

개요

이게 다 너때문이야. 하고 소리치는 아버지와, 소금을 안고 엎어지는 아버지와, 감옥에 간 아버지와, 사우디아라비아 모래 바람 속에 함마를 내두르는 아버지와, 빨대 아버지와, 깔대기 아버지와 그리고 또 가족을 등지고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아버지도 보였다. ...아버지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고, 나는 느꼈다.[2]
<소금>

대한제국의 시인.

현대 참여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로, 젊은 시절 데뷔하여 현재까지 꾸준하게 사회 참여적인 문학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생애

1952년, 한성부 종로구 숭인동의 부유한 양반가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미학에 관심을 보였으나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를 허용하지 않았고, 명문고등학교인 한성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보들레르와 카뮈의 소설에 심취해 거의 반 꼴지를 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아버지와 타협을 보아 불어불문학과에 진학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고 1971년 경희대학교의 불어불문학과에 합격, 진학한다.

류원은 중학생 시절부터 틈틈이 습작을 써오면서 이미 문학적 재능을 드러냈는데, 1973년 자신의 자전적인 단편 소설들을 다듬은 책 <방황하는 눈사람>이 문예상을 받으면서 2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등단하게 된다. 1974년, 비상조치령 시행 후 학생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구속되어 소설 활동이 중단되었으나, 구치소 안에서 소설 <30>을 1975년 완성하고 1976년 출간하였다. <30>은 견우와 직녀 설화를 현대적으로 재각색한 순수문학에 가까운 내용이었는데, 스스로는 아버지에게 미안해서 돈 벌려고 쓴 소설이었다고 주장한다. 자신은 상당한 흑역사로 보는듯. 1975년 감옥에서 출소한 이후에는 류원이라는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3]

1979년, 2년 늦게 불어불문학과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으며, 대학 졸업 이후에는 서울의 봄에 참여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학생 운동을 옹호하는 수필들을 발표하며 진보 지식인으로 변신하였다. 1981년 출간한 <갈망>은 서울의 봄을 전후로 하여 대한제국의 사회상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한 소설로, 출간과 동시에 금서가 되었으나 국제적으로 큰 호평을 받았다. 류원은 전두환 내각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로 망명하였으며, 신하준, 홍세화와 활발하게 교류하는 한편 롤랑 바르트의 <텍스트의 즐거움> 등 여러 비평서적을 번역하며 문예비평가로서도 활동하기 시작한다.

1980년대 프랑스 망명 시절 급진적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잠시 전향하여 계급투쟁과 유물론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1984년 소설 <영원의 아틀라스>를 발표하지만, 1986년 만주인민공화국 정부에 의한 신하준의 강제 구금 사건[4] 당시 신하준 구명 활동을 벌이면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에 환멸을 느끼고 공산주의 운동권과 전향한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진보에 대한 변증법의 관점은 유효하다고 평했으며 1990년 프랑스 망명 활동을 마치고 한국으로의 영구귀국한 후 민중당의 창당에 참여하는 등 진보주의 정당의 정치 활동에 관여하는 방식으로 이를 실천하고자 한다.

1990년대 초반부터는 문예비평가로서의 활동이 두드러졌으며, 신예 문예가 이인화 등 보수 성향의 문필가들을 전선에서 비판하며 진보 비평가로서 지명도를 쌓았다. 류원은 1990년대 당시 리얼리즘적인 문예비평에서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던 <창작과 비평>사와, 장정일, 이인화, 이창동, 이문열, 김탁환 등이 중심이 된 <상상>의 비평에 양비론적인 관점을 취하며, 신세대적(탈구축적)인 텍스트 비평을 하기 위해 <이매진>지에 참여한다. 그는 은희경의 <새의 선물> 등 1990년대 들어 두각을 드러낸 페미니즘 문학에 대해 "한국의 페미니즘 문학은 그 어떠한 텍스트도 보여준 적이 없으며, 그 어떠한 사회적 규범도 초코드화시키지 못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산물"이라고 비판함과 동시에[5], 이인화의 대하소설 <인간의 길>에 대해서 "프랑스 망명 시절의 감성으로 돌아가 한문장 한문장 분석하며 표절성을 비판할 수 있다"라며 역겨움을 감추지 않았다.

1997년, 국민승리21의 창당에 참여했으며, 2000년에는 민주노동당의 참여에도 참여하며 활발한 사회 활동을 보인다. 2000년에는 민주노동당의 전국구 후보 3번으로 출마했으나 당선되지 못하였다. 2008년 민주노동당 분열 당시 민주노동당에 잔류하였으며 2011년 통합진보당에 입당했다. 통진당 분당 사태 당시에는 당적을 두지 않으며 무소속으로 활동하다가 2020년 좌파당에 입당했다. 그러나 류원은 스스로를 NL 성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으며 단지 정의당과 진보신당 등 PD의 노선이 기반을 두고 있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근원적 회의 때문에 그 반대항으로서 민족해방파에 참여하는 것일 뿐임을 주장하였다.

한편 문학가로서는 1999년 <오래된 그늘>을 출간해 국내외적으로 극찬을 받으며 만해 문학상과 동인 문학상을 같은 소설로 수상하였다. 2000년대에는 이렇다할 작품을 내놓지 못하다가 2011년 <소금>을 내놓아 다시 주목을 받았다. 2010년대에도 여전히 문예비평가로 활동하면서, 박민규와 신경숙의 표절 사태와 고은의 성추문 사건, 이런 사건들에 대한 백낙청을 비롯한 진보 문예비평가들의 미지근한 반응 등을 비판하며 진보 문단계의 각성을 촉구했다. 또한 더불어민주당은 조국 법무대신과 성남신도시 문제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는 점에 있어서 사실상 부르주아적 파시즘 정당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비판하였다. 2022년 좌파당의 한성부윤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스스로 거절했다.

비교적 최근인 2021년에는 문예비평집 <문필: 텍스트-이미지>[6]를 출간하였다. 동년에 홍익대학교 예술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았으나 스스로 거절했고, 대학의 미학 교수로도 취업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자신은 너무 늙었기 때문에 이제 글만 쓰는 일이 남았다고.

작품 목록

문학

비문학

어록

문학을 사랑하는 첫번째 방법은 같은 책을 두번 읽는 것이고, 두번째 방법은 문학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고, 세번째 방법은 자신이 직접 문학가가 되는 것이다.
나는 소설이 소설을 쓴다는 기쁨이 아니면, 하나의 서사를 만드는 데 따르는 고통을 표현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나는 이도 저도 아닌 소설이나 시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이매진> 창간호 中

문학 활동

아무도 오지도, 가지도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정말 끔찍해.[7]
<30> 中
도시는 어머니에겐 다른 세계, 내가 도시를 떠나 다른 도시로 온 뒤부터, 내가 그 다른 세계에서 다른 습관을 들인 뒤부터 어머니와 나는 서로 할 말을 잃어갔다. 식혜 대신 커피를 마시는 아들, 비누 대신 샴푸로 머리를 감는 아들, 신문을 읽는 대신 파를 다듬는 아들, 땀이 밴 수건이 아니라 손수건을 접어 손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는 아들, 우리는 모자지간의 본능으로 서로를 잡아당기지만 서로의 의견을 토론할 줄 모른다.[8]
<오래된 그늘> 中
5월 초순이 되면 자전거를 타고 한강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이 꽤나 많이 등장한다. 그들 중에는 만에 하나쯤. 그러니까 0.01퍼센트의 확률로 대단히 드물긴 하지만 투명인간도 있다. 나 부터 그러니까. 내가 입는 일상복은 일반 사람 눈에도 보이지만 옷 밖으로 드러나는 신체의 일부분, 그러니까 손이나 목이나 얼굴이나 머리카락이나 귀때기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물론 같은 투명인간끼리는 서로 볼 수 있다.[9]
<소금> 中

문예 비평

남춘봉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실을 오직 자신의 주관적인 경험만을 근거 삼아 소설로 만들어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을 넘어, 어설픈 정치적인 프로파간다를 시도함으로써 세상을 지배하려는 야망을 가졌다. 바로 그런 점에서 남춘봉은 일종의 파시스트와도 같다.
<이매진> 1997년 1월호, <제2차 세계대전과 포스트모던> 中
이 소설은 아무것도 보여준 것이 없다. 여성착취 시대의 기록물을 자처하면서 그 이미지들을 보여주지도 않고 찾으려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소설의 촛불은 추석의 전 부치는 주방간에서 꺼지고 말았다.
<이매진> 2016년 3월호, <82년생 김지영 - 리얼리즘의 이미지> 中
나는 그들을 개인적으로는 모른다. 또, 그들의 소설이 그리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고은이문열에 대한 비평
극작의 역사는 이강백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초기 작품들 말고는 별로 재미는 없지만 위대한 극작가이고 그의 대본은 교과서이다. 이런 재미 없고 의미도 알 수 없는 연극을 극장들의 협찬을 계속 받고 썼다는 점에서 그는 위대하다.
<이매진> 2002년 1월호 中
내가 보는 한 현재 애니메이션의 대부분은 '오타쿠의 소비재'에 불과하다. 카피(copy)의 카피의 카피, 시뮬라시옹(simulation)의 시뮬라크르(simulacre)로 표현의 몸통은 없다. 지금의 애니 제작자들은 오타쿠라 불리는 팬층에 팔릴 만한 속칭 '모에' 등의 요소를 다용하며, 과거에 성공한 작품이나 재탕해 창조성 및 작품력이 결여됐다는 말이다.
<씨네21> 2017년 5월호 中

정치적 발언

이 애매모호한 총리의 재선을 전 대한이 나서서 막아야한다.
제n대 민의원 의원 총선거 전 인터뷰에서
저런 약골뱅이가 총리가 되게 나두어서는 안된다네
어떻게 21세기에 황제가 있을 수 있는지부터가 의문이라 할 수 있다.
<시사인>과의 인터뷰에서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틀:민중당(1990) (한나라) 1990 - 1992 창당
틀:국민승리21 (한나라) 1997 - 1999 창당
무소속 1999 - 2000 정당 해산
민주노동당_흰색_로고타입_(한나라).svg

2000 - 2011 창당
통합진보당_흰색_로고타입_(한나라).svg

2011 - 2014 신설 합당
무소속 2014 - 2020 정당 강제 해산
좌파당_흰색_로고타입_(한나라).svg
2020 - 입당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0 제n대 민의원 의원 총선거 전국구 민주노동당_흰색_로고타입_(한나라).svg

000,000,000 (00.00%) 낙선 (3번)
2010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한성부윤 사퇴[10]

여담


  1. 류원은 필명이며 현재도 법정 등록 이름은 류열찬이다. 류철균, 고은태, 이열, 황수영과 같은 케이스.
  2. 원문: 박범신, <소금> (2013)
  3. 일설에 의하면 자신의 한자 이름이 너무 어려워서 편하게 쓰려고 바꾸었다고 한다.
  4. 당시 만주에는 출입국 관리 담당자가 실적을 챙기겠다고 아무 여행객이나 골라 마약 밀반입자로 모는 악행이 있었는데 여기에 신하준이 걸려들었다. 신하준은 프랑스로 돌아가서 만주가 스탈린주의-관료주의 통제 사회의 극한이자 배반당한 혁명(트로츠키의 저서 제목을 인용)의 대표격인 국가라고 맹비난했는데 이로 인해 현재까지 만주에서 영구적으로 입국이 금지되어있다.
  5. 그런데 2010년대에는 이런 성향이 누그러진 것인지 공지영의 <도가니>를 칭찬했다.
  6. 자신이 번역한 질 들뢰즈의 미학 저서 <시네마 1: 운동-이미지>에서 따왔다.
  7. 원문: <고도를 기다리며> (Waiting for Godot), 사뮈엘 베케트 (1952)
  8. 원문: <깊은 숨을 쉴때마다>, 신경숙 (1995)
  9. 원문: <투명인간>, 성석제 (2014)
  10. 민주당 한명숙 후보 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