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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공화국의 주요 선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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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국민원 의원 총선거 第17回 國民院 議員 總選擧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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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율 | 83.09% ▼ 2.21%p | ||||||||
선거 결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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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 당수 | 의석수 | 비율 | 증감 | |||||
조봉암 | 83석 | 44.2% | 31 | ||||||
하기락 | 80석 | ||||||||
강량욱 | 68석 | ||||||||
박헌영 | 152석 | 29.1% | 66 | ||||||
장면 | 109석 | 20.9% | 19 | ||||||
이기붕 | 21석 | 4.0% | 23 | ||||||
- | 7석 | 1.3% | 신생 | ||||||
- | 2석 | 0.4% |
개요
배경
1953년 압도적인 의석으로 집권한 사회당은 당내 좌우중도파의 계파 분쟁으로 몸살을 겪었다. 사회당의 3대 파벌은 다음과 같았다.
- 좌파사회당 (비스탈린주의 계열 마르크스주의, 97명): 공산당과의 연대에 찬성하였으며, 프랑스의 인민전선을 본 딴 범좌파의 연립 구상을 추진했다. 김병식, 이계백, 강량욱 등이 대표했다.
- 우파사회당 (서구식 사회민주주의, 99명): 공산당과의 연대에 반대하였으며, 케인스주의에 바탕을 둔 점진적 사회 개혁을 추구했다. 조봉암, 김달호, 서상일, 조용수, 최석채 등이 대표했다.
- 중도사회당 (반공주의적 급진사회주의, 60명): 공산당과의 연대에는 반대했지만, 동시에 사회민주주의에도 반대했다. 아나키스트, 트로츠키주의자, 민주사회주의자 등이 속해있었다. 박열, 정화암, 백정기, 하기락 등이 대표했다.
세 개의 계파는 비슷한 의원 수로 서로 각축을 벌였으며 조봉암 총리가 분란이 일어날때마다 중재를 벌였지만 1958년 총선에서는 서로 후보 공천이 합의가 되지 않았고, 결국 세개의 계파는 선거에서 각자 후보를 내는 것에 합의하게 된다. 일부 지역구에서 제한적으로 단일화가 있었지만 대다수의 지역구에서 좌익의 표는 세 갈래로 나뉘어질 수 밖에 없었고, 조봉암 총리의 높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사회당의 재집권 여부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공산당은 이러한 사회주의 세력의 혼란을 틈타 대중적인 지지율을 확대했으며, 민주당은 신세대 정치인인 장면을 내세워 우익 진영의 재건을 노렸다.
결과
다이어그램을 누르면 선거 전후 의석 확인 가능. |
제16회 국민원 의원 총선거
대한공화국 전역 | ||||
기호 | 당명 | 득표수 | 의석수 | 증감[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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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수 | 득표율 | 의석 비율 | 비고 | |
1 | 9,196,087표 | 231석 | 25석 | |
조봉암 | 48.82% | 44.25% | 여당 | |
2 | 2,972,435표 | 109석 | 21석 | |
장면 | 15.78% | 20.89% | 제1야당 | |
3 | 4,451,117 | 152석 | 66석 | |
박헌영 | 23.63% | 29.11% | 연립여당 | |
4 | 1,465,497표 | 21석 | 18석 | |
이기붕 | 7.78% | 4.02% | 제2야당 | |
5 | 제헌동지회 | 401,222 | 7석 | 2석 |
- | 2.13% | 1.34% | 제4야당 | |
- | 무소속 | 350,363표 | 2석 | 4석 |
- | 1.86% | 0.38% | - | |
계 | 유권자 수 | 23,280,204 | 투표율 83.09% | |
투표 수 | 19,343,522 | |||
무효표 수 | 506,800 |
- ↑ 선거 직전 의석 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