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 (무궁화의 나라)

MarchJun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8월 15일 (화) 05:08 판
노동당
labor party/ 勞動黨
표어
노동의 정당한 보상을 위해
창당일
1992년
전신
조선노동당 기호.png
중앙 당사
서울특별시
이념
마르크스-레닌주의
스탈린주의
트로츠키주의

스펙트럼
극좌~좌익
당대표
이석기
부대표
김재연
원내대표
이석기
사무총장
김종훈
대변인
송명숙
민의원
180[1]석 / 600석 (30%)
광역지자체장
9석 / 24석 (37.5%)
당색
적색 (#C9151E)
국제 조직
틀:사회주의 인터내셔널(무궁화의 나라)
당원 수
79만명
학생 조직
학생노동위원회
청년 조직
청년노동위원회
성소수자 조직
노동과 LGBT
여성 조직
여성노동투쟁위원회
정책 연구소
노동정책연구소

개요

대한민국의 좌익정당이자 제1야당. 1991년 소련의 해체한 후 1992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해체하게 되면서 조선로동당을 해체하고 새로 창당한 정당이다.

역사

소련 붕괴 이후(1991년~1992년)

1991년 소련의 해체로 인해 당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인 "소련의 지원"이 사라지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부에서도 민주화의 물결이 불기 시작하며 슬슬 민주화가 이루어지는 듯 하였으나, 당시 이재오 주석은 4.13 호헌 조치를 선언하면서 당시 최연소 주석이었던 이재오에 대한 기대가 훅 사그라들게 된다. 그리고, 민주화를 요구하던 시위대 중 학생이 한 명 있었는데, 이 학생이 물고문으로 인해 숨졌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며, 시위의 열풍은 더욱 더 커지게 된다. 그리고, 결국 1992년 6월 29일, 이재오 주석과 조선로동당 총비서 및 책임자들은 총 사퇴를 하게 됨과 동시에 조선로동당을 해체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건국 이후 조선로동당 총비서 및 좌익 계열 운동권 및 노동조합은 조선로동당을 대체하기 위한 정당을 수립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현 노동당이다.

제1대 대통령 선거, 제1대 총선 이전

노동당은 당시 노회찬을 중심으로 한 신운동권 세력, 그리고 당시 전 조선로동당 총비서들 세력이 민 김정일이 대립하게 되었다. 하지만, 노동당 당원 및 대의원들은 당시 여론이 민주화 이후로 심상치 않게 돌아가게 되자, 노회찬에게 손을 들어주게 되었고, 그 결과로 노회찬이 대선 후보로 당선이 된다.

제1대 대통령 선거, 제1대 총선 이후

하지만, 노회찬이 20%도 아닌 고작 12.3%의 득표만 하게 됨으로서 신운동권 세력은 엄청난 책임을 물게 되었고, 결국 노회찬 대선 후보 및 이정희 당대표는 이 사태 이후 정계에 거의 발도 못 디디는 수준까지 갔다. 결국, 이 이후 국민민심 파악을 위해 당시 대선후보에 낙선한 김정일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되게 된다. 그리고, 당의 전면적인 개혁을 단행하게 된다. 우선, 당시 대선위원장이었던 신운동권 세력들이 지속적인 이념 설파 및 민주화 정신 폄하 등 각종 망언을 하게 되면서 지지율이 떨어졌다는 시각이 많다. 이를 계기로 김정일 비대위원장은 막말을 지극히 경계하며 막말하는 의원들을 즉각적인 윤리위원회 회부 등 매우 강경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제2대 대선, 제2대 총선 이전

김정일의 지속적인 신운동권 탄압 및 막말 의원 탄압으로 인하여 당원 및 대의원들은 확정적으로 전 조선로동당계이자, 민주파였던 김문수를 대선 후보로 내세우게 된다. 당시 대선위원장이었던 김정일은 지속적인 막말과 지나친 극좌 행보를 경계, 아직 사그라들지 않았던 민심을 굳이 자극하지 않기 위해 대선 공약 역시 상당히 우클릭했다는 평가가 있을 만큼 매우 중도화시킬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김문수 대선 후보는 현재 6.29 민주화 운동 뿐만 아닌 4.19 사태, 5.18 사태 등에 대한 사과도 전면적으로 할 만큼 당시 과거의 행보를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제2대 대선, 총선 이후

비록 대선에서는 낙선했으나, 저번 선거와는 다르게 중도층들의 민심을 획득하면서, 27.3%를 차지하게 된다. 실제로 총선에서도 저번 총선보다 무려 50석이 늘어났으며(89석), 당당히 제2야당으로서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노동당의 선전을 특히 잘 보이게 해준 김문수와 김정일에 대한 당원들의 평가도 매우 호의적으로 바뀌었고, 궁극적으로 조선로동당계의 몰락을 면할 수는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극좌 운동권에서는 "당장 총선에서는 승리했지만, 좌익의 뿌리는 뽑혔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반응이 안 좋은 것을 보아 극좌 운동권 세력과 노동당 현 당직 세력과 큰 마찰이 예상 될 모양이다. 결국 1998년, 아시아 경제위기로 인해 경제가 -5% 성장을 기록해, 현 여당이 참패할 것으로 예상되는 보궐선거에서도, 노동당이 무난히 이길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심상정 후보와 이정희 후보가 각각 무소속으로 보궐선거에서 출마하는 바람에 표가 갈라지게 되면서, 압도적인 참패를 가져오게 되었다. 결국 당 내부의 분열을 막지 못한 탓으로 김정일 당대표가 사퇴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 지역구 90석 + 비례대표 90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