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전쟁 (개화)

Curio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5월 6일 (월) 23:33 판 (개요)

현대 한국의 전쟁·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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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전투 교전국
제1차 극동전쟁
(1894-1895)
청나라의 기 청나라
의화단 운동
(1900-1901)
의화단
청나라의 기 청나라
제2차 극동전쟁
(1904-1905)
러시아 제국의 기 러시아 제국
제1차 세계대전 (태평양전역)
(1914)
독일 제국의 기 독일 제국
시베리아 출병
(1918-1921)
소비에트 러시아
극동 공화국의 기 극동 공화국
몽골 인민공화국의 기 몽골 인민군
만주 출병
(1927)
봉천군벌
○○○ 전투
(1936)
소비에트 연방의 기 소비에트 연방
제3차 극동전쟁
(1940-1941)
소비에트 연방의 기 소비에트 연방
일본의 기 일본 제국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전쟁)
(1941-1945)
일본의 기 일본 제국과 친구들
한중전쟁
(1956-1957)
타이완의 기 중화민국
베트남 전쟁
(1967-1975)
베트남의 기 월맹
베트콩
걸프 전쟁
(1990-1991)
이라크의 기 이라크
시베리아 전쟁
Siberian War
Сибирская война
▲ 연해주로 진입하는 대한민국 국군
날짜 1918년 1월 12일 ~ 1921년 3월
장소 동시베리아, 연해주
결과 하바리우스크 조약 체결
  • 극동 우크라이나 독립
  • 소비에트 러시아의 동시베리아 병합
영향 러시아 내전의 종결
소·오 영토분쟁 촉발
교전국
적군
백군·간섭군
소비에트 연방의 기 소비에트 러시아
극동 공화국의 기 극동 공화국
몽골 인민공화국의 기 몽골 인민혁명당
러시아의 기 러시아국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녹우크라이나의 기 극동 우크라이나
기타 간섭군 (-1918)
지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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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 연방의 기 레프 트로츠키
소비에트 연방의 기 유쿰스 바시에티스
소비에트 연방의 기 세르게이 카메네프
소비에트 연방의 기 미하일 투하쳅스키
소비에트 연방의 기 미하일 프룬제
소비에트 연방의 기 바실리 블류헤르
극동 공화국의 기 알렉산드르 크라스노쇼코프
몽골 인민공화국의 기 허를러깅 처이발상
러시아의 기 알렉산드르 콜차크
러시아의 기 그리고리 세묘노프
대한민국의 기 박승환
대한민국의 기 노백린
대한민국의 기 홍범도
녹우크라이나의 기 보리스 흐레샤티츠키
녹우크라이나의 기 레오니드 슬리셴코
오타니 키쿠조
윌리엄 그레이브스
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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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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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시베리아 전쟁은 러시아 내전의 일부로, 시베리아에서 러시아 적군과 러시아 백군 및 간섭군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하바리우스크 조약을 통해 마무리되었으며, 러시아 적군은 동시베리아 대부분의 지역을 합병했고 녹우크라이나는 연해주 지방을 영토로 하여 독립하였다.

결과 및 영향

소련과 한국 그리고 녹우크라이나는 서로 원하던 바를 일정 부분만 이루어낼 수 있었다. 소비에트 러시아는 백군을 사실상 제압하고 러시아 내전을 승리로 종결시킬 수 있었으나, 극동 지방에서 가장 큰 두 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롭스크를 포함한 연해주 지방을 상실하고 말았다. 특히 제한적이나마 러시아의 부동항 역할을 하던 해군 요충지인 블라디보스토크를 잃은 것은 큰 타격이었다. 한국의 경우 공산주의자들의 남하를 막고 녹우크라이나를 독립시켜 완충지대를 확보하였다. 하지만 이는 동시베리아 전체를 영향력 아래에 두려던 이승만 내각의 원래 계획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한편 녹우크라이나는 표면적으로는 원하는 바를 이루어냈다. 극동 지방에 우크라이나인 민족국가를 세우겠다는 1차적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본토 우크라이나와의 통일에는 실패하였는데, 본토 우크라이나에서의 민족주의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고 소련에 병합당했기 때문이었다.

이와는 달리 서방 간섭군은 완전히 실패했다. 간섭군은 체코 자유군단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시베리아에 개입했지만 체코 군단은 결론적으로 모두 러시아 밖으로 철수하였고, 실질적인 목표였던 러시아 백군 지원과 적군 격퇴에 실패하였기 때문이다. 일본 역시 동시베리아의 이권을 노리고 참전하였으나 결론적으로 아무 것도 못 얻었으며, 그나마 점령했던 북사할린도 한국의 지원을 받는 녹우크라이나와의 분쟁에서 밀려 녹우크라이나에 넘겨주고 말았다. 이는 일본군에게, 더 나아가 일본 전체에게 커다란 수치였으며 이는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제3차 극동전쟁을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