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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민주 공화국의 역대 대총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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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 제2대 | 제3대 | 제4·5대 |
니어후루 아이싱가 | 남춘봉 | 마지총 | 푸차 자이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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룡석안 | 그레고리 아나똘로브 | 빅또르 오가르꼬브 | 호까친 오뜨간바야르 |
제9대 | |||
남해봉 |
파일:만민공 대총통장.png 만주 민주 공화국의 2대 대총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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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니어후루 아이싱가 |
→ | 제2대 남춘봉 |
→ | 제3대 마지총 |
만주 민주 공화국 제 2대 대총통 ᠨᠠᠮ ᠴᡠᠨ ᠪᠣᠩ 남춘봉|Nam Chun Bong | ||||
파일:만주 민주 공화국 국가휘장1.pn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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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만주 민주 공화국 | |||
출생 | 1923년 9월 25일 | |||
대한제국 평안북도 신의주부 | ||||
사망 | 2007년 9월 26일(향년 84세) | |||
종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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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요
남춘봉(만주어:ᠨᠠᠮ
ᠴᡠᠨ
ᠪᠣᠩ
만주어 키릴표기 :Нам Чүн Буң, 중국어:南春凤)은 만주 민주 공화국의 제 2대 대총통이며, 만주의 대표적인 문학가이자 작사가이다. 최초의 조선족 대총통이며, 통상적으로 불명예로 여겨지지는 않으나 유일한 장애를 지닌 대총통이다.[1]또한 건국어버이라 통칭되는 건국훈장 수여자중 한명이다.
현재까지 고전명작으로 읽히는 여러 저서의 저자이기도 하다.
2.일생
1923년 9월 25일 대한제국 평안북도 신의주부에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하여 한성부 보성고등보통학교으로 진학하여 학업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17살이 되는 1940년에 공산주의 운동에 눈을 뜨고는, 학교를 중퇴하고 만주로 건너가 조선의용대에 참여하여 대성제국에 맞서는 항쟁을 시작하였다.
1941년 3월 2일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여 팔로군에 소속되어 항쟁을 벌였다.
3.어록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1당 독재, 1당 독재는 곧 1인 독재요. 이는 20세기의 뼈아픈 경험입니다. |
편안하게 살려거든 불의에 외면하라. 그러나 사람답게 살려거든 도전하라. |
내 인생은, 반독재. 반독재로 끝나는거야. |
4.작품
창작품
- 주간잡지 「건설주보」 《지네》 (1945)
- 문예잡지 「문학」《담배국》 (1945)
- 단편 소설 《이렇게 싸웠다》 (1946)
- 단편 소설 《남광도일》 (1946)
- 작품 《달걀》 (1946)
- 작품 《밤에 잡은 포로》 (1946)
- 작품 《야맹증》 (1946)
- 문예잡지 「신문학」《균렬(龜裂)》 (1947)
- 문예잡지 「신문학」《상흔(瘢痕)》 (1947)
- 주간잡지 「서울문학」《어간유정(魚肝油錠)》 (1947)
- 아동 소설 《맞지 않은 기쁨》(195?)
- 아동 소설 《92전자리 파리》(195?)
- 단편집 《조선의용군》 (1950)
- 단편집 《엄혹한 나날에》 (1952)
- 단편집 《전우》 (1952)
- 단편집 《고향》 (1952)
- 단편집 《솔바람》 (1952)
- 단편집 《군공메달》 (한문작) (1952)
- 단편집 《새집 드는 날》 (1953)
- 장편소설 《해란강아 말하라!》 (1954)
- 단편소설 《괴상한 휴가》 (1955)
- 소설집 《고민》 (1956)
- 중편소설 《범람》 (1957)
- 중편소설 《번영》 (1957)
-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 (1965 완성, 1998 출판)
- 자서전 《항일별곡》 (1983)
- 소설집 《김학철단편소설집》 (1985)
- 장편소설 《격정시대》 (1986)
- 산문집 《무명소졸》 (1988)
-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 (1995)
- 산문집 《나의 길》 (1996)
- 산문집 《우렁이 속 같은 세상》 (2001)
작극품
- 단말극 《서광》 (1938)
- 단말극 《승리》 (1939)
- 단말극 《등대》 (1941)
작사곡
- 《고향길》(1941, 남춘봉 작사, 류신 작곡)
- 《조선의용군 추도가》(1941, 남춘봉 작사, 류신 작곡)
- 《동해어부》(1948, 남춘봉 작사, 정률성 작곡)
- 《유격대전가》(1948, 남춘봉 작사, 정률성 작곡)
번역작
- 니콜라이 고골(Николай Гоголь) - 희곡 《검사관》 (1948)
- 루쉰(鲁迅) - 단편 소설 《풍파(风波)》 (1952)
- 딩링(丁玲) - 장편 소설 《태양은 쌍간강를 비춘다》 (1953)
- 루쉰(鲁迅) - 소설 《아Q정전》 (1953)
- 루쉰(鲁迅) - 단편 소설 《축복(祝福)》 (1955)
- 주립파() - 장편 소설 《산촌의 변혁 (상)》 (1962)
- 주립파() - 장편 소설 《산촌의 변혁 (하)》 (1964)
5.평가
그가 당시 재직했던 중국의 중앙문학연구소의 당시 소장이었던 "정령(丁玲)"은 그를 추억하며 이와 같이 말하였다.
"남춘봉을 우리는 계속 그리워했습니다. 북대황에서 로동할 때도 그랬고 감옥에서도 계속 그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의 불행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만주 공산당의 맑스레닌파[2]의 세르게이 보그다노비치 티모셴코는 당 내에서 이념 차이로 남춘봉과 많이 충돌하였는데, 죽기 전에 남춘봉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남춘봉 동지는 말을 조리있게 했다. 그의 필력은 마치 오랜 로씨야의 작가를 보는 듯 하였다. 그는 지도자 감이다. 하지만 내가 죽은 후에서나 지도자를 해야 한다. 그는 끔찍한 뜨로쯔끼주의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