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화민국 초대 하이난 경비총사령 바이충시 白崇禧(백숭희) | Bai Chongxi | |
|---|---|
| 출생 | 1893년 3월 18일 |
| 청나라 광시성 구이린시 린구이현 (現 중화인민공화국 광시성 구이린시 린구이구) | |
| 사망 | 1985년 10월 3일 (향년 92세) |
| 중화민국 하이난성 하이커우시 슈잉구 (現 중화민국 하이커우시 슈잉구) | |
| 재임 기간 | 초대 국방부장 |
| 1946년 5월 23일 - 1948년 6월 2일 | |
| 초대 하이난 경비총사령 | |
| 1954년 5월 20일 ~ 1980년 1월 20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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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하이난의 왕 - 1995년 '바이충시 사망 10주년' 중국시보 |
중화민국의 군인.
광시성 출신의 군벌로, 1925년 국민혁명군에 합류한 뒤 장제스이 이끄는 국민당의 북벌과 중일전쟁, 그리고 국공내전에 이르기까지 주요 전선에서 활약하였다. 1947년 헌법 제정 이후에는 초대 국방부장과 국민당의 요직을 두루 역임했으나, 장제스 측근들의 견제를 받아 점차 정치 일선에서 밀려났고, 공산군과 치열한 포격전이 이어지던 하이난으로 사실상 좌천되었다.
그러나 1955년 하이난의 군권을 쥐고있던 쉐웨가 부총통으로 콜업되어[1] 타이베이로 떠나게 되자, 하이난의 군사들을 주둔 군세를 규합하여 독자적 세력화에 성공한다. 이후 1954년부터 1980년까지 26년간 경비총사령[2]의 지위로 하이난성을 지배하면서 명실상부한 하이난의 실력로 군림했다.
그럼에도 그는 중앙권력에게 저자세로 처신했다. 장제스에 대해 공개적 충성맹세를 수차례 천명하는가 하면, 하이난 내 반장 민주화운동을 선제적으로 짓누르며 타이베이 총통부의 신임을 얻고자 했다. 하지만 장제스 사후 장징궈가 민주화로의 선회를 모색하자, 양측의 노선 차이를 끝내 봉합하지 못했다. 19XX년 하이난 정숙작전을 통해 사실상 숙청되면서 총사령에서 자진 사임한다.[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