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장:흩날리며/2

세계관 설정

미국은 양차 대전쟁을 거쳐 상당한 경제적 우위를 점했다. 미국은 대전쟁 시기 전화에서 매우 자유로운 후방에 위치해 전쟁 피해가 적었고 대전쟁 동안 전세계의 자본을 흡수하며 경제 호황을 구가해 서방의 시장을 장악한 상태였다.

급등하는 패권 유지 비용, 커져가는 무역 적자 문제를 겪던 미국은 결국 브레턴우즈 체제를 무너트렸다. 그러나 이로 인한 인플레이션 문제가 심화하자, 결국 폴 볼커 미 연준 의장은 볼커 쿠데타로 일컬어지는 대규모 금리 인상을 단행하게 되었다. 이 결과 미국은 가까스로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고 달러의 신용을 일시적으로 회복시켰지만, 그 대가로 막대한 기업들이 부도를 면치 못하고 국내 실업자가 급증했으며 전세계에 뻗어있던 막대한 해외 자본을 회수함에 따라 대전쟁 이후 누려오던 자국의 전세계적 경제 패권이 회복할 수 없는 지경까지 내몰렸다. 미국의 자본이 전면 철수하자 남아메리카와 아시아의 수많은 비동맹 국가들은 경제 위기에 직면했고, 각지에서 사회주의 세력이 득세하며 상황이 연거푸 발생하였다.

55년 체제의 종식

그러나 자유민주당의 독주 체제를 견인하던 경제 호황이 1980년대 레이건 쇼크로 인해 침체되기 시작했다. 1983년 출범한 미국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며 브레턴우즈 체제에서 탈퇴하고 변동 환율제와 달러 가치 절하를 명시한 스미소니언 협의를 전세계에 강요했다. 협정을 거부한 유럽과 달리, 나카소네 내각은 스미소니언 협의를 수용했다. 여전했던 소련과의 경쟁 구도로 인한 반공주의, 미국에 의존적인 일본의 수출 주도 경제 구조 때문이었다.

레이건 쇼크로 인한 세계 경제의 블록화, 스미소니언 협의에 따른 엔고 현상으로 인해 수출이 위축되고 투자가 감소하면서 일본의 경기는 얼어붙었다. 이에 나카소네 내각은 당시 미국과 발맞춰 신자유주의를 실시해 경제 불황을 극복하려 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는 자산시장에 대한 금융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금리 인하, 소득세 감면 등의 조치를 내려 경제 활성화를 시도하였다.

단기적으로 나카소네 내각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경기를 크게 부양시키는 성과를 거뒀으나 이는 금융 시장의 과열로 소비와 투자가 기형적으로 부양돼 이뤄진 거품 경기의 영향이 컸다. 거품 경제와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로 경기가 과열돼 고물가 현상이 짙어지자 뒤늦게 일본 정부는 소비세를 도입하고 금리를 도로 인상시켜 통화 긴축을 진행했지만, 대형간접세인 소비세 도입을 놓고 국민의 거센 조세 저항이 일어나면서 정치적 역풍이 불기 시작했다.

한편 자민당이 신자유주의 정책과 소비세 도입을 놓고 큰 비판을 받는 가운데, 일본사회당은 대대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먼저 사회당은 1986년 총선 참패 이후 주요 정당 중 최초로 도이 다카코라는 여성 당수를 옹립하며 쇄신에 나섰다. 도이 다카코는 선명한 화법, 최초의 여성 당수라는 대중적 개성으로 유권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냈고, 사회당의 노선 온건화를 통해 공명·민사당 등 중도 정당과의 제휴로 범야권 선거 연대를 성사시켰다.